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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토이 시게사토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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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8T02:11:4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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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4일 (토) 14:3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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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4T14:33: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상위 항목 : [[작가/목록]]&lt;br /&gt;
&lt;br /&gt;
||&amp;lt;-2&amp;gt;&amp;lt;tablealign=right&amp;gt;&amp;lt;:&amp;gt; http://business.nikkeibp.co.jp/article/life/20071023/138300/ph1.jpg ||&lt;br /&gt;
|| 이름 || 이토이 시게사토&lt;br /&gt;
糸井重里&lt;br /&gt;
Shigesato Itoi ||&lt;br /&gt;
|| 출생 || [[1948년]] [[11월 10일]] &lt;br /&gt;
[[군마(일본)|군마]]현 [[마에바시]]시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일본의 카피라이터이자 에세이스트, 작사가, 게임 제작자. 일간 이토이 신문을 운영하고 있다.&lt;br /&gt;
간단하게 '''일본의 국민 카피라이터''' 라고 생각하면 된다.&lt;br /&gt;
&lt;br /&gt;
== 카피라이터 및 에세이스트 ==&lt;br /&gt;
[[호세이대학]] 문학부 일본문학과에 입학. 그림책 &amp;quot;안녕 펭귄&amp;quot;으로 처음 데뷔하며 1975년 도쿄 라이터스 클럽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카피라이터의 길에 들어선다.&lt;br /&gt;
1978년에 야자와 에이키치[* 일본의 유명한 한국계 일본인 가수. 당시 무도관에서 공연한 최초의 일본인(?!)이라고 한다.]의 자서전의 편집을 담당. 베스트셀러의 오른다.&lt;br /&gt;
&lt;br /&gt;
1980년 세이부 백화점에서 카피라이터를 했는데 1983년 [[세이부]] 백화점에서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amp;quot;맛있는 인생&amp;quot;[* 이 한줄짜리 광고 카피라이트의 비용은 1천만엔이었다고 한다.]을 썼다.&lt;br /&gt;
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oishi02.jpg?width=211&amp;amp;height=300 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o0585082810788129671.png?width=211&amp;amp;height=300 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ua2.gif?width=211&amp;amp;height=300 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oishi04.jpg?width=300&amp;amp;height=300&lt;br /&gt;
^^[[우디 앨런]]이 모델을 하고 있는 &amp;quot;맛있는 인생&amp;quot; 팜플렛 광고^^&lt;br /&gt;
&lt;br /&gt;
동그라미 부분의 본문 카피는 다음과 같다. &lt;br /&gt;
&amp;gt;“달기만 하면 싫증납니다. &lt;br /&gt;
&amp;gt;맵고, 쓰고, 시고, 떫은맛이 다양한 생활, &lt;br /&gt;
&amp;gt;묻고 싶은 것은 맛입니다. &lt;br /&gt;
&amp;gt;몸도 마음도 스스로 녹을 듯한 맛, &lt;br /&gt;
&amp;gt;씹으면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깊은 맛, &lt;br /&gt;
&amp;gt;독특한 특징이 있는 신기한 맛, &lt;br /&gt;
&amp;gt;맛이 없는 것은 질색입니다. &lt;br /&gt;
&amp;gt;자기 나름의 맛을 찾아가는 여행은 &lt;br /&gt;
&amp;gt;그 자체가 자신의 생활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lt;br /&gt;
&amp;gt;맛있는 사람과 만나고, 맛있는 책을 읽고, &lt;br /&gt;
&amp;gt;맛있는 패션을 찾아 맛있는 시간을 보내는 그런 생활을 &lt;br /&gt;
&amp;gt;단지 이상에 그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lt;br /&gt;
