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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메이레키 대화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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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1T13:22:3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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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30일 (월) 15:0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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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30T15:09: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c/Meireki_fire.JPG&lt;br /&gt;
메이레키 대화재를 묘사한 그림&lt;br /&gt;
&lt;br /&gt;
메이레키 대화재(일본어: 明暦の大火)는 일본 [[에도 막부]]시대인 1657년 3월 2일(메이레키 3년 음력 1월 18일)에서 3월 4일(1월 20일)까지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후리소데 화재(振袖火事), 마루야마 화재(丸山火事)라고도 불린다.&lt;br /&gt;
&lt;br /&gt;
이 화재로 에도의 70% (2,574 헥타르)가 불타고 사망자만도 십여만 (107,046명) 명이 났다고 한다. 유명한 [[에도 성]]의 [[천수각]]도 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로마 대화재]], [[런던 대화재]]와 함께 세계 3대 대화재라고 일본에서 부르는데 어디까지나 일본에서만 부르는 거다. 1633년 이스탄불 대화재를 비롯하여 1426년 한양 대화재같은 엄청난 화재는 세계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다.&lt;br /&gt;
&lt;br /&gt;
이때 당시 [[덴노]]조차도 재앙이라고 해서 원호를 바꿀 정도이었으니&lt;br /&gt;
&lt;br /&gt;
= 수습 =&lt;br /&gt;
화재의 처음 발화장소는 큰 사찰인 혼묘지(本妙寺)라는 설도 있고 그 옆에 있던 로쥬(쇼군 직속 정무담당 최고책임자) 아베 타다아키의 저택이라는 설도 있다. 그당시 실권을 쥔 아베 가문이 대화재의 책임을 피하기위해 책임을 묻기 곤란한 혼묘지 절을 희생시켜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거나 에도 재건을 위한 고의 방화설도 있다.&lt;br /&gt;
&lt;br /&gt;
이 화재 당시의 [[에도 막부]]의 [[다이묘]]이던 [[호시나 마사유키]] (2대 [[쇼군]]의 서자, 3대 쇼군의 동생)는  &amp;quot;갖추어 놓지않고 처벌하는 것은 불가하다&amp;quot;는 명언을 남기고 화재를 일으킨 혼묘지의 스님들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피해자 구제와 도시재건과 방화대책에 힘쓰도록 처분한다.&lt;br /&gt;
&lt;br /&gt;
일본은 지진이 잦아 목조건물이 90% 이상이고 에도에는 워낙 건물이 밀집되어있어 불이 나면 손을 쓸 수가 없었고 화재 대비가 되어있지 않아 취약했기 때문에 불을 낸 혼묘지 사찰측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명판결이다. 즉 사고를 일으킨 사찰 뿐만 아니라 도시 계획을 잘못하여 방화 소방 방재 대책을 갖추는데 실패한 막부 조정 책임도 인정한 명언이다.&lt;br /&gt;
&lt;br /&gt;
= 전설 =&lt;br /&gt;
이 화재의 원인에 대해 상사병에 빠져 죽은 어느 소녀가 입었던 [[후리소데]](振袖)[* 미혼 여성이 입는, 소매 밑부분이 길게 늘어진 화려한 [[기모노]]. 기혼 여성은 [[토메소데]]를 입는데, [[후리소데]]와 달리 소매 밑부분이 짧다.]의 저주가 원인이라는 전설을 담은 기록이 있다.&lt;br /&gt;
&lt;br /&gt;
그 당시 에도의 [[아사쿠사]] 스와초에서 가면을 파는 부유한 상인의 외동딸인 오키쿠는, 17세 되는 해 에도에서 열린 [[마츠리]] 축제에 놀러갔다. 그 당시는 귀한 집 처녀들은 축제 같은 특별한 때 말고는 바깥출입이 어려워 마츠리를 손꼽아 기다렸고, 마츠리에서 남녀가 눈이 맞는 경우도 많았다.&lt;br /&gt;
&lt;br /&gt;
17세의 꽃다운 나이의 오키쿠도 화려한 보라색의 후리소데를 입고 마츠리 구경을 갔다가 먼발치에서 또래의 잘생긴 한 젊은이를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오키쿠는 그 젊은이를 다시 보고싶다고 부모에게 청하고 시집가고 싶다고 졸랐지만 부모들은 신분이 낮아보인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하고 외출을 금지시켜버린다. 상심한 오키쿠는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다음 해 음력 1월18 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lt;br /&gt;
&lt;br /&gt;
또는 봄꽃놀이에서 본 젊은이에 반하고 다시 만나면 눈에 잘 띄도록 그 젊은이가 입었던 것과 비슷한 후리소데를 만들어 입지만 다시 만나서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설도 있고, 딸이 상사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수소문 끝에 젊은이에 대해 알아냈으나 하필이면 그 젊은이가 [[중도]]였던 탓에 맺어지지 못할 바엔 하다못해 그 젊은이가 입던 것과 비슷한 옷이라도 입혀 주고자 후리소데를 맞춰주었고 이후 오키쿠는 병이 깊어져 죽고 말았다는 설도 있다.&lt;br /&gt;
&lt;br /&gt;
부모는 딸을 잃고 크게 후회하며 슬퍼했고 에도의 큰 절인 혼묘지(本妙寺)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일본 풍습에는 죽은 이가 아끼던 옷을 관에 덮어주는데, 어머니는 오키쿠가 마츠리 때 입고 간 그 후리소데를 덮어주었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절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그 후리소데를 보고 몰래 빼돌려 팔아버린다. 지금이나 그때나 화려한 후리소데는 엄청나게 비싼 고급 옷이다. 그런데 그 후리소데를 사서 입은 어느 집 딸이 다음해 같은 날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급사하고 만다. 그 후리소데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렸는데, 그걸 입은 소녀도 그 다음해 같은 날 세상을 떠나고 만다. 3년간 3명의 소녀가 1월 18일 같은 날 죽은 거다.&lt;br /&gt;
&lt;br /&gt;
똑같이 혼묘지에서 치러진 그 소녀의 장례식에서 또다시 돌아온 그 후리소데를 알아본 절의 일꾼들은 죄책감과 불길함으로 겁에 질려 전전긍긍하다, 스님에게 털어놓는다. 스님은 부모에게 알리고 오키쿠의 한과 저주가 서린 그 후리소데를 공양하여 없애기로 하고 뜰에 불을 피우고 독경을 하며 후리소데를 불에 던져버린다.&lt;br /&gt;
&lt;br /&gt;
그런데 불타던 후리소데가 마침 불어온 돌풍에 날려가 혼묘지 본당 지붕에 날아앉아 불은 순식간에 번지고, 본당과 혼묘지 사찰 전체를 태운다. 마침 에도는 11월부터 3달 간 비가 내리지않아 매우 건조한 상태였고 강한 북풍 바람까지 불어 불은 삽시간에 에도 전체로 번졌다. 불은 사흘간이나 타올라 에도의 2/3을 태우고 11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그래서 그 화재사건을  후리소데 대화재라고 부른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 전설은 대화재의 정치적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lt;br /&gt;
&lt;br /&gt;
[[분류:일본사]][[분류:사건사고]]&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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