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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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시즌 진행 중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레알 마드리드 CF/16-17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F조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도르트문트
(Dortmund)
스포르팅 CP
(Sporting CP)
바르샤바
(Legia)
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F
정식 명칭Real Madrid Club de Fútbol
별칭Blancos, Merengues, Vikingos
창단1902년 3월 6일[1]
구단 형태시민구단[2]
소속 리그프리메라 리가(Primera División de España)
연고지마드리드(Madrid)
홈 구장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Estadio Santiago Bernabéu, 81,044명 수용 가능)
리저브 클럽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Real Madrid Castilla CF)
라이벌FC 바르셀로나(FC Barcelona) - 엘 클라시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lético de Madrid) - 데르비 마드릴레뇨
회장플로렌티노 페레스(Florentino Peréz Rodriguez)
감독지네딘 지단(Zinedine Yazid Zidane)
주장세르히오 라모스(Sergio Ramos García)
부주장마르셀루(Marcelo Vieira da Silva Júnior)
홈페이지[1]
한국 팬 페이지[2]
[3]
전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2위[3]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가레스 베일(Gareth Bale)
(2013년, From 토트넘 핫스퍼, 1억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앙헬 디 마리아(Ángel Fabián Di María Hernández)
(2014년, T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500만 유로)
리그 최다 출장라울 곤살레스(Raúl González Blanco) - 550(1994-2010)
리그 최다 득점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dos Santos Aveiro) - 483(2009-)
우승 기록
프리메라 리가
(32회, 최다 우승)
1931/32, 1932/33, 1953/54, 1954/55, 1956/57, 1957/58,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1966/67, 1967/68, 1968/69, 1971/72, 1974/75, 1975/76, 1977/78, 1978/79, 1979/80,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1996/97,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11/12
코파 델 레이
(19회)
1904/05, 1905/06, 1906/07, 1907/08, 1916/17, 1933/34, 1935/36, 1945/46, 1946/47, 1961/62,
1969/70, 1973/74, 1974/75, 1979/80, 1981/82, 1988/89, 1992/93, 2010/11, 2013/14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9회)
1988, 1989, 1990, 1993, 1997, 2001, 2003, 2008, 2012
코파 에바 두아르테
(1회)
1947
코파 데 라 리가
(1회)
1984/85
UEFA 챔피언스 리그
(11회, 최다 우승)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1965/66, 1997/98, 1999/00, 2001/02, 2013/14,
2015/16
UEFA 컵
(2회)
1984/85, 1985/86
UEFA 슈퍼컵
(3회)
2002, 2014, 2016
인터컨티넨탈컵
(3회)
1960, 1998, 2002
FIFA 클럽 월드컵
(1회)
2014
2016-17 시즌 유니폼
HOMEAWAYTHIRDGK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REYES DE EUROPA[4]
레알 마드리드 CF 관련 문서
산하
스포츠단
축구레알 마드리드 CF ·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 레알 마드리드 CF C · 레알 마드리드 CF 칸테라
농구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B
역사와 문화역사역사 · 챔피언스 리그 · 유니폼 · 갈락티코스 · 상대 전적
역대 시즌13-14 · 14-15 · 15-16 · 16-17
문화응원가 · 레알 마드리드 TV · Hala Madrid(잡지)
관련 상식더비 매치엘 클라시코 · 데르비 마드릴레뇨
기타오해
구단 시설경기장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바클레이카드 센터[*a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의 경기장이다.]
훈련 시설발데베바스
기타시우다드 레알 마드리드 · 관광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구 명가이자, 수없이 많은 슈퍼스타들이 모여드는 축구클럽의 제왕.

UEFA 챔피언스 리그, 라 리가 양대 최다 우승, UEFA 랭킹 최다 1위 클럽.


1 개요

스페인 마드리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 산하 팀으로 리저브 팀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농구 팀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등이 있다.
프리메라 리가가 1928년 창설된 이후로 한 번도 강등당하지 않고 1부 리가에 머무르고 있다. 스페인, 혹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고[5], 범위를 유럽 전역으로 넓혀도 가장 거대한 클럽으로 첫손에 꼽힌다. 또한, 유럽 각지의 220개 축구 클럽을 대변하는 ECA(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의 창립 회원 열여섯 클럽 중 하나이기도 하다. 클럽의 규모와 인기에 따른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서도 항상 순위권을 기록하며, 2013~15년에는 뉴욕 양키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보스턴 셀틱스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팀들을 제치고 3년 연속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Los Blancos('흰색'의 복수형)'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 전통적으로 백색이 클럽의 상징색이고, 창단 때부터 단 한 번도 다른 색으로 바뀌지 않았다. 클래식한 흰색을 쓰는 유명 클럽이 생각보다 적기도 하고 구단의 인지도도 높다 보니, '흰색 스포츠 팀' 하면 레알 마드리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편 레알이라는 타이틀, 로고의 왕관 디자인, 그리고 흰색에 연보라색(혹은 파란색 계열)과 노란색을 조합하는 팀 컬러 등으로 인해 다른 팀에 비하면 귀족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편이다.


2 평가

국제 축구 연맹(FIFA)과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클럽.