&amp;gt;당신과 함께 세이부백화점도 &lt;br /&gt;
&amp;gt;더욱 먹보가 될 작정을 한 1982년입니다.”&lt;br /&gt;
일본의 1980년대 초반은 버블 경제가 태동할 시기라 소비자들의 지갑이 두둑했고, 그에 따라 더 윤택한 라이프스타일를 소비하길 원했다. 이토이 시게사토는 그런 시대적 정서를 캐치해 코미디언에서 작가주의 감독이 된 [[우디 앨런]]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광고를 만들어냈고 그 덕에 지적 인문환경과(혹은 지적 허영) 고급 문화생활을 소비하는 붐을 일궈내는데에 이르렀고[* 우리나라로 치면 인문학 열풍, 웰빙 열풍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세이부]] 백화점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며 세이부 그룹은 고급 라이프스타일 소비경향에 집중. 그에 부합하는 광고에 더 신경을 기울이게 된다. 이토이 시게사토는 1980년부터 90년까지[* 딱 일본 버블 경제위기때 까지다] 세이부 백화점의 카피라이팅을 맡았다.&lt;br /&gt;
&lt;br /&gt;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의 광고 카피는 대부분 그가 맡아 작업했다. 우리나라에 비교적 유명했던 카피라이트는 [[원령공주]]의 &amp;quot;살아라&amp;quot; 가 있다.&lt;br /&gt;
&lt;br /&gt;
1998년 그는 매킨토시를 이용하여 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을 만들었다. &lt;br /&gt;
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에서는 배우나 감독, 예술가와 유명인사의 인터뷰를 하고 있으며, 대담과 칼럼도 작성하며 호보니치 스토어를 운영하여 다양한 머천다이즈를 판다. 이토이와의 대담중 뇌 과학자 이케가야 유지와의 대담은 책으로 발간될 정도였는데, 그 책은 우리나라에도 해마라는 제목으로 정식 발간 되어있다.&lt;br /&gt;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해서도 소식을 올리는데, 브이용의 기분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묶었고 한국에서도 정식 출간 되어있다. 요즈음은 그것을 트위터에서도 하고 있는 듯 하다. 트위터에는 일상적인 글을 쓰는데에 이용하고 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으로는 좀더 칼럼이나 대담, 인터뷰등의 글을 작성하고 있다. &lt;br /&gt;
글의 스타일에 관해서는 요시모토 다카아키[* 일본의 철학자 및 시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이다. 그의 유명한 일화로는 친구도 안 사귀고 틀어박혀 책만 읽는 딸을 걱정하는 타인들에게 &amp;quot;괜찮다.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amp;quot;라고 한 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인 성향을 띄며,[* 또한 이토이 시게사토는 전공투 세대이다.]  두 사람은 80년대 일본 소비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공동점이 있다. [* 물론 경제,커리어적으로 80년대 소비사회의 최대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인물은 이토이 시게사토 본인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은 정액제 유료 컨텐츠, 광고 지면을 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연간 매출이 30억엔이라고 한다. 수익의 대부분은 호보니치스토어의 머천다이즈의 판매에서 나온다고 하며,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amp;quot;호보니치 테죠&amp;quot;는 2005년부터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세븐일레븐]]과 [[닛산]] 식품사업부와 합작한 컵라면도 팔았다고 한다.대략 하루 조회수는 140~150만뷰에 이른다. 호보니치 테죠는 [[MOTHER 2]]의 다이어리 디자인도 매년 꾸준히 나온다.&lt;br /&gt;
&lt;br /&gt;
2006년에는 [[닌텐도]]와 협력하여 [[MOTHER 3]]의 정보를 하루의 한차례씩만 공개하는 일종의 신비주의 마케팅을 펼쳤다.&lt;br /&gt;
신비주의 마케팅이라 표현한 이유는 [[MOTHER 3]]를 개발하고 있다고 인터뷰만 하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공백의 기간이 꽤나 길었고, 맨 처음 공식 홈페이지가 나왔을때 게임의 대한 정보라고는 MOTHER 3의 로고와 발매일 뿐이었는데다, 가장 먼저 공개한 정보도 스크린샷이나 영상이 아닌 [[MOTHER 3]]의 테마송 &amp;quot;사랑의 테마&amp;quot;였다. 그 다음날 공개된 정보는 주인공의 이름과 스프라이트였고, 이후 게임의 스크린샷은 나중에 공개되었다.&lt;br /&gt;
&lt;br /&gt;
