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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초성왕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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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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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20:41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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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20:41: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amp;lt;tablealign=center&amp;gt;&amp;lt;:&amp;gt;  '''[[초나라|역대 초나라 군주]]''' ||&lt;br /&gt;
||&amp;lt;:&amp;gt; 20대 [br]  [[장오]] 웅간(熊囏) ||&amp;lt;:&amp;gt; → ||&amp;lt;:&amp;gt; 21대 [br]  '''초성왕(楚成王)''' 웅군(熊頵), 웅운(熊惲) ||&amp;lt;:&amp;gt; → ||&amp;lt;:&amp;gt; 22대 [[초목왕]] 웅상신(熊商臣)  ||&lt;br /&gt;
&lt;br /&gt;
|| '''[[성씨|성]]''' |||| 미(羋) ||&lt;br /&gt;
|| '''[[본관|씨]]''' |||| 웅(熊) ||&lt;br /&gt;
|| '''[[휘]]''' |||| 군(頵), 운(惲) ||&lt;br /&gt;
|| '''아버지''' |||| [[초문왕]] 웅자(熊貲) ||&lt;br /&gt;
|| '''생몰기간''' || 음력 || ? ~ 기원전 626년 ||&lt;br /&gt;
|| '''재위기간''' || 음력 ||기원전 671년 ~ 기원전 626년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초나라]]의 21대 [[왕]]. 초문왕 웅자와 식부인인 규씨의 아들.[* 식규라 불린다.] 그는 형인 장오 웅간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며, 북쪽으로 세력을 뻗어 초나라의 힘을 강대하게 해 송나라에 타격을 입혔으나 [[진(춘추오패)|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아들인 초목왕 웅상신에게 살해당했다.&lt;br /&gt;
&lt;br /&gt;
== 즉위과정 ==&lt;br /&gt;
초문왕이 기원전 675년 승하하자 그 아들인 웅간이 뒤를 이어 장오가 된다. 그는 사냥과 놀이를 즐겨 정사를 등한히했기 때문에, 그는 기원전 671년 형인 장오를 시해했다. 도화부인은 그 사실을 알았으나 웅군을 처치할 명분이 없어 묵인해버렸다. ~~[[아서스]]가 생각난다.~~ ~~근데 아서스와는 다르게 형을 죽였다.~~&lt;br /&gt;
&lt;br /&gt;
== 치세 ==&lt;br /&gt;
그리고 초나라 왕으로 등극해 나라를 잘 다스렸고, 초나라가 왕을 칭한 뒤로는 처음으로 [[주나라]] 왕실에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그가 선정을 베푼지 십수년이 지난 뒤 주왕실에 대한 조공을 끊어버리자 초성왕 16년인 기원전 656년 당시 [[춘추오패]]였던 [[제환공]]이 [[관이오|관중]]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소왕이 남정해 죽게한 죄와 공물을 끊은 죄를 물어 초나라를 공격해왔다. 결국 이것을 두려워한 초성왕은 굴완에게 병력을 거느리게 하여 소릉에서 그것을 사죄하는 회맹을 가졌다.~~아무리 초나라의 번영을 이끈 초성왕도 춘추오패에게는 안되는 모양이다.~~[* 마냥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게, 위의 사례도 그렇고 [[진문공]]에게도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초성왕 18년인 기원전 654년 허나라를 치고, 초성왕 22년인 기원전 650년 황나라를 치고, 초성왕 26년인 기원전 647년 황나라가 망하였다.&lt;br /&gt;
&lt;br /&gt;
