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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맥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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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4T17:37:4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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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8:4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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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8:45: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만주의 역사/고대)]&lt;br /&gt;
[include(틀:위서 오환선비동이전)]&lt;br /&gt;
[목차]&lt;br /&gt;
== 예 ==&lt;br /&gt;
[[고대]]에 [[쑹화 강]] 일대부터 [[함경도]], [[강원도]] 북부에 걸쳐 존재했던 공동체. 문헌상으로 [[맥]]보다 후에 나타난다. 본래는 맥과는 구분되는 세력이었으며, 맥보다 동방에 위치하여 은주시대 이전까지 중국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부터는 서서히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국가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의 패퇴, 고구려의 확장 등으로 서서히 세력이 미약해지다가 끝내는 맥계의 고구려에 동화된다. 이로 인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한 한국인에게 익숙한 '예맥'이라는 연칭이 완성된다.&lt;br /&gt;
&lt;br /&gt;
이들 종족이 주류인 국가는 [[부여]], [[동예|예]] 등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 맥 ==&lt;br /&gt;
貊. 고대 [[만주]] 지방에 존재한 종족.&lt;br /&gt;
&lt;br /&gt;
은주시대부터 간헐적으로나마 그 기록이 등장하며, 해당 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중국의 정북방에서 동북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 및 [[삼국지]]의 기록도 그렇고, 중국 입장에서는 영 고깝게 보였던 듯. 목축 민족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는데, 이는 [[맹자]]가 '수확의 2분의 1을 거두면 [[걸왕]]과 같고, 수확의 20분의 1을 거두면 맥과 같다(이후 중국 고유의 세제로 10분의 1세를 주장)'고 한 말에서도 (다소 정주를 위한 공동체 예산 및 세제의 정착이 미약했으리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들이 [[고조선]] 건국을 주도했다는 설도 있으나 논란이 많고, 다만 후에 [[고구려]] 건국 및 확장 시에 대두된 것은 확실하다. 물론 고구려 세력이 유일한 맥계 공동체는 아니었고, 고구려 통합 과정에서 대수맥(大水貊), 소수맥(小水貊), 양맥(梁貊) 등이 편입되어 나간 것이다.&lt;br /&gt;
&lt;br /&gt;
중국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세력이었기 때문인지, 북송 시대에 [[고려]] 사신의 행패를 소동파가 비난할 때 비칭으로 쓰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lt;br /&gt;
&lt;br /&gt;
&amp;gt;&amp;quot;맥적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amp;quot;&lt;br /&gt;
&amp;gt;貊賊入貢 無絲髮利而有五害 今請諸書與收買金箔 皆宜勿許。&lt;br /&gt;
&amp;gt;-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lt;br /&gt;
&lt;br /&gt;
고유 풍습과 관련된 말로 '맥궁(貊弓)'이나 '맥적(貊炙)' 등의 말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맥적은 [[한국 요리]]인 [[너비아니]]의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받고 있다.&lt;br /&gt;
&lt;br /&gt;
== 예맥 ==&lt;br /&gt;
맥은 후에 [[예]] 계통의 국가들을 흡수하고 '[[예맥]]'으로 연칭되는 형태로 발전한다. [[요동]]에서 [[평안도]], [[강원도]] 일대에 분포하던 예맥 세력은 남방의 [[삼한]]과 함께 현대 [[한민족]]의 원류가 되었다. 북방 예맥계인 고구려인과 남방계인 신라인, 백제인은 민족적 이질성이 강했다. 셋은 정체성이 뚜렷해 고려시대까지도 [[부흥운동|삼국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며 민족적 차이는 완전히 소멸해 [[조선인]], [[한민족]]으로 단일민족화 된다.&lt;br /&gt;
&lt;br /&gt;
== 표기 문제 ==&lt;br /&gt;
이들 세력이나 종족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헌상으로 예와 맥은 '예', '맥'으로만 존재할 뿐 '예족', '맥족'이라 기록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동이]](東夷)'의 경우 '동이족'이라는 혈연적 민족이 있었던 게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 동쪽의 이민족들을 총칭했던 용어가 '동이'일 뿐인 것 처럼. 한편 예맥을 예와 맥이라는 특정 혈연 민족으로 보는 경우 이들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헌상에는 姜, 氐, 凶奴라고 나타나는 민족을 [[강족]], [[저족]], [[흉노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lt;br /&gt;
&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예,version=69)]&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맥,version=150)]&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만주 종족 계보,version=50)]&lt;br /&gt;
[[분류:아시아의 민족]] [[분류:한국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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