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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를 리프크네히트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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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5일 (일) 12:25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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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8/Karl_Liebknecht_001.jpg?wid=400&amp;amp;height=300&lt;br /&gt;
&lt;br /&gt;
'''Karl Liebknecht''', 1871.8.13 ~ 1919.1.15&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개요 ==&lt;br /&gt;
[[독일제국]] 시기 활동한 [[사회주의|사회주의자]].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 사민당|사민당]]의 전쟁 협력에 반발하였으며, 1차대전 말기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함께 독일 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하여 공산혁명을 시도하였으나 [[자유군단]]에게 진압당한 뒤 룩셈부르크와 함께 처형당했다. 오늘날 독일 좌파진영쪽에서는 룩셈부르크와 함께 [[순교자]] 포지션을 차지하는 인물.&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아우구스트 베벨]]과 함께 [[독일 사민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아들로 1871년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한다. 이후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다. 아버지가 아버지였던만큼 그 역시 열렬한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주의자]]였고 [[독일 사민당]]에 가입하여서 각종 사회운동을 하는 한편으로, ~~[[코렁탕]]을 당할 위기에 놓인~~ 좌익 활동가들의 변호를 담당하였다. 당시 독일 내에서 완연하였던 [[군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총파업과 민중궐기를 통해 군국주의를 무너뜨리고 독일의 민주화를 쟁취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위와 같은 내용의 칼럼을 작성하였다가 필화를 당해서 1907년에는 징역 18개월을 선고받는다.&lt;br /&gt;
&lt;br /&gt;
사민당 내에서도 가장 [[극좌]]로 분류되었던 그는 1914년 [[사라예보 사건]] 이후 1차대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외교적 위기 과정에서 단호하게 반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입장과는 달리 [[카를 카우츠키]]가 주도하는 사민당 지도부가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독일의 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그의 당내입지는 사라져버린다. 결국 1914년 12월 당의 지침을 어기고 전쟁예산안에 반대표를 던져버리면서 리프크네히트는 당에서 축출당해버린다. 한편 이 무렵부터 리프크네히트는 자신과 의견을 함께하는 당내 반전세력들[* 대표적인 인물은 [[로자 룩셈부르크]]. 그 외에도 클라라 체트킨, 프란츠 메어링 등이 있었다.]과 하나의 정치적 단체를 결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단]]. 당연히 스파르타쿠스단은 창설과 거의 동시에 불법단체로 찍혀버렸고 격노한 [[높으신 분들]]은 [[면책 특권]] 따위는 상큼히 씹어주시고 리프크네히트를 체포한 이후 강제로 [[동부전선]]으로 보내버린다.[* 반전주의자였으니 당연히 집총을 거부했고, 그래서 시체 매장이나 부상병 치료같은 일을 맡았다고 한다.] ~~[[한군두]] ㄷㄷㄷ~~&lt;br /&gt;
&lt;br /&gt;
1916년 5월 석방되자마자 리프크네히트는 다시 스파르타구스단 활동을 재개(...)했고 당연히 또 체포됐다. 반역혐의로 4년형이 선고되었으나 1918년 독일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면서 그 역시 석방된다. 종전 이후의 혼란을 이용하여 [[스파르타쿠스단]]은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었고 [[독일 혁명]] 직후였던 1918년 11월 9일에는 [[베를린]]에서 독일 자유 사회주의 공화국(Freie Sozialistische Republik)의 수립을 선언한다. 물론 같은 날[* 시간상으로는 리프크네히트의 선언이 한 두 시간 정도 빨랐다.] 같은 장소에서 [[필리프 샤이데만]]과 [[사민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상큼하게 씹혔다(...) 한편 스파르타쿠스단을 기반으로 1918년 12월 31일 [[독일 공산당]](KDP)이 창당됐고, 공산당 창당 직후인 1월 4일 [[스파르타쿠스단 봉기]]가 발발한다.[* 리프크네히트 본인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서 봉기를 반대했지만 강경파들이 밀어붙였고 리프크네히트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한다.] 봉기는 2주 가량 지속됐지만 독일 정규군과 [[자유군단]]까지 동원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에게 결국 진압당했고, 1월 15일 리프크네히트는 동지였던 룩셈부르크와 함께 자유군단에게 체포당했으며 직후 총살된다.[* 그 당시 자유군단은 '리프크네히트가 탈출하려다가 총에 맞았다.'라고 공표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냥 자유군단이 리프크네히트를 처형시킨 것으로 사실상 굳어지고 있다.]&lt;br /&gt;
[[분류:독일의 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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