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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죽지랑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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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6T19:10:4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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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5일 (일) 14:2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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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5T14:2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慕竹旨郞歌&lt;br /&gt;
&lt;br /&gt;
[[삼국유사]]에 전하는 8구체 [[향가]]. 신라 [[효소왕]] 시절 득오라는 낭도가 화랑 죽지랑을 사모하여 지었다고 한다.[* 모(慕)의 해석방향에 따라 죽지랑을 추모하는 내용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lt;br /&gt;
&lt;br /&gt;
== 원문 ==&lt;br /&gt;
去隱春皆理米,&lt;br /&gt;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lt;br /&gt;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lt;br /&gt;
皃史年數就音墮支行齊,&lt;br /&gt;
目煙廻於尸七史伊衣,&lt;br /&gt;
逢烏支惡知乎下是,&lt;br /&gt;
郞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lt;br /&gt;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lt;br /&gt;
&lt;br /&gt;
== 해석 ==&lt;br /&gt;
||&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amp;gt;간 봄 그리매&lt;br /&gt;
모ᄃᆞᆫ 것ᅀᅡ 우리 시름&lt;br /&gt;
아ᄅᆞᆷ 나토샤온&lt;br /&gt;
즈ᅀᅵ 샬쯈 디니져&lt;br /&gt;
눈 돌칠 ᄉᆞ이예&lt;br /&gt;
맛보ᄋᆞᆸ디 지ᅀᅩ리&lt;br /&gt;
낭이여 그릴 ᄆᆞᅀᆞᄆᆡ 녀올 길&lt;br /&gt;
다봊 굴허헤 잘 밤 이시리&lt;br /&gt;
(양주동 해독)&lt;br /&gt;
||간 봄을 그리워함에&lt;br /&gt;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lt;br /&gt;
아름다움 나타내신&lt;br /&gt;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 하는구나&lt;br /&gt;
눈 깜빡할 사이에&lt;br /&gt;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이다&lt;br /&gt;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lt;br /&gt;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이까&lt;br /&gt;
(양주동 해석)[* 2017 [[수능특강]] 국어영역 문학 편에는 이 해석이 수록되어 있다.]||&lt;br /&gt;
|||| 간 봄 몯 오리매&lt;br /&gt;
모ᄃᆞᆯ 기ᅀᅳ샤 우롤 이 시름.&lt;br /&gt;
ᄆᆞᄃᆞᆷ곳 ᄇᆞᆯ기시온&lt;br /&gt;
즈ᅀᅵ ᄒᆡ 혜나ᅀᅡᆷ 헐니져.&lt;br /&gt;
누늬 도랄 업시 뎌옷&lt;br /&gt;
맛보기 엇디 일오아리.&lt;br /&gt;
낭(郞)이여 그릴 ᄆᆞᅀᆞᄆᆡ 즛 녀올 길&lt;br /&gt;
다보짓 굴허ᇰᄒᆡ 잘 밤 이샤리.(김완진 해독) ||&lt;br /&gt;
|||| 간 봄 그리워함에&lt;br /&gt;
계시지 못해 울면서 시름하는데&lt;br /&gt;
두덩을 밝히오신 모습이&lt;br /&gt;
해가 갈수록 헐어가도다.&lt;br /&gt;
눈 돌림 없이 저를&lt;br /&gt;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lt;br /&gt;
郞이여, 그릴 마음의 모습이 가늘 길&lt;br /&gt;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인들 있으리. (현대어 풀이 1) ||&lt;br /&gt;
||||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lt;br /&gt;
살아 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lt;br /&gt;
전각(殿閣)을 밝히오신&lt;br /&gt;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lt;br /&gt;
눈의 돌음 없이 저를&lt;br /&gt;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lt;br /&gt;
