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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은 정몽주 선생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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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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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7일 (화) 11:52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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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항목 : [[정몽주]] &lt;br /&gt;
&lt;br /&gt;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산에 있는 고려 말 문신 [[정몽주]]의 시신을 안장한 묘소. &lt;br /&gt;
&lt;br /&gt;
1392년 [[이성계]]의 5남이자 훗날 조선 [[태종]]이기도 한 이방원과 술자리를 가지고 난 이후 귀가를 하던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수하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면서 원래 개성 근교 풍덕군(현재의 개풍군)에 안장된 묘소를 용인으로 이장하여서 오늘에 이른 묘소이다. &lt;br /&gt;
&lt;br /&gt;
죽기 전 정몽주는 이방원과 만나 술자리를 나누던 중 이방원이 [[하여가]](드렁칡)를 읊게되자 ~~고려는 망했으니 조선 신왕조에서 일하시오~~ 고려를 망친 반역자 집단으로 들어오라는 권유의 시 구절임을 인식하여 그에 반대하고 거절한다는 화답으로 [[단심가]]를 읊게 되었다. ~~고려를 망하게 한 반역자들과는 뜻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리고나서 말을 타고 귀가를 할 때 개성 선죽교를 건너는 중 이방원이 보낸 부하가 휘두른 철퇴에 직격으로 맞고 낙마하면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lt;br /&gt;
&lt;br /&gt;
정몽주의 시신은 선죽교에서 피투성이가 된 이후 개성 근교에 있는 풍덕군(개풍군) 야산에 안장되었으나 이후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을 하던 중 고인의 명정이 용인땅에 떨어지면서 영천 이장을 포기하고 용인을 장지로 결정하여 부인 경주 이씨의 시신과 합장하면서 조성되었다. &lt;br /&gt;
&lt;br /&gt;
단분으로 봉분된 묘소에 비석, 상석, 망주석 등이 설치되었으며 원래는 둘레돌이 없었던 묘소였지만 1970년 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둘레돌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1980년에는 주변에 있는 민가 3채를 이전하여 묘역 성역화에도 나섰다. &lt;br /&gt;
&lt;br /&gt;
[[분류:지리]]&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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