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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포의 눈물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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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6T01:38:2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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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30일 (월) 17:1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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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30T17:18: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ml&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640&amp;quot; height=&amp;quot;480&amp;quot; src=&amp;quot;//www.youtube.com/embed/nTEaztgefWE&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 [[목포]] 출신의 가수 [[이난영]]이 불렀던 트로트 가요.&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판소리]] 풍의 가락과 구슬픈 곡조가 잘 살아있어 '[[남행열차]]' 와 함께 '''[[목포시|목포]]'''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있다. ~~자매품(?)으로 목포는 항구다가 있다.~~ 지금도 매년 목포에서는 '이난영 가요제' 를 열고 있다. 나라 잃은 한을 말하는 노래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고자 '원한 품은' 을 '원앙 품은' 으로 바꿔불렀었다.&lt;br /&gt;
&lt;br /&gt;
특히 1970-80년대, 상대적으로 차별받던 [[호남]] 사람들의 설움을 달래줬고 호남을 대표하는 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로도 매우 유명했'''었'''다. 1980-90년대 당시를 지배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면 경기장 중립 규정 때문에 5~7차전을 잠실에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중 [[무등야구장]]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게 1987년(對 [[삼성 라이온즈]]) 우승 딱 한 번이었다. 즉,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결정짓는 10번의 경기 중 딱 한 번만 홈 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이 불려졌다는 얘기다.] 이때 해태 팬들의 응원석 쪽에선 이 노래가 불려지기 시작하면 가히 종교집회를 연상케 하는 그 무엇이 응원석을 맴돌았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혀가 꼬여서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역전 홈런이나 안타, 삼진이라도 나오면 울면서 이 노래를 불렀었다. 호남 출신의 아버지를 둔 1980년대[* 호남인의 한(恨) 정서가 극대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정서의 밑바탕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생이라면 이 주제를 가지고 한 번 물어보자.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것이다. '''한 마디로 호남의 서러움이 담겨있는 노래'''.&lt;br /&gt;
&lt;br /&gt;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도 [[1997년 외환 위기]] [[크리]]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약해졌으며, 해태를 인수한 [[기아]]는 해태 타이거즈의 컬러를 빼기 위해 아예 이 노래를 의도적으로 응원가에서 빼버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인데 중간중간에 부활했다가 없어졌다가 했었다 2000년대 중후반에도 잠실 야구장에서 한 팬이 준 가사판을 [[김주일]] 응원단장이 받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첫 음을 높게 잡으면 삑사리가 나니 주의하라면서 7~8회 지고 있을때는 목포의 눈물 이기고 있을때는 남행열차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당시 올림픽 혹은 WBC 이후에 유입된 팬 들이 많아서 가사판을 들고 다녀야 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질 때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강해서 호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후 팬덤의 교체와 프로야구의 스포테인먼트화를 거치면서 목포의 눈물은 점차 잊혀져 갔고, 현재 타이거즈의 젊은 팬 중에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지경에 이르렀다.&lt;br /&gt;
&lt;br /&gt;
결정적으로 [[2009년 한국시리즈]] 6차전, 그리고 7차전 우승 확정 즈음 슬그머니 응원가로 복귀했는데, 하필이면 위에 서술된 대로 가사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바로 호응이 끊겨버렸다.&lt;br /&gt;
&lt;br /&gt;
목포 유달산에 가면 노래비가 세워져있으며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 노래를 기리기 위해 매년 이난영 가요제를 개최를 한다.&lt;br /&gt;
&lt;br /&gt;
== 가사 ==&lt;br /&gt;
||사공의 뱃노래 가믈거리며&lt;br /&gt;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lt;br /&gt;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lt;br /&gt;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lt;br /&gt;
&lt;br /&gt;
삼백 년 원한 품은[* 처음에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으로 바꾸어 부르다가 광복 후 고쳤다.] 노적봉 밑에&lt;br /&gt;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lt;br /&gt;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lt;br /&gt;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lt;br /&gt;
&lt;br /&gt;
깊은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lt;br /&gt;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lt;br /&gt;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lt;br /&gt;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lt;br /&gt;
&lt;br /&gt;
== 관련 항목 ==&lt;br /&gt;
 * [[응원가]]&lt;br /&gt;
 * [[해태 타이거즈]]&lt;br /&gt;
[[분류:응원가]]&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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