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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언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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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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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07:4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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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7T07:45: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분류:후삼국시대/인물]]崔彦撝&lt;br /&gt;
868 ~ 944&lt;br /&gt;
&lt;br /&gt;
[[후삼국시대]]의 인물. [[신라]]와 [[고려]]의 문인 겸 관료.&lt;br /&gt;
&lt;br /&gt;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 [[최승우]]와 더불어 [[신라삼최]]로 불렸는데, 대중적으로 유명한 [[최치원]], [[최승우]]과는 달리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 오히려 그를 대신해 [[최응]]을 신라 삼최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아마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승우]], [[최응]]이 꽤 비중있는 역할로 나왔고, 최언위는 신라 삼최로 이름만 간간히 언급되기만 해서 그런 듯 하다.&lt;br /&gt;
&lt;br /&gt;
본관은 [[경주 최씨|경주]]로, 최치원의 11살 어린 [[사촌]] 동생이었다. 895년 [[중국]] [[당나라]]에서 [[빈공과]]에 응시해 급제했으며, 909년 귀국하여 신라에서 벼슬을 지냈는데, 일찍이 벼슬을 버린 사촌형 최치원과는 달리 신라의 멸망까지 벼슬을 지낸다. 특히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과 최언위의 딸이 혼인을 맺은 사이, 즉 사돈 관계였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신라가 고려에 항복할 때 그 역시 고려의 관료로 제수되어, 태자사부(太子師傅)의 벼슬을 제수받았다. 성품이 온후하고, 신라 삼최로 일컬어질만큼 문장이 뛰어나 따르는 사람이 많았으며, 궁원(宮院)의 액호(額號 : 입구에 걸어놓는 현판)을 쓰는 일은 모두 그가 도맡아 했다고 한다. 이후 944년 천수를 다하고 죽을때까지 관직에 있었으며, 관직이 정2품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그의 정확한 관직명은 대상 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大相元鳳大學士翰林院令平章事).&lt;br /&gt;
&lt;br /&gt;
그의 아들인 최광윤은 [[후당]]이 있던 진(晋)으로 유학을 가다가 [[거란]]에 붙잡혔는데, 그 재주가 뛰어나 오히려 거란에서 관직을 주어 등용하였다고. 후일 [[여요전쟁|거란의 고려 침공]]을 예측하여 본국에 서신을 보냈는데, 이는 [[정종(고려)|정종]]의 광군 설치에 일조하였다. 또다른 아들 최행귀 역시 오월(吳越)에서 유학하여 벼슬을 지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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