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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애란(요리연구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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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5일 (일) 13:5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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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북한]]&lt;br /&gt;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프로젝트=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lt;br /&gt;
&lt;br /&gt;
[[파일:/image/001/2010/05/09/PYH2010050900870000400_P2.jpg|width=250]]&lt;br /&gt;
[[http://www.nkfood.or.kr/sub01_index3.php|약력]]&lt;br /&gt;
&lt;br /&gt;
[[탈북자]] 출신 요리연구가. --백세인생의 [[이애란(가수)|그 분]]이 아니다--&lt;br /&gt;
&lt;br /&gt;
1964년 [[평양직할시]]에서 태어났다. 조모가 [[6.25]] 전쟁 당시 [[월남]]한 사실이 밝혀져 출신 성분에 불이익을 받았고 한지로 추방당하였다. [[수학]]에 두각을 드러내었고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출신 성분으로 인해 교사의 추천서를 받지 못하였다.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 발효공학과를 졸업, [[양강도]] [[혜산시]]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주류 생산 공장의 품질감독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소설가 활동을 하던 친척이 쓴 소설이 문제가 되어 정치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였고, 결국 4개월 된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1997년]] 8월 [[탈북]]을 선택한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563221|50인 휴먼다큐·47 탈북여성 국내 박사 1호 이애란 경인여대 겸임교수]] - 경인일보, 2011년 1월 26일.]&lt;br /&gt;
&lt;br /&gt;
이애란은 [[중국]]과 [[베트남]]을 경유하여 남한 입국에 성공하였으나, 한창 IMF 한파를 겪던 남한에서 어떻게 정착해야 할지 고민했다.[* [[http://nkd.or.kr/news/story/view/422|북에서 온 보험 아줌마 - 이애란]] - 탈북자동지회, 2004년 11월 18일.] 1999년 4월 한 생명보험사의 보험 설계사로 취직하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이애란은 초기 보험 설계사로서 영업을 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1년 만에 '프로급'으로 승진하는 등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였다. 이애란의 남한 사회 적응기는 연합뉴스 기사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0&amp;amp;oid=001&amp;amp;aid=0000003409|보험설계사로 성공한 탈북자 이애란씨]] - 연합뉴스, 2000년 5월 18일.]&lt;br /&gt;
&lt;br /&gt;
보험 설계사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본격적으로 북한 음식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 2000년 연말 사당동에 토끼 고기 전문점 '씀바귀네'를 개업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10&amp;amp;oid=038&amp;amp;aid=0000049506|탈북자의 성공적인 사회적응 사례]] - 한국일보, 2001년 2월 2일.] 2009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탈북자 1호 박사가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01&amp;amp;aid=0002445693|탈북여성 1호박사 이애란씨]] - 연합뉴스, 2009년 1월 8일.] [[경인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신흥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2008년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 한국에 북한 음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울]] [[종로구]]에서 '능라밥상'이라는 북한 음식 전문점을 경영하는 등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http://kto.visitkorea.or.kr/kor/notice/cheongsachorong/news/choBoard/view.kto?id=418002|한국관광공사 추천 맛집 ①능라밥상]] - 한국관광공사 웹사이트, 2013년 3월 5일.] &lt;br /&gt;
&lt;br /&gt;
정치적으로는 2012년 2월 23일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에 반대하여 거리 시위를 직접 시작했으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51188&amp;amp;code=23111111&amp;amp;cp=nv|“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1인 시위 1000일]] - 국민일보, 2014년 11월 19일.] 단식 농성을 벌이는 등 북한 인권 운동에 나섰다.[* [[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woman_era/womenera-03152012143658.html|북송반대 단식농성 탈북여성 이애란 교수]] -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3월 15일.]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실향안보당]]의 비례대표로 출마하였으나 당선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6100&amp;amp;num=54530|탈북자 출신 최초 국회의원 도전하는 이애란씨]] - 데일리NK, 2008년 3월 28일.]&lt;br /&gt;
&lt;br /&gt;
이애란은 남한에서 탈북 여성, 초/중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등 탈북자들의 정착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기려, 2010년 3월 11일에는 미국 국무부에서 주는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을 수상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4&amp;amp;oid=001&amp;amp;aid=0003158830|탈북 역경딛고 美국무부 상 받는 이애란박사]] - 연합뉴스, 2010년 3월 9일.]&lt;br /&gt;
&lt;br /&gt;
이애란은 2014년 3월 31일 디지털 조선일보에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의 북한 통신 8편] 북한 보위부의 ‘민생단’ 전술과 유우성 사건”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실었다.이 원장은 이 칼럼에서 “(유우성이)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상식 밖의 일”, “유우성은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점을 이용해 2만여 명 탈북자들의 신상명세서도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미 간첩으로 판명돼 법적 판결이 이뤄진 사건까지도 조작된 것이라고 뒤집으며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등 유씨를 간첩으로 단정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제14민사부는 판결문에서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허위 사실에 관한 정정보도 청구권이 인정된다”며 “디지틀조선은 명예훼손으로 인해 유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lt;br /&gt;
이에 디지털조선일보는 9일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사실 확인 결과, 유우성이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거나 북한 보위부에 탈북자의 신원정보를 전달하였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당시 유우성이 간첩으로 판명된 판결이 선고된 바 없으며 최종적으로 간첩 혐의에 대하여는 무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바로 잡는다”며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lt;br /&gt;
그러나 칼럼을 쓴 이 원장은 10일 유씨를 간첩으로 단정한 것에 대해 “언론에 나온 거를 그냥 쓴 것”이라며 “그때 당시에 탈북자들 사이에서 여러 사람이 넘어갔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lt;br /&gt;
이 원장은 ‘유씨가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고 주장한 근거를 묻자 “그 사람(유우성)이 (북한에) 왔다갔다고 동생이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했다. ‘국정원에 의한 강요된 자백이었다’고 설명하자 “강요받은 자백이었느냐”며 “내가 국정원이나 검찰에 가서 (사실인지) 물어볼 수 있겠느냐. 언론이 보도하니 다 밝혀진 건가하고 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lt;br /&gt;
&lt;br /&gt;
[[분류:탈북자]]&lt;br /&gt;
[[분류:요리사]][[분류:북한의 인물]]&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애란, version=83)]&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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