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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루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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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9T16:15:3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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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30일 (월) 06:0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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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30T06:08: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news.sookmyung.ac.kr/news/photo/200904/1716_735_339.jpg&lt;br /&gt;
&lt;br /&gt;
魯迅(노신)&lt;br /&gt;
&lt;br /&gt;
||출생||[[1881년]] [[9월 25일]] [[중국]] [[저장 성]] 사오싱 시||&lt;br /&gt;
||사망||[[1936년]] [[10월 19일]] [[장쑤 성]] [[상하이]]||&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amp;gt; &amp;quot;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지상 위에 놓인 길과도 같은 것이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amp;quot;&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중국]]의 [[작가]]이자 [[만화가]][* 해외소설을 대거 [[연환화]]하는 작업에 나선적이 있다. 다만 중국내에서 연환화 작가는 일반적인 만화가와는 따로 취급하는 듯], 사회운동가, 사상가&lt;br /&gt;
&lt;br /&gt;
사실 루쉰이 본명이 아니다. [[주(성씨)|저우(周)씨]]였고, 어린 시절의 이름은 장서우(樟壽)였다. 본명으로 알려진 수런(樹人)은 그가 17세 때에 학교에 들어가면서 바꾼 이름이다.&lt;br /&gt;
&lt;br /&gt;
== 연표 ==&lt;br /&gt;
 * 1881년 - 9월 25일, 중국 저장성 샤오싱 시의 성 안 마을에서 태어남&lt;br /&gt;
 * 1892년&lt;br /&gt;
 9월, 삼미서재에 들어가 &amp;quot;[[맹자]]&amp;quot; 등의 경서를 배움&lt;br /&gt;
 '''이 무렵부터 고전 소설이나 [[야사]] 등을 즐겨 읽고, 민간 목각화, 그림 등을 수집함'''&lt;br /&gt;
 * 1893년&lt;br /&gt;
 청나라 관리였던 할아버지가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힘(~1901)&lt;br /&gt;
 겨울, 성 밖의 외가에 맡겨져, 뒷날 소설 창작에 영향을 준 농촌 생활을 체험함&lt;br /&gt;
 * 1894년 -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전당포와 약방을 돌아다님&lt;br /&gt;
 * 1896년 - 1월, 아버지가 37세로 죽고, 집안이 더욱 궁핍해짐&lt;br /&gt;
 * 1898년 - 5월, 새 학문을 익히기 위해 난징에 있는 강남 수사 학당에 들어갔으나, 곧 그만둠&lt;br /&gt;
 * 1899년&lt;br /&gt;
 1월, 강남 육사 학당 부설 광무 철도 학당에 입학&lt;br /&gt;
 '''이 때부터 서양 근대 사상을 전하는 책과 잡지, 신문 등을 읽고, 진화론에 영향을 받으면서 과학과 민주 사상에 눈뜸'''&lt;br /&gt;
 * 1902년&lt;br /&gt;
 3월,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의 쿄붕 학원에 입학&lt;br /&gt;
 새로운 의학이 중국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리라 생각하고 의학을 배우기로 함&lt;br /&gt;
 * 1904년&lt;br /&gt;
 9월, 일본 센다이 의학 전문 학교에 입학. 여기서 훗날의 회고처럼 강의 도중에 [[러시아]] [[스파이]]로 잡힌 [[중국인]]을 칼로 [[참형]]하는 장면이 상영[* 일설에 의하면 영상은 둘째치고 그 영상 속에서 '''처형되는 중국인을 다른 중국인들이 묵묵히 구경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도 한다.80년대 위인전 만화에서는 아예 이 영상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중국 유학생들이 환호하는 걸 보고 울면서 같은 중국인이 죽는데도 저런다니!? 라고 그려지기도 했다.]되자, 어이없어 보던 그는 생각을 고치게 된다. &amp;quot;생각없이 있다면 저렇게 다른 나라와서 자국인이 참수되는 거나 보고 있는 신세가 된다. 즉, 정신을 바꾸고 생각을 하게 해야한다. 그렇게 위해선 [[글]]과 [[문학]]이 의학보다 정신을 바꾸는데 중요하다.&amp;quot; &lt;br /&gt;
 12월, 광복회에 가입&lt;br /&gt;
 * 1906년 - '''2월, 문학 예술 활동으로 중국 민족 의식을 개조하리라 결심하고, 의학 공부를 그만둠'''&lt;br /&gt;
 * 1907년 - 3월, 문예 잡지 &amp;quot;신생&amp;quot; 출판을 계획했지만 실패함. 혁명적 잡지에 여러 가지 글을 발표함&lt;br /&gt;
