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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르헤 부루차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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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2T10:22:1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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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2월 6일 (월) 19:46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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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6T19:46: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감독/목록]]&lt;br /&gt;
&lt;br /&gt;
||||&amp;lt;table align=center&amp;gt;http://futbol-1a.com/wp-content/uploads/2014/10/BURRUCHAGA_J_19860625_JM_L.jpg?width=100% ||&lt;br /&gt;
|| 이름 ||  호르헤 루이스 부루차가[* 부르차가 라고도 한다][br](Jorge Luis Burruchaga) ||&lt;br /&gt;
|| 생년월일 || [[1962년]] [[10월 9일]] ||&lt;br /&gt;
|| 국적 || [[아르헨티나]] ||&lt;br /&gt;
|| 출생지 || [[괄레과이]] ||&lt;br /&gt;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 공격수로 알려져 있는데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lt;br /&gt;
|| 신체조건 || 176cm, 70kg[* 170cm 중반이 넘는건 확실한데 180cm, 176, 178등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lt;br /&gt;
|| 프로입단 || 1979년 [[아르세날 FC]][* 연고지의 이름을 따서 흔히 [[아르세날 데 사란디]]로 알려져 있다.] ||&lt;br /&gt;
|| 소속팀 || [[아르세날 FC]] (1979~1981) [br] [[인데펜디엔테]] (1982~1985) [br] [[FC 낭트]] (1985~1992) [br] [[발랑시엔 FC]] (1992~1993) [br] [[인데펜디엔테]] (1995~1998)  ||&lt;br /&gt;
|| 지도자 || [[아르세날 FC]] (2002~2005) [br]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 (2005~2006)[br] [[인데펜디엔테]] (2006~2007)[br] [[CA 반필드]] (2008~2009) [br] [[아르세날 FC]] (2009~2010) [br] [[클루브 리베르타드]] (2011~2012) [br] [[아틀레티코 데 라파엘라]] (2012~2014, 2016) ||&lt;br /&gt;
|| 국가대표 || 59경기 13골 ||&lt;br /&gt;
&lt;br /&gt;
'''엘 부루(El Burru)'''[* 노새라는 뜻]&lt;br /&gt;
'''86년, [[디에고 마라도나]], [[호르헤 발다노]]와 함께 월드컵을 정복한 삼각편대의 일원'''&lt;br /&gt;
'''[[디에고 마라도나|마법사]]의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마법]]을 완성시킨 남자'''&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 소개 ==&lt;br /&gt;
호르헤 부루차가는 아르헨티나 축구계 최고의 레전드 중 한명으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우승멤버 중 한명이다.&lt;br /&gt;
&lt;br /&gt;
유럽 빅클럽에서 활약한 선수가 아니라서 국가대표 동료 [[마라도나]]와 [[호르헤 발다노]]와 달리 국내에 대단히 잘 알려진 선수는 아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아메리카]]득점왕도 할 만큼 실력은 확실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결승전에서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아 넣은 결승골로 축구사에 이름을 남겼다.&lt;br /&gt;
&lt;br /&gt;
== 선수경력 ==&lt;br /&gt;