우선 유럽 전역을 통틀어 리그 우승 30회를 넘긴 클럽은 극히 드문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는 32회의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라 리가뿐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 11회 우승 역시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 2021-12-09 21:40:57 기준, 1992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전후로 모두 최다 우승 팀이다. 리그와 챔스 양쪽에서 압도적인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4대 리그의 최다 우승 팀들인 리버풀, AC 밀란,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를 합해도 17회이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우승 횟수뿐 아니라 통산 출전 횟수, 경기 수, 승, 승률, 승점, 8강 진출 횟수, 4강 진출 횟수, 결승 진출 횟수까지 모든 부분에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는 대회 최고의 팀이다.


'FIFA 20세기 최고의 클럽' 트로피

이러한 대단한 우승 기록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권위 높은 리그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쌓은 업적 때문에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 축구 연맹(FIFA)과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클럽으로 선정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선 투표 방식으로 선정한 FIFA의 순위에서는 2위를 포함한 다른 클럽들이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을 넘기지 못한 가운데 혼자서만 42.35%를 쓸어 담았고, 좀 더 객관성을 고려하여 포인트 집계 방식을 채택한 IFFHS의 순위에서도 역시 2위 유벤투스를 1만 점이라는 큰 점수 차로 누르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곧바로 2차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는 등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었다. 이후 04/05 시즌부터 09/10 시즌까지 6년 연속 챔스 16강 탈락을 겪으며 '16강 마드리드'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지만,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여 이 징크스를 깬 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체제하에서 최초로 두 자릿수 우승에 도달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샬케 원정 6-1, 바이에른 원정 4-0 대승을 거둬 독일 원정 경기에서 10년 넘게 승리가 없었던 징크스까지 극복해 위상을 완전히 되찾고 매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직전 5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매겨지는 UEFA 클럽 랭킹에서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팀이기도 하다. 랭킹 산정이 시작된 1979년부터 총 39시즌 중 12번 1위를 차지, 7번 1위에 오른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를 상당히 큰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상술한 근거들을 종합할 때, 세계 최고의 축구 명문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레알 마드리드를 고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2.1 UEFA 챔피언스 리그 내 위상

레알 마드리드가 소장한 빅 이어 11개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개편 전 6회 우승, 개편 후 5회 우승으로 두 시기 모두 최다 우승팀이고, 통산 출전 횟수, 경기 수, 승, 승률, 승점, 8강 진출 횟수, 4강 진출 횟수, 결승 진출 횟수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다. 우승은 밀란보다 4회 많고, 4강 진출은 바이에른보다 9회 많으며, 승점 또한 바이에른보다 100점 이상 앞서는 등 2위 그룹과 상당한 차이를 내고 있다.

누적 기록 외에도 최다 연속 참가(20연속, 진행 중), 최다 연속 우승과 최다 연속 결승 진출(5연속), 최다 연속 4강 진출 타이(6연속)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15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우승을 경험한 팀이고(144명, 2위 밀란 87명), 가장 많은 감독들이 우승을 경험한 팀이며(7명), 득점왕을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10번).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넘버링을 하듯 '열 번째', '열한 번째' 같은 식으로 불린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가 9번째 우승에 성공해 사상 첫 두 자릿수 우승에 가까워지자, 스페인어로 '열 번째'를 뜻하는 '라 데시마'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다 실제로 10번째 우승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특정 팀이 우승을 할 때마다 그 우승에 보통명사가 이름으로 붙는다는 것 자체가 그 팀의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참고.


3 역사

레알 마드리드 CF/역사 문서 참조.


3.1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4 역대 엠블럼

1902~19081908~19201920~19311931~19411941~20012001~현재


5 역대 유니폼

레알 마드리드 CF/유니폼 문서 참조.


6 응원가: Hala Madrid y Nada Más

이 응원가는 2014/15 시즌부터 현재까지 대표적으로 쓰이는 곡이다. 다른 곡들을 포함한 자세한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응원가 참조.

원곡편곡[6]
스페인어한국어 번역
Historia que tú hisiste, historia por hacer
Porque nadie resiste, tus ganas de vencer
Ya salen la estrellas mi viejo chamartín
De lejos y de cerca, nos traes hasta aquí
Llevo tu camiseta, pegada al corazón
Los días que tú juegas, son todo lo que soy
Ya corre la saeta, ya ataca mi Madrid
Soy lucha soy belleza, el grito que aprendí
Madrid, Madrid, Madrid, ¡Hala madrid!
Y nada más, y nada más, ¡hala madrid!
가 만든 역사, 가 만들 역사
네 넘치는 승부욕은 아무도 이길 수 없기에,
들이 떠오른다, 내 옛 차마르틴이여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 주네
유니폼을 입고, 내 심장에 붙인다
가 경기하는 날은 내 전부이다
화살이 날아간다, 내 마드리드는 공격한다
나는 투쟁, 나는 아름다움, 이 외침을 나 배웠네
마드리드, 마드리드, 마드리드, 알라 마드리드,
아무것도 더 말고, 아무것도 더 말고, 알라 마드리드!


