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3%A8%ED%81%AC%EB%A0%88%EC%B9%98%EC%95%84_%EB%B3%B4%EB%A5%B4%EC%A7%80%EC%95%84%28%EC%98%A4%ED%8E%98%EB%9D%BC%29</id>
		<title>루크레치아 보르지아(오페라)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3%A8%ED%81%AC%EB%A0%88%EC%B9%98%EC%95%84_%EB%B3%B4%EB%A5%B4%EC%A7%80%EC%95%84%28%EC%98%A4%ED%8E%98%EB%9D%BC%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3%A8%ED%81%AC%EB%A0%88%EC%B9%98%EC%95%84_%EB%B3%B4%EB%A5%B4%EC%A7%80%EC%95%84(%EC%98%A4%ED%8E%98%EB%9D%BC)&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29T04:33:5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3%A8%ED%81%AC%EB%A0%88%EC%B9%98%EC%95%84_%EB%B3%B4%EB%A5%B4%EC%A7%80%EC%95%84(%EC%98%A4%ED%8E%98%EB%9D%BC)&amp;diff=82661&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30일 (월) 06:2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3%A8%ED%81%AC%EB%A0%88%EC%B9%98%EC%95%84_%EB%B3%B4%EB%A5%B4%EC%A7%80%EC%95%84(%EC%98%A4%ED%8E%98%EB%9D%BC)&amp;diff=82661&amp;oldid=prev"/>
				<updated>2017-01-30T06:26: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1 Lucrezia Borgia}}}&lt;br /&gt;
&lt;br /&gt;
http://www.spinvis.nl/page_attachments/0000/0375/Lucreziutherlandkl.jpg&lt;br /&gt;
[[파일:/img/img_link7/817/816059_1.jpg]]&lt;br /&gt;
[[파일:/img/img_link7/817/816058_1.jpg]]&lt;br /&gt;
[[파일:/img/img_link7/817/816057_1.jpg]]&lt;br /&gt;
&lt;br /&gt;
[[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유명한 도니제티가 [[빅토르 위고]]가 지은 운문 사극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프롤로그 -&amp;gt; 1막 -&amp;gt; 2막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몇 부분 생략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원작에 충실한 편이고, 1833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공연하지 않은 오페라 중에 하나이다. ~~아마, 근친에 민감한 국내 [[검열]]이 '''지나치게''' 심해서 일거다.~~&lt;br /&gt;
&lt;br /&gt;
국내에서는 보통 '''루크레치아'''라고도 부른다. 가장 부르기 쉬워서 일지도...&lt;br /&gt;
밑에 내용 보면 알겠지만, 초연때는 성공하다가 그 다음엔 [[아오안]] 취급받더니 세기의 소프라노들의 활약으로 부활하게된 케이스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lt;br /&gt;
&lt;br /&gt;
== 찬밥 취급 ==&lt;br /&gt;
19세기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벨 칸토를 배척하고, 현실주의에 충실한 [[베리즈모]] 열풍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베르디]] [[오페라]]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베르디는 '''마지막 벨 칸토 작곡가'''가 맞다. 그렇기에 베르디가 벨 칸토를 망쳤다는 얘기는 심히 곤란하다.]때문에 [[안나 볼레나]], [[노르마(벨리니의 오페라)|노르마]], [[청교도(벨리니의 오페라)|청교도]], [[몽유병의 여인]], [[오리백작]],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위시한 벨 칸토 오페라들이 거의 모든 오페라 극장에서 공기화 내지 찬밥취급을 당했던 시기나 마찬가지.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역시 그러한 유형에 속했고, 19세기 이후 공연하는 일이 없어져 관객들의 뇌리에 서서히 잊혀져갔다. [[안습]]&lt;br /&gt;
&lt;br /&gt;
== 부활 ==&lt;br /&gt;
1950년대 이후 그 동안 찬밥과 [[아오안]] 취급을 받던 벨 칸토 오페라들은 [[마리아 칼라스]], [[레일라 젠체르]], [[조운 서덜랜드]] 같은 명소프라노들에 의해 다시 부활하게 된다.&lt;br /&gt;
마리아 칼라스는 [[노르마(벨리니의 오페라)|노르마]]와 [[안나 볼레나]]를 극장에 다시 올리게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조운 서덜랜드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루치아의 경우 칼라스가 새로운 해석을 보여줬지만, 극적 표현과 음악의 아름다움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루치아는 서덜랜드가 앞선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서덜랜드의 장기 레퍼토리가 루치아 이기도 하고....], [[텐다의 베아트리체]]를 극장 레퍼토리에 다시 올리게 해주었고, 레일라 젠체르는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로베르토 데브뢰]]를 부활시켰다.&lt;br /&gt;
&lt;br /&gt;
그리고, 1965년 4월 20일.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그 동안 잊혀졌던 또 다른 벨 칸토 오페라가 비평가와 관객들에게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초연 이후 완전히 잊혀졌던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였고, 요넬 파를레아의 지휘에서 이뤄진 [[콘서트]] 형식에 의한 공연이었다.&lt;br /&gt;
