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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황(폐세자)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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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1T22:16:44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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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20:0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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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한국사 관련 정보]]&lt;br /&gt;
[include(틀:저작권 의심)]&lt;br /&gt;
||||||||||||||&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tablewidth=100%&amp;gt;&amp;lt;:&amp;gt;&amp;lt;#94153E&amp;gt; '''{{{+1 [[왕세자|{{{#red 조선의 역대 왕세자}}}]]}}}''' ||&lt;br /&gt;
||&amp;lt;width=30%&amp;gt;&amp;lt;:&amp;gt; [[연산군]] 이융 ||&amp;lt;:&amp;gt; {{{+1 ←}}} ||&amp;lt;width=30%&amp;gt;&amp;lt;#94153E&amp;gt;&amp;lt;:&amp;gt; '''{{{#yellow 이황}}}''' ||&amp;lt;:&amp;gt; {{{+1 →}}} ||&amp;lt;:&amp;gt;&amp;lt;width=30%&amp;gt; [[인종(조선)|인종]] 이호 ||&lt;br /&gt;
&lt;br /&gt;
李𩔇&lt;br /&gt;
1497~1506&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연산군]]의 장남으로 총명하고 어진 기질을 보여 [[연산군]]의 학정에 시달리던 여러 신하들의 기대를 모았었다. 정세명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아들였지만 식을 올리기 전에 반정이 일어나서 정식 세자빈이 되진 못했다. &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야사에서는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에게 [[박원종]]이 반정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자 신수근은 세자가 총명하니 기다리면 될 것이다 라고 대답하며 거부했다고 한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이후에 [[연산군]]이 폐위될때 정선으로 유배를 갔다가 사사된다. 향년 10세.&lt;br /&gt;
&lt;br /&gt;
동복동생 창녕대군, 이복동생 양평군 등도 모두 유배되었다가 같은 전철을 밟았다.&lt;br /&gt;
=== 중종반정 이후 ===&lt;br /&gt;
아래는 유배를 갈 때의 기사이다.&lt;br /&gt;
&lt;br /&gt;
||박원종 등이 아뢰기를,&lt;br /&gt;
&lt;br /&gt;
“폐세자 및 창녕(昌寧)·양평(陽平) 등이 성밖 가까이에 있어서는 온당하지 못하니, 외진 군읍을 골라 안치하고 관에서 먹는 것을 주며, 잡인 출입을 금하소서.”&lt;br /&gt;
&lt;br /&gt;
하니, ‘그리하라.’ 전교하였다. 모두 아뢰기를,&lt;br /&gt;
&lt;br /&gt;
“이황(李𩔇)은 정선(旌善), 이인(李仁)은 수안(遂安), 이성(李誠)은 제천(堤川), 이돈수(李敦壽)는 우봉(牛峯)에 보내어 모두 관가 근처에 안치하되, 그 담을 높직이 쌓고 항상 문을 잠그게 하소서. 그리고 옷과 먹는 물품의 출납은 관인(官人)으로 하여금 감독 관장하게 하고 그 공급은 소재처 관창(官倉)의 쌀로 하되, 관노비(官奴婢)를 시켜 음식을 마련하며, 또 군사로 하여금 수직(守直)하게 하고, 일이 있건 없건 수령은 매월 월말에 관찰사에 보고하게 하소서.”&lt;br /&gt;
&lt;br /&gt;
하니, ‘아뢴 대로 하라.’ 전교하였다.||&lt;br /&gt;
&lt;br /&gt;
원래는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만 반정공신들이 폐주의 아들들을 놔두면 위험하다고 죽일 것을 청하였다. 중종은 가슴이 아파 차마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공신들의 강한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조카들을 죽이고 만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lt;br /&gt;
&lt;br /&gt;
||영의정 유순, 좌의정 김수동·우의정 박원종·청천 부원군	유순정·무령 부원군	유자광·능천 부원군	구수영 및 여러 재추(宰樞) 1품 이상이 빈청에 모여, 의논하여 아뢰기를,&lt;br /&gt;