7 선수단

레알 마드리드 CF 2016-17시즌 스쿼드[*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로마자 성명[*? 로마자 성명의 굵은 글씨는 유니폼에 표기된 이름을 뜻한다.]생년월일신체 조건[*?? 홈페이지 프로필 관리를 제대로 안하는 팀중 하나. 몇년째 선수들 프로필이 그대로이다 신체 변화 기록을 하지않는다.]계약연도계약만료비고
1
코스타리카
GK케일러 나바스Keylor Navas1986.12.15183cm, 78kg20142020
2
스페인
DF다니 카르바할Dani Carvajal1992.01.11173cm, 73kg20132020
3
포르투갈
DF페페Pepe1983.02.26186cm, 81kg200720173주장
4
스페인
DF세르히오 라모스Sergio Ramos1986.03.30182cm, 75kg20052020주장
5
프랑스
DF라파엘 바란Raphaël Varane1993.04.25190cm, 78kg20112020
6
스페인
DF나초 페르난데스Nacho Fernández1990.01.18179cm, 75kg20132020
7
포르투갈
FW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1985.02.05185.1cm, 83kg200920214주장
8
독일
MF토니 크로스Toni Kroos1990.01.04180cm, 78kg20142022
9
프랑스
FW카림 벤제마Karim Benzema1987.12.19183cm, 82kg20092019
10
콜롬비아
MF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íguez1991.07.12177cm, 75kg20142020
11
웨일스
FW가레스 베일Gareth Bale1989.07.16184cm, 74kg20132022
12
브라질
DF마르셀루Marcelo1988.05.12171cm, 75kg20072020부주장
13
스페인
GK키코 카시야Kiko Casilla1986.10.02191cm, 84kg20152020
14
브라질
MF카세미루Casemiro1992.02.23184cm, 80kg20132021
15
포르투갈
DF파비우 코엔트랑Fábio Coentrão1988.03.11179cm, 70kg20112019
16
크로아티아
MF마테오 코바치치Mateo Kovačić1994.05.06178cm, 77kg20152021
17
스페인
FW루카스 바스케스Lucas Vázquez1991.07.01173cm, 70kg20152021
18
도미니카 공화국
FW마리아노 디아스Mariano Díaz1993.08.01178cm, kg2016
19
크로아티아
MF루카 모드리치Luka Modrić1985.09.09170cm, 65kg20122020
20
스페인
MF마르코 아센시오Marco Asensio1996.01.21178cm, 70kg2015
21
스페인
FW알바로 모라타Álvaro Morata1992.10.23187cm, 85kg2016
22
스페인
MF이스코Isco1992.04.21175cm, 74kg20132018
23
브라질
DF다닐루Danilo1991.07.15184cm, 78kg20152021
25
스페인
GK루벤 야녜스Rubén Yáñez1993.10.12188cm, 80kg2015
구단 정보
회장 : 플로렌티노 페레스 / 감독 : 지네딘 지단 / 구장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틀 정보
출처: 영어 위키백과, 마지막 수정 일자: 2017년 2월 1일


8 인사진

기술진경영진
감독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회장플로렌티노 페레스(Florentino Pérez)
수석 코치다비드 베토니(David Bettoni)제1 부회장페르난도 페르난데스 타피아스(Fernando Fernández Tapias)
코치하미두 므사이디(Hamidou Msaidie)제2 부회장에두아르도 페르난데스 데 블라스(Eduardo Fernández de Blas)
골키퍼 코치루이스 요피스(Luis Llopis)제3 부회장페드로 로페즈 히메네스(Pedro López Jiménez)
체력 코치안토니오 핀투스(Antonio Pintus)경영진 비서엔리케 산체스 곤살레스(Enrique Sánchez González)
체력 코치하비에르 마요(Javier Mallo)전무 이사호세 앙헬 산체스(José Ángel Sánchez)
경기 고문첸도(Miguel Porlán Noguera "Chendo")회장실장마누엘 레돈도(Manuel Redondo)
사회 지역 이사호세 루이스 산체스(José Luis Sánchez)


9 스폰서

9.1 메인 스폰서

아디다스에미레이트 항공IPIC


9.2 글로벌 스폰서

한국타이어마호우아우디
마이크로소프트EA 스포츠
휴고 보스셉사


9.3 지역 스폰서

코카콜라니베아 맨사니타스
250px-Coca-Cola_logo.svg.png
STC삼성솔란 디 카브라스
200px-Samsung_Logo.svg.png
NBAD우레두테카테
FUDBT 스포츠STAR


10 라이벌리

10.1 엘 클라시코(El Clásico)

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F
FC 바르셀로나
FC Barcelona
엘 클라시코(El Clàs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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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둘로 나누는 경기.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

시작은 조안 감페르와 스페인을 쿠데타로 장악했던 리베라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리베라가 딱히 레알을 지지한 것도 아니고, 감페르보다 리베라 정권이 빨리 무너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조안 감페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또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한 것이고 리베라와는 관계없었다.

