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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JP연합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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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7-13T16:21:5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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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7년 1월 20일 (금) 07:13에 Maintenance script님의 편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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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1-20T07:13: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파일:DJP연합.jpg]]&lt;br /&gt;
1997년 11월 4일 공동합의문을 타결하고 악수하고 있는 DJ와 JP. &lt;br /&gt;
&lt;br /&gt;
[목차] &lt;br /&gt;
== 개요 ==&lt;br /&gt;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을 필두로 한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연합]]의 연합을 의미한다.[* 세가 약해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실 [[박태준]]까지 포함하여 [[호남]]의 [[김대중]]+[[충청]]의 [[김종필]]+[[대구경북]]의 [[박태준]]을 의미하는 [[DJT연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lt;br /&gt;
&lt;br /&gt;
== 계기 ==&lt;br /&gt;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YS에게 패한 후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영국으로 떠나지만 이후 아태재단(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만들며 정치 복귀에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후 1995년 정치 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YS는 물론 자신이 속한 민주당 이기택 총재 등 14대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인사들까지 대놓고 복귀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많았다.&lt;br /&gt;
&lt;br /&gt;
그러자 기존 민주당에서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것을 장담할 수 없었던 DJ가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을 믿고 이를 기반으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아예 새로 창당한다. 그리고 그 결과 90명이 넘던 민주당 의원 중 65명(이 중 13명은 전국구 의원으로 민주당을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기에, 민주당에 남은 채로 사실상 국민회의 소속으로 활동했다) 정도가 국민회의로 대거 이동했고 30여명 정도가 당에 잔류하게 된다.&lt;br /&gt;
&lt;br /&gt;
허나 이는 사실상 야권 지지표를 분열시키는 행동이었고, 결국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야권 표심이 갈라지며 여당인 신한국당이 여유롭게 제1당에 올라서고 국민회의는 의석수 79석에 그치고 만다.[* 민주당은 아예 15석에 그치며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해 몰락하게 되는데, 이들은 훗날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이 된다.] 그리고 이 선거의 패배로 DJ는 대권 가도에 적신호가 켜지게 되었는데, 이때 당시 DJ의 정치참모였던 [[이강래]] 아태재단 연구원이 JP와 연합해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일명 DJP연합 초안을 보고서 형식으로 조언하게 되고, 이를 DJ가 수락하며 1년이 넘는 협상 과정이 시작된다.&lt;br /&gt;
&lt;br /&gt;
== 과정 ==&lt;br /&gt;
김종필은 기존 신민주공화당을 이끌고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하여 노태우-김영삼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김영삼과 민주계에 의해 당내 계파투쟁에서 밀리고 민주자유당에서 사실상 철저한 비주류로 몰락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자 JP는 자신을 따르는 공화계와 YS에 반감을 가진 민정계 일부 세력을 이끌고 독립하여 1995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그렇게 창당한 자민련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리즈시절]]을 찍게 되는데, 지역기반인 충청지역 28석 중 24석을 석권했고, 그 외에도 경기 5석, 경북 2석, 강원 2석을 차지했으며 특히 대구에서는 13석 중 8석을 휩쓰는 기염을 토한다. 참고로 대구의 이같은 반응은 당시 YS정권의 민정계 쳐내기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라고 많이들 분석했다. 그러나 김종필은 애초에 자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와 함께 공동정권을 창출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차기 대권 1순위였던 DJ는 당연히 첫번째 협상 대상이었다.&lt;br /&gt;
&lt;br /&gt;
당시 자민련 안에는 3개 계파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김종필 직계 세력인 충청그룹,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민정계, 그 외 비김종필 세력이 있었다. 그 중 충청그룹의 중심인물은 김용환 부총재였고 민정계는 박철언 의원, 비김종필 세력은 한영수 부총재였다. 당초 충청그룹과 비김종필 세력은 DJP연합에 부정적이었으나 의외로 --권력의 달콤함을 못잊은-- 민정계는 연대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김종필의 결단으로 충청그룹이 이에 찬성하며 DJP연합은 본격 시동을 걸게 된다.&lt;br /&gt;
&lt;br /&gt;
== 진통 ==&lt;br /&gt;
DJP연합은 정치성향이 극도로 상반된 DJ와 JP의 연합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매우 부정적이었는데 당시 모 여론조사에선 무려 70퍼센트가 넘는 국민들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DJ 자신도 지지기반이 날아갈 것을 꽤나 우려해서 독일의 신호등 연정 등 이론적 기반을 만드는데 주력했다.&lt;br /&gt;
&lt;br /&gt;
또한, 김종필은 연대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갈지자(之字) 행보를 보이면서 DJ 측을 초조하게 했다. (아무래도 몸값 올리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와 별개로 DJP연합이 완성되자, JP는 2인자를 자처하며 DJ에게 매우 공손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연합 그리고 정권교체 ==&lt;br /&gt;
1997년 11월 4일 김종필의 청구동 자택에 김대중 후보가 찾아왔고 사실상 연합을 마무리짓는다. (DJ가 나갈 때 JP가 90도 인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한광옥 DJ 비서실장은 이를 보고 진정한 정치 고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lt;br /&gt;
&lt;br /&gt;
연합 내용은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첫째.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총재로 하고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 총재로 한다.&lt;br /&gt;
둘째. 제16대 국회에서 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합의하며 실세형 총리로 한다.&lt;br /&gt;
셋째. 모든 경제부처의 임명권은 총리가 가지며 지방선거 수도권 광역단체장 중 [[최기선|한 명]]을 자민련 소속으로 한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연합 결과 DJ는 충청에서 무려 43만여표 차이를 벌리며 대선 승리를 거머쥔다. (당시 총 득표차는 39만여표 차였다.) 또 TK에서도 득표율 14%가 나오는 기염을 토했고,[* 당시 TK는 YS가 집권하고 있던 신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꽤 있었다. --그런데도 14%밖에 못받았다.-- --박태준 입지 좁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후 DJ가 동진 정책을 펴는데 자민련 측 인물들이 선봉장이 된다. 합의대로 경제관료들도 김종필이 지명하였는데 이들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된다. 또한 지긋지긋하게 DJ를 괴롭혔던 색깔론에서도 방파제가 되면서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그나마 반발을 무마시키며 대북정책을 추진하게 된다.&lt;br /&gt;
&lt;br /&gt;
== 관련 항목 ==&lt;br /&gt;
 * [[제15대 대통령 선거]]&lt;br /&gt;
 * [[3당 합당]]&lt;br /&gt;
 * [[새정치국민회의]] &lt;br /&gt;
 * [[자유민주연합]]&lt;br /&gt;
&lt;br /&gt;
[[분류:정치]]&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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