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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만주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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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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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30일 (월) 13:1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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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30T13:14: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 군대. [[한국군]]의 건군 구성원의 한 축이었으며,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군대이다.&lt;br /&gt;
&lt;br /&gt;
일제 패망 당시에 한국인 최고 계급자는 [[원용덕]]으로 군의관 [[중령|중교]]([[중령]])였다.&lt;br /&gt;
&lt;br /&gt;
== 역사 ==&lt;br /&gt;
[[1932년]] 3월, [[일본 제국]]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워 [[만주국]]을 건국했다. 중국 동북 [[군벌]] [[장학량]]은 원래 &amp;quot;중화민국 동북변방군&amp;quot;(약칭 동북군)이라고 이름붙은 자신의 사병인  30만명의 대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고작 만여명의 일본군에게 참패,  &amp;quot;일본군에게 저항하지 말고 철수하라&amp;quot;는 [[장제스]][* 사실 초반부터 저항하지 말라고 한 것은 동북군 사령관인 장쉐량 본인이었다.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였는데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2년 후 러허 사변으로 나머자 영토도 잃고, 수하들의 불만 등이 얽혀져 [[시안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의 명령에 따라 16만여명을 거느라고 [[산해관]] 밖으로 철수하고, 나머지는 흩어졌으며, 일본군에게 투항한 군벌들이 거느리고 있던 패잔병 동북군 6만여명이 만주군의 인적 토대였다. 무기 또한 초기에는 동북군의 물자가 고스란히 사용되었다. 오합지졸이던 중국의 군벌군답게 [[아편]] 중독자가 즐비했고, 훈련도도 낮아 교전만 붙으면 깨지기 일쑤였으며 부대 이동 시에는 여러 민폐가 많았다. 1933년 2월, 황제 [[푸이]]의 친위대인 금위대가 설치되었고 1934년에는 만주국 정부가 인정하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들만 만주군 장교로 임용되도록 법이 제정됐다.[* 이는 일본에 협력했던 ~~늙어서 말 안듣는~~ 군벌들을 밀어내고, 일본이 직간접적으로 육성해 고분고분할 수 밖에 없는 초급 장교들로부터 장교단을 채우기 위한 조치였다. 이렇게 밀려난 군벌들은 '''건국원훈''' 칭호를 받고 명목상 높은 지위를 받았으나, 실질적으로는 병력도 뺏기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했다. ~~좋은 [[토사구팽]]이다~~] 만주군의 사관학교는 [[만주국육군군관학교]]를 참고할 것.&lt;br /&gt;
&lt;br /&gt;
군대라기 보단 [[관동군]]을 보좌하는 경비대에 가까웠다. 오늘날 [[주일미군]]을 보좌하는 [[일본]]의 [[자위대]]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법제상으로는 [[징병제]]를 유지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간도특설대]]가 바로 만주군에서 조직한 부대이다. 사병의 경우 지원을 받았으며, 장교는 만주군 장교들이 인사발령에 따라 배속되었다. &lt;br /&gt;
&lt;br /&gt;
== 계급 ==&lt;br /&gt;
체계는 [[중국군]] 계급과 유사한 방식이었지만, 계급장의 형태는 ~~당연히~~ [[일본군]]식.&lt;br /&gt;
&lt;br /&gt;
|| 구분 || 계급 || 계급장 ||&lt;br /&gt;
|| 원수 || 총사령[* 만주국 황제가 맡았다. 즉 [[푸이]].]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3/Supreme_Commander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Supreme_Commander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amp;lt;|3&amp;gt; [[장관]] || 상장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1/General_of_the_army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General_of_the_army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중장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9/Lieutenant_Genera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Lieutenant_Genera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소장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e/Major_Genera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Major_Genera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amp;lt;|3&amp;gt; [[교관급 