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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리 카츠나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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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10:58:2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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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30일 (월) 16:3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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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30T16:36: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c0c0c0&amp;gt;&amp;lt;:&amp;gt; '''[[오사카 오인중]]''' ||&lt;br /&gt;
||&amp;lt;:&amp;gt; [[사나다 유키무라]] ||&amp;lt;#dcdcdc&amp;gt;&amp;lt;:&amp;gt; '''모리 카츠나가''' ||&amp;lt;:&amp;gt; [[고토 마타베에]] ||&amp;lt;:&amp;gt; [[아카시 테루즈미]] ||&amp;lt;:&amp;gt; [[쵸소카베 모리치카]] ||&lt;br /&gt;
毛利豊前守勝永&lt;br /&gt;
모리 부젠노가미 카츠나가.&lt;br /&gt;
[[1577년]] ~ [[1615년]] [[6월 4일]] ([[음력]] [[5월 8일]])&lt;br /&gt;
&lt;br /&gt;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lt;br /&gt;
원래 성은 모리(森)였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명가 모리(毛利.. 정확히는 이쪽은 모우리)의 성을 쓰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임진왜란]] 때 조선에 건너와, 울산왜성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당시 조명연합군은 1,2차전투에서 패전.] 아버지인 [[모리 카츠노부]]가 당시 4번대의 대장이었다[* [[시마즈 요시히로]] 등을 이끌었다.]  &lt;br /&gt;
&lt;br /&gt;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서군에 참가하였다가, 이후 쵸소카베가 대신 [[도사]]에 들어온 야마우치 가에 몸을 의탁하였다. 도사번 초대 번주 [[야마우치 카즈토요]]에게 후대 받았으나 동서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토요토미 히데요리]]의 초대를 받아 오사카 성으로 탈출한다. 카즈토요의 조카 겸 양자이자 2대 토사 번주인 야마우치 타다요시와의 내연 관계를 커밍아웃하고 이를 빌미로 하여 탈주. 도사에서 오사카까지 헤엄쳐서 도망쳤다는 일화도 있어, 왠지 수영 실력으로 유명하다.&lt;br /&gt;
&lt;br /&gt;
[[사나다 유키무라]], [[고토 마타베에]], [[쵸소카베 모리치카]], [[아카시 테루즈미]]와 함께 오사카 5인 중 한 명.&lt;br /&gt;
&lt;br /&gt;
[[오사카 전투|오사카 여름의 진]]의 치열한 전투였던 도메이지 전투 당시, 짙은 안개 때문에 때맞춰 도착하지 못하여 고토 마타베에가 전사했다는 자책감에 유키무라가 그 자리에서 죽을 생각으로 전투를 준비하자 그를 다독여 퇴각 지휘를 하는 등의 냉정침착한 면도 돋보인다.  &lt;br /&gt;
&lt;br /&gt;
http://livedoor.blogimg.jp/itagakishika/imgs/8/e/8efba755.jpg&lt;br /&gt;
마지막 싸움인 텐노지 전투에서도 엄청난 대활약을 하여, [[혼다 타다카츠]]의 차남인 타다토모와 오가사와라 히데마사[* 마츠모토번 초대 번주. 이 전투에서 장남이 전사하고 자신도 상처로 인해 채 한 달이 안 되어 사망.]를 전사시키고 적부대를 차례차례 괴멸시키면서 사나다 유키무라와 함께 이에야스의 본진까지 돌입하였다. 이 때 박살난 네임드는 아사노 나가시게(浅野長重)[* [[오봉행]] 필두인 [[아사노 나가마사]]의 셋째 아들.], 아키타 사네스에(秋田実季)[* 안도 치카스에의 장남.], 사카키바라 야스카츠(榊原康勝)[* 타테바야시번 2대 번주로,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의 셋째 아들.], 센고쿠 타다마사(仙石忠政)[* 이즈시번 2대 번주.], 스와 타다츠네(諏訪忠恒)[* 스와번 2대 번주.], 사카이 이에츠구(酒井家次)[* [[사카이 타다츠구]]의 장남.], 혼다 타다즈미(本多忠純)[* 에노모토번 초대 번주로, [[혼다 마사노부]]의 세째 아들.]등. &lt;br /&gt;
