<?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92%A4%EB%B0%94%EB%A6%AC_%EB%B6%80%EC%9D%B8</id>
		<title>뒤바리 부인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92%A4%EB%B0%94%EB%A6%AC_%EB%B6%80%EC%9D%B8"/>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2%A4%EB%B0%94%EB%A6%AC_%EB%B6%80%EC%9D%B8&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13T21:27:2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2%A4%EB%B0%94%EB%A6%AC_%EB%B6%80%EC%9D%B8&amp;diff=71398&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8일 (토) 16:4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2%A4%EB%B0%94%EB%A6%AC_%EB%B6%80%EC%9D%B8&amp;diff=71398&amp;oldid=prev"/>
				<updated>2017-01-28T16:49: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http://www.antique-prints.de/shop/Media/Shop/8378.jpg&lt;br /&gt;
== 개요 ==&lt;br /&gt;
Madame du Barry (1743.[[8월 19일|8.19.]]~1793.[[12월 8일|12.8.]])&lt;br /&gt;
&lt;br /&gt;
[[루이 15세]]의 마지막 [[첩#s-1|애첩]].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베퀴(Jeanne Antoinette Bécu). 뒤바리 부인이라고 불리지만 [[프랑스어]] 표기는 Madame du Barry, 그러므로 ''''바리 부인'''', 혹은 '바리 백작부인(Comtesse du Barry)'이 맞다. 같은 평민 계급이라고 해도 부유한 집안의 딸로 교양을 갖추었던 [[마담 드 퐁파두르#s-1|마담 드 퐁파두르]]와는 달리 원래부터 [[창녀]]였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신분이 낮다. 그녀의 후견인이 된 바리 백작은 처음부터 그녀를 국왕의 애첩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며, 실제 그녀를 본 국왕은 곧 매료되어 그녀를 [[베르사유 궁전]]에 들이게 된다. 다만 국왕의 애첩은 법도상 반드시 기혼녀여야 했고, 그래서 바리 백작은 그녀를 자신의 남동생과 급히 결혼을 시켜 그녀를 입궁시켰다.&lt;br /&gt;
&lt;br /&gt;
한국에는 [[베르사유의 장미#s-2|베르사유의 장미]] 덕분에 악랄하고 거만한 여자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소탈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직접 보면 방탕한 요부보다는 오히려 [[영성체]]하러 나온 순진한 시골처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니 [[흠좀무]]. 하지만 국민들은 가차없어서, 뒤바리 부인은 내내 [[창녀]]라는 타이틀이 붙은 채 죽을 때까지 까였다.&lt;br /&gt;
&lt;br /&gt;
어찌 보면 의외로, 어찌 보면 당연히, 권력이나 정략에는 관심이 없었고 외교나 정치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오히려 이렇게 정치에 간섭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후세의 호의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물품, 특히 보석[* 실제 나중에 문제가 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사건]]에서 보석업자가 팔려고 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뒤바리 부인을 위해 루이 15세가 주문했던 것이었다. 다만 너무 사치스러워서 [[마리 앙투아네트]]도 [[루이 16세]]도 그 목걸이를 사지 않았다.]을 굉장히 좋아해서 [[루이 15세]]에게 졸라 시도때도 없이 보석과 각종 사치품을 질러대는 바람에 국민 여론은 굉장히 나빴다. 어차피 애첩이 좋은 여론을 받은 적은 없는 프랑스지만...&lt;br /&gt;
&lt;br /&gt;
당시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가 사망한 프랑스 궁정에는 여주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왕의 애첩으로 자리잡은 뒤바리 부인은 사실상의 왕비 역할을 했다. 루이 15세의 딸들은 이 점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했기에, 뒤바리 부인은 공주들과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뒤바리 부인의 지위를 처음으로 위협한 것이 바로 왕세손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그녀는 [[매춘]]을 금지할 정도로 윤리적으로 엄격했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향[* 실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매매춘을 전면 금지했다가 실패한 적 있고, 신하들이 첩을 둘 경우 굉장히 엄격하게 처벌했다.]