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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과정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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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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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0:3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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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0:36: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문예 관련 정보]]&lt;br /&gt;
&lt;br /&gt;
{{{+1 鄭瓜亭}}}&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고려시대]]의 [[고려가요]]. [[신라]]가 아닌 고려 중기 작품이지만 [[향가]]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다만 전형적인 향가 스타일에서는 약간 변형되었다. 작가는 [[고려]] [[의종(고려)|의종]]대의 문인 정서. 고려가요 중에 작자가 명확하게 알려진 유일한 고려가요다.&lt;br /&gt;
&lt;br /&gt;
노래의 배경이 되는 [[정자]] 이름이기도 하며, 정서 본인의 호가 되었다. [* 이렇게 유배지나 자신이 지은 정자의 이름을 호로 삼은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정약용|정다산]]이라든가 [[송순|송면앙정]]이라든가...]&lt;br /&gt;
== 배경 ==&lt;br /&gt;
[[고려]] [[의종(고려)|의종]] 때의 척신[* 당시 정서의 직급은 내시랑중으로, [[인종(고려)|인종]] 때부터 왕의 외척과 혼인관계에 있었으므로 중신보다는 척신에 가깝다.] 정서는 [[개성특급시|개성]]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모함을 당해 [[동래]]로 [[유배]]됐는데[* 그런데 정서는 고향이 동래다. 진짜 산간벽지나 섬으로 보내는 본격적인 유배형이 아니라 고향으로 보내는 귀향형은 파면+강제적 자숙의 의미 정도로 내리는 벌이었다.], 당시 의종은 ''죄가 없음을 알지만 여론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잠시 내려가서 쉬고 있으면 다시 부를 것이다''라고 --뻥--안심시켜 정서를 내려보내는데, 이 때 정서는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배산]] 자락에 '''과정(瓜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오이를 재배하며 자숙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불러 주겠다던 왕의 소식은 돌아오지 않고 --[[안습|무신정변 직전임을 감안하면(...)]]-- 기다림에 지친 정서가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이것. &lt;br /&gt;
&lt;br /&gt;
http://db.kookje.co.kr/news2000/photo/2011/0316/L20110316.88001005930i1.jpg&lt;br /&gt;
~~왼쪽에서부터 읽는 것이 아니다~~ ~~[[회문|거꾸로 해도 정과정]]~~&lt;br /&gt;
정과정 정자가 있던 자리는 지금의 부산 [[수영구]] 망미동 [[온천천]]과 [[수영강]]이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있다. 본래는 [[배산]]의 북동쪽 사면에 해당했으나, 지금은 도시개발로 [[배산]]이 두 조각나는 바람에 현재의 과정은 지금의 배산과는 관련이 없어졌다. &lt;br /&gt;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한편 일설에는 [[거제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후에 그 참담한 심정을 읊은 노래라고도 [[http://www.geoj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728|하는데]], 이 시점에는 의종도 [[정중부]]에 의해 거제도로 쫓겨났을 때라... 큰 힘을 얻지는 못하는 학설이며, 거제 향토사학계에서나 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는 최초 유배지인 동래에서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lt;br /&gt;
== 내용 ==&lt;br /&gt;
'''원문'''[* 사진은 [[부산]]에 있는 정과정 유적지에 위치한 노래비]&lt;br /&gt;
http://blog.joins.com/usr/e/s/eskang/1/oneplusone1.jpg&lt;br /&gt;
&lt;br /&gt;
'''해석'''&lt;br /&gt;
&amp;gt;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으니&lt;br /&gt;
&amp;gt; 산 접동새와 내 신세가 비슷합니다.&lt;br /&gt;
&amp;gt; (모함들이 사실이) 아니며 거짓인 줄을&lt;br /&gt;
&amp;gt; 잔월효성(지는 달 뜨는 별)이 아실 것입니다.&lt;br /&gt;
&amp;gt; 넋이라도 님과 함께하고 싶구나 아아&lt;br /&gt;
&amp;gt; (내가 죄가 있다고) 우기시는 이가 누구입니까&lt;br /&gt;
&amp;gt; 잘못도 허물도 천만 없습니다.&lt;br /&gt;
&amp;gt; 모함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이 부분(원문: 말힛마리신뎌)의 해석은 논란이 많다.]&lt;br /&gt;
&amp;gt; 서럽구나 아아&lt;br /&gt;
&amp;gt; 님이 나를 벌써 잊으셨습니까&lt;br /&gt;
&amp;gt; 아소 님아, 다시 들으시어 사랑해 주소서&lt;br /&gt;
한 줄로 요약하면 왕에게 '날 잊지 말고 이제 그만 다시 궁으로 불러 주세요' 하고 비는 내용이다. 연군가(충신연주지사)의 효시로, 수백 년 뒤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원조격쯤 되는 작품. --[[잡았다 요놈|이 놈이 원흉이었구나!]]--&lt;br /&gt;
== 트리비아 ==&lt;br /&gt;
 * 이 노래가 널리 알려진 것과 무관하게 정서 본인은 의종 대에는 복권되지 못했다가, [[무신정변]] 이후 [[명종(고려)|명종]] 시대에 다시 복권되어 개경에서 다시 벼슬살이를 했다. --그리고 정서가 노래한 그 [[끔살|님께서는...]]--&lt;br /&gt;
 * 창작 배경으로 인해 충신연주지사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궁중 속악 악장에도 채택되었으며, 사대부들까지도 이 노래를 배워 익혀야 했다. 덕분에 이 노래는 [[고려가요]] 중 유일하게 작가가 알려진 노래가 되었다. --작자 미상 1패--&lt;br /&gt;
&lt;br /&gt;
[[분류:고려가요]][[분류:문학]][[분류:음악]]&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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