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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염상(고려)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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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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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5일 (일) 14:1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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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5T14:10: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廉湘&lt;br /&gt;
(?~?)&lt;br /&gt;
&lt;br /&gt;
[[고려]]의 무장. 궁예 시절 태봉의 마군장군으로 4 마군장(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개국 2등 공신에 봉해졌다. 1등 공신들 중 복지겸이 야전 사령관으로 활동한 다른 3명과 맡은 역할이 달랐던 것처럼 염상 또한 같은 2등 공신으로 일선 지휘관으로 활동한 김락이나 견권 등과는 장기가 달랐다.&lt;br /&gt;
&lt;br /&gt;
918년 9월, 복지겸이 청주출신 순군리 임춘길과 동향의 배총규, 계천(季川 전남 장흥) 사람 강길, 아차귀와 매곡(昧谷 충북 회인) 사람 경종의 역모 사실을 밝혀냈을 때, 왕건의 측근중에서도 청주 출신이라 그 곳 사정에 밝았던 현율은, 경종이 매곡성주 공직의 매제임을 들어, 죽이는 대신 회유할 것을 권했다. 매곡성과 그곳을 다스리는 공직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었던 왕건은 현율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을 용서하려 했는데, 염상이 나서 강하게 반대해, 도망친 배총규를 제외한 일당 전원을 처형했는데, 현율의 예상대로 공직은 백제에 투항해 오랫동안 고려의 발목을 잡게된다. &lt;br /&gt;
&lt;br /&gt;
염상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고려사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모두 동일해서 전부다 '''축성에 관한 기록'''이다. &lt;br /&gt;
&lt;br /&gt;
{{| 928년 2월에 대상 염상과 경(卿) 능강 등을 보내어 안북부(安北府)에 성을 쌓고, 원윤 박권을 진두(鎭頭)로 삼아 개정(開定) 군사 7백 명을 거느리고 이를 지키게 하였다.&lt;br /&gt;
&lt;br /&gt;
929년(태조 12), 봄 3월에 대상 염상을 보내어 안정진(평남 순안)에 성을 쌓고 원윤 언수고에게 이를 지키도록 하며, 또 영청현(평남 영유)에 성을 쌓았다.&lt;br /&gt;
&lt;br /&gt;
930년(태조 13) 8월, 대상 염상을 보내어 마산(馬山)에 성을 쌓고 안수진(安水鎭)이라 이름하였으며, 정조 흔행을 진두로 삼았다.&lt;br /&gt;
&lt;br /&gt;
934년(태조 17) 겨울, 이해에 대상 염상을 보내어 통해진(평남 평원군 영유)에 성을 쌓고, 원보 재훤을 진두로 삼았다. |}}&lt;br /&gt;
&lt;br /&gt;
고려 건국기부터 시작해 고려에서 이름 꽤나 날린 무장들은 거의 모두 참전한 일리천 전투까지 참전 기록은 전혀 없다. 종합하면 전투 지휘보다는 축성과 진지구축에 조예가 깊었던 '''공병사령관'''으로 추측된다.&lt;br /&gt;
&lt;br /&gt;
이후 943년(태조 26) 5월 왕유, 박수문과 함께 임종 직전 왕건의 유언을 받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lt;br /&gt;
&lt;br /&gt;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의 내군 장군인 [[은부]]의 측근으로 맨처음 등장했다. 한때는 은부와 함께 왕건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으나 궁예의 폭정에 점차 실망하던 차[* 철원에서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점차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궁예가 조회에서 기침한 신하를 때려죽이라고 할때 처음에는 염상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염상이 머뭇거리자, 금대가 대신 그 신하를 죽인다.]에 군부로 자리를 옮겼으며[* 은부가 말하기를, 내군이란 궁예의 개와도 같이 무조건 충성해야 하는데 자네는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이후 은부는 종간에게 염상을 군부로 보냈다고 말하면서 목숨을 거두려 했으나 그간의 정이 있어 그렇게 처리했다고 고한다.], 그 뒤에는 왕건을 옹립하려는 4 마군장들의 회유로 왕건의 쿠데타에 가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조연급 무장으로서 틈틈이 보이며 특기할 만한 사항은 없지만, 극의 최후반까지 등장한다. 배우는 심우창.&lt;br /&gt;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도 등장 배우는 전작 태조 왕건에서 [[환선길]]역을 맡았던 백인철. 전작에 비해 시간이 흘러서 순군부령(지금의 합참의장)으로 등장한다. 직위는 높아졌으나 전작보다 비중은 줄었다.&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염상,version=25)]&lt;br /&gt;
[[분류:고려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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