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6%AC%EC%8A%B9%EC%97%BD</id>
		<title>리승엽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6%AC%EC%8A%B9%EC%97%BD"/>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6%AC%EC%8A%B9%EC%97%BD&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27T11:18:3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6%AC%EC%8A%B9%EC%97%BD&amp;diff=84264&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30일 (월) 08:4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B%A6%AC%EC%8A%B9%EC%97%BD&amp;diff=84264&amp;oldid=prev"/>
				<updated>2017-01-30T08:48: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프로젝트 문서,프로젝트=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lt;br /&gt;
李承燁. [[1906년]]  [[2월 8일]][* 1905년이라고도 하지만, [[일제강점기]]시절 요시찰인물 대상 카드에는 1906년 2월 8일로 기록하고 있다.] ~ [[1953년]]?&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인민타자~~&lt;br /&gt;
[[북한]]의 [[정치인]], 언론인. [[조선공산당]] 창설에 관여했으며 [[조선로동당]]의 초대 정치위원이자 [[박헌영]]의 최측근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후 박헌영 등과 더불어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 --[[요시 그란도 시즌|요시! 그란도 숙청]]--&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경기도]] [[화성시|남양군]] 영흥면 외동(현 [[인천광역시]] [[옹진군(인천)|옹진군]] 영흥면 외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기선은 뱃사공이었으나 이후 인천으로 이주하여 여인숙을 경영한다. 20~30년대 일제의 요시찰인물 감시카드에 따르면, 부친의 부동산과 동산이 약 2만원 상당에 이를 정도로 부유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어린 시절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에서는 소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언급하면서 '출신부터 반혁명적인 인물'이라고 이야기한다;;]&lt;br /&gt;
&lt;br /&gt;
인천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등에는 1919년 [[3.1운동]] 가담으로 퇴학당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그와 관련된 기록에서는 그가 '졸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도쿄]]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 입학하지만, 입학한 당해[* 기록마다 연도가 다르다. 1921년 혹은 22년에 입학했다고 한다.] 7월에 퇴학당한다. [* 퇴학사유는 알 수 없다.] 이후 보성법률학교에 들어가지만, 1923년 2월 중퇴한다.&lt;br /&gt;
이 무렵 그는 [[사회주의]]에 심취하였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한다.&lt;br /&gt;
&lt;br /&gt;
중퇴한 이후에는 인천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도 하여 가정도 꾸렸으며,[* 부인은 '신간난'이라고 한다.], 1925년 [[조선일보]] 인천지부 기자로 일하였다. 한편 그는 조선노동총동맹에 가입하여 인천지부의 핵심인물이 되었으며, 1925년 [[조선공산당]]에 창건에 관여한다. 이로 인해서인지 그는 26년 조선일보사에서 권고사직 당했으며, 이후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다.&lt;br /&gt;
&lt;br /&gt;
2년 가량 감옥 생활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다. 1930년 3.1운동 11주년 기념으로 '전조선 피압박 피착취계급에 격함'이라는 격문을 뿌린 '격문사건' 주도자로 수배되지만, 그는 도주에 성공하여 검거되지 않았다. [* 당시 격문사건 재판부에서는 격문사건으로 체포된 6명에 대해서만 형을 집행하였고, 리승엽을 포함하여 체포되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그는 영남지역에서 노동생활을 하며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1932년 이른바 '반제격문사건(반제사건)'으로 체포된다. 이는 [[만주사변]]과 관련하여 반제국주의 반전 격문을 뿌린 사건으로, 대범하게도 당시  [[진주시|진주]]와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일본군]] 주둔지에도 이 격문을 뿌렸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부산 재판소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는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부인과 어린 자식이 인천에서 부산까지 와서 징역을 선고받는 공판을 참관했다면서, 처자식이 불쌍하다는 식을 서술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후 석방된 후에도 공산당 재건운동 및 사회주의운동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했었다. 그리고 40년 사상전향서를 쓰고 출소한다. [* 당시 일제는 무조건 사회주의자들에게 전향서를 강요했었고, 수감중이었던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전향서를 썼다. 그 가운데에는 제법 늦은 축에 속하는 편. 사람마다 다르지만, 정말로 사회주의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전향한 사람도 있었고, 겉으로는 전향한 척하면서 다시 사회주의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된 경우도 있었다.]&lt;br /&gt;
&lt;br /&gt;
이후 그의 평가에 대해서는 엇갈린다. 석방된 이후에 일제의 식량배급조합 이사로 있었고, 친일적인 글도 다수 썼기에 [[친일파]]로 비판받는다.[* 이로 인하여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는 위장된 것이며 비밀리에 사회주의 운동[* 함경도지역의 사회주의운동 지하조직에 관여했다고 한다.]을 벌였다고 하기도 한다. 어쨋든 그는 1945년 봄 [[조선건국동맹]] 결성에 관여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조선공산당 결성에 가담하여 중앙위원에 오른다. 당시 [[남로당]]에서는 [[박헌영]] 다음의 사실상 2인자 위치였다.&lt;br /&gt;
&lt;br /&gt;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즈음에 월북했으며,[* 박헌영의 지시였다고 한다.] [[북한]] 정권 수립후에는 사법상에 임명되는 등 요직에 앉았다. 1949년, 박헌영과 함께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조선인민유격대]](이른바 [[빨치산]])의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6.25 전쟁]] 당시에도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53년 '정권 전복'과 '미제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물론 실제로 간첩행위를 했다기보다는, 사실상 [[김일성]]의 정적 제거에 가깝다. 당장 전쟁 당시 북한이 서울을 점령한 이후 서울시 인민위원장([[서울특별시장]] 격)으로 활동했으며,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도 패잔병을 모아서 유격전과 지연전을 펼치다가 후퇴했었다. 전쟁을 일으켰지만 무력통일은 고사하고 북한 전역은 폐허가 된 채로 정전협정을 채결했기 때문에, 김일성 입장에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었다. 이에 따라서 리승엽을 시작으로 남로당 인사들은 '정권 정복 음모 및 미제 간첩' 혐의로 숙청당했다. 그리고 55년경 최종적으로 박헌영이 처형되면서 북한에서 남로당계 세력은 사실상 소멸한다.&lt;br /&gt;
&lt;br /&gt;
현재로서는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모두 버림받은 인물이다.&lt;br /&gt;
== 매체에서 ==&lt;br /&gt;
[[추가바람]]&lt;br /&gt;
[각주]&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승엽(동명이인),version=15)]&lt;br /&gt;
##[include(틀:표절, version=14, source=한국어 위키 백과)] &lt;br /&gt;
[[분류: 북한의 인물]][[분류:기자]]&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