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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창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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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8T23:52:2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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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5:3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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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5:38: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농구 관련 인물(한국)]]&lt;br /&gt;
&lt;br /&gt;
|| 이름 || 이창수 ||&lt;br /&gt;
|| 생년월일 || 1969년 7월 20일 ||&lt;br /&gt;
|| 학력 || 군산고-[[경희대학교]] ||&lt;br /&gt;
|| 포지션 || [[센터]] ||&lt;br /&gt;
|| 신체조건 || 196cm ||&lt;br /&gt;
|| 프로입단 || 1992년 삼성전자 ||&lt;br /&gt;
|| 소속팀 || [[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전자/서울 삼성 썬더스]](1992~2002) [br] [[울산 모비스 피버스]](2002~2009) [br] [[창원 LG 세이커스]](2009~2011) ||&lt;br /&gt;
|| 등번호 || 22 ||&lt;br /&gt;
|| 국가대표 경력 || 2003 하얼빈 아시아선수권 - 2위 ||&lt;br /&gt;
|| 수상내역 || KBL 최우수 수비상 1회 (2006)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한국의 농구선수. 포지션은 센터.&lt;br /&gt;
&amp;quot;KBL 최고령 현역선수&amp;quot;, &amp;quot;자기관리의 달인&amp;quot;, &amp;quot;[[함지훈]]의 훅슛 스승&amp;quot;, &amp;quot;[[서장훈]]을 보내버린 깡패농구 콤비(with [[박상관]])&amp;quot; 등 긴 커리어 만큼이나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KBL 최고의 백업센터.[* 실제로 외국인 선수 수준이 낮았던 프로 초창기를 포함해 풀타임 주전으로 뛰어본 시즌이 단한차례도 없다. 3개 팀에서 백업으로만 14시즌을 보냈다는것도 그만큼 이창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선수생활 ==&lt;br /&gt;
=== 고교-대학시절 ===&lt;br /&gt;
김유택, 한기범을 제외하곤 180cm 후반만 되어도 센터로 뛰던 80년대 중반, 중 3임에도 이미 186cm이던 이창수는 군산고 농구부 코치의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선수제의를 받게 되고 군산고 입학직후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군산고 시절 팀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1987년 협회장기 4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이창수는196cm까지 쑥쑥 크면서 역시 고1때 농구를 시작했던 랭킹 1위 마산고 [[정재근]]을 비롯, 부산동아고 표필상 등과 함께 고교 센터 상위권을 다투었고 [[최부영]] 감독이 이끄는 경희대에 진학하게 된다.&lt;br /&gt;
탄력과 스피드가 별로라 '느림보센터'라 불리기도 했지만, 경희대 진학후 최부영 감독의 혹독한 조련끝에 기량이 점차 올라가면서[* 전매특허인 훅슛도 이때부터 던지기 시작했다.] 3학년때이던 [[1990-91 농구대잔치]]에서 한경기 25 리바운드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김유택을 제치고 농구대잔치 2차대회 리바운드왕을 차지하기도 했고, 4학년에 이르러서는 동기 김영주(G,180cm)와 함께 최명도(1년,G,180cm)-김현국(3년,F,188cm)-장창곤(1년,C,194cm) 등을 이끌며 만년 중위권이던 경희대를 연세대, 중앙대와 함께 대학 3강의 반열에까지 올려놓았다.[* 이때 경희대의 성적은 춘계/추계연맹전/MBC배 준우승, 전국체전 우승, 농구대잔치 3차대회(8강) 진출 등 모든게 창단이래 역대급 성적이었다.] 졸업반이 되던 해 신생 실업팀 SBS가 창단되면서 연세대, 중앙대의 졸업반 선수들을 싹쓸이 함에따라[* 연세대 정재근, 이상범, 중앙대 남경원, 표필상 등] 나머지 실업팀들에게 있어 이창수는 독보적인 랭킹 1위의 선수였고, 치열한 경합끝에 센터자원의 노쇠에 시달리던 삼성전자팀에 합류하게 된다.&lt;br /&gt;
=== 실업무대에서 프로 시기 ===&lt;br /&gt;
