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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앨빈 C.요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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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03T16:52:5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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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1:3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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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1:36: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분류:미국의 인물]] [[분류:제1차 세계대전/군인]][[분류:제1차 세계대전]]&lt;br /&gt;
 * 상위 항목: [[미군#s-9|미군/인물]], [[전쟁 영웅]], [[인간흉기#s-1|인간흉기]]&lt;br /&gt;
&lt;br /&gt;
|| http://www.badassoftheweek.com/york.gif || [[파일:attachment/콜트 M1911/Alvin.jpg]] ||&lt;br /&gt;
&lt;br /&gt;
|| 이름 || 앨빈 요크(Alvin C. York) ||&lt;br /&gt;
|| 생몰일자 || [[1887년]] [[12월 13일]] ~ [[1964년]] [[10월 2일]] ||&lt;br /&gt;
|| 국적 || [[미국]] ||&lt;br /&gt;
|| 최종계급 || [[병장]] ||&lt;br /&gt;
|| 참전내역 || [[제 1차 세계대전]] ||&lt;br /&gt;
&lt;br /&gt;
'''[[존 바실론]]의 대선배'''&lt;br /&gt;
'''[[미 육군]]의 전설'''&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미국]]의 [[군인]]. [[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미군들 중에서 [[존 조지프 퍼싱]] 원수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사람이다. 1차대전판 존 바실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lt;br /&gt;
== 생애 ==&lt;br /&gt;
=== 전쟁 이전 ===&lt;br /&gt;
1887년 12월 13일에 미국의 [[테네시|테네시 주]]에서 11명의 형제 중 세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아주 가난했고 요크는 어려서부터 대장장이로 일을 하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곳을 9개월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것도 '''초.중.고''' 다 합해서! [[대학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러다 1911년, 부친이 돌아가시고,  두 명의 친형들은 결혼을 해 가족을 떠나자 사망한 부친을 대신해서 모친를 도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목수]], [[노동자]], [[대장장이]] 등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29살이 되던 1917년에 군대에 징병되는 걸 거부하였다. 요크는 절실한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걸 원치 않았고'''~~[[독일 제국군]]: ?~~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요크는 강제로 징병되었고, 그의 가족들은 그의 [[숙부]]가 대신 돌봐주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요크도 마음 편히 입대할 수 있었다. 그는 1917년부터 [[조지아 주]]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lt;br /&gt;
=== [[제1차 세계대전]]에서 ===&lt;br /&gt;
요크는 징병된후 1918년 1월, [[프랑스]] 아미앵에 도착하였다. 미군이 처음 1차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였던 [[아르곤-뫼즈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1918년 10월 8일, [[생미엘 전투]] 당시 그의 [[분대장]]이였던 버나드 얼리 [[병장]]의 지휘 아래, 당시 [[상등병]]이였던 요크를 포함한 4명의 상병들과 13명의 일.이병들은 [[참호]]들을을 넘어가 223고지에 있는 [[독일 제국군]]의 [[MG08]]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란 명령을 받았다. 요크와 병사들은 적의 MG08 진지를 급습하여 기관총사수를 죽이고 MG08을 빼앗았고 여러 명의 독일 MG08 부사수들을 잡았다. 요크와 병사들이 임무가 순조롭게 풀리는 줄 알았던 그 때, 갑자기 반대편 언덕 위에서 또 다른 MG08이 요크와 병사들을 향해 발포하였다. 순식간에 분대장이였던 얼리를 포함한 6명의 미군이 즉사하고 3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기 때문에 얼리의 뒤를 이어 그 다음으로 계급과 경력이 많았던 요크가 분대장이 된다. 갑작스런 독일 제국군의 급습에 요크의 휘하에는 고작 7명의 '''이등병'''들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요크는 남아있는 7명의 이병들에게 잡은 포로들을 감시하라 지시하고,  '''혼자''' 독일군의 MG08 진지를 파괴하러 갔다. 