장교|교관]] || 상교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5/Colone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Colone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중교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e/Lieutenant_Colone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Lieutenant_Colonel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소교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f/Major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Major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amp;lt;|3&amp;gt; [[위관]] || 상위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d/Senior_Lieuten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Senior_Lieuten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중위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1/Lieuten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Lieuten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소위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6/Junior_Lieuten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Junior_Lieuten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준사관]] || 준위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4/Warrant_Officer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Warrant_Officer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amp;lt;|4&amp;gt; [[부사관]] || 상사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e/Senior_Serge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Senior_Serge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중사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9/Serge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Serge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하사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6/Junior_Serge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Junior_Sergeant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하사근무[* 부사관에 준하는 병.]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1/Senior_private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Senior_private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br]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f/Acting_Junior_Sergeant_arm_badge_%28Manchukuo%29.png?width=100 ||&lt;br /&gt;
||&amp;lt;|3&amp;gt; [[병(군인)|병]] || 상등병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1/Senior_private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Senior_private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일등병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6/Private_first_class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Private_first_class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 이등병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8/Private_second_class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100px-Private_second_class_rank_insignia_%28Manchukuo%29.png ||&lt;br /&gt;
~~뭐 죄다 [[장군]]도 아니고...~~&lt;br /&gt;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2/General_Officers_of_MIA-1.JPG&lt;br /&gt;
만주군 육군 장군들.&lt;br /&gt;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4/Manchukuo_Military_Band.JPG&lt;br /&gt;
만주군 [[군악대]].&lt;br /&gt;
== 군종 ==&lt;br /&gt;
