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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희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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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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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10:38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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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10:38: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ph.incheonilbo.com/news/photo/201512/682764_203957_3158.jpg?width=300&lt;br /&gt;
&lt;br /&gt;
趙嬉珍&lt;br /&gt;
&lt;br /&gt;
1962년생&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검사장.&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1962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1981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에 입학하였고, 1985년 졸업하였다.&lt;br /&gt;
&lt;br /&gt;
1987년에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여성이 시험에 붙으면 신문에 이름이 실리던 시절이었다. 전국에 여성 법조인이 50명도 안 되는 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후 1990년에 [[사법연수원]]을 제19기로 수료하고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하였다. 사법연수원 19기 가운데 유일한 여성 검사였다.[* 함께 있던 연수원 여성 동기 9명은 모두 법원이나 법무법인을 선택했다. 앞서 검찰을 선택했던 여자 선배들이 모두 금새 전업한 영향이 컸다. 예를 들어 첫 여성 검사였던 [[조배숙]]은 4년 만에 판사로 전직했다.]&lt;br /&gt;
&lt;br /&gt;
그 후 검찰 내 유일한 여성검사[* 전체 755명 검찰 정원 가운데 여자 검사는 조희진 혼자였다.]로서 검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1992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6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1998년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를 거쳐, 2002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되었고, 그 얼마 뒤 법무부 부부장검사가 되었다.&lt;br /&gt;
&lt;br /&gt;
2003년 법무부 검찰국 검사를 거쳐 2004년 6월에는 여성 최초로 부장검사가 되었다.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4부 부장검사가 된 것.&lt;br /&gt;
&lt;br /&gt;
2005년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었고, 2007년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판2부 부장검사, 2008년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7부 부장검사, 2009년에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있었다. &lt;br /&gt;
&lt;br /&gt;
2009년 8월에는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되었고, 2010년 8월에는 제43대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지청장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10월 다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갔다가, 2013년 12월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가 되었다.&lt;br /&gt;
&lt;br /&gt;
2014년에는 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검사장은 ‘검찰의 별’로 불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기업 고위 임원에 비견되는 자리다. 검사장이 되는 길은 ‘바늘구멍’에 비유된다. 동기 10명 중 1명꼴로 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행운이 주어진다.] 2015년 2월에는 제63대 제주지방검찰청 지검장이 되었고, 2015년 12월에는 제15대 의정부지방검찰청 지검장이 되었다. &lt;br /&gt;
 &lt;br /&gt;
== 트리비아 ==&lt;br /&gt;
 * 초임 검사는 형사부에서 6개월을 일하고 자동으로 공판부에 배치된다. 그런데 동기 검사 중 조희진만 공판 업무에서 제외되고 형사부에 남겨졌다.[* 아마도 지휘부에서 ‘유일한 여성 검사가 공개된 재판정에 나서면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 듯.] 그러자 공판부에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 손을 들고 공판부를 자원했다. 공판부가 비(非)선호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lt;br /&gt;
&lt;br /&gt;
 * 검찰 내에서 여성으로서 언제나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며 살았다고 한다. 회식 자리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참석했다가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국자를 들 때마다 손톱이 보이지 않게 손가락을 오므렸을 정도였다.&lt;br /&gt;
&lt;br /&gt;
 * 조희진 검사가 검찰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고 훌륭히 적응하며 활동하자, 그를 지켜보며 용기를 낸 후배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검찰 내에 여성 검사 비율이 예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대략 전체 검찰 인원 가운데 약 30%가 여성 검사일 정도. 간부급을 빼면 평검사 가운데 절반이 여성이다.&lt;br /&gt;
 &lt;br /&gt;
 * 남편 송수근은 2016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이다. 조희진 검사장이 잦은 야근에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해도 “그만두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아내를 배려했다. 아들을 맡길 곳이 없을 때는 남편이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조희진 검사장은 “우리집 주방 권력은 남편이 쥐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 ‘워킹맘’으로서 1998년 법무부 여성정책관으로 근무할 때 청주여자교도소 안에 직장 어린이집을 처음 만들었다. 새로 짓는 검찰청에 직장어린이집을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어린이집 설치를 요구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검찰]]&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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