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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화경언해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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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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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8:1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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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8:18: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法華經諺解&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조선]]의 7대 왕 [[세조(조선)|세조]]의 명으로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을 한글로 번역한 불경 언해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lt;br /&gt;
&lt;br /&gt;
[[대한민국]] [[보물]] 제1010호, 1140호, 1225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 편찬 배경 ==&lt;br /&gt;
조선의 7대 왕 [[세조(조선)|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불교]]를 선호하였으며 그 지식 또한 남달라 이를 눈여겨본 세종의 곁에서 불서편찬과 [[불경]]간행을 도맡아 왔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피로 물들어버린 왕위찬탈 행위를 속죄하고 용서받고 구원받으려는 마음에서 더욱 불교에 심취하였다. 1457년 [[법화경|묘법연화경]]을 간행하고, 1458년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꺼내 전국 사찰에 분장하였으며, 1459년에는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이렇게 어느 정도 불경 간행의 업적을 쌓은 뒤 크게 마음을 먹고 유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461년 설치한 기구가 [[간경도감]]이다.&lt;br /&gt;
&lt;br /&gt;
간경도감은 한자로 만들어져 있어 백성들이 그동안 마음놓고 읽을 수 없던 [[불경]]들을 [[한글|언문]]으로 번역하고 간행하는 기관으로 [[서울]]의 본사(本司)를 중심으로 안동부, 개성부, 상주부, 진주부, 전주부, 남원부 등 전국에 설치하여 전 백성이 한글과 불경을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게 만들었다. &lt;br /&gt;
&lt;br /&gt;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고 [[성종(조선)|성종]]이 즉위한 후 성리학적 관점에서 폐지될 때까지 11년간 존속하며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선종영가집언해]], [[사법어언해]], [[원각경언해]], [[아미타경언해]],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언해]] 등 수많은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법화경]] 또한 이 시기 언해본이 간경도감에서 만들어져 전국의 사찰과 민간인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하였다.&lt;br /&gt;
&lt;br /&gt;
== 의의 ==&lt;br /&gt;
한글학회에서는 &amp;quot;묘법연화경은 [[삼국시대]]에 들어와 [[고려]]와 [[조선]]시대 대표적인 불경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고려 500여년 동안에는 3종이, 조선 500여년 동안에는 120여종의 이본이 만들어졌다&amp;quot;고 하며, &amp;quot;백성들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채 구세구복만을 바라며 불러주는 한자음을 따라읽기만 하다가 언해본이 등장한 후 [[불경]] 하나하나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찰 또한 오랜 공부를 한 몇몇 고승들만이 알아보던 부처의 언행들을 이제 어린 [[동자승]]까지 모두 고찰하고 써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종의 한글 창제와 세조의 불경 언해 사업은 언어사적 의미 뿐만 아니라 불교계에서 있어서도 일대 쾌거였다&amp;quot; 라고 평가하였다.&lt;br /&gt;
&lt;br /&gt;
15세기 국어의 특징을 보이며, 중세국어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16세기 국어의 특징을 드물게 볼 수 있으며, 같은 법화경의 내용이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도 실려 있어 이들을 비교하여 연구하는 것은 국어의 사적 변화를 살피는 데에 도움이 된다.&lt;br /&gt;
&lt;br /&gt;
== 종류 ==&lt;br /&gt;
=== 보물 제1010-1호 ===&lt;br /&gt;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amp;amp;VdkVgwKey=12,10100100,11&amp;amp;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묘법연화경(언해) 권1, 3, 4, 5, 6 (妙法蓮華經(諺解) 卷一, 三, 四, 五, 六)]]&lt;br /&gt;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58131&amp;amp;cid=46674&amp;amp;categoryId=46674|한국민족문화대백과 법화경언해]]&lt;br /&gt;
&lt;br /&gt;
아단문고 소장. 세조가 구결을 달고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번역하여 간행한 책이다.&lt;br /&gt;
&lt;br /&gt;
책머리에 1463년 9월 2일자로 된 간경도감 도제조(都提調) 윤사로(尹師路)의 전(箋)이 있고, 세조실록의 같은 날짜에 ‘간경도감진신간법화경(刊經都監進新刊法華經)’이라 했기 때문에 간행년도는 146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간행년도를 추정한다면 법화경언해는 [[능엄경언해]]에 이은 간경도감의 2번째 불경언해서가 된다.&lt;br /&gt;
&lt;br /&gt;
본문과 함께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풀이한 부분, 일여(一如)가 주(註)를 달아놓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문과 계환이 풀이한 부분은 한글로 쉽게 풀어 쓰고 있다.&lt;br /&gt;
&lt;br /&gt;
=== 보물 제1010-2호 ===&lt;br /&gt;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amp;amp;VdkVgwKey=12,10100200,31&amp;amp;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묘법연화경(언해) 권1, 4 (妙法蓮華經(諺解) 卷一, 四)]]&lt;br /&gt;
&lt;br /&gt;
원각사 소장. 세조가 직접 경문에 구결을 달고 윤사로 등이 간경도감에서 번역하여 1463년(세조 9)에 목판으로 간행한 국역불경이다. 한글로 번역하여 正音의 명맥을 이어 발전을 보게 한 귀중한 국역자료인 점과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판본의 형태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중세국어사 및 조선전기 판본연구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불교판본학 및 중세국어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lt;br /&gt;
&lt;br /&gt;
=== 보물 제1140호 ===&lt;br /&gt;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amp;amp;VdkVgwKey=12,11400000,11&amp;amp;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묘법연화경(언해) 권3 (妙法蓮華經(諺解) 卷三)]]&lt;br /&gt;
&lt;br /&gt;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상(82장)·하(82-202장) 2책으로 되어있다. 책의 형태는 글씨가 밖으로 나오도록 반으로 접어 겹겹이 포갠 후 몸통을 꿰매고 표지로 감싼 포배장이다.&lt;br /&gt;
&lt;br /&gt;
비록 1권 뿐이나 상·하권 첫머리에 교정을 했음을 알려주는 도장이 찍혀 있는 초판 인쇄본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lt;br /&gt;
&lt;br /&gt;
=== 보물 제1225호 ===&lt;br /&gt;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amp;amp;VdkVgwKey=12,12250000,31&amp;amp;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묘법연화경 권7(언해) (妙法蓮華經 卷七(諺解))]]&lt;br /&gt;
&lt;br /&gt;
중앙승가대학 소장. 세조 9년(1463)에 간경도감에서 목판에 새긴 것을, 성종 3년(1472)년에 [[인수대비]]가 세조·예종· 의경왕·인성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한 목적에서 찍어낸 것이다.&lt;br /&gt;
&lt;br /&gt;
=== 충북 유형문화재 제251호 ===&lt;br /&gt;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amp;amp;VdkVgwKey=21,02510000,33&amp;amp;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묘법연화경(언해) (妙法蓮華經(諺解))]]&lt;br /&gt;
&lt;br /&gt;
충북 단양군에 소장되어 있다. 7권 7책.&lt;br /&gt;
&lt;br /&gt;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분류:조선의 도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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