=== 만주군 육군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5/Flag_of_Manchukuo_WarFlag_And_Naval_Ensign.svg/250px-Flag_of_Manchukuo_WarFlag_And_Naval_Ensign.svg.png&lt;br /&gt;
해군이랑 군기가 똑같다. 만주군의 주축이 [[육군]]이었으니. 인원은 몇차례 변동을 거쳐 110,044명 수준. 위에 상술했다시피 처음에는 구 중국 군벌들의 병력이 주축이었으나 점차 일본이 훈련시킨 장교들 군벌 출신 장군들을 몰아내고 조직을 장악해나갔고 1936년 무렵에는 경찰보다도 숫자가 적은 7~8만명대로 줄이기까지 했다. 1933년의 러허 침공이나 [[노몬한 전투]]에도 동원되었다.&lt;br /&gt;
&lt;br /&gt;
2차대전 말기가 되면 [[소련군]]의 침공을 대비해서인지 도로 숫자와 조직이 확장되기는 했는데 막상 1945년 8월 소련군이 쳐들어왔을때는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했다.&lt;br /&gt;
&lt;br /&gt;
=== 만주국 공군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8/Manchukuo_Air_Force.JPG/300px-Manchukuo_Air_Force.JPG&lt;br /&gt;
1937년 만주군 육군 비행대로 창설되었고 신징(新京)에 소재한 만주항공 활주로를 썼다. 1940년에 독자적인 사령부를 설치했고 1940년에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처럼 [[만주국육군비행학교]]가 설립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카미카제]]로 쓰려고 난화특별공격대(蘭花特別攻擊隊)란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만주국 비행대였지만 역대 사령관 셋 중에 둘이 [[일본인]]이었다. 거기다 얼마나 기체가 부족했는지 방위 목적으로 지역마다 돈을 걷어서 기체를 사고 거기에 아래 예시처럼 &amp;quot;호국XX 호&amp;quot;라고 이름까지 떡하게 칠하고 다녔다.[* 하야부사나 쇼키, 하야테같은 기종도 소수 배치되었지만 대부분은 [[Ki-27|구형]] 기체였다.]&lt;br /&gt;
&lt;br /&gt;
[[파일:3023_0-auto_downl.jpg]]&lt;br /&gt;
[[파일:1342159045321.jpg]]&lt;br /&gt;
그밖에도 만슈사에서 Ki-98이라는 전폭기를 만들었으나 [[프로토타입]]을 1대 만든체 종전해버렸다. 주무장은 일본군답지 않게 37mm 1문, 20mm 2문이었다. ~~이거랑 비슷한걸 [[J4M 센덴|해군]]에서 본거같은데~~&lt;br /&gt;
&lt;br /&gt;
=== 만주군 해군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5/Flag_of_Manchukuo_WarFlag_And_Naval_Ensign.svg/250px-Flag_of_Manchukuo_WarFlag_And_Naval_Ensign.svg.png&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c/Naval_Ship_of_Manchukuo.JPG/350px-Naval_Ship_of_Manchukuo.JPG&lt;br /&gt;
만주군 해군 소속의 군함. ~~괴뢰국인데 있을건 다 있네~~&lt;br /&gt;
&lt;br /&gt;
많은 장교가 일본인 장교였으며 실질적으로는 강방함대(江防艦隊) 내지는 강상군(江上軍)으로 불렸다고 한다. 만재 배수량 1,000t대인 모모가타급 구축함(桃型駆逐艦)을 기함으로 썼고 몇척의 [[건보트]]가 더 있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창설 초기에는 일본 해군에서 고문관이 나왔는데 이 고문관들이 일본 육군과 허구헌날 싸우다가 1938년에 몽땅 철수해 버렸다. 그래서 만주군 해군도 관동군에서 고문관을 보내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군 수병들은 &amp;quot;해군이 육군의 지휘를 받아야 하냐&amp;quot;면서 불만이 쌓이다 1942년에 배를 버리고 일본으로 다 도망갔다. 그후 만주국 자력으로 배를 굴릴 인원[* 일본 해군은 외국인 수병을 교육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 출신 일본군중에서 수병만 없었던 것이다.]이 없자 배를 해체한 후 해안포대로 굴렸다.&lt;br /&gt;
== 해산 ==&lt;br /&gt;
1945년 8월 18일, [[만주 작전]]으로 [[소련군]]이 소만국경을 돌파해 들어오며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미 ~~무적의 황군~~[[관동군]]도 박살나는 와중이었다. 종전 이후 만주군의 잔당들은 알아서 [[국부군]]과 [[인민해방군]]으로 갈아탔다.&lt;br /&gt;
&lt;br /&gt;
== 만주군과 [[한국군]] ==&lt;br /&gt;
[[대한민국 국군]]은 건군 당시 내부적으로 3개 파벌로 나뉘었다.&lt;br /&gt;
&lt;br /&gt;
첫번째는 [[광복군]] 출신이 다수이던 중국군파([[국부군]]).[* 광복군은 실병력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장교단이 병사보다 훨씬 많은 기형적 구조였다. 실전 경험을 가진 장교들은 모두 국민당군에서 일본군, 공산군과 교전한 국부군 출신이었다.] 두번째는 일본군파.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가 만주군파였다.&lt;br /&gt;
&lt;br /&gt;