으로 애첩에 대해 대략 [[충공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빅투아르를 필두로 한 루이 15세의 공주들은 프랑스에 온지 얼마 안 되었기에, [[프랑스어]]가 서툴러 궁중 생활 적응에 애먹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접근, 뒤바리 부인에 대한 악평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이 영향으로 마리는 뒤바리 부인을 몹시 싫어하게 되어, 어떤 공식 석상에서도 말을 걸지 않게 된다. 신분제였던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귀부인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 전에 신분 낮은 귀부인이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뒤바리 부인이 사실상 프랑스의 왕비였다지만, 형식상으로 이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귀부인은 왕세손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루이 15세의 공주들과 마리는 이 점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뒤바리 부인을 견제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뒤바리 부인은 처음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해지려고 했으나 왕세손비가 아예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뒤바리 부인은 계속 참다가 결국 격노해 [[루이 15세]]에게 달려가 울고불고 하소연을 하게 되었는데, 외국에서 시집온 어린 손자며느리가 귀엽긴 하지만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던 루이 15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직접 불러 타이르거나 딸들을 말리는 대신, [[오스트리아]] 대사를 불러 공식적으로 따져 버린다. 엄청나게 당황한 대사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가서 사태를 전했고, 비록 첩이라는 존재를 불쾌해하긴 했어도 왕들이 첩을 거느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딸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결국 엄마의 지시를 들은 대사가 눈물로 설득해,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신년 행사에서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건네게 된다. 그 유명한, &amp;quot;오늘 베르사유에는 사람이 정말 많군요&amp;quot; 가 이 때 나온 말이다.[* 다만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오는, 그 뒤에 달려가 우는 건 어디까지나 만화의 창작이다.]&lt;br /&gt;
&lt;br /&gt;
이 사건 이후 뒤바리 부인은 승리에 젖어 의기양양했고, 세 공주들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분한 감정을 참고만 있어야 했다. 그러나 1774년 4월 27일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렸고, 세 딸들과 뒤바리 부인은 열을 다해 그를 간호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지한 왕은 고해사제를 불러 마지막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고해 [[신부]]는 뒤바리 부인을 출궁시키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주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따라서 루이 15세는 그녀를 출궁시킬 수밖에 없었고, 5월 3일 그녀를 뤼엘[* 베르사유 가까이에 있는 궁.]로 떠날 것을 명했다. 당시 루이 15세가 했던 말은 &amp;quot;마담, 나는 병이 들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소. 이 휴식이 나로 하여금 늘 당신에 대한 가장 정다운 우정의 감정을 갖게 해주는구려.&amp;quot;였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루이 15세는 자신의 [[정부#s-2.2|정부]]를 불러올 것을 명했으나, 뒤바리 부인은 이미 떠난 뒤였다. 그리고 5월 10일 루이 15세가 사망했다. 뒤바리 부인은 왕 사망 후 잠시간 수녀원에 머물러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곧 조치가 풀려 자신의 루브시엥 성에서 은거하였다.[* 정치적으로 음모를 짜거나 정적을 만든 적이 없어서인지,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보복'''도 받지 않았다. 사실 루이 15세의 세 딸들이 조카 [[루이 16세]]를 닥달해서 뒤바리 부인을 처리하라고 했기에 그나마 수녀원으로 잠시간 추방했을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쁘띠 트리아농 궁은 [[루이 15세]] 때 마담 드 퐁파두르를 위해 세운 별궁으로 18세기 중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졌는데, 정작 완공된 것이 마담 드 퐁파두르가 죽은 이후인 1768년에 끝이 났기 때문에 뒤바리 부인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베르사유에서 쫒겨난 이후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낳은 선물로 받는다.&lt;br /&gt;
