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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피아 가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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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1T11:41:1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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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7:4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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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0/Via_Appia_map.jpg&lt;br /&gt;
&lt;br /&gt;
'''Via Appia'''&lt;br /&gt;
&lt;br /&gt;
&amp;gt; All roads lead to Rome.[* 직역하면 &amp;quot;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mp;quot;로, 같은 목표에는 많은 다른 길이 있다는 영어 속담. 이 아피아 가도에서 유래하였다.]&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아피아 가도는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도로로, 로마와 이탈리아 남동쪽 지역에 위치해 있는 브린디시를 연결하였다. 로마의 감찰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기원전 312년경, [[삼니움 전쟁]] 중에 군사 목적으로 도로를 만든 것이 그 기원으로, 아피아 가도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로 위의 가도 중에서 제일 먼저 건설된 구간은 [[로마]]~[[카푸아]] 구간이고, [[카푸아]]~[[브린디시]] 구간은 나중에 추가로 지어진 것이다. ~~[[임시 개통]]?~~&lt;br /&gt;
&lt;br /&gt;
== 역사 ==&lt;br /&gt;
사실 가도건설의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었으나, 엄청난 비용과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당장에 특별히는 가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로마는 가도 건설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343년,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에 있던 도시국가 [[캄파니아]]가 연합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삼니움]]이 일으킨 [[삼니움 전쟁|제1차 삼니움 전쟁]]에서 보급로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패배한 로마는 마침내 가도 건설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물론 보급로 문제 때문만에 진 것은 아니다. 보급이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의외로 삼니움군이 로마군을 상대로 선전하였고, 무엇보다도 삼니움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 [[라티움 동맹]]이 로마를 배신하고 삼니움 쪽으로 돌아선 것이 타격이 컸다. 자세한 건 [[삼니움 전쟁]] 항목 참조.]&lt;br /&gt;
&lt;br /&gt;
특히, [[로마]]와 [[캄파니아]] 사이에 위치한 [[폰티노 습지]][* 지금은 간척되어서 없어졌다.]는 특성상 대규모 군대의 이동이나 보급품의 수송이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근처에 말라리아가 들끓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들어가기에는 제약이 많았는데, 이는 앞으로 로마의 이탈리아 남부 정복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었다.&lt;br /&gt;
&lt;br /&gt;
그렇게 계획을 수립한 로마는 우선 이탈리아 남부 쪽으로 이주민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이는 이탈리아 남부 쪽에 거점을 마련하여, 현지에서 보급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쉽게 말해서 식민지 건설이었다. ~~신대륙?~~ 그러나 이 식민지 건설로 인하여 삼니움과의 사이는 다시 틀어지게 되고, 거기에다 제1차 삼니움 전쟁 이후, 로마를 물리친 기세를 몰아 삼니움이 [[나폴리|네아폴리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둘의 사이는 더욱 악화된다.[* 네아폴리스는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로, 오늘 날의 나폴리이다. 당시에는 그리스계가 많이 살고 있었으며, 로마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1차 삼니움 전쟁에서 로마가 삼니움에게 털리면서, 삼니움이 로마의 비호를 받을 수 없게 된 네아폴리스를 삼켜버린다.]&lt;br /&gt;
&lt;br /&gt;
그러다가 기원전 327년 경에 네아폴리스가 로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로마는 이에 응하여 다시 군대를 전개하여 제2차 삼니움 전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로마는 이번에도 삼니움을 상대로 고전을 하게 되는데, 이 이유가 앞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보급의 문제 때문이었다.[* 로마는 이 보급 문제 때문에 삼니움을 상대로 본거지에 풍부한 자원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이걸 전쟁터로 제대로 옮기지를 못하여, 본거지에서 싸우는 삼니움에 비해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습한~~ 사정은 나중에 바뀌게 되는데, 바로 기원전 312년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의 새로운 감찰관이 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클라우디우스는 우선 로마가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를 잇는 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도 로마는 삼니움과의 전쟁에서 보급의 어려움으로 있는 전력의 100%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라우디우스는 감찰관에 임명되자마자 원로원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가도 건설에 들어갔다.&lt;br /&gt;
&lt;br /&gt;
그렇게 클라우디우스가 밀여붙여 건설한 구간은 로마와 캄파니아인의 중심지였던 카푸아를 잇는 구간이었다. 특히, 로마와 캄파니아 사이에 위치한 폰티노 습지를 건널 수 있게 되어, 보급품의 수송이나 대규모 군대의 이동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건설한 가도는 '''성공적'''이었다.&lt;br /&gt;
&lt;br /&gt;
로마가 이전과 달리, 이탈리아 남부 전역에서 본토의 풍부한 전력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게 되면서, 기원전 304년까지 대부분의 전투에서 삼니움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는 로마로 하여금 추후에 이탈리아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클라우디우스는 이 공적으로 인하여 나중에 로마 집정관까지 올라간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여담이지만, 이 때 만들어진 아피아 가도는 오늘 날까지 남아있다. 로마에 가면 한 번 즈음은 걸어볼 만한 거리로,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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