실업무대 데뷔시즌인 [[1992-93 농구대잔치]]에서 기존의 노쇠한 센터진[* 국가대표팀 출신 김윤호(30세,192cm)와 서대성(31세,195cm)이 있었으나 둘다 부상에 시달렸다.]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삼성전자를 2년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는데 기여한다.[* 허동택의 기아자동차에 져서 준우승] 농구대잔치 종료 후 이창수는 [[정재근]],[[오성식(농구)|오성식]], 남경원, 표필상 등과 나란히 상무에 입대하여 기존의 [[김상식(농구)|김상식]] 등과 함께 상무팀을 사상 최강 전력으로 만들었고, 이창수 본인은 주전센터로 뛰며 상무를 [[1993-94 농구대잔치]]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린다.[*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의 연세대에 져서 또 준우승] 1994년 하반기에 제대한 이창수는 삼성전자에 합류하여 200cm의 박상관과 함께 공포의 더블포스트를 구축,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전자를 다시한번 결승에 올리면서 3년동안 소속팀을 바꿔가면서 3년연속 결승전을 경험한 유래없는 선수가 된다.[* 이번에도 허재가 맹활약한 기아자동차에 지면서 3년연속 준우승;;]&lt;br /&gt;
KBL 출범직전인 1996년 선수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간염 진단을 받게되고 이로인해 프로 원년시즌 및 97-98시즌까지 치료에만 몰두하였다.프로 초창기 외인 수준이 낮았고 대부분의 팀이 1가드 1센터의 외인을 선발했던 상황이라 이창수 정도의 빅맨이면 충분히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KBL 원년시즌, 이창수가 빠진 수원삼성 썬더스는 8팀중 꼴찌를 차지하였다.] 완치판정을 받고 복귀했을때(97-98 시즌 막판) 나이가 이미 29세로, 주전도 아닌 백업센터로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지만 이창수의 KBL 커리어는 이때를 시작으로 무려 14시즌을 달리게 된다. 02-03 시즌을 앞두고 울산모비스로 이적한 후[* 이때가 33세] 다른팀들보다 어린선수들이 모여있던 모비스의 '삼촌' 역할을 하면서 라커룸 분위기를 이끌었고, 06-07 시즌 울산모비스가 파이널에서 우승하면서 이창수는 기존에 허재가 가지고 있던 &amp;quot;역대 최고령 챔피언&amp;quot;의 타이틀까지 가져오게 된다. 09-10 시즌을 앞두고 FA가 되면서[* 이때가 만 40세;;;] 울산모비스와의 협상이 결렬되었으나 선수생활을 지속하고자 창원LG로 이적하였고 두시즌을 더 뛰고 만 42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lt;br /&gt;
&lt;br /&gt;
=== 국가대표 ===&lt;br /&gt;
울산모비스에 합류했던 첫 시즌(02-03) 34세의 나이로 03 하얼빈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에 첫선발되어 대한민국을 중국에 이어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대표팀은 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이 모두 빠진 상태였다.] 당시 팀에는 골밑자원이 이창수 외에 [[김주성(농구)|김주성]], [[하승진]], [[이규섭]] 밖에 없었는데 (하승진은 이때 겨우 고3이라 경험축적 차원에서 데려간 수준이었다.) 이창수는 결승전에서 헌신적인 스크린으로 외곽의 [[김병철]], [[이규섭]]이 엄청난 3점포를 뿜어내며 [[야오밍]]이 뛰던 최강 중국과 접전(96-106)을 펼치는데 일조했다. &lt;br /&gt;
&lt;br /&gt;
== 은퇴 후 ==&lt;br /&gt;
은퇴후 서울삼성팀의 스카우트로 활약하다 2016년부터 모교 군산고등학교의 코치를 맡고 있다. 2016년 현재 군산고는 신민석(2학년,F,200cm), 이정현(2학년,G,188cm), 서문세찬(1학년,G,183cm) 청소년대표 트리오[* 2015년 U-16 아시아대회 우승 및 2016년 U-17 세계대회 8강의 주역들이다.]의 활약속에 9월 추계연맹전 우승을 비롯 4월 협회장기 8강, 5월 연맹회장기 4강, 8월 주말리그 왕중왕전 4강, 10월 전국체전 동메달 등 군산고 농구부 창설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한학년씩 올라가는 2017년 군산고의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lt;br /&gt;
== 여담 ==&lt;br /&gt;
이창수하면 가장 기억남는 장면은 역시 [[1994-95 농구대잔치]] 플레이오프 8강전 삼성전자:연세대의 대결일 것이다. 정규리그 13전 전승으로 올라온 연세대가 8위 삼성전자[* 예선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산업은행에 석연치않은 패배를 당하면서 마지막날 7위에서 8위로 떨어졌다. 예선전에서 대패를 당했던 2위 고려대를 피하기 위함이란 설이 파다했다.]를 무난히 꺾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여기서 이창수-[[박상관]] 콤비의 투혼(정말 글자그대로 싸울 鬪였던)으로 연세대를 2승 1패로 꺾는 업셋을 달성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좀... 당시 농구팬이라면 모두 기억할만한 [[서장훈]]에 대한 두 콤비의 집단 린치수준의 수비는 아직까지도 비판받고 있다. 서장훈에게 피니시 엘보어택을 시전한 건 [[박상관|상관타]]였지만, 그전까지 골밑슛 막으면서 얼굴 내리찍고 배로 주먹이 나가고 하면서 서장훈, 구본근을 더 많이 괴롭힌건 이창수였다. &lt;br /&gt;
그러나 경희대 시절 이창수는 성격이 너무 유순해 전쟁터와 같은 골밑을 지키기위한 투쟁심이 부족했다고 한다. 이에 [[최부영]] 감독은 이창수의 투쟁심을 키워주고자 체대생 몇명을 섭외, 훈련마치고 가는 이창수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고 싸우도록 했는데, 이창수가 그걸 그냥 맞고만 있어서 소용이 없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훈련의 효과가 있었는지, 삼성전자 입단후부터 상당히 터프해졌다. 서장훈을 그렇게 두드려팰 정도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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