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0%88%EB%B6%80%EB%8B%88%EC%98%A8_%EC%A0%84%ED%88%AC</id>
		<title>레부니온 전투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0%88%EB%B6%80%EB%8B%88%EC%98%A8_%EC%A0%84%ED%88%AC"/>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0%88%EB%B6%80%EB%8B%88%EC%98%A8_%EC%A0%84%ED%88%AC&amp;action=history"/>
		<updated>2026-06-18T01:09:4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0%88%EB%B6%80%EB%8B%88%EC%98%A8_%EC%A0%84%ED%88%AC&amp;diff=759874&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7일 (화) 04:31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0%88%EB%B6%80%EB%8B%88%EC%98%A8_%EC%A0%84%ED%88%AC&amp;diff=759874&amp;oldid=prev"/>
				<updated>2017-02-07T04:31: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Battle of Levounion(Battle of Levunium)&lt;br /&gt;
&lt;br /&gt;
||||||&amp;lt;tablealign=right&amp;gt;&amp;lt;#C0C0FF&amp;gt;&amp;lt;:&amp;gt; {{{+1 '''레부니온 전투'''}}} ||&lt;br /&gt;
||||||&amp;lt;:&amp;gt;  ||&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날짜''' ||&lt;br /&gt;
||||||&amp;lt;:&amp;gt;  1091년 4월 29일 ||&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장소''' ||&lt;br /&gt;
||||||&amp;lt;:&amp;gt; 현재 [[터키]]의 [[에디르네]] 지방 Enez 부근 ||&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이유''' ||&lt;br /&gt;
||||||&amp;lt;:&amp;gt;  페체네그인들의 침공 및 민족 대이동 ||&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교전국'''||&amp;lt;^|1&amp;gt;'''[[동로마 제국]]'''[br]쿠만 족||&amp;lt;^|1&amp;gt;'''페체네그 족'''||&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지휘관''' ||&amp;lt;^|1&amp;gt; [[알렉시오스 1세]] ||&amp;lt;^|1&amp;gt; 불명 ||&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결과''' ||&lt;br /&gt;
|||||| [[동로마 제국]]의 대승 ||&lt;br /&gt;
||||||&amp;lt;:&amp;gt;&amp;lt;#C0C0FF&amp;gt;   '''영향''' ||&lt;br /&gt;
|||||| 페체네그 족 약체화 ||&lt;br /&gt;
||&amp;lt;#C0C0FF&amp;gt;&amp;lt;:&amp;gt; '''병력''' || 동로마 20,000 이상 [br] 쿠만족 40,000 이상 [br] 용병 ? || 80,000 ? ||&lt;br /&gt;
||&amp;lt;#C0C0FF&amp;gt;&amp;lt;:&amp;gt; '''피해규모''' || 알 수 없음 || 전사 5만이상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배경 ==&lt;br /&gt;
=== 동로마 제국의 상황 ===&lt;br /&gt;
총체적으로 무너져가는 제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1081년 4월 1일, [[알렉시오스 1세]]가 내부갈등을 수습하고 즉위했으나, [[중흥]]은 쉽지가 않았다. 즉위 후 첫 출정이었던 1081년 10월의 [[디라키움 공방전|디라히온 공방전]]에서 패배하여 큰타격을 입은 황제는 외교력을 총동원하여 1085년에서야 노르만인들의 침공을 정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전선을 동쪽으로 한정시킨 제국은 다시 국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쪽의 다뉴브 강 국경에서 페체네그 족이 침공해 들어왔다.&lt;br /&gt;
=== 페체네그 족의 재침공 ===&lt;br /&gt;
페체네그 족의 침공은 처음이 아니었다. [[바실리우스 2세|바실리오스 2세]]가 불가리아를 정복하여 다뉴브 강 국경이 재확립 된 뒤 제국은 1020년대부터 페체네그 족의 약탈에 노출 되었는데, 페체네그 족은 아예 1046년부터 [[콘스탄티노스 9세]], [[이사키오스 1세]], [[로마노스 4세]]의 치세동안 제국과 전면전[* 특히 [[콘스탄티노스 9세]] 시절 제국은 노르만, 투르크와 전면전을 치르면서도 페체네그 족과는 총력전에 가까운 전쟁을 벌여 큰 피해를 입었으며, [[로마노스 4세]]도 투르크와 대적하면서도 이들과 전쟁을 치러야했다.]을 벌였으며 그 때마다 제국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혀왔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전력에서 알 수 있듯 페체네그 족은 풍요로운 제국령을 탐내어 종종 공격해 들어왔는데, 마침 1080년대의 약체화 된 제국은 그들이 보기에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특히, 1081년~1085년간 노르만족과 막 전쟁을 끝내 지친 제국은 더더욱 그렇게 보였기에 제국내부가 보고밀파의 반란으로 소란스러워지자 1086년부터 제국을 침공하여 제국군을 섬멸하는 등 큰 피해를 입혔고, 1087년에는 8만에 달하는 벙력으로 트라키아까지 침공하여 알렉시오스 1세가 이끄는 군대[* 적어도 2만을 넘는, 급박한 상황치고는 상당한 대군이었다.]를 격파하고 제국으로부터 공물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lt;br /&gt;
