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유에서 넘어옴)

2016~17시즌 진행 중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16~2017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레스터리버풀맨시티맨유
미들즈브러번리본머스사우스햄튼
선덜랜드스완지스토크아스날
에버튼왓포드웨스트 브롬웨스트 햄
첼시크리스탈 팰리스토트넘
2016-17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 A조

맨유
(Man Utd)

페네르바흐체
(Fenerbahçe)

페예노르트
(Feyenoord)

루한스크
(Luhansk)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Manchester United F.C.
정식 명칭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별칭더 레드 데빌스 (The Red Devils)
창단1878년
소속 리그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그레이터맨체스터 주 트래포드 (Trafford)
홈구장올드 트래포드 (Old Trafford)
(75,957명 수용)
라이벌리즈 유나이티드 FC[1],리버풀 FC, 맨체스터 시티 FC
구단주글레이저 가문 (Glazer family)[2]
회장조엘 글레이저 (Joel Glazer) & 아브람 글레이저 (Avram Glazer)[3]
단장에드 우드워드 (Ed Woodward)
감독주제 무리뉴 (José Mourinho)
주장웨인 루니 (Wayne Rooney)
부주장마이클 캐릭 (Michael Carrick)
공식 홈페이지[1]
한국 팬페이지[2]
상장여부상장기업
상장시장뉴욕증권거래소(2012년 ~)
종목코드MANU
전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5위[4]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폴 포그바 (Paul Pogba)
(2016년, From 유벤투스 FC, 1억 500만 유로, 약 8900만 파운드)
최고 이적료 방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2009년, To 레알 마드리드 CF, 9400만 유로, 약 8000만 파운드)
리그 최다 출장라이언 긱스 (Ryan Giggs)
672(1991-2014)
리그 최다 득점보비 찰튼 (Bobby Charlton)
199(1956-1973)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20회 / 최다 우승)
1907/08, 1910/11, 1951/52, 1955/56, 1956/57, 1964/65, 1966/67, 1992/93,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풋볼 리그 챔피언십 (2부)
(2회)
1935/36, 1974/75
FA컵
(12회 / 최다 우승)
[5]
1909, 1948, 1963, 1977, 1983, 1985, 1990, 1994, 1996, 1999, 2004, 2016
풋볼 리그 컵
(4회)
1992, 2006, 2009, 2010
FA 커뮤니티 실드
(21회 /
* 표시 : 공동 우승)
1908, 1911, 1952, 1956, 1957, 1965* , 1967* , 1977* , 1983, 1990* ,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2013, 2016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1968, 1999, 2008
UEFA 컵위너스컵
(1회)
1991
UEFA 슈퍼컵
(1회)
1991
인터컨티넨탈컵
(1회)
1999
FIFA 클럽 월드컵
(1회)
2008
유니폼
어웨이서드골키퍼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잉글랜드 유일의 트레블프리미어 리그, FA컵 최다 우승을 자랑하는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 쓰고 '알렉스 퍼거슨'이라 읽는다.

현재 해축에서 가장 욕을 많이먹는 구단

축구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친, 산업혁명 태동지의 '최초'의 클럽



1 개요

그레이트 맨체스터의 트래포드[6]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 국내에서는 줄여서 맨유, MAN U라고 부른다. 다른 여러 클럽들이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릴 수 있다는 것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2 특징

○ 역사적으로 축구의 대중화와 연관이 깊은 도시: 맨체스터시는 축구가 전세계적인 대중 스포츠로 발돋움하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산업혁명의 태동지이다. 산업혁명에 맞춰 유럽 전역에 이른바 ‘산업도시’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산업도시를 일상적으로 조직한 것은 노동조합이었고 비일상의 문화 영역에서 응집시킨 것은 축구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레저와 스포츠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못했는데, 이 때 축구가 대중 스포츠로 발돋움하게 된다. ‘축구 종주국’ 영국의 축구문화는 거대한 산업도시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열광으로 발전했다. 그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명문 축구 클럽의 연고지는 공업도시(철강도시, 석탄도시, 섬유도시, 무역항)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양상은 19세기 말,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으로 전개되었는데 축구도 인기도 함께 퍼지게 된다. 스페인의 빌바오 광산과 독일의 도르트문트 탄광 지대가 그러했으며 스웨덴의 말뫼,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 이탈리아의 토리노 등이 그러했다. 영국인들에게 축구를 전수받아 제3세계 여러 나라들도 개항과 산업 발달이 전개되면서 축구가 독자적인 문화로 꽃폈다. 즉, 맨체스터는 바로 축구가 대중스포츠로 발돋움하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산업혁명의 태동지이다.
○ 연고지에서 최초로 창단된 축구클럽: 맨체스터시에 '1878년' 산업 혁명으로 탄생한 중산층 노동자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가장 '먼저' 창단했다.
○ 산업 혁명의 빛, 중산층 탄생을 상징: 산업 혁명 당시 맨체스터는 제조업 중심의 도시였기 때문에 이른바 노동귀족이라 불리는 계층의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이들은 높은 임금을 받았고 곧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재생산된다. 중산층은 교육과 교양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흡수한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고, 그 자녀들은 스스로 산업 자본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병원, 학교 등이 만들어지면서 서비스 산업인 3차 산업도 부흥한다. 이 속도 또한 맨체스터가 가장 빨랐다. 이로 인한 여가선용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는데, 여기에 축구라는 근대 스포츠가 빠질 수가 없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클럽이 산업혁명 당시 빛(중산층 노동자 계급 탄생)을 상징하는 것.[7]
○ 축구종주국의 명문 클럽: 불과 10-20년 전 해외축구에 입문한 국내 젊은 사람들은 최근 몇 년을 보겠지만,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축구종주국' 영국 현지팬들은 아니다. 빅리그 명문을 논할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자국 리그 우승 누적 횟수를 첫 기준으로 꼽는다. 영국 현지 분위기는 영국에서 맨유 (20회 우승 /14회 준우승)를 자국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첫손에 꼽는 것에 이견이 없다.[8]

