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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은상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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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6T14:55:4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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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7:2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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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7:28: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1 이은상(李殷相, 1903~1982)}}}&lt;br /&gt;
&lt;br /&gt;
&amp;gt;「가고파」&lt;br /&gt;
&amp;gt;&lt;br /&gt;
&amp;gt;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lt;br /&gt;
&amp;gt;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lt;br /&gt;
&amp;gt;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lt;br /&gt;
&amp;gt;&lt;br /&gt;
&amp;gt;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lt;br /&gt;
&amp;gt;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lt;br /&gt;
&amp;gt;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lt;br /&gt;
&amp;gt;&lt;br /&gt;
&amp;gt;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lt;br /&gt;
&amp;gt;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lt;br /&gt;
&amp;gt;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lt;br /&gt;
&amp;gt;&lt;br /&gt;
&amp;gt;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lt;br /&gt;
&amp;gt; 내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lt;br /&gt;
&amp;gt;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lt;br /&gt;
&amp;gt;&lt;br /&gt;
&amp;gt;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lt;br /&gt;
&amp;gt;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lt;br /&gt;
&amp;gt;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lt;br /&gt;
&amp;gt;&lt;br /&gt;
&amp;gt;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lt;br /&gt;
&amp;gt;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lt;br /&gt;
&amp;gt;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lt;br /&gt;
&amp;gt;&lt;br /&gt;
&amp;gt;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lt;br /&gt;
&amp;gt;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lt;br /&gt;
&amp;gt;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lt;br /&gt;
&amp;gt;&lt;br /&gt;
&amp;gt;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들어 죄 없는 몸이&lt;br /&gt;
&amp;gt;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lt;br /&gt;
&amp;gt;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lt;br /&gt;
&amp;gt;&lt;br /&gt;
&amp;gt; 옛 동무 노젖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lt;br /&gt;
&amp;gt;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lt;br /&gt;
&amp;gt; 맛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lt;br /&gt;
&amp;gt;&lt;br /&gt;
&amp;gt;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lt;br /&gt;
&amp;gt;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lt;br /&gt;
&amp;gt;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니아 깨끗이도 깨끗이.&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한국의 시인이자 사학자, 교육자이다. 아호는 노산(蘆山)이다. 초기에는 동양적 인생무상과 관조의 정신을 담은 자유시를 창작하였으나 곧 시조시인으로 전향하였고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유명한 가곡인 '가고파'의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한편 친독재 전력으로 논란의 대상에 놓여 있기도 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 일생 ==&lt;br /&gt;
 1903년 [[경상남도]] [[마산]](현 [[창원시]]) 상남동에서 태어났다. 1918년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고, 1923년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고 1925년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22년 조선문단을 통해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 등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자유시를 창작하다가 1926년 이후 [[카프]]의 계급주의 문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시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조국의 전통 문학과 국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조시인으로 전향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1932년 노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https://www.youtube.com/watch?v=J_3sGjNZor4 |가고파]] ', '[[https://www.youtube.com/watch?v=DIMp4weE2ZU | 성불사의 밤]]' 등은 지금도 가곡으로 애창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가람 이병기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민요적 리듬을 살린 작품들을 많이 썼다. &lt;br /&gt;
&lt;br /&gt;
&lt;br /&gt;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구금되었고 1945년 사상범 예비 검속으로 구속된 후 철창 속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1949년 동국대 교수에 부임하였고 이후 충무공 이순신장군기념사업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전두환 정부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언론, 사학, 문학 쪽에서 다양한 저술을 남겼으며 난중일기를 초역하는 등 [[충무공 이순신]] 연구자로서도 명성이 높다.&lt;br /&gt;