&lt;br /&gt;
당시 타이틀롤은 [[메조 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맡은 예정이었다. 근데, 혼이 갑작스런 이유로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카네기 홀 측에선 급히 신예 [[소프라노]] 한명을 데려오게 한다. 혼의 대타로 오게된 신예 소프라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었고, 이름은 [[몽셰라 카바예]] 였다. 공연이 임박해서야 혼의 대타로 급히 오게된 카바예는 당시 리허셜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근데, 결과는 예상외로 대성공(!!!) 이었고,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이 콘서트 형식 공연 이후 다시 극장 레퍼토리로 부활하게 되었으며, 카바예 역시 [[미국]] [[타임지]]에서 &amp;quot;눈부시게 뛰어난 여인&amp;quot;이라는 뜻을 가진 &amp;quot;La Superda[* '라 수페르다'라고 발음한다.]&amp;quot;라는 찬사를 받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한 것은 물론 다음해에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데뷔 무대도 가지게 된다. 즉,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카바예의 명성을 확고히 하게된 계기를 마련한 배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카바예는 같은 해에 [[알프레도 크라우스]]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했고, 파트너였던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연도 같이했다. &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6/815916_6.jpg]]&lt;br /&gt;
[[파일:/img/img_link7/816/815916_4.jpg]]&lt;br /&gt;
[[파일:/img/img_link7/816/815916_5.jpg]]&lt;br /&gt;
[[파일:/img/img_link7/817/816057_2.jpg]]&lt;br /&gt;
'''루크레치아로 분한 [[몽셰라 카바예]]'''&lt;br /&gt;
&lt;br /&gt;
카바예의 뉴욕 카네기홀 콘서트 형식 공연을 계기로 수많은 벨 칸토 [[소프라노]]들이 루크레치아역을 맡게되었다. 1970년대에는 [[레일라 젠체르]]와 [[베벌리 실즈]], [[조운 서덜랜드]]가  대표적이었는데, 이 중 서덜랜드는 카바예의 뒤이은 루크레치아라고 불릴 정도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영국 런던 오페라 하우스 로열 코벤트 가든에서 자주 공연했고, 소속사 [[데카]]에서도 전곡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서덜랜드의 루크레치아 공연 중엣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루크레치아 실황, 1980년 ROH 루크레치아 실황 모두 DVD로 발매되었다. 이 중 시드니 공연은 음반도 나왔다.]&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7/816061_1.jpg]]&lt;br /&gt;
'''루크레치아로 분한 [[조운 서덜랜드]]'''&lt;br /&gt;
&lt;br /&gt;
카바예, 서덜랜드, 실즈, 젠체르의 활약으로 루크레치아는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극장에서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로 군림하게 된다.[*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청교도]],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사랑의 묘약]]에 비하면 그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비교적 자주 공연'''되는 것은 사실이다.] 후에 또 다른 [[소프라노]]들이 루크레치아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에디타 그루베로바]], [[르네 플레밍]], [[마리엘라 데비아]]가 그들이다. 그 중 [[마리엘라 데비아]]는 [[마르첼로 알바레스]]와 같이 출연한 200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공연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그런데, 영상물은 출시하지 않았다. 매우 좋은 공연이거늘. [[유튜브]]에 영상만 올라와있다. 슬픈일이다.~~ 미국에서는 [[르네 플레밍]]이 메트와 LA 오페라 극장, [[샌프란시스코]] 극장에서 루크레치아 역을 불러 큰 환호를 받았으며 그 중 2011년 샌프란시스코 실황이 DVD로 나와있다.[* [[블루레이]]로 나왔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플레밍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블루레이 발견한 분이 있으면 [[추가바람]]]&lt;br /&gt;
&lt;br /&gt;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공연하지 않은 오페라이지만, 외국에서는 베리즈모에 밀려 찬밥취급 받다가 명소프라노들의 활약으로 다시 부활해서 무대에 자주 올려지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마리아 스투아르다]]나 [[시몬 보카네그라]]와 함께 그 진가가 늦은 편이라 볼 수 있겠다.&lt;br /&gt;
&lt;br /&gt;
== 등장인물 ==&lt;br /&gt;
 * [[루크레치아 보르지아]]&lt;br /&gt;
 * 제나로&lt;br /&gt;
 * [[알폰소 데스테]]&lt;br /&gt;
 * 마피오 오르시니&lt;br /&gt;
 * 제포 리베르토&lt;br /&gt;
 * 아포스트로 가젤라&lt;br /&gt;
 * 아스카니오 페트루치&lt;br /&gt;
 * 오로페르노 비텔로초&lt;br /&gt;
 * 구베타&lt;br /&gt;