부루차가는 1962년 괄레과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바로 위에 있는 [[엔트레리오스]]주에 있는 도시이다. [[우루과이]]와 인접한 지역이다.]에서 태어났고, 아르헨티나의 여느 어린 소년들이 그렇듯 축구에 빠져있었고, 아르세날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하며 성장했다. 그래도 나름 아르세날에서 유망주로써 성장한 듯 17세의 나이에 프로데뷔를 하게 된다. 당시 2부리그에 있던 아르세날이지만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 본 [[인데펜디엔테]]로 이적하게 된다.&lt;br /&gt;
&lt;br /&gt;
=== 인데펜디엔테 ===&lt;br /&gt;
&lt;br /&gt;
http://www.somosdiablos.com.ar/media/wiki/111/5/9/7/5/b_20110324225059_jorge_luis_burruchaga_burruchaga.jpg&lt;br /&gt;
&lt;br /&gt;
'''인데펜디엔테의 에이스'''&lt;br /&gt;
'''80년대 초중반, 인데펜디엔테의 짧은 전성기를 함께하다.'''&lt;br /&gt;
&lt;br /&gt;
인데펜디엔테는 누구나 알아주는 아르헨티나 명문팀이지만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4연속으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남미판 챔스로 인데펜디엔테가 총 7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이다.]를 지배하던 최고 전성기 이후는 실력들은 좋은데 성적은 잘 안나오던 좀 시들하던 팀이었다.[* 한편으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에서 포텐을 만개하며 리그에서 맹활약하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존재가 있기는 했으나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84, 85년에서야 리그 우승을 얻은, 그러니까 당시는 별 볼일 없는 팀이었다. 요약하자면 마라도나가 쩔어서 우승을 저지하고 뭐 그런게 아니라 인데펜디엔테가 한물 간 시기였다는 이야기다.]&lt;br /&gt;
&lt;br /&gt;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 그랬던가.&lt;br /&gt;
78년 월드컵 우승에 기여한 [[호르헤 올긴]], [[오스카르 알베르토 오르티스]]. [[미겔 앙헬 오비에도]]등 훌륭한 멤버들이 가득한 팀이었고,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부루차가라는 신예가 자리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부루차가는 82년에서 85년. 3년간 146경기 53골을 집어넣으며 인데펜디엔테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고, 83년에는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며 인데펜디엔테의 새로운 전성기를 알렸다.&lt;br /&gt;
&lt;br /&gt;
83년에 워낙에 활약이 뛰어나다보니 [[코파 아메리카]]에도 불려갔고, 3골로 득점왕을 차지한다.[* 정작 우승은 우루과이가 했다.][* 운이 많이 따른 득점왕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득점왕으로 이름을 올렸다.]&lt;br /&gt;
&lt;br /&gt;
그 다음 해. 84년도에는 남미의 챔피언스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그야말로 팀을 전두지휘하는 활약을 하며 우승컵과 함꼐 6골로 득점왕을 거머쥔 것은 물론, 이어진 클럽 월드컵까지 우승하며 인데펜디엔테의 짧은 전성기를 함께했다.&lt;br /&gt;
&lt;br /&gt;
소속 클럽, 국가대표에서 모두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다보니 유럽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가졌고, 프랑스 리그의 [[FC 낭트]]가 그를 영입하게 된다.[* 지금에야 별 볼일 없는 리그1 팀이 된 낭트지만 82~83 시즌엔 우승을 하기도 하는 등. 80년대 중반 당시엔 치열하게 우승경쟁을 하던 팀이었다.]&lt;br /&gt;
&lt;br /&gt;
=== 프랑스 리그와 말년 ===&lt;br /&gt;
&lt;br /&gt;
http://2.bp.blogspot.com/-j4dfh0MQOw4/VZQBlWCDtyI/AAAAAAAACYE/LH1NMc8hxOI/s1600/Jorge%2BBURRUCHAGA%2BFC%2BNantes.jpg&lt;br /&gt;
낭트 시절&lt;br /&gt;
&lt;br /&gt;
인데펜디엔테에서 프랑스로 간 이후는 사실 트로피만 봐선 선수경력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전성기와, 후술할 월드컵에서의 빛나던 모습은 프랑스 리그에선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다. 부르차가의 문제는 아니고 팀 때문. 부르차가는 85년부터 92년까지 7년간 140경기 27골을 넣고, 85-86 시즌 '리그앙 최우수 외국인 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했지만 소속팀 낭트는 불과 몇년사이 우승권과 멀리 떨어진 그저그런 팀으로 바뀌어 있었다.&lt;br /&gt;