문제는 스페인 내전 시기이다.[7] 이 시기 축구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주젭 수뇰(Josep Sunyol I Garriga)이다. 본래부터 카탈루냐 독립파이면서 강성 좌파였고, 태생적으로 정치가의 아들이면서 카탈루냐 좌익 정파였던 ERC(Esquerra Republicana de Catalunya)의 당원이기도 했으며, 좌익 신문 라 람블랴의 창립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수뇰이 1935년 카탈루냐 축구 협회장이자 바르셀로나 회장이 된다. FC 바르셀로나에 카탈루냐 민족성에 더해서 반 정부 성향이 강해진 것이 이 시기였다. 그리고 1년 후인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터졌고, 수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추종 세력에게 총살당해서 암매장되었다. 일단은 프랑코 세력이라고 추정하긴 하는데, 스페인 내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서 누가 죽였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일단은 프랑코 세력이라는 것이 정설이긴 하다. 참고로 수뇰의 시체가 발견되는 데는 50년 세월과 '수뇰의 친구들'이라는 카탈루냐 민족주의 단체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서 FC 바르셀로나와 수뇰은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반 프랑코 투쟁의 상징이 된다.[8] FC 바르셀로나의 강경한 분리주의와 반 프랑코 성향이 본격화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이 이전의 FC 바르셀로나는 에스파뇰을 포함한 이 지역 축구 협회에 모두 관여하기도 하는 등 딱히 민족 분리나 독립 성향이 강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바르셀로나의 2대 회장이자 최초의 카탈루냐인 회장인 바르톨로메우 테라다스는 카탈루냐 축구 협회장도 겸임하면서 사재를 동원해서 RCD 에스파뇰의 창단에 재정적 지원을 했다. 다만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는 좀 많이 골 때린다. 애초에 스페인 내전 자체가 골 때리지만, 특히 카탈루냐는 바르셀로나 내전까지 겪으면서 난리를 쳤다. 때문에 이 시기를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발로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이다. 진짜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바스크 지역은 대놓고 왕따를 자처해서 남부와는 아무런 연대도 하지 않다가 각개격파되었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조지 오웰카탈로니아 찬가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합집산의 극한을 보여줬다.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나면서 총통의 자리에 오른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 국가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지역에서 지역색을 빼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중에서 가장 강한 타격의 대상이 된 것이 좌익이면서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스페인 내전 시기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카탈루냐 지역이었다.[9] 프랑코는 모든 축구 팀의 명칭은 스페인어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서 영어식으로 'Football Club'의 약자인 'FC'를 사용하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어 문법에 따른 명칭인 'Club de Futbol'의 약자인 'CF'로 바꾸어야 했다.[10] 그리고 스페인 외 민족적이고 지역적인 상징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기를 사용했던 바르셀로나의 엠블럼 역시 교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다만 엠블럼 변천을 보면 잘만 들어 있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한 1940년 프랑코 지지자였던 엔리케 피녜이로(라 메사데아스타 후작)가 바르셀로나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바르셀로나 경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의 취임이었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바르셀로나를 정치 압력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엔리케 피녜이로 회장 재임 시기인 1943년 6월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노골적인 경기 조작이 있었다. 1차전 홈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3 대 0으로 승리한 이후, 차마르틴 경기장에서 벌어진 레알 마드리드의 홈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11 대 1로 승리했던 것이다. 이 경기에서 보안부장이 전반전 시작하기 전에 바르셀로나에 대해 '니들이 경기 뛰는 건 위에서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피녜이로는 이에 대해서 항의하고 사임했다. 이후 바르셀로나 회장직은 프랑코 체제 임명 시기를 짧게 거치다가 오히려 강경한 대응이 더 문제를 야기한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카탈루냐 출신 임명을 거쳐서 자체 선임으로까지 변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스페인 축구 협회는 해당 경기를 무효로 처리했고, 이후에 레알 마드리드 회장으로 취임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 1978년까지 이어진 프랑코 치세에서 바르셀로나는 리그 우승 8번, 코파 델 레이 우승 10번을 차지했고,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는 53-54 시즌 리그 우승을 할 때까지 21년간 무관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프랑코의 실질적인 지원이 있기는 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프랑코 정권의 비호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어려우나, 실제로 21년 무관까지 겪은 레알 마드리드가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은 프랑코보다는 회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 발발 시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라파엘 산체스 게라는 대표적인 공화주의자라서 프랑코의 정적이었고 내전 이후 감옥살이를 했다.[11] 부회장과 재무 담당자도 같이 죽었고, 후임인 후안 호세 바예호와 안토니오 오르테가 역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이름도 올리지 못 했다. 특히 안토니오 오르테가는 이쪽도 바르셀로나의 수뇰 같은 공화주의 좌파라서(공화군 소령이었다) 내전 이후 군사 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했다. 프랑코 독재가 가장 심했던 초기 시기 동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런던으로 도망쳐서 변호사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프랑코의 스페인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우파 국가주의와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민족주의 + 좌익적 성향에 더해서 저 앞서 언급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승부조작 사건의 임팩트가 더해져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라는 해묵은 민족 간 대립이 오히려 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진짜로 이 시기에도 심각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것이, 이 시기를 대표한 바르셀로나 선수라고 한다면 바르셀로나 골수 팬들 중에서 일부는 요한 크루이프보다도 사랑한다는 라슬로 쿠발라를 들어야 할 것인데, 쿠발라는 말년을 왕년의 라이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에스파뇰에서 보냈다. 그리고 쿠발라는 에스파뇰에서 선수 말년을 보낸 것과 별 상관없이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지내기도 했다. 이 시기 레알과의 라이벌 의식이 진짜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민족주의 의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바르셀로나가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권을 넘겨준 영향인지는 좀 심각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고려를 해야 할 것은, 바르셀로나와 에스파뇰의 관계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카탈루냐의 카스티야에 대한 감정은 역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쿠발라의 일화로만 이를 유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여지가 있다. 반대의 예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남았으나 그의 영입 과정에서부터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립이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먼저 접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개입으로 공유(...)를 하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바르셀로나 측이 이를 포기하면서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때문에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선수 이적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12] 드물게 있었던 두 팀 간 이적에서 루이스 피구 사건만큼 두 팀의 갈등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 것이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부주장의 위치까지 오르며[13] 바르셀로나 팬(꾸레)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피구 본인도 레알 마드리드를 신나게 디스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심장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2000년에는 무시무시한 계약 파동 끝에 바르셀로나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피구와 에이전트가 주급 인상을 요구하며 레알과 바르셀로나 사이를 오가다가 강제 이적 협상 허가 조항(바이아웃)을 발동한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결국 시즌이 지나고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인 누 캄프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가 열린 날, 10만 꾸레들에게 FUXX과 수전노 등 야유를 한 몸에 받으며(일명 '돼지 머리 폭격') 경기를 망쳤다. 그 후 약간의 정신병을 앓았다는 설도 있다.