3 맨유 역사

○ 잉글랜드 축구 1부 리그가 1992년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란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한 이후 새 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클럽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다. 프리미어 리그 개막과 더불어 맨유는 2012-2013 시즌까지 한번도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고, 19번 시즌 중 12번을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보인 EPL 구단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퍼거슨이라고 불렸을 만큼, 퍼거슨감독은 그는 27년 재임기간 동안 맨유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림 3장으로 보는 퍼거슨의 맨유 역사


(▲ EPL 출범 후, 퍼거슨의 맨유는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쓰고 '알렉스 퍼거슨'이라고 읽는다. 왼쪽이 감독 수, 오른쪽이 트로피 수이다.])


(▲[[맨유 재정|2000/01 ~ 2012/13-퍼거슨 은퇴 마지막 시즌,이적료 지출 순위]])

퍼거슨감독은 맨유에 1986년에 부임했는데, 이는 1985년 5월 29일 헤이젤 참사가 일어난 후 였다. 축구종주국이자 리그 순위 3위 안에 드는 최상위에 속했던 잉글랜드 리그가 헤이젤 참사로 한순간에 박살났던 것.


▲3위안에 드는 최상위에 속했던 잉글랜드 리그를 한순간에 박살 냈던 헤이젤 참사. 그 여파를 보여주는 그래프(리그순위 3위 →29위)
그리고 퍼거슨 의 리그 캐리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일개 클럽이 아니라 리그를 세계 정상에 다시 올려 놓겠다
(퍼거슨이 놀라운 것은 그는 먼저 목표를 말했고, 이것을 행동으로 실천 했다)
○ 1998-1999 UEFA 챔피언스 리그 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결승전에서 누르고 UEFA 챔피언스리그 2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해 맨유는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FA컵 3개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여 잉글랜드 구단 중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1999년 맨유의 트레블은 맨유 우승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리그를 침몰에서 다시 구해놓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2012-2013 시즌에는 잉글랜드 구단 최다 우승 기록인 20회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맨유 통산 리그 우승 20회, 준우승 14회.

○ 이렇듯 오늘날 유명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클럽 이미지의 '근본'은 세계 최초 유일의 교황 작위 축구 감독이자 영국 최초 기사 작위 클럽 감독인 맷 버스비 명장에서 태동하였다.

● 축구계 최초 체계화된 유스 시스템 창조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유럽무대에 참가
● 잉글랜드 클럽 최초 챔스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을 의미)
● 잉글랜드 리그 역대 최연소 리그 우승 (평균연령 22세팀)
● 맨유의 전통 다이나믹한 공격축구
● 붉은 악마 레드 데빌즈 창조
유럽 최초 황금 유스팀으로 챔스 우승과 리그 우승 달성
○ 더 자세한 맨유 클럽 역사와 퍼거슨 은퇴 이후의 최근 시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역사 항목 문서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
※ 최근에 합류한 맨유 뉴비 팬들이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역사 항목을 참고하여, 올드비들과 역사적 흐름을 함께 향유하는 것이 좋다. 맨유 팬들은 세대가 다양하다. 1)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의 고전 올드비 2)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베컴을 영향을 받았으며, 박지성 입단이후 유입된 대다수의 팬들 3) 퍼거슨 은퇴 이후, 리빌딩으로 인해 이적시장이 활발한 데, 이 영향으로 유입된 따끈따끈한 열성적인 신규팬들이 있다. 4) 최근에는 무리뉴 감독이 부임으로, 무리뉴 팬도 다소 유입되어 전술 토크가 조금 더 활발해지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맨유는 세대와 팬들이 다양한 만큼, 그 이전의 맨유 역사를 함께 향유하는 것이 서로 다른 세대의 맨유 팬들 간의 이해를 높이고,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4 맨유가 축구사에 남긴 족적

4.1 황금 유스 시스템의 시초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에 한 줄기 희망" 을 주는 동화를 썼던 축구계 최초의 감독, 맷 버스비[9]
●맨유 감독 부임 20년 동안 쓴 실질적 영입 금액 총 0.1M
●맨유 감독 부임 20년동안 돈 주고 영입한 선수는 총 20명
●잉글랜드 리그 최초 최저가 우승 달성 [1952, 1956, 1965, 1967: 0M]
● 역대 최저가 챔스 우승 달성 [1968: 0M] [10]
세계 최초로 유스팀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출발한 클럽은 버스비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1930년대 최초로 유스 학교를 설립하고, 유스팀을 만들었던 왈더 클릭머와 버스비경[11], 그리고 지미 머피 코치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이들의 향후 클럽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은 모두 일치했었다.

