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4%B1_%EB%A7%89%EC%8B%9C%EB%B0%80%EB%A6%AC%EC%95%84%EB%85%B8_%EB%A7%88%EB%A6%AC%EC%95%84_%EC%BD%9C%EB%B2%A0</id>
		<title>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4%B1_%EB%A7%89%EC%8B%9C%EB%B0%80%EB%A6%AC%EC%95%84%EB%85%B8_%EB%A7%88%EB%A6%AC%EC%95%84_%EC%BD%9C%EB%B2%A0"/>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C%84%B1_%EB%A7%89%EC%8B%9C%EB%B0%80%EB%A6%AC%EC%95%84%EB%85%B8_%EB%A7%88%EB%A6%AC%EC%95%84_%EC%BD%9C%EB%B2%A0&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20T07:46:5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C%84%B1_%EB%A7%89%EC%8B%9C%EB%B0%80%EB%A6%AC%EC%95%84%EB%85%B8_%EB%A7%88%EB%A6%AC%EC%95%84_%EC%BD%9C%EB%B2%A0&amp;diff=90502&amp;oldid=prev</id>
		<title>2017년 1월 30일 (월) 13:0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C%84%B1_%EB%A7%89%EC%8B%9C%EB%B0%80%EB%A6%AC%EC%95%84%EB%85%B8_%EB%A7%88%EB%A6%AC%EC%95%84_%EC%BD%9C%EB%B2%A0&amp;diff=90502&amp;oldid=prev"/>
				<updated>2017-01-30T13:04: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라틴어]]: Sanctus Maximilianus Maria Kolbe&lt;br /&gt;
[[폴란드어]]: Święty Maksymilian Maria Kolbe(앞의 폴란드어 시비엥티(Święty)는 번역시 '성(聖)'이라는 뜻의 한국어다.)&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http://www.stfccm.org/xe/files/attach/images/603/616/053/0814Saint%20MAXIMILIAN%20KOLBE%205.jpg&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1894년]] [[1월 8일]] [[폴란드]] 즈둔스카 볼라 출생, [[1941년]] [[8월 14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선종]].&lt;br /&gt;
&lt;br /&gt;
본명 라이문트 콜베(Rajmund Kolbe). [[가톨릭]]  [[http://www.ofmconv.or.kr/|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수사]][[신부(종교)|신부]][* 수도사제, 성직수사라고도 한다.]이자 순교[[성인]]으로 축일은 [[8월 14일]]. [[기자|저널리스트]], 정치범, [[아마추어 무선|아마추어 무선]](HAM), 약물[[중독]]자, [[가족]], [[낙태]]근절 운동의 [[수호성인]]이다.&lt;br /&gt;
&lt;br /&gt;
[[미디어]]를 활용한 선교의 선각자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1910년]] [[http://www.ofmconv.or.kr/|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하면서 막시밀리아노라는 수도명을 택했고, [[1911년]] 첫 서원을 했다. [[1914년]] [[로마]]에 유학을 가서 종신서원을 하고 [[성모]]신심을 표현하고자 수도명에 '마리아'를 덧붙였다. [[1912년]] 로마 대학에서 [[철학]], [[신학]], [[수학]], [[물리학]] 등을 공부했으며, [[1915년]]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lt;br /&gt;
&lt;br /&gt;
이 무렵 [[프리메이슨]]에서 반 [[교황]] 캠페인을 벌이자 이에 대항하여 6명의 동료 수사들과 '''(원죄 없으신) [[성모 기사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소책자와 월간지를 출판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이때 콜베 수사와 그의 동료 수사들은 교리문답과 짧은 기도 소책자, 23만 부수의 일간지, 백만 부수가 넘는 월간지[* [[1922년]] 처음엔 5,000부로 시작한 잡지가 3년만에 1만부, 또 2년이 지나 5만부, 13년만인 [[1935년]]에는 70만부를 거쳐 [[1940년]] 체포 직전에는 100만부나 발간되었다.]를 출간하였기에 이것이 '''저널리스트의 수호성인'''의 근거가 된다. &lt;br /&gt;
&lt;br /&gt;
 * [[http://www.ikolbe.com/Main.uo|성모 기사회]]&lt;br /&gt;
&lt;br /&gt;
1918년 4월 28일 [[성품성사|사제품]]을 받았고, 이듬해인 1919년 [[폴란드]]로 귀국했다. 귀국 직후 [[크라쿠프]]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라디오]] 방송국과 출판 사업에 참여하여 언론인으로서 활동했다. [[1930년]] 동양 선교를 위해서 [[일본]]을 방문하여 6년간 머물렀다. 귀국한 뒤 니에포칼라누프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lt;br /&gt;
== 체포 ==&lt;br /&gt;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c/Kolbe-szombathely.jpg/600px-Kolbe-szombathely.jpg?width=450&amp;amp;align=center&lt;br /&gt;
&lt;br /&gt;
