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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효무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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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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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8:44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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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amp;gt;&amp;lt;#73d1f7&amp;gt; '''[[동진#s-6|{{{#000000 동진의 역대 황제}}}]]''' ||&lt;br /&gt;
||&amp;lt;width=30%&amp;gt; 12대 태종 [[진간문제|간문황제]] 사마욱 || {{{+1 ←}}} ||&amp;lt;width=30%&amp;gt; '''13대 열종 효무황제 사마요''' || {{{+1 →}}} ||&amp;lt;width=30%&amp;gt; 14대 [[진안제|안황제]] 사마덕종 ||&lt;br /&gt;
&lt;br /&gt;
||&amp;lt;tablealign=center&amp;gt; '''[[묘호]]''' || '''[[열종]](烈宗)''' ||&lt;br /&gt;
|| '''[[시호]]''' || 효무황제(孝武皇帝) ||&lt;br /&gt;
|| '''[[연호]]''' || 영강(寧康, 373년 ~ 375년)[br]태원(太元, 376년 ~ 396년) ||&lt;br /&gt;
|| '''[[성]]''' || 사마(司馬) ||&lt;br /&gt;
|| '''[[휘]]''' || 요(曜) ||&lt;br /&gt;
|| '''[[자]]''' || 창명(昌明) ||&lt;br /&gt;
|| '''생몰기간''' || 362년 ~ 396년 ||&lt;br /&gt;
|| '''재위기간''' || 372년 ~ 396년 ||&lt;br /&gt;
&lt;br /&gt;
&lt;br /&gt;
융화 원년(362년)에 사마욱과 이릉용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사마욱은 다섯 아들이 왠일인지 모두 [[요절]]했다. 이릉용은 까만 피부에 [[애꾸눈]]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들을 낳아준다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황후가 되었다. 과연 이릉용은 황제의 아들들을 풍성하게 낳았다.] 자는 창명이다. 처음에 회계왕에 책봉되었다가 함안 2년(372년) 7월 황제에 즉위했다. 즉위할 때는 나이가 어렸기에 태후의 섭정을 받았고, 4년 후인 태원 원년(376년) 정월부터는 몸소 정사를 처리했다. [[환온]]에게 [[선양]]요구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서 쫒겨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중신들이 시간을 질질 끌어 기다리던 환온이 사망하여 어찌어찌 잘 해결되었다. &lt;br /&gt;
&lt;br /&gt;
태원 8년(383년)에는 [[전진]]의 부견이 87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당시 동진의 군사는 겨우 8만이었지만, 전진의 [[병크]] 를 이용하여 부견의 군대를 박살내고 서주, 연주, 청주, 사주, 예주, 양주를 수복했다. 사실 부견이 워낙 황급하게 [[도주]]했기 때문에 계속 추격했더라면 중원 수복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내용은 [[비수대전]] 항목 참고.&lt;br /&gt;
&lt;br /&gt;
사마요는 총명하고 서예를 좋아했는데, 특히 시 짓기에 관한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의지에 비해 실력은 다소 허접했는지 조잡하고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초기에는 황제에 걸맞는 기량과 권위를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아우인 회계왕 사마도자[* 사마요의 동복 형제로 사마욱의 막내아들]에게 정사를 위임하고 자기는 밤낮으로 주색에 빠져 지냈다. 악습을 충고하는 신하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사마요 또한 사마도자의 퇴폐에 불만이 많았으나 태비에게 핍박받아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그는 [[불교]]에 심취하여 노인, 승려, 비구니를 가까이 두어 총애했고 신하들은 당파 싸움을 자행해 동진의 정치를 더욱 혼란시켰다.&lt;br /&gt;
&lt;br /&gt;
태원 21년(396년) 9월, 후궁들과 주연을 베풀던 사마요는 총애하던 장귀인에게 '''너도 이제 30세가 넘었구나. [[로리|새 후궁]]을 찾아야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당연히 술김에 한 농담이었는데, 문제는 장귀인이 이걸 진담으로 알아들어 버렸다.(...) 결국 그날 저녁 장귀인은 술에 취한 사마요를 죽였고 사마요는 재위 25년 35세의 나이로 허망한 최후를 맞는다.&lt;br /&gt;
&lt;br /&gt;
이때 사마요의 태자 사마덕종은 추움과 더움을 분별하지 못하는 저능아였고, 사마요는 396년 10월에 융평릉에 안장되었다.&lt;br /&gt;
&lt;br /&gt;
일찍 죽은 데다가 뒤를 이은 이은 황제들이 무능하여 나라가 결국 망국으로 치닫았다는 등 [[후한]]의 [[영제]], [[남송]]의 [[송도종|도종]]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래도 어리석은 데다가 사치에만 매달린 영제나 도종과 달리 달리 사마요는 처음에는 유능했지만, 말년에 방탕에 빠져 어이없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일종의 [[공민왕]]과라 할만 하다. 결국 사마요는 영제와 도종처럼 사실상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영제의 아들 [[소제]]와 [[헌제]]처럼 그의 아들 안제 [[사마덕종]]과 공제 [[사마덕문]]은 모두 [[꼭두각시]], [[허수아비]] 황제가 되어 [[유유(송무제)|유유]]에게 휘둘렸고, 마지막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사마요,version=29)]&lt;br /&gt;
&lt;br /&gt;
[[분류:위진남북조/황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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