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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빈 박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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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3T16:13:3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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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9:2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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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9:20:0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조선/역대 후궁]]&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2 '''아들의 즉위를 지켜본 유일한 후궁'''}}}&lt;br /&gt;
[[1770년]] ~ [[1822년]] (향년 53세). [[경기도]] [[여주시]] 출생. [[반남 박씨]] 박준원의 6남 5녀 중 3녀이다. 궁호는 가순. [[정조(조선)|정조]]의 4번째(이자 마지막) [[후궁]]이며 [[순조]]와 숙선옹주의 생모. 정조의 3번째 후궁 [[의빈 성씨]]와 맏아들 문효세자가 죽자 후사를 잇기 위해 간택되었다. 그가 순조의 생모였기에 그의 가문은 [[세도정치]] 가문 중 하나였다.[* 반남 박씨(순조의 생모-수빈 박씨-박종경), 안동 김씨(순조의 부인-순원왕후-김조순), 풍양 조씨(헌종의 생모-신정왕후-조만영)]&lt;br /&gt;
&lt;br /&gt;
정조의 여인들 중 가장 행복한 여인. [[효의왕후]], [[화빈윤씨]], [[원빈 홍씨]]는 자식이 없었다. [[의빈 성씨]]는 아들과 딸이 있었으나 금방 죽었다. 원빈 홍씨와 의빈 성씨는 일찍 죽었다. 오직 수빈 박씨만이 아들과 딸이 단명하지 않고 성장했으며, 본인 역시 단명하지 않고 아들 딸이 먼저 죽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윗전들에게 공선했고 윗전들도 수빈 박씨를 아꼈다.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는 수렴청정 당시 수빈 박씨의 아버지 박준원을 어영대장을 거쳐 판의금부사로 기용했으며 수빈 박씨를 '수빈 저하'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또한 수빈 박씨의 딸 숙선옹주를 일반 후궁의 딸로 볼 수 없다며 공주와 옹주 사이의 명칭을 주자고 주장했다. [[혜경궁 홍씨]]는 유명한 《[[한중록]]》을 정식 며느리인 [[효의왕후]]가 아닌 수빈 박씨에게 맡겼다.&lt;br /&gt;
&lt;br /&gt;
== 가족관계 ==&lt;br /&gt;
=== 친정 (반남 박씨) ===&lt;br /&gt;
상당한 명문가이다. [[화평옹주]]의 부마 박명원, 연암 [[박지원]]과 친척 관계이다. 어머니 원주 원씨 역시 [[인조반정]] 공신 원두표의 자손이다. 큰아버지 박윤원은 저명한 성리학자이다. 수빈 박씨는 삼간택을 거쳐 후궁이 되긴 했으나 사실상 사전에 박명원의 추천으로 내정된 상태였다.&lt;br /&gt;
&lt;br /&gt;
이런 상황에서 수빈 박씨가 입궁 3년 만에 아들 [[순조]]를 낳자 더욱 더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수빈 박씨의 아버지 박준원은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의 정치적 파트너로, 정조 사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어영대장을 거쳐 판의금부사 자리까지 올랐다. 둘째 오라버니 박종경은 순조 대에 세도가로 이름을 떨치다가 조득영([[풍양 조씨]])의 탄핵으로 물러나게 된다. 박종경은 [[홍경래의 난]] 때 간신으로 지목당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 큰아버지  : 박윤원 - 성리학자&lt;br /&gt;
 * 아버지 : 박준원 - 판의금부사&lt;br /&gt;
 * 어머니 : 원주 원씨[* 수빈이 14살 때인 1783년(정조 7년) 사망했다.] - [[인조반정]] 공신 원두표의 자손&lt;br /&gt;
  * 오라버니 : 박종보&lt;br /&gt;
  * 오라버니 : 박종경 - 순조 대 세도가&lt;br /&gt;
  * 언니 : 신광회에게 출가&lt;br /&gt;
  * 언니 : 이요헌에게 출가&lt;br /&gt;
  * 여동생 : 홍욱주에게 출가&lt;br /&gt;
  * 여동생 : 류첨에게 출가&lt;br /&gt;
  * 남동생 : 박종익&lt;br /&gt;