이렇듯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더비 매치, 즉 엘 클라시코는 그 명성답게 화려하면서도 두 지역 간의 엄청난 반감정 때문에 누구 하나 작살이 날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로 진행되곤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주요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페인 대표팀이 08 유로, 10 월드컵, 12 유로에서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두고 두 팀 선수들 사이에 스페인 국가대표라는 유대감이 생기면서 꽤 훈훈한 분위기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14-15 시즌부터는 피케가 망치고 있다 다만 10년도에 레알 마드리드가 대패했을 당시 라모스가 돌아버려 메시와 푸욜, 차비 에르난데스를 차고 때렸던 것처럼 승부에서 지면 난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지역감정이나 팀 간의 적개심과는 별개로 레알 마드리드의 곤살로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가 벌어지면 맨 처음 하는 행동이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찾아가서 껴안고 뽀뽀하고 별 짓을 다하는 것이었다. 메시 역시 이렇게 행동하는 이과인을 흔쾌히 받아들였었다. 엘 클라시코이기 이전에 같은 국적의 동질감 때문에 메시와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분이 깊다.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출신들이 아닌 데다 같은 국대 선수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거니 팬들 역시 오히려 보기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엘 클라시코 문서 참조.


10.2 데르비 마드릴레뇨(Derbi Madrileño)

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F
클루브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Club Atlético de Madrid
데르비 마드릴레뇨(Derbi Madrileño)

전통적인 마드리드 지역 라이벌이다. 해당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아틀레티코가 라이벌다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주목도나 화제성이 낮았다. 하지만 2010년 이후로 아틀레티코가 유럽 최정상급 팀으로 성장하고 레알 마드리드에게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이더니, 3년 사이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2번이나 만나 명성이 크게 올랐다. 자세한 내용은 데르비 마드릴레뇨 문서 참조.

그 외 라이벌은 발렌시아 CF, 아틀레틱 클럽, CA 오사수나, FC 바이에른 뮌헨 등이 있다.


11 관련 기록

11.1 우승/준우승 기록

※굵게 표시되어 있는 것들은 최다 우승 기록입니다.

1931/1932, 1932/1933, 1953/1954, 1954/1955, 1956/1957, 1957/1958, 1960/1961, 1961/1962, 1962/1963, 1963/1964, 1964/1965, 1966/1967, 1967/1968, 1968/1969, 1971/1972, 1974/1975, 1975/1976, 1977/1978, 1978/1979, 1979/1980, 1985/1986, 1986/1987, 1987/1988, 1988/1989, 1989/1990, 1994/1995, 1996/1997, 2000/2001, 2002/2003, 2006/2007, 2007/2008, 2011/2012
  • 준우승: 23
1928/1929, 1933/1934, 1934/1935, 1935/1936, 1941/1942, 1944/1945, 1958/1959, 1959/1960, 1965/1966, 1980/1981, 1982/1983, 1983/1984, 1991/1992, 1992/1993, 1998/1999, 2004/2005, 2005/2006, 2008/2009, 2009/2010, 2010/2011, 2012/2013, 2014/2015, 2015/2016
1904/1905, 1905/1906, 1906/1907, 1907/1908, 1916/1917, 1933/1934, 1935/1936, 1945/1946, 1946/1947, 1961/1962, 1969/1970, 1973/1974, 1974/1975, 1979/1980, 1981/1982, 1988/1989, 1992/1993, 2010/2011, 2013/2014
  • 준우승: 20(최다)
1902/1903, 1915/1916, 1917/1918, 1923/1924, 1928/1929, 1929/1930, 1932/1933, 1939/1940, 1942/1943, 1957/1958, 1959/1960, 1960/1961, 1967/1968, 1978/1979, 1982/1983, 1989/1990, 1991/1992, 2001/2002, 2003/2004, 2012/2013
1955/1956, 1956/1957, 1957/1958, 1958/1959, 1959/1960, 1965/1966, 1997/1998, 1999/2000, 2001/2002, 2013/2014, 2015/2016
  • 준우승: 3
1961/1962, 1963/1964, 1980/1981
Example.jpg
10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
1984/1985, 1985/1986
1970/1971, 1982/1983
2002, 2014, 2016
  • 준우승: 2
1998, 2000
  • 코파 데 라 리가(Copa de la Liga)
    • 우승: 1
1984/1985
  • 준우승: 1
1982/1983
1988, 1989, 1990, 1993, 1997, 2001, 2003, 2008, 2012
  • 준우승: 5
1982, 1995, 2007, 2011, 2014
  • 코파 에바 두아르테(Copa Eva Duarte)[14]
    • 우승: 1
1947
1960, 1998, 2002
  • 준우승: 2
1966, 2000
2014


