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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리오 켐페스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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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4T11:25:3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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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30일 (월) 10:3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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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 align=center&amp;gt;http://4.bp.blogspot.com/_VWGof-zXooo/TNnAobqI6DI/AAAAAAAAIck/z8XQdIBJ9Tw/s1600/moustache-03-mario-kempes.jpg?width=350||&lt;br /&gt;
||이름 ||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 [br] (Mario Alberto Kempes) ||&lt;br /&gt;
|| 생년월일 || 1954년 7월 15일 ||&lt;br /&gt;
|| 국적 || [[아르헨티나]] ||&lt;br /&gt;
|| 출신지 || 벨 비예 ||&lt;br /&gt;
|| 신체 조건 || 184cm ||&lt;br /&gt;
|| 포지션 || [[공격수]] ||&lt;br /&gt;
|| 소속팀 || 인스티투토(1970 - 1973) [br] [[로사리오 센트랄]](1974 - 1976) [br] [[발렌시아 CF]](1976 - 1981) [br] [[리베르 플라테]](1981 - 1982) [br] [[발렌시아 CF]](1982 - 1984) [br] [[에르쿨레스 CF]](1984 - 1986) [br] 퍼스트 비엔나(1986 - 1987) [br] 상트 푈텐(1887 - 1990) [br] 크렘저 SC(1990 - 1992) [br] 페르난데스 비알(1995) [br] 펠리타 자야(1999) ||&lt;br /&gt;
|| 국가대표 || 43경기, 20골 ||&lt;br /&gt;
&lt;br /&gt;
||||||&amp;lt;:&amp;gt;&amp;lt;#082567&amp;gt; '''{{{#white 1978 FIFA 월드컵}}}''' ||&lt;br /&gt;
||&amp;lt;:&amp;gt;&amp;lt;-1&amp;gt; 골든 볼 [br] '''마리오 켐페스''' &lt;br /&gt;
||&amp;lt;:&amp;gt;&amp;lt;-1&amp;gt; 실버 볼 [br] [[롭 렌센브링크]] &lt;br /&gt;
||&amp;lt;:&amp;gt;&amp;lt;-1&amp;gt; 브론즈 볼 [br] [[디르세우]] ||&lt;br /&gt;
||||||&amp;lt;table align=center&amp;gt;&amp;lt;:&amp;gt;&amp;lt;#663300&amp;gt; '''{{{#white 1978 FIFA 월드컵 득점왕}}}''' ||&lt;br /&gt;
||||||&amp;lt;:&amp;gt; '''마리오 켐페스''' ||&lt;br /&gt;
&lt;br /&gt;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lt;br /&gt;
&lt;br /&gt;
그는 전성기 시절을 발렌시아 CF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킬러(El Matador)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다. 비록 78년 우승이 독재치하의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어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기 위해 별 짓을 다한 최악의 월드컵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마리오 켐페스는 확실히 뛰어난 선수였다. &lt;br /&gt;
&lt;br /&gt;
켐페스는 7살때 유소년 클럽에 들어갔고, 15세때 인스티투토 데 코르도바의 유소년 클럽에서 활약했다. 그 후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뛰면서 107경기에 나와 86골을 넣어 주목을 받았다. &lt;br /&gt;
&lt;br /&gt;
켐페스는 하드워킹 포워드(Hardworking Forward)라고 불렸는데, 페널티 에리어 바깥쪽에서부터 달려들어와서 공격을 하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공격법을 사용하였다.(당시 중앙공격수는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 혼자 활동했다.) 수비수들은 그의 공격법을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했었다. 현재의 [[곤살로 이과인]]과 흡사한 스타일의 축구를 했다. 즉 몸싸움을 최소화하고 예측불허한 위치에서 타겟팅을 하는 전형적인 타겟터였다.&lt;br /&gt;
&lt;br /&gt;
그는 1973년부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했었다. 1978년 FIFA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든 선수들을 국내파 위주로 엔트리를 짰으나 해외파에서는 유일하게 캠페스 한사람만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발렌시아 CF에서 뛰고 있던 켐페스를 국가대표에 소집시키기 위해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는 켐페스를 차출할 때마다 발렌시아 CF에 막대한 돈을 지급했다. &lt;br /&gt;
