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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규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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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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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7:2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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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李奎泰&lt;br /&gt;
1933년 9월 6일 ~ 2006년 2월 25일&lt;br /&gt;
&lt;br /&gt;
[[파일:이규태.jpg]]&lt;br /&gt;
&lt;br /&gt;
1933년 [[전라북도]] [[장수군|장수]]의 외진 시골에서  출생하였다. 본인은 &amp;quot;어릴 때 종이를 처음 보고 너무 신기해 그걸 접어놓고 잠자다가도 펴보곤 했어&amp;quot;라고 회고 하기도...&lt;br /&gt;
&lt;br /&gt;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취직할 곳이 없어 [[종로]] 음악다방에서 [[DJ]]를 하기도 했다. 1959년 [[조선일보]]에 [[공채]] 2기로 입사하여 문화부, 사회부, 편집부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lt;br /&gt;
&lt;br /&gt;
1961년 사회부 기자로 소록도 나환자촌을 취재하고 ‘소록도 기행’이라는 연재를 썼다. [[이청준]]은 이를 소재로 소설 &amp;lt;당신들의 천국&amp;gt;을 썼고 이규태도 작중 인물로 등장한다. [[이청준]]은 “그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나는 그의 독자다.”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일보]]에 1983년 3월 1일부터 2006년 2월 23일까지 〈이규태 코너〉를 연재하면서 23년 동안 6702회를 기고하며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칼럼 기록을 세웠다. 제1회는 [[3·1절]]을 맞아 3·1선언 현장인 명월관의 내력을 쓴 ‘[[http://blog.naver.com/macsanjo/130047800109|이완용 집 고목]]’이고 제6701회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2/10/2006021070437.html|책찜질 이야기]]’이다. 마지막 회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2/22/2006022270467.html|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고별사를 담았다.&lt;br /&gt;
&lt;br /&gt;
1965년 조선일보의 첫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종군했으며, 귀국한 후에는 우리 역사와 한국인의 의식을 탐사하는 데 일생을 쏟았다. 196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개화백경’을 시작으로 ‘6백년 서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획연재물을 썼으며, &amp;lt;한국인의 재발견&amp;gt;, &amp;lt;한국인의 의식구조&amp;gt;, &amp;lt;신바람의 한국학&amp;gt; 등의 저서가 있다.&lt;br /&gt;
&lt;br /&gt;
지하서재에 책이 가득할 정도로 풍부한 독서량에 근거한 많은 식견과 깔끔한 문체로 쓴 이규태 코너는 [[국뽕|한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근검절약에 대한 그의 칼럼이 실린 바 있다. 2006년 [[폐암]]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lt;br /&gt;
&lt;br /&gt;
[[분류:기자]]&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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