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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원식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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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8T09:53:4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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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8:57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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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08:57: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 구한말의 관료, 일제강점기의 신념형 친일파 ==&lt;br /&gt;
민원식&lt;br /&gt;
&lt;br /&gt;
1886 ~ 1921&lt;br /&gt;
&lt;br /&gt;
구한 말과 일제강점기 초기의 관료, 사상가였다. 한일합방 조약 직후부터는 조선인 참정권과 자치권을 주장하였다. 1907년 일본에 방문했다가 조선인을 동물원에 놓고 관람시키는 것에 충격받아 돈을 주고 빼온 뒤 일본정부를 강력 디스했다.&lt;br /&gt;
&lt;br /&gt;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의 친정 조카사위이다. [[영친왕]]의 외삼촌 [[엄준원]]의 사위이다.[* 엄준원은 원래 엄진일의 아들들 중 한명인데, 아버지 엄진일의 동생인 삼촌 엄진삼이 아들이 없어 삼촌 엄진삼의 양자로 입양했다. 사촌여동생인 [[엄귀비]]의 오빠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고아에 떠돌이로 알려졌지만 그의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모두 1910년대까지도 살아 있었다. 양아버지 쪽으로는 약간 멀긴 하지만 [[명성황후]]는 14촌 할머니 뻘이 된다. 어깨너머로 배운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 관립한성외국어학교의 일본어 교사와 중국어 교사에 추천되었지만 모두 사양했다.&lt;br /&gt;
&lt;br /&gt;
1905년 경무청총순이 되었으나 사퇴했다가 한달만에 다시 임명되었다. 그러나 1년만에 사퇴했다.&lt;br /&gt;
&lt;br /&gt;
영친왕의 관례를 마친 뒤 순헌황귀비를 황후로 책봉시킬 목적으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이때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동물원에 놓고 관광객들에게 구경시키는 것에 충격받아, 조선인 남녀를 돈 주고 빼온 뒤 일본 정부에 항의했다. [[일본]] 체류 중 [[보건]], 위생에 관련된 것을 입수하여 귀국 후 대한제국 내부 위생국장, 광제원 병원장 등을 지냈다. 1907년 내부 서기관에 임명되었으나 반년만에 사퇴했다.&lt;br /&gt;
&lt;br /&gt;
[[한일합방]] 이후 조선인 참정권, 자치권 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1926년에 가서야 일본의 평민, [[부라쿠민]]들에게도 참정권, 선거권이 허용됐는데 조선에 허용될 리가 없었다. 민원식은 [[이규완]]과 함께 1910년부터 [[조선]]인 [[참정권]], [[조선인]] [[자치권]] 운동을 시작했으나 외면당했다.&lt;br /&gt;
&lt;br /&gt;
1911년 양지군수가 되고 1913년 양지군수에 유임, 1914년 경기도 [[이천]]군수, 1915년 7월 고양군수로 부임하였다. 1919년 3.1 만세 운동에 반대하고 무력 시위를 한다고 바로 독립되지는 않는다며 [[매일신보]]에 비판적 논조의 칼럼을 실었다. 1919년 11월 고양군수직을 사퇴하고 중추원 부찬의로 전직하였다. [[고양]]군수를 사퇴한 11월부터 12월 [[일본]]의 지식인들을 찾아다니며 조선인 참정권, 자치권을 허용해달라고 호소했다.&lt;br /&gt;
&lt;br /&gt;
1919년 8월과 1920년 1월 조선인 참정권을 요청하는 연명 탄원서인 건백서를 일본 정부와 하원 중의원에 보냈다.[* 이 영향으로 그가 암살당하고 1년 뒤인 1922년 2월에도 조선인 참정권을 요청하는 지식인들의 탄원서가 일본 하원과 상원, 내각에 보내졌다.]&lt;br /&gt;
&lt;br /&gt;
1920년에는 [[국민협회]]를 조직하여 [[참정권]], [[자치권]] 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lt;br /&gt;
&lt;br /&gt;
1922년 [[일본]] 귀족원(상원)과 중의원(하원)에 조선인 참정권, 자치권을 청원하러 갔다가 제국호텔에서 숙박하던 중, [[양근환]]의 칼에 맞아 죽었다.[* [[윤치호]]는 이를 두고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테러행위로 보았다.] 양근환은 목수라고 자칭했지만 거친 일을 하는 사람과는 다르게 고운 손이었던 점이 일본 경찰에게 의심받아 체포당한다.&lt;br /&gt;
&lt;br /&gt;
민원식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 이 사건으로 도쿄를 방문한 [[방정환]]을 비롯한 조선인들이 조선 독립이나 민원식 암살 가담자로 지목되어 수사,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당했다.&lt;br /&gt;
&lt;br /&gt;
=== 공창제 설치 ===&lt;br /&gt;
일본에 다녀와서 보건, 위생을 홍보하면서 그는 공창제 도입을 주장해서 실현시킨다.&lt;br /&gt;
&lt;br /&gt;
내부 위생국장 재직 중 1906년 2월 성매매 여성 성병검진을 실시한 뒤, 공창제를 발표하여 성매매여성의 위생, [[성병]] 문제 등을 관리하였다.&lt;br /&gt;
&lt;br /&gt;
=== 영향력 ===&lt;br /&gt;
조선총독부에서는 민원식의 의견을 일단 접수하면서도 묵살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36년부터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조선인 자원 입대자들이 늘어나자, 결국 [[조선총독부]]도 조선인 참정권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고 [[1940년]]부터는 일본 본국 정부에 조선인 참정권 허용, 자치권 허용을 건의하였다.&lt;br /&gt;
&lt;br /&gt;
결국 1945년 2월에 가서야 일본 상원인 귀족원에 조선인 의원들이 당선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1939년 [[박영효]]가 일본 천황이 추천하는 천황 몫의 귀족원 상원의원으로 임명된 사례는 있다. 1942년에는 [[박중양]]이 귀족원 의원에 추천되었으나, 박중양은 처음에는 고사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민원식은 [[국민협회]]를 결성하고 이익을 얻지 못했다. 조선인 참정권, 자치권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여서 호응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재산을 사재를 털어서 활동했다.&lt;br /&gt;
&lt;br /&gt;
독립운동가 [[김규면]]은 비루하고 어리석은 사상이라고 평하면서도, 그의 자치권 참정권 활동을 독립운동의 하나로 간주했다.&lt;br /&gt;
&lt;br /&gt;
== 한라중공업, 만도 출신 기업인 ==&lt;br /&gt;
&lt;br /&gt;
1962 ~ &lt;br /&gt;
&lt;br /&gt;
1997년 한라중공업 법무담당, 법정관리실장이었고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위니아만도에서 근무했다.&lt;br /&gt;
&lt;br /&gt;
1999년 위니아만도 기획담당 이사가 되고, 만도 기획실장, 기획재무본무장,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2008년 7월부터 14년 11월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lt;br /&gt;
&lt;br /&gt;
== 한국방송광고공사 출신 기업인 ==&lt;br /&gt;
&lt;br /&gt;
1959 ~ &lt;br /&gt;
&lt;br /&gt;
한국방공광고진흥공사&lt;br /&gt;
&lt;br /&gt;
1984년 방공광고진흥공사 제4기 공채로 사원으로 입사해서 정책협력국장, 영업2국장, 상근이사 겸 영업본부장까지 지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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