낭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lt;br /&gt;
다복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 (현대어 풀이 2) ||&lt;br /&gt;
== 죽지랑은 누구? ==&lt;br /&gt;
우리나라 인물사전을 보면 죽지랑이라는 인물은 없는데 대신 죽지라는 인물은 있다.[* 죽지랑은 죽지라는 이름을 가진 화랑이라는 의미] 실제로 죽지는 진평왕 말년경 화랑으로 활약하였는고 상당히 노화랑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죽지랑의 탄생 설화 배경이 있다.&lt;br /&gt;
&lt;br /&gt;
&amp;gt;처음에 술종공이 삭주도독사가 되어 임지에 가려 하였다.&lt;br /&gt;
&amp;gt;이때는 삼한의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3000명으로 호송하였다. 죽지령에 이르자 한 거사가 그 고갯길을 평평하게 닦고 있었다. 공이 그걸 보고서 칭찬하자, 거사는 또한 공의 위세가 매우 빛남을 좋게 여겨, 서로 마음으로 감동하였다. 술종공이 [[삭주]][* 지금의 [[춘천]]]에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나, 꿈에 거사가 방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놀라고 괴이한 것이 더욱 심하여 다음날 사람을 보내 거사의 안부를 물었다. 그곳 사람이 말하길 “거사는 죽은 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고 했다.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와 그가 죽었음을 아뢰니, 꿈꾼 날과 같은 날이었다.&lt;br /&gt;
&amp;gt;공이 말했다.&lt;br /&gt;
&amp;gt;“아마도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난 모양이오.” &lt;br /&gt;
&amp;gt;이후 술종공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기의 이름을 죽지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 모죽지랑가의 배경 ==&lt;br /&gt;
신라 효소왕 시절의 일이다. 죽지랑이 이끌던 낭도 중에 득오라는 낭도가 있었는데, 어느날 매일 출근을 하던 그가 갑자기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이를 이상히 여긴 죽지랑은 득오의 어머니를 찾아가 득오가 익선이라는 아간에 의해 부산성 창직으로 끌려간 것을 알게되어 설병 한 홉과 술 한 항아리를 가지고, 노복을 거느리고 (그를 찾아) 갔다. 낭도 137명도 예의를 갖추고 따라 갔다. &lt;br /&gt;
&lt;br /&gt;
부산성에 이르러 득오는 죽지랑을 만나게 되었고, 죽지랑은 득오에게 술과 떡을 먹이고 아간 익선에게 득오의 휴가를 요청하였으나 익선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 때 마침 이 부산성을 지나던 간진이라는 사리가 추화군 능절의 조 30석을 걷어 성중으로 수송하다가, 죽지랑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는 풍미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답답하게[暗塞] 통하지 않는 것을 더럽게 여겼다. 그리하여 수송하던 30석을 익선에게 주어 (죽지랑의) 청이 받아들어지길 거들었으나, 외려 (익선은)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진절 사지의 말안장을 그에게 주니, 그제야 허락했다.&lt;br /&gt;
&lt;br /&gt;
한편 이 일은 조정의 화주가 알게 되어 익선을 잡아다 더러움을 씻겨 주고자 하였으나, 이를 눈치챘는지 익선은 달아나 숨어버리고 대신 그 아들을 잡아갔다. 하필 이때가 한겨울이라 성안의 연못에다 목욕을 시키니 익선의 아들은 얼어죽었고, 국왕 또한 이 일을 전해듣고는 모량리 출신으로 관직에 있던 자들을 모조리 내쫓아 다시는 벼슬을 못하게 하였으며 승려가 되지도 못하게 했다. 단, 승려가 되었다 하더라도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무렵 원측은 해동의 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승직을 받지 못하였고, 칙사가 간진의 자손들을 평정호손으로 삼아 표창하였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로부터 먼 훗날 득오가 죽지랑을 떠올리며 노래를 지었는데 이게 모죽지랑가다.&lt;br /&gt;
&lt;br /&gt;
학계에서는 삼국통일전쟁의 영웅인 죽지랑의 부탁을 일개 지방 호족이 거듭 생까다가 [[뇌물]]을 두 차례나 얻어먹고서야 들어주는 사례라던지, 이를 보복한답시고 화랑도 측에서 그 호족 아들을 대신 잡아다가 죽이는 등의 내용으로 볼때 통일신라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화랑도의 타락과 쇠퇴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lt;br /&gt;
[[분류:향가]]&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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