&lt;br /&gt;
결국 사나다 군이 괴멸하면서 성내로 철수하는데, 이 때에도 [[도도 다카토라]] 군을 격파하고 이이 나오타카나 [[호소카와 타다오키]] 군을 막아내면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침착하게 철수를 완료한 지휘 능력은 단연 발군'''이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결국 6월 4일, 주군 [[토요토미 히데요리]]의 카이샤쿠를 한 뒤 자결하였다. &lt;br /&gt;
&lt;br /&gt;
두 아들 중 카츠이에는 아버지와 함께 자결, 다른 아들 타로베에는 체포되어 처형당한다.&lt;br /&gt;
&lt;br /&gt;
오사카 성에 입성한 인물 중에서는 단연 사나다 유키무라가 유명하나, 모리 카츠나가 또한 매우 출중한 인물로써 유키무라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라 한다. &lt;br /&gt;
&lt;br /&gt;
온화하고 정이 많은 성격에 사교성도 좋았으며, 입성인물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명망있는 인재였다. 전반적으로 군사의 지휘에 능하여 불리한 싸움에서 아군을 후퇴시키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 돋보이지는 않으나, 아군에게는 절대적인 신임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텐노지 전투 당시, [[구로다 나가마사]]가 적진에서 싸우는 그를 보고 [[가토 요시아키]]에게 누구냐고 물어 모리 카츠나가라는 것을 알고,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벌써 저렇게 훌륭한 무장이 되었다고 평했다는 일화가 있다.&lt;br /&gt;
&lt;br /&gt;
오사카 5인 중 중에서도 최연소였으나[* 유키무라보다도 열 살 이상 어림.], 여러모로 유키무라와 이미지가 겹치는 바람에 왠지 유키무라 쪽을 띄워주다보니 존재감이 약해지고, 유키무라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이에야스 본진 공격 또한 '''상을 차려준 것은 카츠나가임에도 정작 유명해진 것은 숟가락을 든 유키무라.''' &lt;br /&gt;
&lt;br /&gt;
'''여러모로 손해본 케이스다.'''&lt;br /&gt;
&lt;br /&gt;
덤으로, [[사나다 십용사]]의 최후의 활약 장면의 대부분이 '''카츠나가의 활약에서 모티브'''를 따왔다.&lt;br /&gt;
&lt;br /&gt;
에도시대의 문인인 칸자와 토코(神沢杜口)는, &lt;br /&gt;
&amp;gt;'''안타깝도다 후세여. 사나다를 칭송하면서도 어찌하여 모리는 그리하지 않는가.'''&lt;br /&gt;
(惜しいかな後世、真田を云いて毛利を云わず)&lt;br /&gt;
라고 그의 인물됨과 활약상을 기렸다.&lt;br /&gt;
&lt;br /&gt;
여담이지만, 후손(직계는 아님) 중 일부가 메이지 시대 때 해외로 이주, 현재 미크로네시아 연방 공화국의 대통령인 매니 모리(Manny Mori)가 그의 후손이라고.&lt;br /&gt;
&lt;br /&gt;
[[파일:毛利勝永.jpg]]&lt;br /&gt;
&lt;br /&gt;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천도 기준으로 통솔 89 무력 82 지력 76 정치 42 특기 연격지이라는 능력치로 등장. 그런데 기병적성이 A인데 철포적성은 B이다.&lt;br /&gt;
&lt;br /&gt;
[[태합입지전]]에도 등장하지만 여기선 눈물나게 구리다. 의리가 있는걸 제외하면 제대로 평가받은게 없을 지경. 70이라도 넘는 능력치가 단 하나도 없으며 전투에서도 철포, 무운이 2레벨인걸 제외하면 1레벨인것도 몇개 없다. 먼치킨인 사나다 유키무라와 비교하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lt;br /&gt;
&lt;br /&gt;
[[분류:센고쿠 시대/인물]][[분류:임진왜란/군인]]&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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