11.2 기타

11.2.1 이적료


11.2.2 출장/득점

  • 통산 출장 기록
    • 통산 최다 출장: 라울 곤살레스(Raúl González Blanco), 741(1994~2010)
    • 라 리가 최다 출장: 라울 곤살레스(Raúl González Blanco), 550(1994~2010)
    • 코파 델 레이 최다 출장: 산티야나(Santillana), 84(1971~1988)
    •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출장: 이케르 카시야스(Iker Casillas), 152(1999~2015)
    • 최연소 출장: 마르틴 외데가르드(Martin Ødegaard), 16세 157일(2015년 5월 23일)
  • 통산 득점 기록
    • 통산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364(2009~)
    • 라 리가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260(2009~)
    • 코파 델 레이 최다 득점: 산티야나(Santillana), 49(1971~1988)
    •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78(2009~)
  • 시즌 득점 기록
    • 전 대회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61(2014/2015)
    • 라 리가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48(2014/2015)
    • 코파 델 레이 최다 득점: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ás), 12(1960/1961)
    •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17(2013/2014)


12 이야깃거리

12.1 레알 마드리드에 관한 오해

레알 마드리드 CF/오해 문서 참조.


12.2 명장들의 무덤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은 전 세계의 명장들이 노리는 자리인데, 수뇌부의 인내심이 부족하여 부진이 찾아오면 얼마 안 돼서 해임당하기 때문에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린다.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 리그 세 개의 대회에서 한 시즌에 못해도 1대회는 꼭 따야 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엄청나게 큰 자리이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오래 하려면 레알 수뇌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하며, 팬들에게는 '재미있고 화끈한 축구 구사' 내지는 '리그 우승 전력'을 시즌 내내 유지하여야 한다.


12.2.1 라몬 멘도사 재임기

  • 1990년: 스완지 시티레알 소시에다드를 맡으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89년에 부임한 존 토샥 감독은 재임 첫 시즌에 라 리가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었으나, 2시즌 째인 1990/91 시즌 초반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가 경질된 배경에는 당시 팀의 주전이던 마놀로 산치스와의 갈등도 한몫했는데, 실제로 그가 1990년에 경질되고 나서 "산치스는 최악의 인간이다. 그를 만난 건 내 생애 최대의 불운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1999년에 그가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 1991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두 번째로 감독직에 올랐지만, 1991년 1월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샤에게 지는 바람에 2개월 만에 경질.
  • 1992년: 1989/90 시즌에 레알 사라고사를 5위까지 끌어올린 라도미르 안티치가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1991년 3월에 감독직을 맡았으나, 이사진이 레오 베인하커르 감독을 다시 영입하기 위해 경질.
  • 1992년: 레오 베인하커르가 이사진의 지지로 두 번째 감독직 수행을 시작하나, 6개월 만에 무관으로 경질.
  • 1994년: 알바세테 발롬피에를 2년 연속 승격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은 베니토 플로로가 1993년에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루었지만, 1994년 1월 8일에 바르샤를 상대로 호마리우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0-5로 지는 바람에 2개월 만에 경질. 그 공백을 비센테 델 보스케가 메꾸었다.


12.2.2 로렌소 산스 재임기

  • 1995년: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감독으로 시작하여 UD 테네리페 감독 시절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고 UEFA컵 진출권을 따낸 베테랑 지도자 호르헤 발다노가 1994/95 시즌에 라 리가 우승을 이루어냈지만, 1995/96 시즌 초반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
  • 1996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이끈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 감독이 1995/96 시즌 도중에 부임했지만, 시즌 막판에 챔스 진출 실패와 그해 챔스 8강 탈락의 책임을 지고 해임당함. 그 공백을 또다시 델 보스케가 메꾼다.
  • 1997년: AC 밀란 출신 명장 파비오 카펠로는 그 해에 라 리가 우승을 이끌어냈으나, 경기 내용이 지루해서 해고당함.
  • 1998년: 32년 만에 챔스 우승을 이끈 유프 하인케스 감독 역시 시즌이 끝나고 경질당함.
  • 1999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 4강까지 진출시킨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엘 클라시코에서 1무 1패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시즌 도중에 경질당함.
  • 1999년: 존 토샥이 레알 마드리드에 복귀하나, 그해 11월에 경질당함.


12.2.3 플로렌티노 페레스 재임 1기

델 보스케가 2003년까지 4년간 감독직을 맡고 물러난 이후 페레스 회장의 감독 경질 레이스가 다시 시작되었다. 애초에 페레스의 갈락티코스 정책은 감독보다 선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2004년: 전 맨유 수석 코치인 카를로스 케이로스가 델 보스케의 후임으로 부임하나, 한 시즌 만에 경질당함.
  • 2004년: 전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는 단 6경기만 치르고 경질당함.
  • 2004년: 레알 마드리드 주전 선수 출신인 마리아노 가르시아 레몬이 시즌 도중에 취임했으나 3개월 만에 경질당함.
  • 2005년: 브라질 선수를 대거 영입한 전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 반델레이 룩셈부르구는 1시즌도 못 채우고 2005년 12월에 무관 상태로 경질당함.
  • 2006년 -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으로 재임 중이던 후안 라몬 로페즈 카로가 1군 감독으로 승진했으나, 5개월 만에 경질당함.


