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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악 3호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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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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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09:5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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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09:50: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상위 문서: [[고구려/건축]]&lt;br /&gt;
http://contents.nahf.or.kr/goguryeo/anak3/an_html_kr/images/jpg01_1.jpg&lt;br /&gt;
http://pds23.egloos.com/pds/201204/23/34/a0053134_4f94614a2e080.jpg?width=500&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고구려]] 고분. [[북한]]의 [[국보]] 제67호.&lt;br /&gt;
&lt;br /&gt;
인근 고분군 중에서 무덤 벽화의 내용, 표현법, 상태 덕분에 가장 유명하다. 357년 [[고국원왕]]시기 축조 되어 1949년 발굴, 1958년 첫 보고서가 나온 이래 꾸준히 조사 연구되고 있다. 무덤의 벽화는 초기 형태로 이후의 고구려 고분 벽화 발전사 뿐만 아니라 당시의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연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lt;br /&gt;
&lt;br /&gt;
== 구조와 벽화 ==&lt;br /&gt;
석실봉토분으로 남쪽으로 뚫린 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안은 돌기둥과 석벽으로 분리된 5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전후로 크게 전실, 후실 구조에 좌우 곁방 있는 구조는 당대 중국묘의 영향을 받은 구조이다.&lt;br /&gt;
&lt;br /&gt;
http://thumbnail.egloos.net/600x0/http://pds23.egloos.com/pds/201204/23/34/a0053134_4f94615a98b1e.jpg&lt;br /&gt;
http://thumbnail.egloos.net/600x0/http://pds21.egloos.com/pds/201204/23/34/a0053134_4f94618251d55.jpg&lt;br /&gt;
이 무덤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벽화. 서쪽 방에는 묘주로 보이는 인물과 그 부인의 그림이 있으며 그 외 곳곳에 악단, 무용수, 부엌, 마구간, 푸줏간, 수레, 가마 등등 당시 생활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당시 신하, 군대 등을 묘사한 출행도도 있는데 최근 디지털 복원되어 상세히 확인할 수 있게 됐다.&lt;br /&gt;
&lt;br /&gt;
== 묘주는 누구인가? ==&lt;br /&gt;
http://i5.qhimg.com/t01497cf1ecd6e4720e.jpg&lt;br /&gt;
묘주를 그린 벽화. 얇은 흰색 관, '''백라관'''을 쓰고 있다. 상당한 수준의 무덤이다보니 당연히 묘주의 정체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이 있어왔다. &lt;br /&gt;
&lt;br /&gt;
일단 첫번째는 이 정도 규모의 무덤은 왕릉일 것이란데서 평양전투에서 전사한 [[고국원왕]]을 묘주로 보는 설이 있다. 묘주도에서 왕릉의 근거를 찾는데, 그림 속 인물이 흰색 관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당시 고구려왕만이 하얀 비단으로 만든 백라관을 썼다는 중국 기록(수서)과 연결지어 왕이었을 것이다라고 보는 주장이다.&lt;br /&gt;
&lt;br /&gt;
두번째는 [[전연]]에서 고구려로 망명온 동수의 묘주설인데, 묵서명에 동수의 이름이 남겨져 있는데서 시작됐다. 일단 이 주장에 따르면, 왕릉설의 백라관 근거는 단순히 하얀 모자로 통한다는 것 이외엔 여러 정황상 확정적 단서가 되기는 어려우며, 더군다나 왕릉으로 보기에 더 큰 문제는 당시 축조된 고구려 왕릉들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장군총]]같은 집안 지역의 적석총들이었던 반면, 안악 3호분은 도읍지에서 멀리 떨어진 황해도에 위치한 중국 양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무덤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한국의 기존 학계 및 중국, 일본 학계에서는 동수묘설에 무게가 실리는 상태이다.&lt;br /&gt;
&lt;br /&gt;
하지만 동수의 이름이 쓰인 문제의 묵서명이 묘주 옆이 아니라 문간에 그려진 묘주의 부하로 보이는 관원 그림 머리 위에 쓰여져 있어서, 묘주가 고국원왕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소장파 학자들 및 북한 학계에서는 바로 이 관원이 동수이며, 동수가 고국원왕을 위해 어떤 공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특별히 동수의 이름을 묵서명으로 남긴 것이라고 주장한다.&lt;br /&gt;
&lt;br /&gt;
세번째는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lt;br /&gt;
== 기타 ==&lt;br /&gt;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안악 3호분 왕릉설에 따라 백라관을 묘주도를 기반으로 고증했다.&lt;br /&gt;
&lt;br /&gt;
[[분류: 고구려/건축]][[분류:북한의 국보]]&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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