이 사이에 제환공이 죽고 [[송나라]]의 [[송양공]]이 패자가 되기 위해 [[제나라]], [[초나라]] 등의 여러 나라와 회맹을 가졌으나 초성왕은 송나라의 국력이 초나라보다 약한 것을 알고 그를 무시하자 송양공은 자신이 공작이고 초성왕이 자작임을 상기시켰으나 그 언사가 심히 모욕적이었기 때문에 초성왕은 거기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초성왕 33년인 기원전 641년 송나라를 기습하여 송양공을 사로잡았는데, 송나라 공자 목이가 송나라의 공작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초성왕은 송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송양공을 놓아주었으나 목이는 사심없이 그 자리를 송양공에게 돌려주어 초성왕은 닭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보고 있는 격이 되고 말았다.~~뻘쭘했겠다.~~&lt;br /&gt;
&lt;br /&gt;
초성왕 34년인 기원전 638년 정문공을 입조하게 했으며, 송나라를 쳐서 송양공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런데 이건 송양공의 자업자득인게, 전쟁터에서 인의를 따지면서 기습할 기회가 몇번 있었음에도 그것을 시행하지 않다가 험한 꼴을 당했다. 이것을 두고 [[송양지인]]이라 한다.] 그리고 다음 해 송양공은 사망했다.&lt;br /&gt;
&lt;br /&gt;
초성왕 35년인 기원전 637년 [[성득신]]에게 진을 치게하여 초 땅과 이 땅을 차지해 병력을 주둔시켰다. 성왕은 성득신의 그 공로를 인정해 영윤에 봉했다.[* 영윤은 초나라 최고의 벼슬이다. [[진(통일왕조)|진나라]] 이후의 [[승상]]과 같다.]  같은 해 겨울 [[진문공]] 정나라에서 초나라로 오자 그를 환대했다. 그러자 성득신이 그를 죽일 것을 권하나 초성왕은 단칼에 거절했다.&lt;br /&gt;
&lt;br /&gt;
초성왕 37년인 기원전 635년 성득신에게 [[진(통일왕조)|진나라]]의 병력을 추격하게 했다.&lt;br /&gt;
&lt;br /&gt;
초성왕 39년인 기원전 633년 노희공 병사를 빌려 제나라를 칠것을 청하자 곡 땅을 취했다. 제환공의 7명의 아들은 초나라로 달아나자 초성왕은 그들을 상대부에 봉했다. 그리고 기(夔)나라를 멸했다. 같은 해 여름에 송나라를 쳤는데, 송나라는 [[진문공]]에게 구원을 요청했다.&lt;br /&gt;
&lt;br /&gt;
초성왕 42년인 기원전 630년 영윤 성득신이 진문공의 진을 칠것을 권했으나 초성왕은 거절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들어주었다. 그리고 진문공은 초나라에 의탁하던 시절 이런 약속을 했었다.&lt;br /&gt;
&lt;br /&gt;
&amp;quot;제가 진나라의 군주가 된다면 90리를 물러 드리겠습니다.&amp;quot;&lt;br /&gt;
&lt;br /&gt;
그래서 진나라 측에서는 약속을 이행했다.[* 단 이것이 초군을 유인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말도 있다.] 같은 해 4월 성득신은 진나라에게 성복 땅에서 크게 패하고~~발리고~~ 말았다. 초성왕은 크게 노하여, 성득신에게 자결을 명했다. 그러나 초성왕은 후회하고 그 후임으로 위여신을 영윤으로 삼았다. 그 소식을 들은 진문공은 크게 기뻐했다.[* 훗날 이 고사는 장완이 마속을 죽이는 것을 말릴 때 쓰여진다. 물론 제갈량은 초성왕처럼 마속을 용서없이 사형에 처했지만.]&lt;br /&gt;
&lt;br /&gt;
== 최후 ==&lt;br /&gt;
초성왕 46년인 기원전 626년 웅상신을 폐세자하고 총애하는 왕자 웅직을 태자로 세웠다. 같은 해 10월 웅상신은 이에 불만을 품어 반숭과 모의하여, 초성왕을 살해하러 갔다. 그러자 초성왕은 웅상신이 반란을 일으킨지 얼마 안되어 준비가 안되어 있음을 간파해 이렇게 말했다.&lt;br /&gt;
&lt;br /&gt;
&amp;quot;과인은 [[웅장|곰발바닥]] 요리가 먹고 싶다.&amp;quot;&lt;br /&gt;
&lt;br /&gt;
그러나 웅상신의 대답은 이러했다.&lt;br /&gt;
&lt;br /&gt;
&amp;quot;곰발바닥은 익히기 어렵잖소!&amp;quot;&lt;br /&gt;
&lt;br /&gt;
그리고 초성왕을 핍박해 목 졸라 죽여버렸다.~~이게 진정한 [[아서스]]!!!~~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단 마냥 욕할 수는 없는게, 진나라의 헌공이 여희의 말을 믿고 신생을 자살하게 하고 진문공을 방랑하게 한 사례가 있었기에, 그 사례처럼 되지 않으려는 발로로 보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평가 ==&lt;br /&gt;
그는 일단 국외 관계에서는 주나라를 무시하는 행보를 많이 보이기는 했지만, 내치적으로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외부에 힘을 떨쳐, 그 아들인 [[초목왕]]이 그것을 이어 나라를 잘 다스리고, 그 손자인 [[초장왕]]이 그 뒤를 이어 나라를 크게 번성시켜 [[춘추오패]]가 된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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