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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득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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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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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4일 (토) 16:2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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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4T16:2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기자(직업)/목록]]&lt;br /&gt;
&lt;br /&gt;
https://tv.pstatic.net/thm?size=120x150&amp;amp;quality=9&amp;amp;q=http://sstatic.naver.net/people/84/20070205170846197050782.jpg?width=150&lt;br /&gt;
[[분류:기자]][[분류:언론인]]&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의 기자. [[문화방송|MBC]] 기자로 입사, MBC 전 사장,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 약력 ==&lt;br /&gt;
1939년 5월 7일생으로, [[한양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에 MBC에 입사했다. 1974년 가을부터 1987년 4월 30일까지 12년 반 동안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 [[하순봉]]은 70년대 말 진행. 기간이 겹치니 확인바람.]&lt;br /&gt;
&lt;br /&gt;
당시 최장수 앵커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후배 앵커인 [[엄기영]](1989.10.09.~1996.11.08, 2002.1.1~2008.2.1)이 기록을 경신했다. 1980년대 평일 뉴스데스크 영상을 찾아보면 앵커는 항상 이득렬 앵커였다. 그렇다보니 [[땡전뉴스]]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한국방송공사|옆 동네]] [[박성범]]도 그랬다.--&lt;br /&gt;
&lt;br /&gt;
1987년 워싱턴 지사장으로 보직이동 되었으며, 1996년에는 [[강성구]] 사장[* 공교롭게도 뉴스데스크 후임앵커가 [[강성구]] 기자였다.]의 후임으로 취임하여 1999년까지 MBC 사장을 맡았다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영입되었다.&lt;br /&gt;
&lt;br /&gt;
그러다가 1999년 말 당시 여당이 추진하던 신당에 영입되어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을 지역구 출마가 유력했지만 본인이 출마를 고사했고[* 사실 이득렬 본인이 [[땡전뉴스]]를 비롯하여 5공 시절 친정부 논조를 방송에 내보낸 대표적인 인물이었던데다 공기업 사장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치권에 영입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기 때문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 해 5월 한국관광공사 사장에서 물러나 개인 방송 프로덕션을 운영했다. 10월부터는 프리랜서 자격으로 '''MBC 초대석 이득렬입니다.'''를 진행하였다.&lt;br /&gt;
&lt;br /&gt;
평소 간경변을 지병으로 앓고있었는데,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가 휴게소에서 사먹은 밤때문에 식도정맥류가 파열되었고, 도로 정체때문에 구급차가 늦었으며, 이로 인해 응급처치가 늦어져, 결국 2001년 2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lt;br /&gt;
&lt;br /&gt;
== 어록 ==&lt;br /&gt;
&amp;gt;훌륭한 앵커는 몇 세기에 한 번 태어난다. 그만큼 훌륭한 앵커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므로 앵커들은 훌륭한 앵커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lt;br /&gt;
&amp;gt;-2010년,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 [[백지연]]이 다른 역대 앵커들에게 말할 때 세상에 알려졌다.&lt;br /&gt;
&lt;br /&gt;
&amp;gt;몇 마디 아름다운 말보다는 한 마디 진실이 뉴스에서는 제일 중요하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떠납니다.&lt;br /&gt;
&amp;gt;-1987년 4월 30일, 뉴스데스크 마지막 진행, 클로징 멘트.&lt;br /&gt;
== 여담 ==&lt;br /&gt;
  * [[김주하]] 기자가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할 때에[* 김주하는 아나운서로서 MBC에 입사했다. [[김주하]] 항목 참조. 이후 기자로 보직 변경.], 10년 이상 MBC를 먹여살릴 얼굴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2000년|뉴스데스크 진행 시작]]한지 10여 년 뒤에 [[MBN]]으로 이적했다. 오오 대예언자 오오--&lt;br /&gt;
&lt;br /&gt;
  * 뉴스를 마칠때면 &amp;quot;오늘 [[뉴스데스크]] 여기서 '''전부'''[* 이전 버전에서는 '''모두'''라고 적혀 있었다. 40주년 특집 뉴스데스크에서 '''전부'''라고 클로징을 했다고 언급하였으므로 수정.]마치겠습니다.&amp;quot;라는 말로 항상 클로징을 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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