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8E%B8%28%EC%84%B1%EC%94%A8%29</id>
		<title>편(성씨)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8E%B8%28%EC%84%B1%EC%94%A8%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D%8E%B8(%EC%84%B1%EC%94%A8)&amp;action=history"/>
		<updated>2026-07-14T22:43:5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D%8E%B8(%EC%84%B1%EC%94%A8)&amp;diff=454593&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5일 (일) 16:29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D%8E%B8(%EC%84%B1%EC%94%A8)&amp;diff=454593&amp;oldid=prev"/>
				<updated>2017-02-05T16:29: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include(틀:한국의 성씨)]&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한자로는 片과 扁이 있다. 절강(浙江) 편(片)씨는 명 신종 만력제 때 임진왜란 조-명 연합군으로 활약한 편갈송 장군을 시조로 한다. 편씨는 편갈송의 고조 대에 명나라 영종 정통제에게 받은 사성으로, 본래 당나라 종친의 성인 이 씨였으나 편갈송의 고조대에 충절을 높이 산 황제가 일편단심 중 '편'을 성으로 내렸다.[[http://파인뉴스.kr/read.php3?no=11743&amp;amp;section=32|#]] 이후 큰아들 편일이 절강백으로 봉해져 본관도 절강으로 삼게 되었다. 편갈송 장군은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 때도 조선에 파견되어 원군으로 활약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간신 정응태의 모함을 받아 --일단 황제가 만력제다-- 경주 금오산에 정착하게 되고 세 아들도 모두 넘어오면서 중국이 아닌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임진왜란의 원군으로 처음 조선과 인연을 맺은 까닭인지 병자호란, 일제식민지 시기에도 이 성씨들은 의병, 독립운동가로 활약한다. &lt;br /&gt;
&lt;br /&gt;
扁씨는 유래 불명으로, 본관은 희천 편씨 하나다.&lt;br /&gt;
== 유명인 ==&lt;br /&gt;
편(片)씨 성을 쓰는 유명인으로는 가수 [[편승엽]], 편덕화, 소설가 [[편혜영]],  만화가 [[http://www.pictaram.com/user/pyun_hyun_ah/2183272776|편현아]], 기자/앵커 [[편상욱]], 독립운동가 (의성단 단장) [[https://ko.m.wikipedia.org/wiki/%ED%8E%B8%EA%B0%95%EB%A0%AC|편강렬]]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그 외 [[https://ko.m.wikipedia.org/wiki/절강_편씨|이 곳]] 참조.&lt;br /&gt;
== 그 외 ==&lt;br /&gt;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공을 세워 선조(宣祖)의 친서를 받고 조선에 머물며 쓴 편갈송의 시(詩)&lt;br /&gt;
&amp;gt;우연히 처음으로 발디딘 이 땅, 해 돋는 동해가 바로 저긴데&lt;br /&gt;
&amp;gt;끝없이 일렁이는 큰물결 작은 파도 억겁의 세월에 밀려왔는가&lt;br /&gt;
&amp;gt;서북쪽엔 산들이 줄을 이으니 하늘 끝이 여기인가 의심스럽고&lt;br /&gt;
&amp;gt;동남으론 바닷물이 하도 높으니 땅덩이가 그 위에 떠있는 것 같으이&lt;br /&gt;
편갈송이 조선인과 의병들을 얼마나 애절하게 생각했는지는 &amp;lt;마자수(압록강의 옛말)의 별이 되어&amp;gt;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임진왜란에서 편갈송 장군은 평양성(平壤城)전주성(全州城)을 되찾고 울산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탈환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정유재란은 직산(소사평)전투 승리로 종결. 충청도 직산면 소사평에 세워진 &amp;lt;흠치 병부상서 총독 제군문문 편갈송 승첩비 1597년&amp;gt; 등 조선에 있던 조명 연합군의 승첩비는 안타깝게도 일제(日帝)가 모조리 뽑아 버렸다&lt;br /&gt;
. &lt;br /&gt;
남송(南宋) 때 주자학(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의 청년 시절부터 10년간 스승인, 현유(賢儒)이통(李侗,이연평1093~ 1163)의 8대손 이지(李址)가 명나라에서 태자태사를 역임. &amp;lt;&amp;lt;편갈송의 고조 할아버지&lt;br /&gt;
이통과 朱子(주희)의 7년간의 대화와 서신을 기록한 연평답문(延平答問)은 위대한 고전으로 남아있다. 朱子(주자)는 돌아가신 스승 李侗(이통,연평선생)을 죽림정사에 모시고 배향함. 나중에 공자묘(孔子廟)에 배향된다.  &amp;quot;연평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는 처참한 심정이 되었고, 나의 깨달음을 연평(이통) 선생에게 묻지 못함이 한이 된다&amp;quot;(朱子)&lt;br /&gt;
&lt;br /&gt;
당시 한국의 정신적 지향점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역대 인물의 사적을 모아놓은 책인 &amp;lt;今古實記 1905년(광무 9)규장각&amp;gt;의 충훈(忠勳)에 편갈송(片碣頌)이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편, version=30)]&lt;br /&gt;
&lt;br /&gt;
[[분류:성씨/한국]]&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