&lt;br /&gt;
92년에 발랑시엔으로 이적하였고 1시즌간 32경기 10골을 넣게 되는데, 발랑시엔으로 이적할 때, 혹은 이적한 이후[* 이렇게 표기한 이유는 작성자의 기억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알고있는 위키러의 수정을 바란다.] 당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가 이적제의를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는 후일담이 있다.&lt;br /&gt;
부루차가는 여러모로 마르세유와 엮여있는데, 전성기였던 마르세유의 몰락을 촉발한 승부조작 사건에 부루차가가 연루되어 있다.&lt;br /&gt;
사제한 내용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s-2|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역사]] 항목을 잘 읽어보면 알수 있다.&lt;br /&gt;
결과적으로 돈을 받고 승부조작을 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았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개인으로는 무죄였으나 발랑시엔은 3부로 강등. 다음해에는 자격 취소로 4부로 강등되며 부루차가는 발랑시엔을 떠나야만 했다. 95년에 친정팀 인데펜디엔테로 돌아와 3년간 더 뛰고 89경기 19골을 넣으며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도 1회 하는 등. 빛나는 말년을 보내고 은퇴하게 된다.&lt;br /&gt;
&lt;br /&gt;
== 국가대표 ==&lt;br /&gt;
&lt;br /&gt;
http://s.weltsport.net/bilder/spieler/gross/7137.jpg&lt;br /&gt;
&lt;br /&gt;
'''1983년 부터 1990년까지. 7년간의 짧지만 빛났던 국가대표 경력'''&lt;br /&gt;
&lt;br /&gt;
'''발다노 - 마라도나 - 부루차가'''[* 작성자가 일부러 만든 내용이 아니라 피파 시리즈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한 3인방이다. http://scontent.cdninstagram.com/t51.2885-15/s480x480/e35/13257145_282850002060098_1029041885_n.jpg?ig_cache_key=MTI2MzIzMjg2Njg0MTQ4Njg2MQ%3D%3D]&lt;br /&gt;
&lt;br /&gt;
부루차가는 1983년의 활약으로 코파 아메리카 엔트리에 들게 되었고,  상술했듯 코파 아메리카에서 3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을 차지한다.&lt;br /&gt;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부루차가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센세이션한 국가대표 데뷔였다.&lt;br /&gt;
&lt;br /&gt;
이후 국제대회는 없었기에 국가대표로써 출전하며 경력을 이어가던 중. 드디어 부루차가의 선수 커리어에 있어 최고의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http://essaenossa.epoca.globo.com/img/1986/grupo.jpg&lt;br /&gt;
'''1986년 멕시코 월드컵'''&lt;br /&gt;
&lt;br /&gt;
월드컵에서 선수가 기용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lt;br /&gt;
부루차가가 기용된 이유는 개인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공격과 미드필더진에서 모두 활동하는 폭 넓은 움직임과 현란한 테크닉, 마라도나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도 발다노와 같은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연결할 수 있는 패스 능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호흡'''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http://www.fm-base.co.uk/forum/attachments/football-manager-2013-tactics-training/328704d1365515427-albicelestes-argentina-1986-1990-whos-your-maradona-formation.jpg&lt;br /&gt;
1986년도의 아르헨티나의 엔트리인데, 예전의 포메이션까지 완벽히  구성된 내용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마라도나와 발다노, 부루차가는 삼각편대를 이루며 움직였다.&lt;br /&gt;
&lt;br /&gt;
단순히 이야기 하면 마라도나가 전진하면 부루차가가 패스하고, 부루차가가 전진하면 마라도나가 패스하고 하는 형식이었는데&lt;br /&gt;
