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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팔성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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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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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5일 (일) 15:3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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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5T15:32: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005/27/2010052700623_1.jpg&lt;br /&gt;
&lt;br /&gt;
이팔성&lt;br /&gt;
&lt;br /&gt;
1944년 2월 2일 ~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의 금융인. 전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1944년 2월 2일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1963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학과]]에 입학했고, 1967년 졸업했다.&lt;br /&gt;
&lt;br /&gt;
1967년 한일은행에 입행한 뒤 38년간 [[우리은행]], 우리금융 등에 몸담아왔다.&lt;br /&gt;
&lt;br /&gt;
1999년 한빛증권 사장, 2002년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맡았다. 2004년 9월에는 금융계를 떠나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2년 반 정도 맡긴 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MB맨’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2008년 6월 제4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다. 말단 행원으로 입사해 회장까지 한 직장에서 40년 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입지전적 인물로 불렸다.&lt;br /&gt;
&lt;br /&gt;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고강도 긴축경영을 실시했다. 계열사 임원 급여를 10%씩 반납했고 2009년에도 임원 급여 10%를 추가 반납했다. 2008년 4분기 예산의 10%를 절감했고 2009년에도 변동성 경비의 20%를 깎았다.&lt;br /&gt;
&lt;br /&gt;
우리금융의 실적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순이익이 4545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2009년에는 1조 260억 원으로 회복하며 가장 빨리 금융위기의 후유증을 털어낸 금융회사로 평가받았다.&lt;br /&gt;
&lt;br /&gt;
특히 2009년 3분기에는 ‘어닝 서프라이즈’에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2009년 3분기 순이익은 4838억 원으로 KB, 신한, 하나 등을 포함한 국내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 단연 최대였다. 2009년 9월 경에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66층짜리 AIG그룹 빌딩을 계열사를 통해 사들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민영화]]는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다.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해 정부지분 17%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차에 걸쳐 완전 민영화를 최초로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lt;br /&gt;
&lt;br /&gt;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감원장이 여러 차례 사퇴를 종용하였으나[* 특히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013년 4월 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회장이) 알아서 잘 판단하실 것”이라며 “민영화 의지와 철학을 같이할 수 있는 분이 우리금융을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퇴를 거부하였다.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토대를 직접 쌓고 싶었기 때문이라나... 결국 2013년 4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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