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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을해자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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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18T15:31:5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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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4:1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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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04:14: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乙亥字. [[조선]] [[세조(조선)|세조]] 1년, 1455년에 명필 강희안[* [[여인도]], [[경운도]], [[오두연수도]], [[산수인물도]], [[고사관수도]], [[고사도교도]], [[강호한거도]] 등의 여러 그림과 글씨를 남겼으며 당대에 시서화의 삼절(三絶)이라 불리던 예술인.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었으나 화를 면했고 훗날 신석조와 이종검이 다시 처벌을 요구하였으나 세조의 비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 친동생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amp;amp;contents_id=51189|강희맹]]과 함께 형제 문장가로도 불렸으며 강희맹은 [[금양잡록]] 등을 남겼다.]의 글씨를 토대로 만든 [[금속활자]].&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1455년에 세조의 명에 따라 구리로 만들어졌으며, [[훈사]] 등 약 150여종의 문헌을 찍어내는데 사용했다. 크기에 따라 대자, 중자, 소자의 3종류로 이루어져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의 여러 활자 중 [[세종대왕|세종]]이 만들었던 [[갑인자]] 다음으로 오래 사용된 활자로 [[임진왜란]] 전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조선 전기 활자 중 가장 아름다운 활자로 손꼽히며 조선 활자의 백미라 불린다.&lt;br /&gt;
&lt;br /&gt;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도 을해자를 사용했다. 1931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에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약탈해간 을해자들을 구해 분석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2007년 1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을해자 실물유물 30여점을 발견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3&amp;amp;oid=001&amp;amp;aid=0001512749|네이버 뉴스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82&amp;amp;aid=0000119959|네이버 뉴스 2]]&lt;br /&gt;
&lt;br /&gt;
== 을해자병용 ==&lt;br /&gt;
세조가 재위한 후 가장 신경썼던 것이 바로 한글보급사업이었다. [[훈민정음]]은 아버지 세종이 처음 완성하였으나 이때에는 [[용비어천가]]와 같은 정권찬양물 몇 권이 제작되어 치적으로 삼는 것 외에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전국적인 한글 보급이 거의 시행되지 못해서 책을 대규모로 찍어내는데 1차적으로 가장 필요한 한글 활자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이에 세조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를 만드는데 바로 '초주갑인자병용한글활자'이다. 세종이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를 한글로 변환해 만든 세계 최초의 한글 활자인 '초주갑인자병용한글활자'는 최초로 찍은 책의 이름을 따서 '[[월인석보]]한글자'라고도 부른다.&lt;br /&gt;
&lt;br /&gt;
이후 갑인자병용에 이어 만든 역대 두번째의 한글 활자가 바로 을해자병용이다. [[능엄경언해]]를 찍어내는데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조]]대까지도 사용한 기록이 있다. 갑인자병용은 현재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을해자병용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한글 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또 하나의 한글 활자인 무신자병용(戊申字倂用)과 함께 우리나라의 옛 한글 활자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제 1차 사료이자 소중한 문화재이다.&lt;br /&gt;
&lt;br /&gt;
자세한 내용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92&amp;amp;contents_id=4752|네이버 캐스트 : 한글 금속활자]] 항목을 참조.&lt;br /&gt;
&lt;br /&gt;
[[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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