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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정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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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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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4일 (토) 18:30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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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4T18:30: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imgpark.donga.com/mbs/fileUpload/201602/29/56d3aca00398df3e0336.jpg&lt;br /&gt;
http://imgpark.donga.com/mbs/fileUpload/201602/29/56d3aca01e97df3e0336.jpg&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출생 당시의 이름은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 지정환은 현재의 이름이다. [[가톨릭]] 서품을 받은 [[신부(종교)|신부]]다.&lt;br /&gt;
&lt;br /&gt;
벨기에계 한국인으로,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에서 국적 증서를 받아 법적 [[한국인]]이 된건 2016년 2월 4일의 일.&lt;br /&gt;
&lt;br /&gt;
오늘날의 [[임실군|치즈의 고장 임실]]을 있게 한 인물. 또한 동시에 오늘날 한국에 [[치즈]]가 있게 한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193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 귀족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1958년 [[가톨릭]] 사제가 된 그는 당시 [[한국전쟁]]의 여파로 아프리카보다도 가난하다는 한국에 갈 결심을 하고, 그 이듬해 [[부산항]]에 발을 딛었다. &lt;br /&gt;
&lt;br /&gt;
[[천주교 전주교구]]에 배속된 그는 [[전주시]] [[전동성당]]의 보좌신부로 있게 되었다. 그러다 1961년 7월, 부안성당 주임신부가 되어 [[부안군]]으로 떠나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가난 때문에 어렵게 사는 농민들을 구제하고자 30만평에 이르는 땅을 간척하게 하고 간척에 참여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 땅들은 고리대와 노름을 통해 부자들에게 넘어가고 말았고, 이를 보며 분통이 터진 지정환 신부는 '다시는 한국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러나 64년 척박한 산골 동네인 [[임실군]]에 부임한 그는 다시 가난으로 불쌍한 삶을 사는 농민들을 대면하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조금만 개입할 생각으로 풀밭이 많은 임실에서 자라기 쉬울 산양을 길러 그 젖으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 이를 더 크게 벌여 군민들의 삶을 돕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벨기에]]의 부모님으로부터 2,000달러를 받아 허름한 치즈 공장을 세웠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치즈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고 [[이탈리아]] 견학까지 가서 기술을 배워와서야 69년에 비로소 치즈 생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치즈 공장 하나 없던 시절이었기에 임실 치즈는 서울의 특급 호텔에 납품될 정도로 유통망을 넓혀갔다. 후에 지 신부는 이 치즈 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모두 주민협동조합에 넘겼다.&lt;br /&gt;
&lt;br /&gt;
지 신부는 한국의 민주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70년 대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에도 항거하여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저항운동을 하였다. 이 때문에 시위중에 체포되어 국외 추방의 위기까지 갔으나 치즈 산업으로 농촌 육성에 이바지하는 그의 행적에, 농촌 육성에 힘쓰던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추방 명령을 거두었다. 80년, [[5.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에 제공할 우유를 싣고 홀로 광주에 내려가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인지, 그는 70년대 부터 오른 다리에 다발성신경경화증을 앓게 되었다. 몸의 신경을 조금씩 마비시키는 이병으로 인해 그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3년 간 벨기에에서 치료를 받은 그는 84년 귀국하여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인 '무지개 가족'을 설립하여 지금까지도 운영하며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lt;br /&gt;
&lt;br /&gt;
== 트리비아 ==&lt;br /&gt;
한국에서 50년을 넘게 생활한 덕인지 [[한국어]]를 잘한다. 그것도 [[전라도 사투리]]를. 그러면서 스스로를 시골놈으로 칭한다고.&lt;br /&gt;
&lt;br /&gt;
다발성신경경화증에 걸렸지만 날마다 3천보씩 목발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중증 장애인을 위해 본인이 건립한 무지개 가족에서는 [[미사]]를 드릴 때, 비장애인도 미사 내내 앉아서 있게 한다. 장애인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지금은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에 활동했던 신부들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해 편찬하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언론에서 영웅처럼 다뤄지는 게 싫어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지라, e-mail을 통해서 간신히 몇가지 문답만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관련 기사는 [[http://news.joins.com/article/19532770|이곳.]] 2012년에 이뤄진 다른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amp;amp;contid=2012072001378|인터뷰 기사]]도 있긴 있다.&lt;br /&gt;
&lt;br /&gt;
[[분류:종교인]]&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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