일간 이토이 신문 설립 당시 닌텐도의 [[http://www.1101.com/iwata/2007-09-14.html|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도와주고 관여했다고 한다]] 이토이의 말을 빌려오면 당시 [[이와타 사토루]]의 인상은 &amp;quot;닌텐도 사장이 아닌 컴퓨터 가르쳐주는 아저씨&amp;quot; 였다고(...).[* 이 당시에 이와타 사토루는 [[HAL 연구소]] 소속이었고 아무리 못해도 2000년에 닌텐도 기획실장이었으나... 당시에는 1998년이었다. 인터뷰 원문에 任天堂の社長 , the top of Nintendo 라고 되있는걸 보아 1998년에도 당시 측근들은 이와타가 사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 듯 하다.]&lt;br /&gt;
&lt;br /&gt;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에세이도 썼다. 제목은 꿈에서 만나요.[* 국내 정식발간된 제목은 소울메이트]&lt;br /&gt;
== 게임 제작자 ==&lt;br /&gt;
||&amp;lt;table align=center&amp;gt;&amp;lt;table bordercolor=#CC3D3D&amp;gt;&amp;lt;:&amp;gt;&amp;lt;-5&amp;g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2/23/Mother_series_logo.png/220px-Mother_series_logo.png  ,,{{{+5 시리즈의 포스터와 카피라이트}}},,||&lt;br /&gt;
||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d241.gif?width=260&amp;amp;height=350||||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d139.gif?width=260&amp;amp;height=350||&amp;lt;-2&amp;gt;&amp;lt;:&amp;gt;https://yomuka.files.wordpress.com/2011/02/mother3.jpg?width=260&amp;amp;height=350||&lt;br /&gt;
|| '''엔딩을 볼 때 까지 우는것이 아냐'''[br][[MOTHER|http://wikibound.info/w/images/thumb/2/23/Mother_series_logo.png/100px-Mother_series_logo.png]]|||| '''어른도 아이들도 누나도'''.[br][[MOTHER 2|http://wikibound.info/w/images/thumb/e/e5/Mother_2_logo.png/100px-Mother_2_logo.png]]|||| '''기묘하다, 재미있다, 그리고 애절하다.'''[br][[MOTHER 3|http://wikibound.info/w/images/thumb/9/93/M3metal.png/100px-M3metal.png]]||&lt;br /&gt;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는 [[MOTHER 시리즈]]의 아버지로 친숙하다.&lt;br /&gt;
그가 처음 [[MOTHER]]를 만들게 된 계기는 [[패미컴]]을 해보고 이거다! 하고 [[MOTHER]]의 기획안을 들고 닌텐도를 찾아갔다고 전해진다.&lt;br /&gt;
그 가능성이란 게임이라는 매체가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경험을 주체한다는 가능성 이었다. 이는 영화와 소설의 서사 전개성과는 차별된 방식이었다. &lt;br /&gt;
&lt;br /&gt;
이 &amp;quot;캐릭터는 플레이어의 분신&amp;quot; 이라는 게임의 서사전개 방식은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 철학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고, 이토이 시게사토가 집중한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관객이 텍스트 바깥의 존재임을 관객들 자신들도 인지하는 것처럼, 게임 역시 &amp;quot;플레이어와 캐릭터는 타자&amp;quot;라는 지극히 당연한 한계도 드러나는데, 이 두가지 특성은 [[MOTHER 시리즈]]의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메타적인 서사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lt;br /&gt;
&lt;br /&gt;
1989년 3월. 닌텐도는  APE를 설립. 당시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APE의 사장 자리에 이토이 시게사토를 임명하고, 팍스 소프트와 같이 [[MOTHER]]를 개발한다. &lt;br /&gt;
그 후, [[MOTHER]]를 공동개발했던 팍스 소프트와 함께 시리즈의 후속작 [[MOTHER2]]를 개발하려고 하였으나, 프로그래밍상의 문제 때문에 아이디어만 쌓여 별 진척없이 4년이 흘렀다고 한다. 그렇게 기획이 무산되기 직전 당시 [[HAL 연구소]]의 [[이와타 사토루]]가 프로그래밍에 대한 진단을 했고  &amp;quot;기존 프로그램을 고쳐서 개발하면 3년이 더 걸리지만, 아예 처음부터 개발하면 1년 안에 완성이 가능하다.&amp;quot; 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MOTHER2]]는 1994년 완성하게 된다.&lt;br /&gt;
