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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첸 라마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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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28T11:35: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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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4일 (토) 14:17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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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4T14:17: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분류:동아시아의 인물]]&lt;br /&gt;
[[티베트어]] :པན་ཆེན་བླ་མ &lt;br /&gt;
[[중국어]] : (정자체)班禪額爾德尼&lt;br /&gt;
중국어 : (간자체)班禅额尔德尼&lt;br /&gt;
[[한국어]] : 판첸 라마, 빤첸 라마[* 원어 발음은 여기에 가깝다.]&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 티베트 시가체 시(市)에 위치한 타쉬룬포 사원의 수장이자 [[티베트 불교]] 서열 2위이다.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진다.&lt;br /&gt;
&lt;br /&gt;
'판첸'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대학자라는 뜻의 '판디타(paṇḍita)'에서 왔는데, 이는 판첸 라마가 어릴 때 [[달라이 라마]]의 교육을 담당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 역사 ==&lt;br /&gt;
5대 [[달라이 라마]]가 서열 2위로 인정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지만, 정치등 세속적인 권력이 있는 [[달라이 라마]]와는 달리 세속적인 권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lt;br /&gt;
&lt;br /&gt;
현재 판첸 라마 11세는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9년에 판첸 라마 10세가 사망하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게둔 초에키 니마(དགེ་འདུན་ཆོས་ཀྱི་ཉི་མ་་)라는 소년을 판첸 라마 11세, 즉 판첸 라마의 환생자라고 했는데 본인과 가족은 [[중국 정부]]가 납치해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다. 아마 조용히 처리된 듯 하다. 대신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인정한 기알첸 노르부(ཆོས་ཀྱི་རྒྱལ་པོ་་)를 판첸 라마 11세라며 진짜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중국]]이 [[교황청]]을 무시하고 [[주교]]를 임명하는 것이랑 같은 개념이다.&lt;br /&gt;
&lt;br /&gt;
== 박지원과의 만남 ==&lt;br /&gt;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관련 기록'''이 있다. 원문에서는 [[중국어]] 음차인 반선액이덕니(班禪額爾德尼)라고 나온다. [[건륭제]]의 환갑잔치를 축하 하기 위해 방문한 조선 사절단이 열하에서 판첸 라마와 마주친 것. [[건륭제]]의 호의 어린[* [[건륭제]]는 [[티베트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베이징]]에 티베트 불교 사원을 세웠으며, 판첸라마를 초청해서 대규모 법회를 열게 하기도 했다. 조선 사절단에게 판첸 라마를 만나게 한 것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준 보답으로 자신이 존대하는 인사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의도는 좋았다]]~~] 지시로 라마를 접견한 [[조선]] 사절이 무려 4단의 통역[* [[한국어]] → [[중국어]] → [[만주어]] → [[티베트어]].]을 거쳐 인사를 올리니, 판첸 라마는 목제 [[불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 때의 판첸 라마는 판첸 라마 6세라고 한다.&lt;br /&gt;
&lt;br /&gt;
조선 사절단이 판첸 라마와 만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으며, [[중국]]과 [[티베트]],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매우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자면, 일단 조선 사신들은 '''[[승려|중놈]] 따위(판첸 라마)와 만나야 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충격과 공포]]'''를 느꼈으며, 심지어 황제의 명으로 판첸 라마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게 되자 '''양반부터 하인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판첸 라마를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 통역관은 &amp;quot;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amp;quot;며 팔뚝질(…)을 해댔다고 한다.[* 다행히도(?) 조선인들끼리 있을 때 팔뚝질을 했다. 만약 공개석상에서 했다면 자기 목뿐만 아니라 '''삼족의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열하일기]]의 기록 속에는 판첸 라마가 보는 앞에서 팔뚝질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지간히 간도 크다~~ ~~[[한국어]]로 욕해서 통역이 안 된 것이 다행이었다~~] &lt;br /&gt;
&lt;br /&gt;
결국 판첸 라마와 대면하는 순간, 사절단을 이끄는 '''박명원이 모른 척하고 절을 안 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버렸다.''' 이런 조선 사신들의 태도를 본 [[건륭제]]는 결국 삐져서(…) 조선 사신들의 일정을 당겨 예상보다 일찍 열하에서 돌려보냈다. 사실 이는 굉장히 다행스럽게 사태가 종결된 것인데, '''박명원은 목숨을 내놓고 황제의 명을 거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황제를 쌩깠다.~~ 그래서 박명원의 8촌 동생이었던 [[박지원]]은 극형까진 몰라도 십중팔구 귀양살이를 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열하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박지원]]은 그 상황을 '''즐거워했다!''' &amp;quot;이런 기회에 남들 못 가보는 지역을 가 보게 되니 아싸 조쿠나!&amp;quot;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그래도 이 일에 화가 나긴 났는지, [[건륭제]]는 이후 조선 사절단이 열하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냉대했다.&lt;br /&gt;
&lt;br /&gt;
사실 [[숭유억불]]을 국책으로 하는 조선 양반의 입장으로써, [[승려|중]]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단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심각한 정치 비화로 확대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 반대 당파에서 '''&amp;quot;저 놈들 [[승려|중놈]]에게 절했대요. [[데헷]]~ 이거 [[나라망신]] ㅋㅋ&amp;quot;''' 이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더군다나 [[유교]] 윤리에서는 자기 목숨 살자고 신념을 굽히는 것을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박지원]]도 [[열하일기]]에 '우리나라의 선비로서 한번 불교와 연관되면 평생 놀림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니 저리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겠지만, '''만약 황상에게 활불(活佛)[* '살아있는 부처'란 뜻으로 판첸 라마에 대한 존칭.]이 이 사실을 알리면''' 큰일날 것이다'라고 언급한다.&lt;br /&gt;
&lt;br /&gt;
이때 받은 [[불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열하일기]]에 나오지 않지만, 이전 사례처럼 처리한 듯하다. [[열하일기]] 기록에 따르면 이전 사신들은 억지로 받았던 [[불상]]을 [[압록강]]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청나라]] 땅에서 버렸다가 걸리면 황제에게 모가지 당할 것이고(…), 조선까지 가져가더라도 왕이 진노하거나 반대파에게 꼬투리 잡히면 모가지 당할 것이니(…), 조선도 아니고 [[청나라]]도 아닌 [[국경]] 지대에서 조용히 처리한 것. 지난한 얘기지만, 만약 저 불상이 현재에도 남아있었다면 못해도 보물급 문화재다. ~~에이, 아까비~~&lt;br /&gt;
&lt;br /&gt;
그런데 [[일성록]]과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조선)|정조]]와 박명원이 사행길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황제가 줬다는 [[불상]]에 대해서 언급한다. 정조가 처분에 대해 묻자, 박명원은 [[영변]]의 모 사찰에 봉안했다고 말한다. 이 불상이 판첸 라마가 선물로 준 그 불상인지, 아니면 판첸 라마의 것과는 별도로 [[건륭제]]가 따로 하사한 불상인지는 불분명하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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