&lt;br /&gt;
“폐세자 이황(李𩔇)·창녕 대군 이성(李誠), 양평군 이인(李仁) 및 이돈수(李敦壽) 등을 '''오래 두어서는 안 되니, 모름지기 일찍 처단하소서.''' 또 연산군의 폐비 신씨가 지금 정청궁(貞淸宮)에 있는데 선왕의 후궁과 함께 거처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동대문 밖 광평 대군(廣平大君) 집에 옮겨 안치하는 것이 어떠합니까?”&lt;br /&gt;
&lt;br /&gt;
하니, 전교하기를,&lt;br /&gt;
&lt;br /&gt;
“황 등은 나이가 모두 어리고 연약하니, 차마 처단하지 못하겠다. 폐비는 스스로 허물이 없는데, 문밖으로 내쳐 보내기가 정의상 몹시 가련하니, 성안에 옮겨 안치한다고 무슨 안 될 일이 있겠는가?”&lt;br /&gt;
&lt;br /&gt;
하였다.&lt;br /&gt;
&lt;br /&gt;
정승들이 다시 아뢰기를,&lt;br /&gt;
&lt;br /&gt;
“'''황 등의 일을 전하께서 측은한 마음으로 차마 결단하지 못하고 계시지만 그 형세가 오래 보존되지 못할 것이니, 혹 뜻밖의 일이 있어서 재앙이 죄 없는 이에게까지 미치면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lt;br /&gt;
&lt;br /&gt;
지금 비록 인심이 이미 정하여졌으나, 원대한 염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모름지기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여 뭇사람의 마음에 응답하소서. 폐비는 신승선의 집을 수리해서 옮겨 두는 것이 어떠합니까?”&lt;br /&gt;
&lt;br /&gt;
하니, 전교하기를,&lt;br /&gt;
&lt;br /&gt;
“폐비는 그렇게 하고, 황 등은 나이 연약하고 형세가 고단하니, 비록 있은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lt;br /&gt;
&lt;br /&gt;
하였다. 정승들이 다시 아뢰기를,&lt;br /&gt;
&lt;br /&gt;
“이는 국가의 큰일이니, 차마 못하는 마음으로써 대체(大體)에 누가 있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모름지기 대의로써 결단하여야 합니다. 이는 신 등의 뜻일 뿐만 아니라 곧 일국 신민의 뜻입니다. 신 등이 전하께서 차마 못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뜻이 이와 같으므로 마지못하여 감히 품달합니다.”&lt;br /&gt;
&lt;br /&gt;
하니, 전교하기를,&lt;br /&gt;
&lt;br /&gt;
“황 등의 일은 차마 처단하지 못하겠으나, 정승이 종사에 관계되는 일이라 하므로 과감히 좇겠다.”&lt;br /&gt;
&lt;br /&gt;
하였다. 명하여 황·성·인·돈수를 아울러 사사(賜死)하였다.||&lt;br /&gt;
&lt;br /&gt;
=== 사망 이후 ===&lt;br /&gt;
[[중종(조선)|중종]]은 죽은 조카들을 안타까이 여겨 장례라도 후하게 지내주려 하였으나,[* 사실 도리상 이게 맞긴 하다. 죽을죄를 저지른것도 아닌데 죽인다면 적어도 장례쯤은 후하게 치뤄주는게 예의다. 실제로 진짜 '''죽을짓 한''' [[폐비 윤씨]] '''좀 꺼림찍하지만 진짜 죄를 지은''' [[장희빈]]도 나라에서 장례를 지루는걸 도와줬고 이후 왕비에 준한 제사를 치루게 했다.] 반정 공신들은 이미 죽은 서인에게 후한 대우는 필요없으니 관곽이나 내려주라고 하여 역시 무산되었다. 당시 폐세자 황의 나이가 20세도 채 되지 않은 걸 감안하면 공신들이 어지간이 불안해했고 또 그만큼 자신들의 반정에 자신감이 부족한 모양이다. &lt;br /&gt;
&lt;br /&gt;
실제로 이후 [[인조반정]] 때에는 폐세자 [[이지#s-9|이지]]의 나이가 이황보다 더 많았고 [[광해군]]은 [[연산군]]에 비해 쫓겨날 명분이 부족했는데도 인조와 인조반정의 공신들은 이지를 죽이지 않았다. 단 나중에는 죽이는데, 그 이유마저도 이지가 유배지에서 탈출하려다 걸렸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연산군은 쫓겨날 명분이 충분했고[* 연산군을 쫓아낸 게 잘못이라며 일어난 사건은 없었다. 반면 광해군은 쫓겨난 이후 역모사건에 계속 연루된다.] 이황 역시도 행동이 반듯하고 나이도 더 어렸는데도 사사시킨 걸 보면[* 실제로 어린이와 노약자는 역모에 연루되어도 노비로 만들거나 용서해주는 선에서 그쳤다. 정말 예외가 있었다면 기축옥사 때 이발의 아들이 곤장맞다 죽었고 봉산옥사 때 어린이들까지 끌려와 국문받은 게 거의 전부다.] [[중종반정]] 핵심부들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사실 핵심부들은 모두 다 연산군 밑에서 한자리 했었던 사람들이다. [[유자광]]부터가 [[무오사화]]의 주역이다.]&lt;br /&gt;
&lt;br /&gt;
[[분류:조선의 왕족]]&lt;br /&gt;
&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황, version=208)]&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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