그렇게 MOTHER2는 이와타 사토루의 프로그래밍 덕분에 1994년 순조롭게 발매할 수 있었고, 팍스 소프트 합작이 아닌, HAL 연구소와 공동개발 작품이 되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이토이 시게사토가 닌텐도에서 MOTHER 시리즈만 만든줄 알지만, 사실 낚시 게임도 만들었다. &lt;br /&gt;
[[https://www.nintendo.co.jp/n02/shvc/p_zbpj/|&amp;quot;이토이 시게사토의 베스 낚시 No.1&amp;quot;]] 이 그 이름이며, 평소 낚시광이라는 이토이 시게사토의 검수를 받아 만든 낚시 게임이라고 하는데, 무려 후속작이 있는 게임이다.&lt;br /&gt;
첫번째 작품의 1997년 SFC로 나왔고 이후 [[https://www.nintendo.co.jp/n01/n64/software/nus_p_nibj/|&amp;quot;이토이 시게사토의 베스 낚시 No.1 완전판&amp;quot;]]이 2000년 N64로 나왔다.&lt;br /&gt;
https://www.nintendo.co.jp/n01/n64/software/nus_p_nibj/bass_01.jpg&lt;br /&gt;
^^오징어를 잡은 이토이 시게사토를 볼 수 있다...^^&lt;br /&gt;
== 그 외 ==&lt;br /&gt;
영화 [[상실의 시대]]에서는 [[그리스 비극]]을 가르치는 교수를 연기했다. 전공투 대학생들이 그리스 비극보다 더 중요하게 투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들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강의실을 빌려달라는 요구에  &amp;quot;알겠습니다. 그리스 비극보다 더 중요한건 없지만...&amp;quot; 라는 대사를 날린다.&lt;br /&gt;
&lt;br /&gt;
지브리 전속 카피라이터의 인연으로 [[이웃집 토토로]]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정작 영화에서는 이 두번 나온것 밖에 없는데 네이버에서 이토이 시게사토를 검색하면 영화배우로 나온다.&lt;br /&gt;
&lt;br /&gt;
[[사와다 켄지]]의 TOKIO를 작사. 이후 [[류이치 사카모토]]가 멤버였던 [[YMO]]의 노래도 작곡했다.&lt;br /&gt;
&lt;br /&gt;
자신이 제작한 음반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LEaOjbDRHI|앨범 이름은 PENGUINISM]]&lt;br /&gt;
&lt;br /&gt;
http://earthboundcentral.com/wp-content/uploads/2015/06/mother-shigesato-itoi-gintama1-1024x576.jpg?height=250 http://earthboundcentral.com/wp-content/uploads/2015/06/mother-shigesato-itoi-gintama2-1024x576.jpg?height=250&lt;br /&gt;
은혼 274화에 언급되었다. [[긴토키]]가 우리 만화 카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 얼굴이 나온 것. 그리고 MOTHER의 광고 카피를 패러디한다(...).&lt;br /&gt;
&lt;br /&gt;
https://pbs.twimg.com/media/CiVY0FgVEAAc-YZ.jpg?width=50%&lt;br /&gt;
2016년 5월 13일, MOTHER 시리즈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언더테일]]의 개발자 [[토비 폭스]]와 만났다. 토비 폭스 단독적인 행보는 아니고, Fangamer[* 각종 비디오게임의 2차창작 굿즈를 파는 곳으로, 언더테일의 굿즈도 팔고 있다. 사실 Fangamer 자체도 토비가 활동했던 MOTHER 시리즈의 팬사이트인 starmen,net에서 파생되어 나온 사이트다.]에서 이토이 시게사토를 찾아온 것으로 [[http://www.1101.com/pl/seisakuchu2007/statuses/214133|호보일간 이토이 신문을 취재시켜주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인터뷰 및 읽을거리 ==&lt;br /&gt;
[[http://www.1101.com/|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일문)]]&lt;br /&gt;
[[https://twitter.com/itoi_shigesato|트위터(일문)]]&lt;br /&gt;
[[https://yomuka.wordpress.com/2011/02/06/shigesato-itoi-the-copywriter-a-comprehensive-look/|이토이 시게사토의 카피라이트 모음(영문)]]&lt;br /&gt;
[[http://www.47news.jp/korean/interview/2014/06/090824.html|인터뷰 : 전후 70년 전환기(번역)]]&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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