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97%98_%EA%B7%B8%EB%A0%88%EC%BD%94</id>
		<title>엘 그레코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97%98_%EA%B7%B8%EB%A0%88%EC%BD%94"/>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C%97%98_%EA%B7%B8%EB%A0%88%EC%BD%94&amp;action=history"/>
		<updated>2026-06-12T16:29:0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C%97%98_%EA%B7%B8%EB%A0%88%EC%BD%94&amp;diff=782806&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7일 (화) 07:1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C%97%98_%EA%B7%B8%EB%A0%88%EC%BD%94&amp;diff=782806&amp;oldid=prev"/>
				<updated>2017-02-07T07:10: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www.leninimports.com/el_greco_gallery_20.jpg[*0 자화상으로 추정]&lt;br /&gt;
El Greco&lt;br /&gt;
&lt;br /&gt;
[[중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1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중 한 명.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로, 그리스에서 태어나서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작가다. &lt;br /&gt;
&lt;br /&gt;
http://allart.biz/up/photos/album/e-f/El%20Greco/el_greco_opening_of_the_fifth_seal.jpg?width=400&lt;br /&gt;
다섯번째 봉인의 개봉 (1614, 캔버스에 유화)&lt;br /&gt;
&lt;br /&gt;
당시에는 흔치않았던 어두운 단색으로 배경을 표현하여 인물을 강조하고 그 인물들을 10등신에 가깝게 길게 그려서 눈에 띄도록 한 독특하고 파격적인 화풍의 소유자이다. 이 때문에 그 당시에는 실제 사람과 사물을 똑같이 표현하는 고전주의 사조가 유행하였기 때문에 시각 장애가 있는 것 아니냐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화풍은 16세기 말에 [[매너리즘]][*2 16세기 말 이미 소묘실력이 정점에 달하면서 미술의 발전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조화와 균형대신 신체의 특정부분을 과장 왜곡하면서 부자연스러움을 추구하게 되었다.]이라는 사조로 발전한다. 후일 그의 화풍은 표현주의와 추상주의에 영향을 준다.[*3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데 집중하는 것 대신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종교적 열망과 희열-을 표현하기 위해 형태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내었단 것을 생각한다면 표현주의, 추상주의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400년정도 앞서갔던 화풍이었던 셈]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이지만  '엘 그레코'[*4 사실 엘 그레코라는 표현 자체는 약간 비하적인 표현이 섞여있어서 스페인 사람들이 불렀던 의미는 그리스인보다는 '그리스놈'이라는 표현에 더 가깝다. 이사벨1세 여왕의 레콩키스타 성공과 통일 스페인왕국 출범 이후 이방인들에게 까칠했던 스페인의 분위기를 가늠할수 있는 한 단면인 셈. 또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공표했으니 그의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들어있기도 하다.]라고 불리운 까닭은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중심지가 여전히 이탈리아였던 시대 상황에 맞게, 그리스인인 그에게 '그리스인'이라는 말을 이탈리아 식으로 부른 데서 기인한다.  &lt;br /&gt;
&lt;br /&gt;
대표적 작품에 &amp;lt;장님의 치료&amp;gt; &amp;lt;에스폴리오&amp;gt; &amp;lt;성 마우리티우스의 순교&amp;gt; &amp;lt;오르가스 백작의 매장&amp;gt; &amp;lt;목자들의 경배&amp;gt; 등이 있고, 풍경화 &amp;lt;톨레도의 풍경&amp;gt;과 초상화 &amp;lt;손을 올린 기사&amp;gt;, &amp;lt;자화상&amp;gt;이 있다.&lt;br /&gt;
&lt;br /&gt;
http://www.artble.com/imgs/a/a/f/336886/the_burial_of_the_count_of_orgaz.jpg&lt;br /&gt;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1588, 캔버스에 유화)&lt;br /&gt;
이 중 &amp;lt;오르가스 백작의 매장&amp;gt;이라는 작품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과 스테판 성인이 오르가스 백작의 시신을 매장하고 있고 그의 영혼을 천사가 천국으로 끌어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묘사였다. 특히 동시대인물이 아닌 사람들[*5 성 아우구스티누스,성 스테판과 오르가스 백작, 동네 주민들, 심지어 왼쪽에는 엘 그레코 자신의 모습과 아들을 묘사해놓았다.]을 동시에 묘사한 것, 영혼을 실체있는 형상[*6 흰 색 물결, 천의 형상으로 표현]으로 표현한 것 때문에 당시 백작의 유해를 모셨던 산토 토메 성당에서는 이 그림을 묘지 위에 걸기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그 그림을 보기위해서 산토 토메를 찾는 관광객이 매우 많아진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7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오로지 눈으로만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분류:화가]] [[분류:스페인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