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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억지춘양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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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3T14:06:4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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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11:0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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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11:09: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amp;quot;원치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amp;quot;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어. 흔히 [[춘향전]]에서 변학도가 [[성춘향]]에게 억지로 수청을 요구했다는 의미의 '''억지춘향'''으로 알려져 있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http://stdweb2.korean.go.kr/search/SectionView.jsp|용례가 그와 같이 실려 있으나]], 실생활에서는 '''억지춘양'''이 더욱 많이 쓰인다.&lt;br /&gt;
&lt;br /&gt;
== 어원 ==&lt;br /&gt;
억지춘양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이 전한다.&lt;br /&gt;
&lt;br /&gt;
1.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는 '억지춘양'이라는 속요가 전하고 있다.&lt;br /&gt;
&amp;gt;왔네 왔네 나 여기 왔네 / 억지 춘양 나 여기 왔네 / 햇밥 고기 배부르게 먹고 / 떠나려니 생각나네 / 햇밥 고기 생각나네 / 울고 왔던 억지 춘양 / 떠나려 하니 생각나네…&lt;br /&gt;
철도가 없고 도로도 발달하지 않아 교통여건이 좋지 않았던 시절 춘양은 한반도에서 상당히 외진 곳이어서 외지에서 시집을 온 부녀자들이 이 춘양에 한 번 들어오면 다시 가는 친정 길은 마음뿐이었고, 그래서 가기 힘든 발걸음을 ‘억지춘양’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춘양에 들어와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춘양이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금정광산, 춘양목 등으로) 있는 고장이어서 춘양을 떠나려니 되레 섭섭하다는 의미가 담긴 노래이다.&lt;br /&gt;
&lt;br /&gt;
2. 옛부터 ‘백목(百木)의 왕(王)’이라고까지 불리며 춘양을 대표하던 소나무 춘양목이 너무도 유명하여 춘양.장동(춘양 소로리).내성(봉화)장날 상인들이 너도 나도 내다 팔려 가져온 자기 나무가 춘양목이라고 우긴다는 말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3. 1944년 일제는 [[영주역|영주]]~[[춘양역|춘양]]을 연결하는 영춘선(지금의 [[영동선]]) [[철도]] 공사를 시작하여 해방 직전인 1945년 8월 내성역(현 [[봉화역]])까지 철도를 개통하였으나 일제의 패망으로 철도 공사는 중단되었고,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23일 [[경상북도]] 북부 일대의 홍수로 그나마 개통되어 있던 구간도 운행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로 유실되고 말았다.&lt;br /&gt;
1949년 이미 개통된 영주~봉화 구간을 복구하여 열차 운행을 재개하고 다시 [[철암역|철암]]까지 연결하는 철도 공사가 재개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건설은 중단되었고, 휴전 이후인 1954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lt;br /&gt;
그러나 철도 공사가 90% 이상 진전된 상황에서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출신으로 당시 [[국회의원]]이자 [[자유당]] 원내 총무였던 정문흠(鄭文欽,1892 ~ 1976)은 갑자기 영암선 철도가 춘양면을 지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국토교통부|교통부]] 철도국에 압력을 넣어 [[법전역|법전]]~[[녹동역|녹동]] 구간을 직선으로 연결하도록 계획되어 있던 철도를 춘양면 소재지로 돌아서 가게 만들고 춘양면 의양리 면소재지 외곽에 역사를 설치하게 하였다.&lt;br /&gt;
이로 인해 영암선은 직선으로 갈 수 있는 짧은 구간을 춘양면소재지를 거쳐 2km 이상 돌아서 나가는 Ω자 형태의 노선으로 변경되어 건설되었고, 이 과정에서 험준한 산악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약 300m의 터널 1개와 길아천철교에 버금가는 높이 30.7m, 길이 60m의 철골 철교 등 교량 4개를 건설하는 난공사를 거쳐야 했고, 결국 개통 시기도 그만큼 늦춰지게 되었다.&lt;br /&gt;
이러한 뒷이야기가 알려지면서 &amp;quot;철도를 억지로 춘양으로 돌렸다&amp;quot;는 뜻에서 억지 춘양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lt;br /&gt;
=== 논란 ===&lt;br /&gt;
'''억지춘양'''과 '''억지춘향(이)'''이라는 말 중 어느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꾸준히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실린 신문기사에&lt;br /&gt;
&lt;br /&gt;
||&amp;lt;#eeeeee&amp;gt;&lt;br /&gt;
&amp;quot;格에맛지안는 地方部社會部, 經濟部椅子에 턱턱걸어안저서 '''억지春香'''의 붓대勞働을 머리골치가띙하게 終日하고잇다.&amp;quot; - [[1927년]], [[동아일보]][[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9103000209204007&amp;amp;editNo=1&amp;amp;printCount=1&amp;amp;publishDate=1929-10-30&amp;amp;officeId=00020&amp;amp;pageNo=4&amp;amp;printNo=3305&amp;amp;publishType=00020|#]]&lt;br /&gt;
&amp;quot;이러케 '''억지春香'''을 꾸며노타싶이한 K君이 機械的으로움즉여야할 拘束된 店員生活에 調和되지안흘것은 定한 理致다.&amp;quot; - [[1938년]], 동아일보[[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7072200209106004&amp;amp;editNo=2&amp;amp;printCount=1&amp;amp;publishDate=1937-07-22&amp;amp;officeId=00020&amp;amp;pageNo=6&amp;amp;printNo=5710&amp;amp;publishType=00010|#]]&lt;br /&gt;
&amp;quot;머리채를느러트리든옛시절로 거슬러올나가도못쓰겟지만 노란머리아닌털을 '''억지춘향'''으로구비치게한들 어쩔거시여&amp;quot; - [[1949년]], 동아일보[[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9042800209202048&amp;amp;editNo=1&amp;amp;printCount=1&amp;amp;publishDate=1949-04-28&amp;amp;officeId=00020&amp;amp;pageNo=2&amp;amp;printNo=7888&amp;amp;publishType=0002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이와 같이 '''억지春香'''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도 소개하였듯이 봉화군 춘양면에도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억지춘양'이라는 속요가 현재까지 전래되고 있으며, 춘양이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 이전인 조선 시대부터 &amp;quot;춘양현(春陽縣)&amp;quot;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온 유서 깊은 지명이다. 두 표현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어 어느 쪽이 맞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현재로서는 각각 별개로 생겨난 두 말이 비슷한 의미로 쓰이게 되었거나, 혹은 두 말의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어느 한 쪽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는 것이 중론으로 여겨지고 있다.&lt;br /&gt;
&lt;br /&gt;
== 같이 보기 ==&lt;br /&gt;
  * [[춘향전]]&lt;br /&gt;
  * [[춘양역]]&lt;br /&gt;
&lt;br /&gt;
[[분류:속담]]&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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