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9D%BC%EB%B9%88%EB%93%9C%EB%9D%BC%EB%82%98%ED%8A%B8_%ED%83%80%EA%B3%A0%EB%A5%B4</id>
		<title>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9D%BC%EB%B9%88%EB%93%9C%EB%9D%BC%EB%82%98%ED%8A%B8_%ED%83%80%EA%B3%A0%EB%A5%B4"/>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D%BC%EB%B9%88%EB%93%9C%EB%9D%BC%EB%82%98%ED%8A%B8_%ED%83%80%EA%B3%A0%EB%A5%B4&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06T23:14:2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D%BC%EB%B9%88%EB%93%9C%EB%9D%BC%EB%82%98%ED%8A%B8_%ED%83%80%EA%B3%A0%EB%A5%B4&amp;diff=74757&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29일 (일) 10:5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9D%BC%EB%B9%88%EB%93%9C%EB%9D%BC%EB%82%98%ED%8A%B8_%ED%83%80%EA%B3%A0%EB%A5%B4&amp;diff=74757&amp;oldid=prev"/>
				<updated>2017-01-29T10:56: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align=right&amp;gt;&amp;lt;:&amp;gt;&amp;lt;-5&amp;gt;&amp;lt;#AC1E44&amp;gt; {{{#ffffff '''라빈드라나트 타고르(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Robindronath Ţhakur)'''}}}||&lt;br /&gt;
||&amp;lt;:&amp;gt;&amp;lt;-5&amp;gt;http://media-1.web.britannica.com/eb-media/94/60994-004-05035DEF.jpg?width=450||&lt;br /&gt;
||&amp;lt;:&amp;gt;&amp;lt;-5&amp;gt;http://www.nobelprize.org/nobel_prizes/literature/laureates/1913/tagore.jpg?width=450||&lt;br /&gt;
||&amp;lt;:&amp;gt;&amp;lt;#AC1E44&amp;gt;&amp;lt;table bordercolor=#AC1E44&amp;gt; {{{#ffffff '''생몰'''}}} ||&amp;lt;-4&amp;gt;&amp;lt;:&amp;gt;'''[[1861년]] [[5월 7일]] - [[1941년]] [[8월 7일]]'''||&lt;br /&gt;
&lt;br /&gt;
||||||||||&amp;lt;:&amp;gt;&amp;lt;tablealign=&amp;quot;center&amp;quot;&amp;gt; '''&amp;lt; [[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amp;gt;''' ||&lt;br /&gt;
||||||||||&amp;lt;:&amp;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e/ed/Nobel_Prize.png?width=220 ||&lt;br /&gt;
|| 1912 -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 →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 || 1914 - 수상자 없음 ||&lt;br /&gt;
&lt;br /&gt;
[[인도 공화국|인도]]의 [[시인]]. [[1861년]] [[5월 7일]], 인도 [[벵골]] 주 [[캘커타]]의 저명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lt;br /&gt;
&lt;br /&gt;
그의 조부는 [[19세기]] 초에 [[영국]] [[동인도회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부친 데벤드라나트 타고르(দেবেন্দ্রনাথ ঠাকুর, 1817~1905)는 힌두교의 개혁에 관심을 두어 '마하르시(মহর্ষি, 위대한 성자)'라는 호칭을 얻은 인물이었다.&lt;br /&gt;
&lt;br /&gt;
영국의 명문대학이자 간디가 졸업한 university college london (UCL 런던 대학교)에서 법을 전공했으나 중퇴하였다.&lt;br /&gt;
&lt;br /&gt;
벵골 문예 부흥의 중심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일찍부터 [[벵골어]] 시를 썼고 16세에는 첫 시집 《들꽃》을 냈다. 초기 작품은 유미적이었으나 갈수록 현실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졌다. 교육 및 독립 운동에도 힘을 쏟았으며, 시집 《기탄잘리》(গীতাঞ্জলি, 신께 바치는 노래)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더불어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lt;br /&gt;
&lt;br /&gt;
타고르는 [[한국]]을 소재로 한 시,《동방의 등불》을 남겼다. 《동방의 등불》은 1929년 타고르가 [[일본]]에 들렀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그 대신 동아일보에 기고한 작품이라고 하는데..&lt;br /&gt;
이 기고라는 것이 처음 4행만 메모 형태로 기고되었고 나머지 11행은 누군가가 타고르의 다른 작품인 '기탄잘리 35'의 글귀를 짜집기해 이어붙이고 마지막엔 출처도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라는 문구가 붙여진 물건이라고 한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6437|#]] 이런 걸 좋다고 숭상하고 인용하고 교과서에 실어온 사람들은..&lt;br /&gt;
타고르의 또 다른 작품인《패자(敗者)의 노래》는 [[최남선]]의 요청에 의하여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전에 타고르 자신이 '''[[번역]]'''해 [[http://dongne.donga.com/2009/12/21/d-story-32-%ED%83%80%EA%B3%A0%EB%A5%B4%EC%9D%98-%EC%8B%9C%EC%99%80-%EA%B4%80%EB%A0%A8%EB%90%9C-%EC%98%A4%ED%95%B4%EB%93%A4/|미국에서 발간한 시집인 '채과집(Fruit-Gathering)'에 실린 것을 그냥 보낸 것]]이다. 최남선이 이를 '''타고르가 한국을 위해 쓴 창작물로 오해'''한 것. 거기다 문구도 원문과 비교하면 그것조차도 [[오역]]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니.&lt;br /&gt;
 &lt;br /&gt;
거기다 위의 시들로 인해 한국을 우대한 인물로 국내에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일본의 문화에 매료된 [[자포네스크]]적 기질의 인물로 '일본은 시심을 자아내는 나라'라든지 '일본은 아시아에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이 해 뜨는 나라에 감사한다'라든지 하는 말을 하며 일본을 5차례 방문하고 [[러일전쟁]]에 일본을 숭상하는 시를 써 기고하기도 했으며 군국주의를 밀어주던 일본 우익의 거물 도야마 미쓰루(頭山滿)와도 친분이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 일본의 힘이 커졌으니 일본이 (인도를 포함한) 대다수가 식민지로 전략해있는 아시아의 주권을 위해 서양의 제국주의와 맞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당시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제법 많았었다. 인도 독립운동을 한 [[찬드라 보세]]라던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도 이런 시각이 어느정도 담겨있기도 했다. '''[[일본제국|하지만]]...''']&lt;br /&gt;
다만 일본에서의 강연에서 &amp;quot;이 나라(일본)는 물질적으로는 진보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퇴보하고 있다&amp;quot;라고 하거나, &amp;quot;일본이 인도에도 야심을 품고 있는 듯하다. 굶주린 그들은 지금 조선을 잠식하고 중국을 물어뜯고 있다&amp;quot;라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도 했으니 대놓고 [[일빠]]는 아니다.&lt;br /&gt;
&lt;br /&gt;
한편 타고르의 고향은 지금의 인도 영토인 캘커타이고 '''힌두교도'''임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인들도 같은 벵골어 사용자라 그런지 타고르를 열렬히 사랑한다. 방글라데시의 국가인 &amp;quot;나의 황금빛 방글라&amp;quot;도 타고르가 작사, 작곡한 것.&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시인]][[분류:노벨문학상 수상자]] [[분류:인도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