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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속말말갈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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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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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4:0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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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04:03: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만주의 역사/고대)]&lt;br /&gt;
{{{+1 粟末靺鞨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amp;gt;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lt;br /&gt;
&amp;gt;[[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붙은 이들이며 성은 대 씨다&lt;br /&gt;
&amp;gt;----&lt;br /&gt;
&amp;gt; 《[[신당서]]》&lt;br /&gt;
== 개요 ==&lt;br /&gt;
[[말갈]]의 분파로 발해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친 종족 집단이다.&lt;br /&gt;
&lt;br /&gt;
== 발해 이전의 역사 ==&lt;br /&gt;
494년, [[물길]]이 [[부여]]를 점령한다. [[고구려]] 북부에 위치한 옛 부여 지역에 정착한 물길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이 나중에 속말말갈로 불린다. 5세기에는 백산말갈과 더불어 고구려에 가장 먼저 복속했다. 이는 직접 지배가 아니라 성곽이나 거점 등으로 간접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당 전쟁#s-5|고구려와 당의 마지막 전쟁]]에서 속말말갈은 고구려와 함께 당에 맞서 싸우고, 고구려 유민과 함께 영주로 강제 이주당한다. 후에 [[대조영]]의 세력이 발해를 건국할 때 [[걸사비우]]등 속말말갈도 함께한다. 그러나, 추장 돌지계[* [[나당전쟁]]에서 [[매소성 전투]]의 당나라 지휘관인 [[이근행]]은 이 돌지계의 아들이다.]로 대표되는 일부 속말말갈 세력은 고구려 복속에 반발해 [[수나라]]에 투항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 발해와의 관계 ==&lt;br /&gt;
=== 속말말갈 ≠ 발해 ===&lt;br /&gt;
당나라 [[구당서]]에서 발해 건국자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임이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발해 풍습은 속말말갈보다 고구려나 [[거란]]의 것과 비슷했다고 서술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당이 의도적으로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지우고 속말말갈에서 이어진 것처럼 기술했다는 견해도 있다.&lt;br /&gt;
&lt;br /&gt;
혈통과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속인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은 구당서를 바탕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주장한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동북공정]] 문서를 참조.&lt;br /&gt;
=== 속말말갈 = 발해 ===&lt;br /&gt;
당나라의 [[신당서]]에는 발해가 본래 속말말갈이라고 한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 등 건국의 주체가 말갈이고, 고구려 유민들이 말갈의 땅에 모인 것으로 서술된다.&lt;br /&gt;
&lt;br /&gt;
[[신라]]와 [[고려]]는 대체로 속말말갈이라는 집단이 발해를 건국한 것이라고 봤다. 신라의 [[최치원]]은 사불허북국거상표(謝不許北國居上表)에서 &amp;quot;발해는 속말말갈의 후신&amp;quot;이라며 '''멸시'''했다.&lt;br /&gt;
&amp;gt;신이 삼가 살피건대, 발해(渤海)의 원류(源流)는 고구려(高句麗)가 망하기 전엔 본시 사마귀만한 부락(部落)으로 [[말갈|앙갈(鞅鞨)의 족속]]이었는데 이들이 번영하여 무리가 이뤄지자 이에 [[속말말갈|속말(粟末) 소번(小蕃)]]이란 이름으로 항상 고구려를 좇아 내사(內徙)하더니, 그 수령 [[걸사비우|걸사우]](乞四羽) 및 [[대조영]](大祚榮) 등이 [[측천무후|무후]](武后) 임조(臨朝) 때에 이르러, 영주(營州)로부터 죄를 짓고 도망하여 문득 황구(荒丘)를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振國)이라 일컬었나이다.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amp;amp;seojiId=kc_mk_c006&amp;amp;gunchaId=av033&amp;amp;muncheId=01&amp;amp;finId=025&amp;amp;NodeId=mk_s_da|전문 출처]]&lt;br /&gt;
&lt;br /&gt;
이러한 생각은 고려의 역사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시대에 쓰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제왕운기]]는 발해를 속말말갈로 분류해 한국사의 방계 국가로 해석했다.[* 단, 고려는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발해가 다루기 껄끄러운 존재라는 부분도 감안할 필요도 있다.]&lt;br /&gt;
[각주]&lt;br /&gt;
[[분류:퉁구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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