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91%9C%ED%95%84%EC%83%81</id>
		<title>표필상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91%9C%ED%95%84%EC%83%81"/>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D%91%9C%ED%95%84%EC%83%81&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30T00:28:0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8.0</generator>

	<entry>
		<id>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D%91%9C%ED%95%84%EC%83%81&amp;diff=830573&amp;oldid=prev</id>
		<title>2017년 2월 7일 (화) 12:01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tcatmon.com/w/index.php?title=%ED%91%9C%ED%95%84%EC%83%81&amp;diff=830573&amp;oldid=prev"/>
				<updated>2017-02-07T12:01: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농구 관련 인물(한국)]]&lt;br /&gt;
&lt;br /&gt;
||&amp;lt;:&amp;gt; '''이름''' || 표필상 ||&lt;br /&gt;
||&amp;lt;:&amp;gt; '''생년월일''' || 1968년 2월 17일 ||&lt;br /&gt;
||&amp;lt;:&amp;gt; '''국적''' || 대한민국 ||&lt;br /&gt;
||&amp;lt;:&amp;gt; '''출신학교''' || 부산 동아고 - [[중앙대학교]] ||&lt;br /&gt;
||&amp;lt;:&amp;gt; '''포지션''' || [[센터(농구)|센터]] ||&lt;br /&gt;
||&amp;lt;:&amp;gt; '''신체 사이즈''' || 200Cm ||&lt;br /&gt;
||&amp;lt;:&amp;gt; '''실업입단''' || 1992년 [[안양 KGC 인삼공사|SBS]] 입단[* 정재근, 이상범, 남경원과 함께 창단멤버였다.] ||&lt;br /&gt;
||&amp;lt;:&amp;gt; '''소속팀''' || [[안양 KGC 인삼공사|SBS/안양 SBS 스타즈]](1992~2002) [br] [[창원 LG 세이커스]](2002-03) [br] [[서울 삼성 썬더스]](2003-04) [br]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2004-07) ||&lt;br /&gt;
||&amp;lt;:&amp;gt; '''국가대표팀''' || 1990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베이징 아시안게임]][* 중앙대 3학년때 첫 선발] [br] 1991 고베 ABC ||&lt;br /&gt;
||&amp;lt;:&amp;gt; '''수상내역''' ||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1회 (1993) [br]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orange 동메달}}} [br] 1991 고베 ABC 준우승 ||&lt;br /&gt;
&lt;br /&gt;
== 선수시절 ==&lt;br /&gt;
부산 동아고 시절부터 하드웨어는 좋으나 같은학년의 마산고 [[정재근]], 군산고 [[이창수]], 광주고 채명석 등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센터였다. 장신 센터 덕후(?)였던 중앙대 정봉섭 감독의 스카웃으로 중앙대에 입단한 후 혹독한 조련끝에 본인의 하드웨어를 활용할줄 알게 되면서 중앙대의 주전센터로 자리잡았고, 3학년이던 1990년 중앙대를 대학 3관왕[* 춘계/추계연맹전, 전국체전. [[1990 대학농구연맹전]] 항목 참조]으로 이끌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2m의 신장임에도 기존의 국가대표 센터들과 달리 빼빼 말랐거나(ex&amp;gt; [[김유택]], [[한기범]]) 부상에 시달리지(ex&amp;gt; 서대성, 김윤호) 않는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 국가대표팀에서 중국의 장신센터들을 상대로 맹활약 해줄것이라며 떠들썩 했었다. 많은 기대를 받으며 1990년 스페인 세계선수권과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라이벌 정재근과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나....&lt;br /&gt;