  * 남동생 : 박종희&lt;br /&gt;
 * 서어머니 : ?&lt;br /&gt;
  * 이복 남동생 : 박종염&lt;br /&gt;
  * 이복 남동생 : 박종영&lt;br /&gt;
=== 왕가 (전주 이씨) ===&lt;br /&gt;
 * 남편 : [[정조(조선)|정조]]&lt;br /&gt;
  * 아들 : [[순조]]&lt;br /&gt;
  * 며느리 : [[순원왕후]] 안동 김씨&lt;br /&gt;
  * 딸 : 숙선옹주&lt;br /&gt;
  * 사위 : 영명위 홍현주[* [[혜경궁 홍씨]]의 6촌 형제인 홍낙성의 손자. 정조의 또다른 후궁 [[의빈 성씨]]의 친언니가 홍낙성의 첩이었다.]&lt;br /&gt;
&lt;br /&gt;
== 수빈? 유빈? ==&lt;br /&gt;
박씨의 빈호로 사용된 글자 '綏'는 '편안할 수'와 '깃발 날릴 유'의 2가지 독음이 있는데, 그동안 첫 번째 독음을 따라 수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박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용된 진향문에 적힌 '顯穆綏嬪'의 한글 표기가 '''현목유빈'''으로 확인되었다. [[http://blog.daum.net/aroma-may/10054797|#]]&lt;br /&gt;
&lt;br /&gt;
== 야사 ==&lt;br /&gt;
수빈 박씨는 가난한 선비의 딸로 혼례를 앞두고 있던 중, 홍수로 집이 모두 무너져내렸다.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혼인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화평옹주]]의 부마였던 박명원은 자신의 사촌동생의 딸을 염두에 두고 정조에게 [[후궁]] 간택을 추천했다. 박명원은 정조에게 허락받았지만 사촌동생은 딸이 고생하는 게 싫어서 후궁 간택에 반대한다. 이미 정조에게 자기 조카라고 말해놨기에 난감해하던 중, 홍수로 집안이 박살난 박준원이 찾아왔고 딸이 단정하고 정숙해보여서 후궁 간택에 추천한다.&lt;br /&gt;
&lt;br /&gt;
== 현빈이라 불리다 ==&lt;br /&gt;
정조의 빈에 간택되어 그녀의 친정은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고, 어질고 온화한 성품에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1790년]]에 정조의 둘째 아들인 [[순조]]를 낳는다. 세자를 낳았음에도 박씨는 뇌물을 절대 받지 않고, 윗전들[*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 김씨]], [[혜경궁 홍씨]], [[효의왕후]] 김씨.]을 공경하며 봉양하여, 박씨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박씨는 유일하게 자기 아들이 왕이 된 걸 지켜본 후궁이 되었다. [[1822년]](순조 22년) [[12월]], 53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1823년]](순조 23년) 1월 27일(정유) '자궁[* 원래 왕의 어머니는 '자전'이지만 수빈 박씨는 후궁이므로 '자궁'으로 불렸다.]께서 평소 사후의 일을 생각해 별도로 두신 은자를 호조에 내어주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교하기를, “자궁(慈宮)께서 평소 사후(死後)의 일을 생각하여 별도로 두신 은자(銀子) 1만 6천 냥이 있기에 지금 호조에 내어주니, 잘 헤아려서 원소(園所)의 역사와 후일 별묘(別廟)를 지을 때에 보태서 쓰도록 하라.”하였다.&lt;br /&gt;
&lt;br /&gt;
== 사후 ==&lt;br /&gt;
세상을 떠난 후 현목(顯穆)을 [[시호]]로 받아 빈호와 합쳐 현목수빈이라 했으며, 1823년 위패를 모신 사당을 현사전(顯思殿)이라 이름했다가 1년 후인 1824년 사당을 이건한 후 경우궁(景祐宮)이라 개칭했다. [[대한제국]] 때인 [[1901년]] 정조가 황제로 추존됨에 따라 빈에서 비로 높여졌다. &lt;br /&gt;
&lt;br /&gt;
아들인 순조는 어머니인 수빈 박씨가 왕비가 아님에도 왕비에 준하는 예로 장례를 치루고 싶어해서 궐 안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가 끝난 뒤에도 3년동안 흰옷을 입었는데 반대한 사람은 죄다 유배보냈다고 한다. 사람이 유하고 국정에 큰 의지가 없던 순조가 거의 유일하게 강하고 의지를 보이던 부분이었다.&lt;br /&gt;
&lt;br /&gt;
== 대중매체 ==&lt;br /&gt;
드라마나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이산》에서 서윤아라는 배우가 캐스팅되었으나, 《이산》은 정조의 세손 시절이 메인인 드라마였기에 결국 등장하지 않고 마지막회에 아들 순조만 잠깐 등장했다.&lt;br /&gt;
&lt;br /&gt;
[[분류:조선의 후궁]]&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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