 * 1909년 - 8월, 중국으로 돌아와 사오싱 중학당 등에서 교사를 지냄&lt;br /&gt;
 * 1911년 - '''10월, 신해혁명이 일어남.''' 사오싱에서 열린 민중대회의 주석직을 맡고 적극적으로 활동함.&lt;br /&gt;
 * 1912년 - 임시 정부의 교육부 관리가 되어 난징을 거쳐 베이징에 감&lt;br /&gt;
 * 1918년 - '''4월, &amp;quot;광인 일기&amp;quot;를 써서 &amp;quot;신청년&amp;quot;에 발표함. 처음으로 루쉰이란 이름을 사용함. 이후 계속하여 &amp;quot;신청년에 소설 등을 발표하여 [[신문화운동]]을 이끎'''&lt;br /&gt;
 * 1921년 - '''12월, &amp;quot;[[아큐정전]]&amp;quot;을 &amp;quot;신보부간&amp;quot;에 연재하기 시작함&lt;br /&gt;
 * 1925년 - 8월, 베이징 여자 사범 대학교 해산 사건으로 군벌 정부의 교육 당국에 맞서 투쟁함&lt;br /&gt;
 * 1926년&lt;br /&gt;
 1월, 베이징 여자 사범 대학교 복귀, 교육부 검사로 복직&lt;br /&gt;
 8월, 군벌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하문으로 가서 하문 대학 문과 교수를 지냄&lt;br /&gt;
 * 1927년 - 2월, 광저우 중산 대학 문과 주임으로 있다가, 국민당의 청당 운동에 항의하여 물러남&lt;br /&gt;
 * 1928년&lt;br /&gt;
 1월, 국민당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에서 도피 생활을 함&lt;br /&gt;
 2월, 창조사, 신월사 등과 문학 논쟁을 벌이며 마르크스주의 문예론을 연구함&lt;br /&gt;
 * 1929년&lt;br /&gt;
 '''목판화 민중 예술 보급 운동을 벌임. 이후 여러 민주 단체에 가입하여 국민당의 반공 독재 정치에 항의하는 운동을 벌임'''&lt;br /&gt;
 * 1936년 - 10월 19일, 동지 취추바이의 유작집을 편집하던 도중 [[천식]] 발작으로 세상을 떠남&lt;br /&gt;
&lt;br /&gt;
※ 출처 : 만화로 만나는 20세기의 큰 인물(웅진출판사)&lt;br /&gt;
== 작품 일람 ==&lt;br /&gt;
 * 고독자&lt;br /&gt;
 * [[광인일기]]&lt;br /&gt;
 * 귀향&lt;br /&gt;
 * 메이첸체&lt;br /&gt;
 * [[아Q정전]]&lt;br /&gt;
 * 쿵이치&lt;br /&gt;
 * 토끼와 고양이&lt;br /&gt;
 * 후지노 선생&lt;br /&gt;
&lt;br /&gt;
== 기타 등등 ==&lt;br /&gt;
루쉰에게 두 동생이 있었는데 훗날 매우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큰동생 저우쭤런(周作人)은 루쉰처럼 문학을 공부했으며 신문화운동에도 함께 참여한다. 저우쭤런은 문학이론가, 번역가, 에세이스트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그 명성은 훼손된다. 전쟁으로 베이징 등 주요 도시의 일본군이 진주하자 [[베이징대]], [[칭화대]] 등 많은 대학의 교수들은 협력을 거부한 채 낙향하거나 [[쿤밍]]에 세워진 시난연합대학으로 강단을 옮긴다. 그러나 베이징대에서 일하고 있던 저우쭤런은 베이징에 남아 베이징대 총장, [[왕징웨이]] 정권의 교육청 독판(교육부 장관)을 지낸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한다. 전쟁 중 보여준 그의 친일적 행보로 인해 종전 직후 국민당 정부는 저우쭤런을 [[한간]]으로 처벌받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복권되지 못한 채 1967년 삶을 마무리해야 했다. 반면 형제의 막내인 저우젠런(周建人)은 생물학을 공부했는데, [[국공내전]] 중 [[중국공산당]]에 가입, 중공 수립 이후 고향 저장성의 성장과 교육부 부부장,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등 여러 요직을 맡는다.&lt;br /&gt;
&lt;br /&gt;
루쉰이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1957년에 누군가가[* 루쉰의 아들 저우하이잉이 쓴 '나의 아버지 루쉰'(2008, 도서출판 강)의 에필로그에 따르면 저우하이힝의 어머니 쉬광핑의 친구이자 번역가였으며 루쉰을 몹시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진 뤄지난이라는 인물이다.] [[마오쩌둥]]에게 이렇게 물었다. &amp;quot;(지금) 만약 루쉰이 살아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amp;quot; 그때 마침 반우파 투쟁이 한창이던 무렵이라 문화계 인사들의 행로가 화제에 올랐는데 마오쩌둥이 상하이를 방문한 틈을 타서 물어본 것. 그러자 마오쩌둥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한다. &lt;br /&gt;
&lt;br /&gt;
'''&amp;quot;나의 생각으로는 (루쉰은) 감옥에 갇혀 글을 쓰고 있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아무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었을 것 같소.&amp;quot;''' ~~그리고 약 10년 뒤 [[문화대혁명]]이 시작됐다. 너희들도 가만히 있어, 라는 경고일지도~~&lt;br /&gt;
&lt;br /&gt;
자기 나라의 [[중국인]]에 대해 안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중국인을 이기적이고 [[허세]]와 [[정신승리]]를 잘 드러내며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고 쓸데없이 외래문화에 배타적이라고 주장했다.[* 서성,'한권으로 읽는 중국문화',넥서스,2005,p30] 루쉰이 생각한 중국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아Q정전]]이다. 그런 시각에서 한자 폐지 운동에도 참여한 바 있다. &lt;br /&gt;
