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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재난고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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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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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6:3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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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6:38: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頤齋亂藁. [[조선]] [[영조]] 14년, 1738년부터 [[정조(조선)|정조]] 15년, 1791년까지 53년간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쓴 일기. 총 57책. 후손인 황병관이 보관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 내용 ==&lt;br /&gt;
황윤석이 10세이던 1738년부터 사망하기 2일 전인 1791년 4월 15일까지 53년여간 듣고 보고 배우고 생각한 내용들을 담아낸 일기다. 총 57책, 원고지 2만 9천여장, 글자수 5백 27만 4천여자의 분량으로 현존하는 일기류 서적 가운데 최대 분량이다.&lt;br /&gt;
&lt;br /&gt;
개인적인 생활 외에도 문학(文學), 경학(經學), 예학(禮學), 사학(史學), 산학(算學) 등등 살아생전 겪었던 광범위한 학문적 내용들을 담아냈으며, 책마다 쓰기 시작한 연대와 끝낸 연대를 기록하고 난고(亂藁)라는 표제를 달았다.&lt;br /&gt;
&lt;br /&gt;
황윤석 자신은 당대 대표적인 음악가로 1771년 봉조관(奉俎官)으로 수차례 [[종묘]]의 제향(宗廟祭享)에 참례하여 [[종묘제례악]]을 경험했고, 1784년 장악원(掌樂院)의 주부(主簿)가 되어 궁중음악을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아악]](雅樂) 관련의 악률, 악기, 악서를 섭렵했다. 이에 따라 이재난고에는 율려신서해(律呂新書解), 오음심변(五音審辨), 오음논고(五音論考), 칠현논고(七絃論考), 논오음소속(論五音所屬), 논고금안현지법부동(論古今按絃之法不同), 논십이율장단차서(論十二律長短次序) 등 당대 음악에 대한 모든 내용과 황윤석 자신의 악률론을 실어놓았다. 특히 논십이율장단차서에서는 [[남송]]시대의 대표적인 악률가 [[채원정]]의 율산(律算)인 9분척을 이용한 수치를 제시하고, 더하여 6변율(變律)의 수치까지 제시했으며, 변율의 사용 및 불용, 그리고 반성(半聲)의 사용 및 불용에 따른 수치까지 열거하였다. 조선후기 악률론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lt;br /&gt;
&lt;br /&gt;
== 탈초화 ==&lt;br /&gt;
2004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이재난고의 [[초서]]를 정서화하는 과정인 탈초화를 완료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001&amp;amp;oid=032&amp;amp;aid=0000055615|당시 기사]]&lt;br /&gt;
&lt;br /&gt;
기사에서는 이재난고의 탈초가 완료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1787년 여름 장마에 대한 내용, 59세때 의례 38책 전질을 일곱 냥에 구입한 후 왼쪽눈이 보이지 않고 설사와 치통, 담통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2년여동안 읽은 내용, 1786년 12월 [[호환]](虎患)에 대한 내용 등을 소개하고 있다.&lt;br /&gt;
&lt;br /&gt;
탈초 이후 2008년에 장서각에서 후속 연구 결과물로 책을 하나 펴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3&amp;amp;oid=001&amp;amp;aid=0001891495|네이버 기사]] 이재난고에 수록된 국어학, 역사학, 성리학, 지리학, 천문학, 의학 등의 내용들을 언급하며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학문 성향을 총괄한 학자라 평가했다.&lt;br /&gt;
&lt;br /&gt;
== 그 외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가 임신했다는 기록만 있고 출산 기록이 없어 의문으로 남았는데. '이재난고'에 &amp;quot;화빈 윤씨가 산실청이 설치된 지 30개월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다&amp;quot;는 기록이 나온다.&lt;br /&gt;
&lt;br /&gt;
또,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본명, 가족관계 등이 기록되어 있다.&lt;br /&gt;
== 바깥고리 ==&lt;br /&gt;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amp;amp;VdkVgwKey=21,01110000,35|문화재청 홈페이지 - 이재난고]]&lt;br /&gt;
&lt;br /&gt;
[[분류:조선의 도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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