&lt;br /&gt;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는 다행히 [[런던]]으로 피신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얼마 뒤 인생 최대의 [[병크]]를 터트리니,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러 파리에 들른 것(…). 이 때 파리는 극렬 과격파인 '''자코뱅당'''이 득세하고 있었고, 귀족도 부족해서 [[부르주아]]나 악덕 상인들까지 잡아죽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대체 왜 파리에 갔는지 아직도 얘기가 분분하지만 어쨌건 뒤바리 부인이 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평판이 여기서 입증되는 듯.(…)&lt;br /&gt;
&lt;br /&gt;
재판을 받을 때까지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 하다. 숨겨두었던 [[보석]]을 모두 제공할 테니 살려달라고 탄원했지만 [[네임드]]를 잡은 극렬파 자코뱅당이 그녀를 살려줬을 리는 만무하다. 결국 [[1793년]] 12월 8일 [[단두대]]에서 [[사형]]당한다.&lt;br /&gt;
&lt;br /&gt;
선고가 있기 전 자신이 석방될 줄로 알았던 뒤바리 부인은, [[사형]] 판결이 나자 목청이 찢어질 정도로 절규했다고한다. [[마차]]로 [[단두대]]까지 호송되는 와중에도 계속 자신을 석방해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단두대가 눈에 보이자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서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고 한다. 물론 더 이상 젊은 나이도 아니었고 나이가 들어서 뚱뚱해진 노부인이었기에 완력이 장난이 아니어서(...), 그녀를 단두대에 고정시키기 위해 사형집행인 수 십명이 달라붙어서야 겨우 고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흠좀무.&lt;br /&gt;
&lt;br /&gt;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에도 계속 찢어지는 목소리로 단 몇 분만, 몇 초만이라도 사형을 연기해달라고 애원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목이 잘린 뒤에 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고.&lt;br /&gt;
&lt;br /&gt;
[[유언]]은 &amp;quot;[[유언/실존인물#s-3.2.5|잠깐만, 난 할 말이 있소. 잠깐만!]]&amp;quot;[* 혹은 &amp;quot;난 할 말이 있소. 잠시만 시간을 주시오!&amp;quot;] 이었다. 다시 한번 [[지못미]].&lt;br /&gt;
&lt;br /&gt;
[[18세기]] 프랑스에서 유명한 [[망나니]] 가문인 상송 가문의 4대 당주이자 프랑스 망나니들의 우두머리인 &amp;quot;무슈 드 파리&amp;quot;인 샤를 앙리 상송이 사형을 집행했는데, 공교롭게도 상송이 젊은 시절 여성을 유혹할 당시 뒤바리 부인과도 인사를 나누어 얼굴을 알았던 것. 그리고... 상송은 바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의 목을 날린 사람'''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 대중매체에서 ==&lt;br /&gt;
http://www.nitronic.it/anime/Miky/Oscar/images/stories/characters/DuBarry/DuBarry15.jpg&lt;br /&gt;
만화/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s-2|베르사유의 장미]]의 초반 3화부터 등장하여 악역으로 나온다. 성우는 故 키노미야 료코. KBS판은 [[이경자]], EBS판은 [[이소영(EBS 성우)|이소영]].&lt;br /&gt;
&lt;br /&gt;
[[루이 15세]]의 딸들에게 영향받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을 천한 여자로 여기고 말을 걸지 않자 왕에게 하소연해 결국 인사를 받아낸다.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죽은 뒤 작중에서 퇴장한다. 그리고 나레이션으로 역사상의 사실처럼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음을 알려준다.&lt;br /&gt;
&lt;br /&gt;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영화)|마리 앙투아네트]]에도 나온다. 배우는 [[아시아 아르젠토]]. 밤에 루이 15세와 침대 위에서 하는 [[고양이]] 놀이 장면이 깨알같다.&lt;br /&gt;
&lt;br /&gt;
만화 [[이노상]]에서는 [[이노상#s-2|마리 잔느 베큐]]라는 이름으로 나온다.&lt;br /&gt;
[[분류:프랑스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