체격은 탄탄했으나 일단 너무 느렸고, 팔이 짧고 점프력은 거의 없다시피하여 중국의 장신 센터들은 물론 가드진의 돌파에 대해서도 림 프로텍션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배 [[정경호(농구선수)|정경호]]는 그래도 블록 하나는 기가막혔는데..] 결국 대표팀의 골밑은 또다시 88kg밖에 안나가는 [[김유택]] 혼자 애쓰면서 막아야만 했고(원조 [[김주성(농구)|국대 노예]] ㅠㅠ), 이후 더 크고 빠른데다 잘하기까지 하는 [[서장훈]]이 등장하면서 표필상은 1991 고베 ABC를 끝으로 다시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다.[* 단신(193cm)이었으나 운동능력이 탈아시아급으로 좋고 슛거리도 길어 3,4번까지 소화가 가능했던 정재근은 이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때까지 꾸준히 국가대표로 뽑힌 반면, 이들과 함께 1990~91년 대표팀의 일원이자 힘만 엄청 세고 느렸던 최병식(193cm, 현대전자 센터)은 [[전희철]], [[현주엽]] 등이 가세한 이후 국대에 뽑히는 일이 없었다.]&lt;br /&gt;
중앙대 졸업 후 연세대 [[정재근]], [[이상범]], 중앙대 동기 남경원과 함께 신생팀 [[안양 KGC 인삼공사|서울방송(SBS)]]의 창단멤버로 합류 [[1992-93 농구대잔치]]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SBS를 6위에 올려놓았고, 다음시즌엔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으로 팀을 [[1993-94 농구대잔치]] 결승까지 진출시키는데 기여한다. 제대 후에도 [[오성식(농구)|오성식]], 정재근 등과 함께 실업팀 SBS의 주전센터로 뛰며 팀을 강호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나, 우승까지는 매번 한뼘차이로 모자라곤 했다.[* 94-95 농대 4강, 95-96 농대 8강, 96-97 농대 6강]&lt;br /&gt;
KBL 출범 원년, [[안양 KGC 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는 데이먼 존슨(196cm)을 시작으로 찰스 메이컨(195cm), 데릴 프루(200cm) 등 센터 포지션의 외인을 선발하였고, 실업시절 주전센터였던 표필상은 수비용 백업선수가 되었다. 00-01 시즌 팀이 데니스 에드워즈(192cm)-리온 데릭스(205cm)-표필상의 트리플 포스트 전략을 내세워 돌풍을 일으킬때[*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라 [[주희정]]-아티머스 맥클래리-무스타파 호프의 서울 삼성에 1승 3패로 탈락했다. 서울 삼성은 해당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잠시나마 주역으로 복귀하였으나, 이후 출장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창원 LG, 서울 삼성, 인천 전자랜드에서 벤치멤버이자 라커룸 리더 역할로서 뛰다 은퇴했다.&lt;br /&gt;
KBL 출범당시 29세였던 선수가 39세까지 무려 11시즌을 뛰었다는 것만 보아도, 단순히 느리고 몸빵밖에 없는 선수가 아니란걸 알수 있다. 특히 2000-01 시즌 [[안양 KGC 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의 트리플 포스트 시스템은 가드 [[은희석]], 슈터 [[김성철]] 외에 빅맨 포지션을 볼수있는 선수 세명을 동시에 투입하며 수비력 강화 및 느린 템포의 패턴 플레이가 중심이 되는 전략이었는데, 이때 표필상은 수비시엔 리온 데릭스를 대신해 상대 장신센터들을 마크(몸빵;;)하는 것은 물론, 공격시에도 당시 평균 5.8 어시스트를 자랑하던 &amp;quot;포인트센터&amp;quot; 리온 데릭스에 못지않는 의외의 패싱 센스를 보여주며 팀의 패턴플레이의 한축이 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 은퇴 후 ==&lt;br /&gt;
현재 은평구에서 농구교실을 운영하면서 은평구 농구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동호회 농구계에서 활동중이다.&lt;br /&gt;
&lt;br /&gt;
== 여담 ==&lt;br /&gt;
선수시절 국내 선수들 중 몇안되는 &amp;quot;훅슛을 던지는 왼손잡이 센터&amp;quot;였다. 사실 지금의 함지훈 같이 주무기로 쓴다고 말하기엔 모자랐고, 파워로 골밑까지 몸싸움해서 들어간 후 왼손으로 &amp;quot;올려놓는 듯한&amp;quot; 훅슛을 자주 구사했다. 당연히 국내선수들 상대로만 통했고, KBL 출범후엔... 상술했던 00-01 시즌 &amp;quot;트리플 포스트&amp;quot; 시절에는 중거리슛도 자주 던졌는데 성공률이 꽤 높았다.&lt;br /&gt;
아들 표경도(F, 195cm)가 명지대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아빠보다 키가 작지만 명지대의 팀 사정상 4-5번을 맡고 있다.)&lt;br /&gt;
실업팀 SBS 시절, 팀의 특성상 SBS 방송출연이 잦았다. 당시 &amp;quot;TV 전파왕국&amp;quot;이란 주말 예능프로가 있었는데, 주장이었던 표필상이 나와 농구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덩크슛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amp;quot;자, 이번에는 덩크슛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덩크슛이란 블라블라~~ 한번 보시죠.&amp;quot;하고는 2m의 신장이 무색하게 덩크슛을 정말 아주 간발의 차이로 성공(이라기엔 레이업 후 림 잡기)시켜 당시 센터라면 샤킬 오닐만 보던 꼬맹이 농구팬들에게 참 멋없던 기억을 심어주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