[[1939년]]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었다. 이 때문에 콜베 신부의 활동은 중단되거나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콜베 신부는 니에포칼라누프 [[수도원]]에 [[유태인]]을 포함한 전쟁 난민들을 숨겨주는 등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lt;br /&gt;
&lt;br /&gt;
[[1941년]] [[2월 17일]], 콜베 신부는 다른 4명의 신부와 함께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나치는 [[유태인]]만이 아니라 [[폴란드]]의 유력 인물[* 유태인이나 집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비단 유력 인물들 뿐만이 아니라 성직자 등의 종교인, 교사, 기자, 학생, 학자 등의 인텔리들도 당시 단체로 살해당했다. 웃긴 것은 '금발의 푸른 눈', 즉 당시 나치가 홍보하던 전형적인 [[아리아인]]의 모습을 한 아이들은 유괴당해 나치에 충실한 [[독일인]]으로 길러졌다는 것이다. 이 당시 이런 저런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은 폴란드 인구의 무려 '''15%'''. 그래서 전후 폴란드는 독일을 그야말로 씹어먹을 듯이 증오했다.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의 위령비 앞에서 무릎 꿇기 전까지는. 하지만 지금도 폴란드의 독일 인식은 좋은 편이 되지 못한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러시아-폴란드-독일은 상당한 앙숙 관계였으니. 영락없는 중국-한국-일본 관계다.]도 체포의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고소장은 네에포칼라누프 수도원에서 퇴회한 前 [[수도자]]의 명의로 제출된 것이었지만, 그는 [[독일어]]를 읽을 수도 없는데도 고소장은 게슈타포가 위조하여 독일어로 써 있었다. 前 수도자는 강압을 받아 억지로 사인만 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결국 콜베 신부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죄수 번호는 16670.&lt;br /&gt;
&lt;br /&gt;
== 순교 ==&lt;br /&gt;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a/Karl_Fritzsch_at_Auschwitz.jpg 카를 프리취이다.&lt;br /&gt;
&lt;br /&gt;
1941년 7월 말, 이 수용소에서 탈주자가 나오자 수용소 지휘관이자 [[SS]][[중위]]인 카를 프리취[* Karl Fritzsch  1903~1945. 이전 버전에서는 이 자가 연합군에 체포되어 찌질하게 굴다가 처형당했다고 쓰여져 있었으나, 재조사 결과 프리취는 5월 2일 이후로 실종된 것으로 처리된 상태다. [[베를린 공방전]]에서 사망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소련]] 측에서는 [[영국]] 정보부 [[MI6]]이 그를 [[노르웨이]]로 끌고 갔다고 주장하였다. ]는 14A동 블록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을 다 끌어내서[* 일설에는 14A동 블럭 사람들 중 10명을 무작위로 끌어냈다는 말도 있다. 어떤 게 맞는지는 확인 후 수정바람.] 처형할 것을 명령했다. 이 10명 가운데 [[폴란드군]]의 중사였던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Franciszek Gajowniczek)라는 사람이 있었다.&lt;br /&gt;
&lt;br /&gt;
가요브니체크는 &amp;quot;내 아내!! 아이들!! 그들은 어떻게 될까!!&amp;quot;하면서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그러자 콜베 신부는 '''&amp;quot;나는 [[가톨릭]] [[신부(종교)|신부]]이며, 가요브니체크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대신하여 처형을 받겠습니다.&amp;quot;'''라고 자청하여 나섰다. 프리취 중위는 이를 승락했고 콜베 신부와 9명의 죄수가 지하감옥(일명 '13호 감방')에 갇혔다.&lt;br /&gt;
&lt;br /&gt;
프리취는 그들을 즉시 처형하지 않고, 물과 음식을 일체 주지 않고 [[아사]]하도록 계속 가두어 두었다. 일반적으로 아사형에 처해지면, 굶주림과 갈증으로 정신착란 상태에서 죽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감방이니 그야말로 상상초월인 상황. 그러나 콜베 신부는 의연하게 다른 포로들에게 '''&amp;quot;우리는 곧 [[천국]]에 있게 될 것입니다.&amp;quot;'''라고 격려하고 기도하며 갇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lt;br /&gt;
&lt;br /&gt;
때때로 감옥의 모습을 보러 온 통역 브루노 보르고비에츠(Bruno Borgowiec)는 '''&amp;quot;감옥 안에서 기도와 성가가 들려, 마치 감옥이 [[성당]]처럼 느껴졌습니다.&amp;quot;'''라고 증언했다.&lt;br /&gt;
&lt;br /&gt;
2~3주의 시간이 지났지만 콜베 신부와 다른 3명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1941년]] [[8월 14일]], 나치는 병원 잡부로 일하는 범죄자 보프를 시켜서 독약인 [[페놀]]을 주사하여 그들을 모두 살해하였다.&lt;br /&gt;
&lt;br /&gt;
&amp;gt;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기도하면서 스스로 팔을 뻗었습니다. 나는 보다 못해,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감시병과 보프가 나간 뒤 다시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벽에 기대앉아 눈을 뜨고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온화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lt;br /&gt;