 * 루스티젤로&lt;br /&gt;
&lt;br /&gt;
== 명반과 영상물 ==&lt;br /&gt;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나 [[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에 비하면 인지도는 덜하지만, 무대에선 비교적 자주 올라오는 편이다. 허나, 녹음된 음반은 많이 있지 않다. 그나마, [[몽셰라 카바예]]와 [[조운 서덜랜드]]가 남긴 스튜디오 전곡반과 몇 개의 실황반이 나와있는데, 전곡반의 경우 카바예는 [[RCA]]에서, 서덜랜드는 소속사인 [[데카]]에서 녹음했다.&lt;br /&gt;
&lt;br /&gt;
먼저, [[몽셰라 카바예]]가 RCA에서 녹음한 음반에 대해 언급하겠다.&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5/814204_3.jpg]]&lt;br /&gt;
'''1966년 RCA에서 출시된 몽셰라 카바예판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전곡반'''&lt;br /&gt;
&lt;br /&gt;
몽셰라 카바예가 타이틀롤, [[알프레도 크라우스]]가 제나로, 에치오 플라젤로가 엘폰소 데스테, [[셜리 버렛]]이 오르시니를 맡고, 요넬 파를레아가 지휘한 이 음반은 성악가들의 기량에 비해 지휘자의 역량이 아주 부족한 음반이라 하겠다.&lt;br /&gt;
&lt;br /&gt;
우선, 전성기 시절 몽셰라 카바예의 절창은 매우 훌륭하다. 밑에 소개되는 서덜랜드의 루크레치아가 모성애 넘친 어머니라고 한다면, 카바예는 기품있는 여인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lt;br /&gt;
&lt;br /&gt;
한 마디로 엉성한 지휘자 때문에 가수진들이 조낸 아까운 연주.~~엉엉, 슬프다..~~&lt;br /&gt;
그나마 카바예의 루크레치아를 듣는다는 의미에서 이 음반이 존재한달까? 하지만, 루크레치아의 아리아 &amp;quot;Tranquillo ei posa...Com' è bello!&amp;quot;는 카바예가 별도로 녹음한『Presenting Montserrat Caballe』에서 부른 것이 더 좋았다. 카를로 펠리체 칠라리오의 지휘도 전곡반의 요넬 파를레아 보다 집중력있게 잡아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반주가 시냇물처럼 유유자적하게 흘러가기도 했고. ~~그리고 지휘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사실 벨칸토 오페라에선 지휘자가 큰 잘못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lt;br /&gt;
&lt;br /&gt;
그 다음은 [[조운 서덜랜드]]가 [[데카]]에서 녹음한 음반이다.&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5/814211_1.jpg]]&lt;br /&gt;
'''1977년에 녹음된 서덜랜드판 루크레치아 보르지아'''&lt;br /&gt;
&lt;br /&gt;
벨칸토 오페라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한 조안 서덜랜드의 목소리가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무거워지고 극적으로 변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기에 낮은 테시투라를 요구하는 루크레치아 역에 딱 들어맞는다. 확실히 저음역대가 그 전보다 탄탄해졌고 콜로라투라 기술도 전성기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어, 카바예보다 음악적으로는 더 완벽하다고 할 수 있겠다.&lt;br /&gt;
&lt;br /&gt;
서덜랜드뿐 아니라 평생 그녀와 많은 벨칸토 오페라를 공연한 남편 리처드 보닝의 지휘 하에, 그들과 자주 호흡을 맞췄던 메조소프라노 메릴린 혼, 가장 어린 나이에 라 스칼라 극장 데뷔를 한 테너 지아코모 아라갈, 수많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활약을 한 스웨덴의 명바리톤 잉그바르 빅셀 등 다른 가수들도 최상급 실력을 보여준다.&lt;br /&gt;
&lt;br /&gt;
&lt;br /&gt;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의 영상물도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영상물은 꼽자면 두 가지 인데, 모두 [[조운 서덜랜드]]가 타이틀롤을 맡은 것이다. 하나는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또 하나는 1980년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열린 실황이다.&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5/814077_1.jpg]]&lt;br /&gt;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DVD'''&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5/814078_1.jpg]]&lt;br /&gt;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리즈로 나온 DVD'''&lt;br /&gt;
&lt;br /&gt;
우선,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에 대해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의 서덜랜드의 가창은 아직까지 전성기 였다는 점도 있고, 무엇보다 비쥬얼에서도 몰입감이 강하다.&lt;br /&gt;
&lt;br /&gt;
다만, 화질이 밑에 소개되는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lt;br /&gt;
&lt;br /&gt;
[[파일:/img/img_link7/815/814096_1.jpg]]&lt;br /&gt;
'''1980년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 시중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영상물이다.'''&lt;br /&gt;
&lt;br /&gt;
위 영상물이 전성기의 모습이 남아있던 서덜랜드를 볼 수 있는 축복을 선사한다면 이 영상물은 [[조운 서덜랜드]], [[알프레도 크라우스]]라는 두 노익장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