&lt;br /&gt;
제국을 압도했다고 판단했는지 페체네그 족은 다뉴브 강 너머에서 불가리아와 트라키아 일대로 여자,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내려와 대이동을 시작했다. 제국이 맞서야할 적은 사실상 페체네그 국가 혹은 민족 그 자체였다.&lt;br /&gt;
== 준비 ==&lt;br /&gt;
단독으로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황제는 [[이이제이]], 즉 다른 이민족과 손을 잡아 페체네그 족을 물리치기로 하였다. 그 상대로 페체네그 족과 적대중이던 쿠만 족이 선택되었고, 쿠만 족은 기세를 타던 페체네그 족을 제압할 기회라 여기고 동맹에 응했다.&lt;br /&gt;
&lt;br /&gt;
반대로 페체네그 족은 제국의 적인 투르크인과 연대했다. 해군이 없었던 페체네그 족 대신 투르크 해군이 제국의 후방을 공격하고, 이외에는 정황상 제국령 유럽영토의 상당수를 페체네그 족의 것으로 인정하는 동맹이 체결되었다.&lt;br /&gt;
== 전개 ==&lt;br /&gt;
1090년 12월, 페체네그 족이 트라키아를 재침공하자 제국군은 이에 응전했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 서쪽 30여km 근방까지 밀리게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덕에 방어에 문제는 없었으나 동맹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해 황제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 되었다.&lt;br /&gt;
&lt;br /&gt;
1091년 4월, 즉위 10년차의 알렉시오스 1세는 최후의 수를 던졌다. 새로 병사를 모집하고, 남아있던 중앙야전군은 물론 용병과 후방 수비군까지 총동원한 군대를 편성[* 역시 2만~5만 5천에 이르는 대군이었다.]한 황제는 對 페체네그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출정했다. 황제에게는 다행히도 서둘러 진군한 쿠만 족의 4만 5천의 군세와 트라키아에서 합류할 수 있었고, 연합군은 동등 혹은 우세한 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lt;br /&gt;
== 전투 ==&lt;br /&gt;
연합군은 곧 11만을 넘는 페체네그 '국가'와 조우했다. 마리차 강을 따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며 진군하던 연합군은 오후가 되어 인근 레부니온 산으로 전장을 옮겼다. 사실상 쌍방이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결전이 예상되고 있었고, 결국 그날 밤 전투가 일어났다.&lt;br /&gt;
&lt;br /&gt;
객관적인 전력이 밀렸던 것인지, 혹은 비전투원이 많았기 때문인지 곧 페체네그 족의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원한이 많았던 연합군은 멸족시킬 기세로 대학살을 벌였다. 그날밤 5~6만이 넘는 페체네그 인들이 죽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lt;br /&gt;
== 영향 ==&lt;br /&gt;
[[알렉시오스 1세]]는 한숨 돌릴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유럽의 전선이 안정화 되었으며, 위협이 되던 투르크 해군의 공세도 1091년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저지하고 1092년 [[스미르나|스미르니]]의 에미르 챠카가 제국측의 모략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당장의 군비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승전으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까지 확보한 황제는 내부개혁에 착수하여 국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아시아를 향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서유럽을 향해 원군을 요청하게 된다. 이는 [[십자군 원정]]이라는 눈덩이가 되어서 돌아오지만...&lt;br /&gt;
&lt;br /&gt;
페체네그 족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1040년대 부터 전면전을 걸어 제국을 비틀거리게했던 이들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1121년 다시 제국을 침공했으나 알렉시오스 1세의 아들 [[요안니스 2세]]에게 1122년 [[베로이아 전투]]에서 괴멸당해 죽거나 제국민으로 흡수 당해 차차 소멸에 이르게 된다.&lt;br /&gt;
&lt;br /&gt;
[[분류:동로마 제국]][[분류:전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