&amp;gt;- 브루노 보르고비에츠(Bruno Borgowiec)의 증언&lt;br /&gt;
　&lt;br /&gt;
콜베 신부의 시신은 [[성모승천대축일]] 날짜인 [[8월 15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 한 화장장에서 소각되었다. 희한한 점 한 가지는, 콜베 신부는 생전에 &amp;quot;성모승천대축일에 죽고 싶다&amp;quot;고 말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소원을 성취했다고... 해야 하나... 거 참.&lt;br /&gt;
== 시성 ==&lt;br /&gt;
[[1971년]] [[10월 10일]]에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10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순교자]]로 선언되고 시성되었다. &lt;br /&gt;
&lt;br /&gt;
[[성공회]]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20세기의 [[순교자]] 10인의 조각상 가운데 1명으로 선정되었다.(여담으로 그 10인 중에 어쩐지 아프리카인이 많다. 심지어 [[중국인]]도 1명 있다. 정확히는 [[묘족]].)&lt;br /&gt;
&lt;br /&gt;
콜베 신부가 목숨을 구해준 가요브니체크는 [[1944년]] [[8월 25일]] 까지 아우슈비츠에 있었고, 다른 캠프로 보내졌다가 [[연합군]]에게 해방되어 생존자가 되었다. 그의 아내 엘레나는 살아 있었지만, 아들은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소련]]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가요브니체크는 [[1995년]] [[3월 13일]] 9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콜베의 사랑과 [[영웅]]적인 행동이 알려지도록 세계 각지에서 [[강연]]했다. [[시복]]식과 [[시성식]]에도 참여했다.&lt;br /&gt;
&lt;br /&gt;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시복 시성과 관련된 [[기적]]은, 1948년 7월 [[결핵]]을 앓던 안젤라 테스토니와 1940년 8월 정맥 석회화 경화증을 앓던 프랜시스 라이너가 콜베 신부에게 전구를 청하여 병이 치유된 일이다.&lt;br /&gt;
== 그 외 ==&lt;br /&gt;
1930년 [[일본]]으로 가기 전 [[부산광역시]]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동생에게 편지를 남겼다.&lt;br /&gt;
&lt;br /&gt;
||&amp;lt;bgcolor=#E9ECEF&amp;gt;(전략) [[대한민국|한국]]은 내가 전혀 모르는 나라였다. 그 경치를 구경하고 또 구경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부산광역시|부산]]은 한국의 마지막 기착지였다. 여기서 놀라운 일을 알게 됐다. 기차를 내려 배에 오르기 전에 4시간이나 자유로운 시간이 있어서 [[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성당]]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순경이 [[한국]]에 성당은 3개밖에 없고[* 사실 이것 자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부산에는 범일동에 부산 본당이란 한 성당(부산진 본당)이 존재했다.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도 상당했다. 다만 [[명동성당]] 같은 규모의 알려진 성당이 많지 않다는 의미였거나, 부산진 본당이 관리하는 지역 내에서 본당이 [[거제시]] [[옥포]], [[밀양시]] [[삼랑진]] 셋 뿐이라는 것이 잘못 전해졌을 수는 있다. ([[울산광역시]]의 언양(현 [[울주군]]) 본당은 별개 분리.) 여하간 범일동 성당이 걸어서 최소한 45분 거리(3km 내외)로 떨어진 만큼, 주어진 시간 동안 콜베 신부 일행이 [[미사]]를 드리기는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성공회]] 성당인 대청동 성당이 [[부산역]]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용두산)에서 키 큰 '관광명소' 역할을 하고 있었던 점도 [[가톨릭]] 성당의 존재감을 낮추었을 수 있다.] [[부산]] 시내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6개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서는 그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거룩한 당신 아들의 나라를 세우실 것인가! &lt;br /&gt;
&lt;br /&gt;
1930년 8월 3일,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lt;br /&gt;
&lt;br /&gt;
이원복의 만화 [[사랑의 학교(만화)]]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다만 오류가 많으므로 [[사랑의 학교/에피소드#s-1.19|해당 항목]]을 참조할 것.&lt;br /&gt;
&lt;br /&gt;
=== 관련문서 ===&lt;br /&gt;
 * 성녀 [[에디트 슈타인]]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처럼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이한 수녀이자 순교자.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성인(기독교)]][[분류:폴란드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