타겟 플레이에 능한 발다노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마라도나와, 결정력과 테크닉은 두말하면 서러운 부루차가가 그 뒤에 버티고 있으니 공격력 하나는 최고였다.&lt;br /&gt;
[[차범근]][*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최순호]], [[조광래]], [[박경훈]]등. 역대급 엔트리를 가졌던 대한민국도 선전했지만 이 삼각편대에 무너졌고&lt;br /&gt;
&lt;br /&gt;
[[엔조 프란체스콜리]]가 이끌었던 우루과이는 골키퍼와 수비수들의 엄청난 선방[* 심지어 골라인에서 헤딩으로 걷어낸 것도 있다!!]과 온갖 기회들을 발다노가 신나게 날려댄 덕분에 결과만 1:0이었다 뿐이지 마라도나와 부루차가에게 그야말로 관광을 당했다.[* 유일한 결승골을 만들어낸 킬패스가 부루차가에게서 나왔다.]&lt;br /&gt;
&lt;br /&gt;
[[잉글랜드]]는 선전하기는 했지만 축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2골을 먹으며 패배했으며&lt;br /&gt;
&lt;br /&gt;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신인상을 수상한 [[엔조 시포]]가 이끈 벨기에 역시 4강전인 만큼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lt;br /&gt;
축구신 포스를 뽐낸 마라도나에게만 2골을 얻어맞으며 탈락한다.&lt;br /&gt;
&lt;br /&gt;
어째 부루차가 이야기는 별로 없고 마라도나 이야기 밖에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1986년의 월드컵은 마라도나, 마라도나, 마라도나의 연속이었다. 발다노, 부루차가 모두 뛰어난 선수지만 진짜 그 당시에는 마라도나를 위한 조연처럼 보였다.&lt;br /&gt;
&lt;br /&gt;
하지만 부루차가는 '''바로 다음 경기의 주인공이 된다'''.&lt;br /&gt;
&lt;br /&gt;
1986년 월드컵. 내내 마라도나가 주인공이었지만 결승전은 달랐다.&lt;br /&gt;
&lt;br /&gt;
부루차가는 전반전 23분, 수비수 브라운의 헤딩골을 만들어내며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이후 마라도나와 콤비플레이에 이은 드리블로 파울을 유도하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도 얻어낸다.&lt;br /&gt;
후반전 엔리케의 쓰루패스에 이은 발다노의 골 때에는 혼자서 수비수들을 달고서 반대편으로 발다노가 침투할 공간을 확보해 낸다.&lt;br /&gt;
그래도 역시 독일은 독일이라 2골로 앞서다가 [[브레메]]의 코너킥을 기점으로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루디 푈러]]의 골로 동점이 되기는 했지만 &lt;br /&gt;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기 내내 대단한 활약을 하지 못한 디에고 마라도나가[* 대단한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라도나를 기준으로 해서다.][* 독일 중원에 있던건 마라도나 본인이 최고의 라이벌로 인정한 [[로타어 마테우스]]와 [[펠릭스 마가트]], [[에데르]] 였다. 이전에 상대하던 팀들과 중원의 무게감부터가 다르니 마라도나가 이전처럼 최고의 활약을 펼치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랐다. 덤으로 골키퍼는 [[슈마허]]에 레프트백은 [[안드레아스 브레메]]였으니... 그야말로 희대의 괴수대결전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수비수 4명 사이를 뚫고 나오는 어마어마한 킬패스를 찔러넣고, 골 결정력 하면 두말하면 섭한 부루차가는 그대로 슛을 떄려넣고&lt;br /&gt;
&lt;br /&gt;
http://worldsoccertalk.com/wp-content/uploads/2014/06/Burruchaga-600x388.jpg&lt;br /&gt;
'''노새, 마법사를 제치고 주인공이 되다.'''&lt;br /&gt;
&lt;br /&gt;
아르헨티나의 2번째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이 된다. 그야말로 커리어 최고의 순간.&lt;br /&gt;
&lt;br /&gt;
&lt;br /&gt;
== 지도자 ==&lt;br /&gt;
 2002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 클루브 리베르타드[*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팀.]에서의 경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르헨티나에서 경력을 이어나간다.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이후 아르헨티나 국대가 한바탕 소동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으로 선임된 에두가르도 바우사는 수석코치로 부루차가를 내세울 것을 밝혔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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