천만다행으로 요크가 언덕 밑에 자리를 잡았을때 독일군은 남아 있는 미군이 별로 없다 판단하여 사격을 잠시 중지하였는데, 그 때 요크가 독일군 참호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놀란 6명의 독일 제국군 병사들이 요크를 향해 돌격했지만 요크는 자신의 [[콜트 M1911]] [[권총]]을 들고 자신을 향해 돌격하던 제국군들을 하나 하나 침착하게 쏴 죽인다. 그 후 요크는 독일군의 MG08 진지 주변을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권총과 [[단검]]으로 독일군들을 죽이자 제국군 [[중위]]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였고 그 독일 중위의 휘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1차대전판 [[척 노리스]]를 본 제국군들은 겁에 질려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백기를 들고 요크에게 항복하였다. 한 대대 이상의 병력이 고작 병 한명에게 항복한 것이다. 요크는 제국군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그는 '''132명'''의 포로를 잡고 당당히 본부로 귀환했다.&lt;br /&gt;
&lt;br /&gt;
앨빈 요크는 이 전투에서 '''혼자''' 총 32정의 MG08을 파괴하거나 노획했고, 28명의 제국군들을 죽였고, 132명의 제국군들을 포로로 잡았다. 이 공으로 요크 상병은 [[병장]]으로 진급했고 미국은 그에게 미국 최고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했고, 프랑스의 [[페르디낭 포슈]] 연합군 총사령관이 친히 그에게 프랑스의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고, 영국군과 이탈리아군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요크는 총 50여개의 훈장을 받았으며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병사 출신 군인이 되었다.&lt;br /&gt;
=== 전후 생활 ===&lt;br /&gt;
그는 1918년 11월 전쟁이 끝나자 바로 [[제대]]를 했고, 1920년에 알빈 컬럼 요크 재단을 만들어 테네시주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을 했다. 그렇게 평범한 민간인으로 생활을 하다가 1941년 12월 7일,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다 다시 군대에 재입대할 것을 희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미 국방부는 요크의 너무 많은 나이(당시 54세)와 요크가 당시 앓고 있던 [[비만]], [[당뇨병]] 등을 트집잡아 요크의 재입대를 거부하였다. 비록 2차 세계대전에서는 활약하지 못하고 민간인 생활을 하였지만 1차대전 당시 미군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2차대전 당시 미 장성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면서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내다가 1964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한다.&lt;br /&gt;
=== 평가 ===&lt;br /&gt;
[[미 해병대]]의 살아있는 전설이 [[존 바실론]]이라면, [[미 육군]]의 살아있는 전설은 바로 이 사람이다. 어찌보면 바실론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다. 바실론은 [[브라우닝 M1917]]이나 [[M1919]]로 [[아리사카]]나 [[카타나]]를 든 [[일본군]]과 [[람보|싸웠다]]. 그러나 요크는 고작 콜트 M1911과 단검만으로 [[Gew98]]과 [[MG08]], [[MP18]]로 무장했던 독일 제국군과 싸웠다. 그리고 무려 28명을 죽이기까지 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고작 권총과 칼 따위로는 [[볼트액션]] 소총은 커녕 [[기관총]]이나 [[기관단총]]에게 상대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냥 아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요크 이 사람은 이러한 상식을 거침없이 뒤집어 엎은 것이다.아직까지도 미군 내에는 앨빈 요크와 맞먹는 전설을 가진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lt;br /&gt;
=== 대중매체 ===&lt;br /&gt;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미국에서 '요크 상사(Sergeant York)' 라는 영화를 제작한다. 목적은 당시 [[유럽]]과 [[태평양]]에서 싸우고 있던 미군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함이였다. 실제 존재했던 영웅의 일대기를 보여주면서 사기를 북돋았던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상영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병장이 아닌 상사로 번역되어서 개봉되었다. 대표적인 발번역의 예. 영어사전만 찾아봐도 Sergeant는 병장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요크는 부사관이 된 적이 없으며 [[하사]] 이상 계급으로 진급하기 전에 제대했다.&lt;br /&gt;
&lt;br /&gt;
1980년대에 미 육군이 개발했다가 실패한 [[M247 서전트 요크]] [[자주대공포]]도 앨빈 요크에게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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