&lt;br /&gt;
&lt;br /&gt;
 1982년 9월 18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사후 문화훈장 1등급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고 국가 지원 사회장으로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되었다.&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법정동 [[마산합포구]] 노산동은 그의 아호인 노산에서 따온 것이다. 노산동 노비산 정상에 이은상을 기리는 마산문학관이 있다. &lt;br /&gt;
이은상의 시 '가고파'는 그의 고향인 마산의 상징으로서 마산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고파 국화축제, 가고파 초등학교와 같이 지명, 축제명, 교명, 시비 등을 통해 마산 곳곳에서 기념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47&amp;amp;aid=0002117107 | 링크]] &lt;br /&gt;
&lt;br /&gt;
== 논란 ==&lt;br /&gt;
 이은상은 친독재 전력이 뚜렷하다. 1960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 당선을 돕는 문인 유세단에서 활동하였고, 이어 [[박정희]] 유신정권·[[전두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등 반민주 정권에 협력적이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lt;br /&gt;
&lt;br /&gt;
=== 친독재 행적 ===&lt;br /&gt;
 이은상은 1960년 이승만 지원 유세에서 당시 시국을 임진왜란에 비유하면서 &amp;quot;이순신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리고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amp;quot;라 밝힌 바가 있다. 또한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3.15 부정선거 | 3·15의거]]를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로 비하하며 마산시민들에게 자중할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http://blog.naver.com/blisskim47/220658132856 | 링크]] &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이은상은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작성했고 1972년 10월 청우회 중앙본부 회장으로 있으면서 &amp;quot;무질서와 비능률을 배제하여 국기를 공고히 하려는 박 대통령의 영단에 적극 찬동한다&amp;quot;는 뜻의 '유신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1975년 5월 13일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한 후 이를 옹호하는 관변단체 총력안보 국민협의회 의장을 맡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또한 전두환이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1980년 월간지 '정경문화'에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 여론'이라는 글을 기고하였고 다음 해 4월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위원이 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이은상의 문학적 성취와 친독재 반민주 성향에 관해 그를 기념하고 추도하는 세력과 규탄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현재까지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lt;br /&gt;
&lt;br /&gt;
=== 노산문학관 명칭 논란 ===&lt;br /&gt;
 상남동 노비산 정상에 건립할 예정이었던 문학관의 명칭은 당초 이은상의 아호를 딴 '노산문학관'이 될 예정이었지만 시민사회진영의 반발로 오랜 진통을 겪은 후에 시의회 의결로 '마산문학관'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3&amp;amp;oid=001&amp;amp;aid=0001008076 | 링크]]&lt;br /&gt;
&lt;br /&gt;
=== 마산역 가고파 시비 논란 ===&lt;br /&gt;
 또한 마산역 정문 광장에 세워졌던 '가고파' 시비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47&amp;amp;aid=0002020302 | 페인트 세례]]를 당하고, 시비 위에 그를 조소하는 내용을 담은 '검은 천'으로 덮는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7251 | 퍼포먼스]]가 거행되고, 이은상의 독재 행적을 규탄하는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92032 | 대응비]]가 세워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 안상수 창원시장 친독재 옹호 관련 논란 ===&lt;br /&gt;
 이은상과 가고파를 창원시의 문화적 자산으로 삼아 관광자원화시키려는 안상수 창원시장의 계획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에서많은 비판이 있었다.  특히 창원시의회 시의원 질의에 대한  &amp;quot;이은상 선생이 글을 쓸 때 독재를 찬양해서 대역무도한 짓을 한 것처럼 아는데 삼엄한 유신 시기에 문인에게 글 좀 쓰라고 군부가 총칼을 들이댈 때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amp;quot;,  &amp;quot;그 결과가 찬양이라고 얼마나 죄가 될지 모르나 모든 인간이 완벽할 수 없다&amp;quot; ,  &amp;quot;친일인명사전은 일부 진보세력이 만든 것으로 국가가 만든 게 아니니 인정할 수 없다&amp;quot;,  &amp;quot;이은상이 진보에서 말하는 친독재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무수한 작품과 고향 사랑 곡까지 묻을 필요가 없다&amp;quot; 등의 [[http://www.idomin.com/?mod=news&amp;amp;act=articleView&amp;amp;idxno=496486  | 발언]]은 친독재, 역사의식 결여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었다. &lt;br /&gt;
&lt;br /&gt;
 이에 대해 안상수 시장은 친일, 친독재 미화 의도는 없으며 '다만 작품은 예술 그 자체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식의 논지로 항변하였다. [[http://www.idomin.com/?mod=news&amp;amp;act=articleView&amp;amp;idxno=496783 | 링크]]&lt;br /&gt;
&lt;br /&gt;
=== 은상이샘 철거 문제 논란 ===&lt;br /&gt;
 마산합포구 노산동 북마산파출소 앞 3·15의거기념비와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은상이샘 문제에 대해서도 창원시와 시민 사회간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은상이샘은 북마산파출소 근처 이은상 생가가 도로 확장 공사로 편입되어 철거되자 문인들의 요구로 현 위치로 옮겨서 복원한 것인데, 3·15의거 기념비와 3·15를 모욕한 인물의 기념물이 한곳에 나란히 들어서게 된 것이다.&lt;br /&gt;
&lt;br /&gt;
 안상수 시장은 이에 대해 &amp;quot;복원당시 지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인 만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amp;quot;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01&amp;amp;aid=0008418344 | 존치 의사]]를 밝혔지만,  시민단체는 반발하며 기념비와 은상이샘 사이에 벽돌 담장을 쌓아 이를 분리시키는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82209 | 퍼포먼스]]를 하며 저항 의지를 드러내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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