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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일영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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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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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9:3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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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09:33: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실향민/대한민국]]&lt;br /&gt;
http://special.mediatoday.co.kr/network/wp-content/uploads/2013/09/5585l.jpg?width=200&lt;br /&gt;
&lt;br /&gt;
方一榮&lt;br /&gt;
1923년 11월 26일 ~ 2003년 8월 8일&lt;br /&gt;
&lt;br /&gt;
[[일제강점기]]인 1923년 11월 26일,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변 동문동에서 방재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방재윤은 원래 [[방응모]]의 친형 방응곤의 아들이었으나 당시 아들이 없었던 방응모의 [[양자(가족)|양자]]로 들어갔으며, 방일영은 동생인 [[방우영]]과 함께 방응모의 양손자가 됐다. 유년기에 할아버지인 방응모를 따라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주하였다.&lt;br /&gt;
&lt;br /&gt;
[[학교|경성제일고보]](경기중학교 전신)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가 [[주오대학]] 예과를 [[졸업]]했다. 그 후 1944년 할아버지 방응모의 부름으로 귀국,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사장비서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조선일보가 복간된 뒤인 방응모 사장이 [[납북]]되자 조선일보 이사로 선출되었고, 이후 [[부산광역시]]로 피난갔다가 [[휴전]] 후 경영권을 잡았다. 그러나 1980년 발행분까지 발행인 대표는 방응모로 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1964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동생인 [[방우영]]을 사장으로 임명해 같이 일했다. &lt;br /&gt;
&lt;br /&gt;
1975년에는 방일영의 출연금으로 '방일영장학회'를 만들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을 매년 10명 선발해 수업료 전액과 생활비를 지급했다. 현재까지  3백30여명이 장학금을 받았고, 최근에는 [[대학원]]생에까지 규모를 넓혔다.&lt;br /&gt;
&lt;br /&gt;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93년 조선일보 회장직을 동생인 방우영에게 넘기고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되었다. &lt;br /&gt;
&lt;br /&gt;
말년에는 [[방(성씨)|온양 방씨]] 종친회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할아버지 [[방응모]]의 가묘를 마련하기도 했다. [[2003년]] 1월 조선일보 고문으로 추대되었으나 7개월 뒤인 2003년 8월 8일 새벽 2시 5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나이 81세였다.&lt;br /&gt;
&lt;br /&gt;
국내 최대 언론사인 조선일보의 사주인 그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밤의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변호사는 이 나라 여자들의 '''머리를 가장 많이 얹어준 사람'''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lt;br /&gt;
&lt;br /&gt;
[[분류: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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