&lt;br /&gt;
켐페스는 1977시즌과 1978시즌 프리메라리가의 득점왕이었고, 월드컵에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득점을 하지 못했고, 이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짓밟히며 데꿀멍했다. &lt;br /&gt;
&lt;br /&gt;
거기에 우승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호르헤 비델라의 협박에 거의 등떠밀려 출전한 1978년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부터 이탈리아에게 패하는 등 막장상태까지 갔다가 2승1패로 간신히 2차리그에 진출했고 켐페스 본인도 1차리그때까지 득점순위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2차 리그와 결승전에서 6골을 넣었고, 그 월드컵의 득점왕이 되었다. 아르헨티나팀도 페루를 6-0으로 대파하는 등 활약끝에 브라질을 골 득실차로 앞서며 결승에 진출했다.[* 다만 이때 페루와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심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후에도 켐페스는 2차 리그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해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팀의 우승에 사실상 혼자 다 기여했다. 특히 결승전인 네덜란드를 상대로 연장전에 아주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내리 두 골을 때려 넣어 3-1로 승리를 거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 이로써 그에게는 투우사, 야생마등의 별명이 붙었다.[* 이 결승전 또한 지나치게 아르헨티나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 때문에 지금도 욕을 먹는다.]&lt;br /&gt;
&lt;br /&gt;
http://www.whoateallthepies.tv/1644522.jpg&lt;br /&gt;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골을 넣고 기뻐하는 켐페스. 만세, 우승이다!--만세, 석방이다!--&lt;br /&gt;
&lt;br /&gt;
그는 1981년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했고, 1982년 다시 발렌시아로 돌아가 2시즌 동안 활약했다. &lt;br /&gt;
&lt;br /&gt;
1982년에는 그 유명한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이 엔트리에 포함되어 아르헨티나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되었지만 막상 월드컵 개최지인 스페인에 도착하자 국내에서 거짓선전했던 것과는 달리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어떻게든 축구로 그것을 극복해보고자 했지만 결국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한수 아래의 벨기에에게 패했다. 하지만 그 이후 경기인 헝가리전과 엘살바도르전에서는 디팬딩챔피언다운 위용을 뽐내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 마라도나가 울분을 못참고 브라질 선수를 발로 차서 퇴장당하면서 숫적열세에 시달렸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아르헨티나팀은 대시망..&lt;br /&gt;
&lt;br /&gt;
1982년 월드컵이 끝난 후 여러 마이너 팀들에서 뛰다가, 1996년 인도네시아 팀인 펠리타 자야에서 은퇴하였다.&lt;br /&gt;
&lt;br /&gt;
그는 펠리타 자야에서 선수겸 감독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는 알바니아 팀인 KS 루쉬냐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그는 알바니아 축구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년 후 베네수엘라 팀인 AC 미네로스 데 과야나의 감독이 되었고, 1999년에는 볼리비아의 더 스트롱기스트, 2000년에는 클럽 블루밍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2000년 클럽 인데펜디엔테 페트롤레로의 감독이 되었으나, 2001년 감독직을 그만두었다.&lt;br /&gt;
&lt;br /&gt;
아르헨티나 자국 내에서 켐페스는 마라도나에 버금가는 위대한 축구선수로 대우받고 있다. 그리고 [[펠레]] 역시 자기가 20세기에 최고로 훌륭한 축구선수 100명이라고 뽑은 [[FIFA 100]]에도 뽑혔다. 아무리 펠레가 [[펠레의 저주|헛소리쟁이]]라지만 그래도 현역 시절에는 세계 축구의 역사를 갈아엎은 장본인이며 그 정도 능력자가 수 많은 세계의 축구선수 중 딱 125명만 인정했는데 켐페스가 그 중 포함될 정도면 켐페스는 축구선수로서 대단한 실력자인 것이다.&lt;br /&gt;
&lt;br /&gt;
http://espndeportes-assets.espn.go.com/2003/photos2010/1006/p_matador_300x300.jpg&lt;br /&gt;
현재 ESPN의 축구 분석가로 일한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에 있는 축구 스타디움은 그의 뛰어난 능력을 기념하기 위해 '''마리오 켐페스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루이스 몬티와는 달리 그 뛰어난 능력으로 조국을 위해 뛰어준 것에 대한 감사하는 의미도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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