이들 3개 파벌 가운데 만주군파가 우위를 점한 까닭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중국군파는 숫자가 적었다. 광복군은 사회주의계열을 제외하면 100명을 좀 넘기는 수준이었고 사회주의계열인 광복군 제1지대와 동북항일연군도 둘이 합쳐 1000~1500명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적은 인원중에서도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실전경험이 전무한 인원이 많았다. 이때문에 일제 패망 후 장교경력자 우대 명목으로 일본군/만주군 출신들을 닥치는대로 받아들였다.[* 흔히 만주군 중위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이 패망한 한 달 뒤 경력자 우대로 [[광복군]]에서 활동했다. 46년 5월 임시정부 일원이 정부 및 군사단체가 아닌 개인자격으로 귀국할 때까지, [[광복군]] 평진지대 [[중대장]]을 지냈다. 훗날 군부 숙군작업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명에 [[광복군]] 출신인 백파 [[김학규]] 장군(광복군 평진지대장)이 나섰던 것도 이 시절 인연 때문이었다.] 국민당군에서 싸워봤거나, 아님 미군 교관에게 훈련받아 미국식 군사교리에 익숙했던 극소수를 제외하면[* [[육군참모총장]]이 [[중장]]이던 시절, 중장까지 진급하고 당시 미국 다음의 우방국이던 [[중화민국]] 대사를 역임한 [[김홍일]]이 대표적 인물이다. 국민당군에서 군단 참모장을 지냈고, 미군 교관에게 훈련받았다.] 실전에 써먹기 부적합한 이들이었다. 초기 [[육군참모총장]](남조선 국방경비대 시절)과 정부수립 후 초대 [[국방장관]], [[국방차관]]을 모두 점유하긴 했으나, 실력으로 꿰찬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차지한 자리로 이내 밑천을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송호성]]과 [[최덕신]]]. 그런데다 (광복하자마자 세불리겠다고 일본군/만주군 출신들 받아들인 마당에 웃기는 소리지만) 독립운동했다는 자존심은 강해서 군사영어학교 개교시 '''광복군 출신들의 군 경력만 따로 인정해서''' 특별임관시켜줄 것을 미군정에 요구하다 사이가 틀어졌다. &lt;br /&gt;
&lt;br /&gt;
일본군파는 파벌에서 메인으로 등극하기에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 [[고문관]]과의 마찰이었다. 일본군파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건 당연히 육사출신 장교들이었다. 이들은 당대 아시아 최고의 군사교육기관이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입교한 최상위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강했고, 중일전쟁을 통해 전투경력도 있었다. 나이까지 지긋했던 이들은, 경력 짧은 위관급에 불과한 미국 고문관의 참견을 성가시게 여겼다. 또 사관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일본식 관습(군도패용 같은것들)과 교리에 대한 고집도 강해서 일본군이라면 질색하던 미 고문단과 마찰이 심했다. 당연히 미 고문관의 보고서는 악평으로 가득찼는데 국내에 기반이 없던 [[이승만]]은 미국 고문관의 보고서를 '''객관적 평가'''로 수용하고 있었다.[* 피를 본 가장 대표적 인물이 [[김석원]] 장군. [[중일전쟁]] 당시 대대병력으로 [[국부군]] 사단을 격퇴하여, 해방 후 [[진해]]회담 당시 국군에 인물이 없다는 이승만의 푸념에 [[장개석]] 전 총통이 '당신 나라에 김석원이라는 명장이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을 정도였다. 가장 커리어가 좋았던 그도 얄짤없었다.]&lt;br /&gt;
&lt;br /&gt;
둘째로 일본군파는 그 안에서 '''또다시''' 파벌이 나뉘었다. 엘리트라 자부하던 일본육사파, 그리고 전쟁 막바지에 반강제로 동원되었던 [[학병]]파, 마지막으로 장교가 아니었던 하사관파. 이들 세 파벌은 당연히 사이도 좋지 않았다. 개중 학병파는 반강제로 군에 들어왔던 이들이라 해방 이후 먹고 살기위해 군에 돌아오긴 했지만 복무의지가 강하지 않아 병사들까지 염세적으로 만든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조선이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이들 세 파벌의 인원은 가장 많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유대감이나 결속력이 없었고, 이것이 다수임에도 만주군파에게 뒤쳐지게 된 한 이유가 된다.&lt;br /&gt;
&lt;br /&gt;
만주군파는 모두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출신으로 단일화되어, 단결력이 좋았다. 물론 만주국육군군관학교가 일본육사처럼 고급 교육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항일독립군이 만주에서 축출된 41년 겨울 이후로도 화북지역에서 중국군 게릴라나 마적떼 상대로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에, 적어도 광복군 출신들보단 기량이 우세했다. 무엇보다 만주군 시절 [[일본군]] 고문관의 지휘를 받아본 탓에 미국 고문관에도 금세 익숙해져 별다른 마찰을 빚지 않았다. 국군의 전신이 [[자위대]]처럼 미군을 보좌하던 남조선 국방경비대이며, [[한국전쟁]] 개전 이후에는 유엔군의 작전지휘를 받아왔음을 생각하면 큰 플러스 요소였다. 또한 만주국 건국과 입교시기를 고려하면 대부분이 청장년층의 젊은 나이여서, 새로운 방식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lt;br /&gt;
&lt;br /&gt;
이러한 특성은 당시 주한 미국군사고문단장인 로버트 준장의 서한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서한에서 중국군파는 늙고 무능하고 부패하며, 일본군파는 말이 안통하는데다 군벌이 될 가능성도 있는 맛 간 집단으로 묘사된다.[* 중국군파 가운데 유일하게 호의적으로 평가된 인물은 미국식 군사교리에 익숙한 김홍일, 일본군파에서는 [[4.3 사건]]의 진압을 유화적으로 마무리한 [[유재흥]] 뿐이다.] 반면 [[백선엽]], [[정일권]] 등 호의적으로 거론되는 장교들은 모두 만주군파에 속한 인물들이다. 대부분 청장년층으로 나이까지 젊었던 그들이 국군 내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lt;br /&gt;
&lt;br /&gt;
만주군 출신 인물들은 [[만주국육군군관학교]] 항목의 출신 인물을 참고할 것.&lt;br /&gt;
&lt;br /&gt;
[[분류:만주국]]&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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