12.2.4 라몬 칼데론 재임기

페레스가 물러난 뒤 칼데론이 취임하여 효율적인 선수단 운영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감독에 대한 인내심은 커지지 않았다.

  • 2007년: 파비오 카펠로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 복귀하여 라 리가 우승 타이틀을 따냈지만, 1996/97 시즌 때와 같은 이유로 경질당함.
  • 2008년: 전 헤타페 CF 감독 베른트 슈스터도 2007/08 시즌에 라 리가 우승 타이틀을 따냈지만, 2008/09 시즌 도중에 성적 부진으로 해고당함.[18]


12.2.5 플로렌티노 페레스 재임 2기

  • 2009년: 전 세비야 FC, 토트넘 핫스퍼 감독 후안 데 라모스가 27전 18승 1무 8패라는 준수한 성적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여름에 계약 연장에 실패하고 물러남.
  • 2010년: 비야레알을 챔스 4강에 진출시킨 명장 마누엘 페예그리니 역시 코파 델 레이 조기 탈락, 라 리가 준우승, 챔스 16강 탈락으로 인해 경질당함.

이후 주제 무리뉴가 2010년부터 3년간 연속으로 유임하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역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며 2017년까지 계약 연장이 될까 싶었지만... 또 목이 날아갔다. 그렇게 새로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 라파엘 베니테스도 이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한 엘 클라시코에서 대패해 경질설이 올랐다가 결국 발렌시아 원정에서 2-2 무승부로 결국 경질되었다. 그 후로 팀의 레전드 지네딘 지단이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12.2.6 여담

  • 전통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왕실의 클럽, 명문 클럽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고결한 서포팅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실제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현지 팬들을 보면 관전 태도도 비교적 질서 있고 차분한 편이다. 그런 데에 기인하여 한국 서포터들도 대체로 자기네 서포팅 기믹에 대해서 '황족'이라고 한다.[19] 그런데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많이 보러 오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도 있긴 하다. 팬들 중에는 보다 정열적인 응원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10/11 리가 32라운드 엘 클라시코를 보면 북도 치고 응원가도 크게 부른다.
  • 상대 팀, 심지어는 라이벌 FC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네 팀을 상대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면 기립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미첼 살가도에 따르면 "야, 레알 마드리드. 너네 털릴 상대가 없어서 꾸레 같은 병신들한테 털리냐?" 정도로 자기네 선수들을 까는 의미라고 한다. 다만, 크게 패하면 그런 거 없다. 실제로 2008/2009 시즌에 라이벌 바르셀로나한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6-2로 완전히 털리자, 관중들이 전부 화가 나서 경기 끝나기 전부터 다들 우르르 나가버리거나 강하게 야유를 한사발 퍼부었다. 지금까지 기립 박수를 받은 선수로는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 호나우지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가 있다. 다만 토티는 활약을 해서 박수를 받은 게 아니라, 후반전 막판에 교체 투입되면서 일종의 리스펙트를 받은 것이다. 해당 경기는 15-16 시즌 챔피언스 리그 로마전이었는데, 토티가 베르나베우를 방문하는 마지막 경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박수를 쳐준 듯하다.
  •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만큼, 스페인 왕족 중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한창 잘나갔던 1950년대에는 라커룸에 왕세자가 아무 때나 출입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다만 현 스페인의 왕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다. 이 외에도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20] F1 선수 페르난도 알론소,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인 플라시도 도밍고 역시 레알 마드리드 팬으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마찬가지로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는 바르셀로나의 팬이다. 사이가 안 좋아서 절교까지 했던 두 사람이지만,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화해하고 우정을 쌓게 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
  • 공식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트로피를 들고 마드리드의 시벨레스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는데,[21] 팀의 주장이 광장을 꽉 채운 선수들과 서포터들 앞에서 중심부 분수의 시벨레스 여신상에 키스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런 관례로 스스로가 여신의 가호를 받는 클럽,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는 자부심을 고취하는 듯하다. 이 때문에 우승을 많이 이끌었던 라울 곤살레스는 '여신의 남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라모스는 여기서 우승컵을 박살내기도
  • 2015년, 일렉트로닉 아츠와 3년간 독점 계약을 체결하여 위닝일레븐 2016부터 2018까지는 레알 마드리드를 수록할 수 없게 되었다.
  •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선수들, 감독, 코치들과 모든 관련 직원들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모르면 스페인어를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 2016년 한국 타이어와 스폰서쉽 계약을 체결했다.

13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말말말

레알 마드리드는 금세기 최고의 팀이다.

-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 전 FC 바르셀로나 명예회장
I believe that not to coach Real leaves a void in a coach's career.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되지 않는 것은 감독 경력에 공허함을 남기는 것이다.

- 주제 무리뉴(José Mourinho)
레알 마드리드의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팀의 가치를 대표한다.

- 호르헤 발다노(Jorge Valdano), 전 레알 마드리드 단장 겸 회장 보좌관
한 아이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9번이 되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시저스 킥을 할 거예요.[22]

- 우고 산체스(Hugo Sánchez), CF 파추카 감독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 되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참으로 엄청난 유혹이다. 이미 한 번 해보았더라도 거절하기 어렵다.