&amp;quot;漢字不滅，中國必亡。한자불멸, 중국필망. 한자를 없애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amp;quot;&lt;br /&gt;
&lt;br /&gt;
그런데 우습게도 정작 외국인이 중국인을 이렇게 까면 그건 또 싫어했다. [[펄 벅]]을  비난하고 그녀 대표작인 [[대지]]를 비난한 것도 바로 루쉰이다. ~~ 내 민족을 건드리지 마라! 내 민족은 내가 깐다. ~~&lt;br /&gt;
&lt;br /&gt;
생전에 리영희가 매우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리영희]]의 자서전 격인 '[[대화]]'를 보면 루쉰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잘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루쉰 전집의 정장 기념본 초판은 200질만 만들었는데 예전부터 구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저우언라이]]가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에게 선물해 줄 한 질을 구하지 못해 애먹었을 정도다. 마오쩌둥 역시 한 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투 중에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애지중지했다.&lt;br /&gt;
&lt;br /&gt;
[[다자이 오사무]]가 루쉰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석별(惜別)을 발표한 적이 있다(한국에도 번역되었다). 일본유학 시절의 루쉰의 모습을 회고하는 형식. 문제는 이 소설이 쓰여진 것이 일본이 한창 전쟁 막바지에 다다랐던 [[1945년]]이었고, 집필 동기도 전시 어용문인 단체인 문학보국회[* 국민들에게 전쟁을 독려하는 연설을 하거나 전쟁터에서의 [[옥쇄]]를 찬미하고 승전을 축하하는 내용의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업무였다.] 의뢰를 받아서 지어진 소설이라는 거...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1944년 1월 30일에 도호 영화사의 프로듀서 야마시타 료조에게 쓴 편지에서 &amp;quot;새해가 되자마자 문학보국회에서 대동아 5대 선언을 기초로 한 소설을 쓰라는 어려운 명령을 받아, 이것도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다른 일을 제쳐두고 이 일에 매진하는 중입니다.&amp;quot;라고 밝혔다. 소설 후기에서도 &amp;quot;써달라는 의뢰가 없었어도 언젠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료를 모으고 구상하고 있었던 것&amp;quot;이라고 말했지만,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 당시 일본문학보국회에 소설 개요를 제출했던 소설가 50명 가운데 선발된 6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일본문학보국회의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시 평론가들은 작품에 그려진 루쉰의 모습과 그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지극히 피상적이라면서 이 작품을 '실패작'으로 간주했다고.[* 출처: 다자이 오사무 전집 제6권 '쓰가루', 도서출판b, 2013년]&lt;br /&gt;
&lt;br /&gt;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폭탄투척 의거로 우리에게 유명한 홍커우 공원은 현재 루쉰 공원이라고 이름이 바뀌어 있다. 공원 내부에 루쉰 기념관도 같이 있다.&lt;br /&gt;
&lt;br /&gt;
루쉰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amp;amp;contents_id=3765&amp;amp;path=%7C183%7C194%7C&amp;amp;leafId=232|#]] 참조.&lt;br /&gt;
&lt;br /&gt;
중국의 소설가 [[위화]]는 수필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한 친구와의 사소한 논쟁에서 불현듯 떠오른 &amp;quot;'''루쉰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amp;quot;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던 그 친구의 입을 다물게 한 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놀랍게도 그때는 '''한창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전역이 어수선하던 시대'''였는데, 그 서슬퍼렇던 문혁 시절조차 루쉰의 이름이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 하긴 그 마오쩌둥도 ~~진심이었든 립서비스였든~~ &amp;quot;그는 위대한 문학인이자 또한 위대한 사상가였다&amp;quot;고 칭송했던 루쉰을 부정한다는 것부터가...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소설가]]&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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