-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José María Aznar) 스페인 전 총리[23]
세계에는 많은 최고의 클럽이 있지. 그중에서도 레알은 정상에 있는 하늘 같은 팀이야.

- 루이스 피구(Luís Figo)
레알 마드리드는 축구라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다.

- 크리스토퍼 클라리(Christopher Clarey), 뉴욕 타임스 기자
레알 마드리드는 코카콜라와 같은 존재다.

- 아우구스토 세사르 렌도이로(Augusto César Lendoiro), 전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회장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훈장은 클럽 월드컵 훈장이 아니야. 레알 마드리드 휘장이지.

- 라파엘 베니테스(Rafael Benítez)그 눈부신 휘장을 네가 말아먹으려했어
(호날두가 강팀에게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한 거죠. 레알 마드리드보다 강한 팀은 없으니까요.

- 세르히오 라모스

14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1956년11회
2 벤피카
(Benfica)
1961년2회
3 밀란
(Milan)
1963년7회
4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1964년3회
5 셀틱
(Celtic)
1967년1회
6 맨유
(Manchester Utd.)
1968년3회
7 페예노르트
(Feyernoord)
1970년1회
8 아약스
(Ajax)
1971년4회
9 바이에른 뮌헨
(Bayern)
1974년5회
10 리버풀
(Liverpool)
1977년5회
11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1979년2회
12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1982년1회
13 함부르크
(Hamburg)
1983년1회
14 유벤투스
(Juventus)
1985년2회
15 스테아우아
(Steaua)
1986년1회
16 포르투
(Porto)
1987년2회
17 PSV
(Eindhoven)
1988년1회
18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1991년1회
19 바르셀로나
(Barcelona)
1992년5회
20 마르세유
(Marseille)
1993년1회
21 도르트문트
(Dortmund)
1997년1회
22 첼시
(Chelsea)
2012년1회
ECA (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레인저스
(Rangers)
리옹
(Lyon)
맨유
(Man Utd)
밀란
(Milan)
바르셀로나
(Barcelona)
바이에른
(Bayern)
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아약스
(Ajax)
안더레흐트
(Anderlecht)
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유벤투스
(Juventus)
첼시
(Chelsea)
쾨벤하운
(København)
포르투
(Porto)
2016-17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그라나다데포르티보라스팔마스레가네스
레알 마드리드레알 소시에다드말라가발렌시아
바르셀로나베티스비야레알세비야
셀타 비고아틀레티코아틀레틱알라베스
에스파뇰에이바르오사수나히혼
  1. Madrid Football Club으로 창단.
  2. 시민구단이기 때문에 구단주는 없고, 소시오 중에서 회장이 선출되는 방식이다.
  3. 2016년 기준
  4. 2013/2014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 킥오프를 앞두고 선보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카드 섹션. 스페인어로 유럽의 왕이란 뜻이다. 해당 경기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유럽 대항전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을 맞아 1-0으로 승리했다.
  5. 사실상 두팀이 세계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팀은 UCL 11회 우승 한팀은 트레블 2회...
  6. 가수는 플라시도 도밍고.
  7. 단,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에 프리메라 리가는 당연히 진행이 중단되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 중인데 축구 리그를 진행할 정신이 있을 리가 없다.
  8. 원래는 여기에 좌익 성향도 더해져야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공산주의 패배가 확실해진 이후로 그런 드립 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9. 바스크를 제외한 것은 프랑코 이전에도 바스크는 저항 세력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프랑코가 무너지게 된 것은 ETA를 비롯한 바스크 세력의 저항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그에 비하면 영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10. CF가 레알 마드리드의 그 CF이기 때문에 레알 따라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CF는 평범한 스페인어일 뿐이고, 사용하는 팀도 정말 많다.
  11. 원래는 사형이었으나 내전 중에 공화국 지역의 우익들을 숨겨줘서 사형은 면하고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훗날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다시 59년도에 돌아와서 64년도에 사망했다.
  12. 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사건 이전이긴 하지만 주젭 사미티에르 같은 인물은 선수와 코칭 스태프, 그리고 프런트 생활을 모두 레알과 바르셀로나를 오가면서 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선수, 레알 선수, 바르셀로나 코치, 레알 코치, 바르셀로나 이사 이런 식으로 살았다. 그래서 별명이 왕복 비행기였다.
  13. 당시 주장은 전 바르셀로나 감독이었고 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
  14.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전신.
  15. FIFA 클럽 월드컵의 전신.
  16. 축구 역사상 두번째로 높은 이적료. 당시 한화로 약 1476억.
  17. 맨유, EPL 역사상두번째로 높은 이적료. 한화로 약 1000억.
  18. 슈스터는 시즌 도중 '바르셀로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며 시즌을 포기하는 듯한 뉘앙스로 인터뷰를 한 바 있는데, 정황상 이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19. 그런데 스페인의 원수는 '황제'가 아닌 '왕'으로 칭하므로 제대로 된 말이라면 '왕족'이다.
  20.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삼촌 미겔 앙헬 나달은 바르셀로나에서 8년간 뛴 축구 선수였다.
  21. 반대로 아틀레티코는 넵투노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래서 마드리드 더비는 시벨레스 여신과 넵투노 신의 대결로 묘사되기도 한다.
  22. 아마 본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얘기한 말인 듯하다. 우고 산체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9번이었고 시저스 킥의 달인이었다.
  23.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회장 선거 재출마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