왈더 클릭머는 리그 협회에서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골든 메달까지 수여 받았으며, 지미 머피 또한 축구 유스 코치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은 FIFA 세계 유스 클럽 대회와 잉글랜드 FA 유스컵 부터 싹슬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대부분 1군에 자리잡아 잉글랜드 리그 역사상 최연소 우승팀 (평균연령 22세)의 일원으로 우뚝서게 된다.

다른 잉글랜드 클럽 또한 맷 버스비경이 만들어낸 유스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시작해 곧 따라서 유스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스날의 경우 1954년도에 유스팀을 창설했다.) 라리가의 경우는 유스 시스템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최근 주목받는 바르셀로나 유스팀이 창설된 건 약 1970년도 경이며,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 창설은 1960년도 이다.)

4.2 잉글랜드 클럽 최초 유럽 무대 참가

1955년 유로피언컵(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이 만들어졌고, 당시 규칙은 각 리그 1위들만 출전할 수 있었다. 이듬해 1955-56년에 버스비경의 맨유가 우승을 차지했다. 맨유가 유로피언컵 출전 자격을 얻었으나, FA측에서는 이걸 거절했다. 이유는 '그런 대회(유럽 대회)에 나가지 말고 차라리 자국 리그에 집중해라'.

FA측에서는 다른 대회(유럽 대회)보다 리그에 집중하길 원했고 [12] , 버스비경은 이에 대항했지만, FA에 밀려 결국 유로피언컵에 출전을 못했다. 그 이듬해인 56-57 시즌 맨유가 또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역시나 FA에서는 유로피언컵 같은 대회보다 리그에 집중하길 원해 단박에 거절했다.

이에 화가 난 버스비경은 당시 유로피언컵 창설자들을 찾아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고, FA에는 맨유의 유로피언컵 참가를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 냈다. 이후 57-58 시즌부터 맨유는 유로피언컵에 참가하게 되었고, 맨유 이후의 리그 우승팀들 역시 유로피언컵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4.3 감독 혁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문화는 감독에게 모든 전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유나이티드의 찬란한 영광을 가져온 세 명의 감독. 그 아래에서 감독 전권 위임은 구단주, 사장, 스탭, 및 팬들까지도 이를 거의 전통처럼 받아들이게 되어버렸다. 세계 최초 유스 시스템의 태동도 감독 전권 위임과 장기 감독이라는 유나이티드만의 독특한 문화에서 나올 수 있었다.

저는 모든 경기장 스텝, 연습생, 어린이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코칭 스텝, 심지어 구단주까지도 아침 6시에 불러내 경기장 눈을 치웠습니다. -퍼거슨[13] -


(▲ 맨유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길 머리를 쓰담쓰담했던 퍼거슨 경)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감독의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맷 버스비경이 막 감독 생활을 시작하려던 1940년대,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새로운 감독 세대를 열었다. 사실상 1870년대 본격적인 축구가 시작되고 나서 1940년대까지는 감독은 허수아비같은 존재였다. 선수 선발에 관한 권리는 일명 '비서관' (현재의 수석코치 정도)에게 있었고, 훈련 권한 역시 감독이 아니라 코치들에게 있었다. 영입 또한 보드진의 역할이었기 때문. 1940년대 맨유가 막 감독을 시작하려던 맷 버스비경에게 감독 역할을 제의했을 때, 평소 감독의 역할이 제한적이였다는 것을 알고있는 버스비는 맨유 보드진에게 선수 선발, 선수 훈련, 전술 훈련, 영입 등 보드진과 코치진이 하던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정말 엄청난 생각이였고,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맨유는 이 제안을 승낙했고, 버스비는 선수 선발부터 훈련, 전술, 영입 등 모든 부분을 자신이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다. 말 그대로 ‘제국’의 구축이었다. 이후 맨유의 유소년 시스템을 정비해 맨유 아카데미가 탄생했고, 스카우트 시스템을 정비해 전 세계로 스카우트를 보내게 되었다. 버스비의 비전과 영향력은 이후 맨유의 '근본' 으로 남아있게 된다.
보통 축구계에는 여러가지 혁명이 있는데, 버스비의 역할 역시 혁명 중 하나로 통한다. 버스비 이후 팀들은 버스비의 맨유처럼 감독에게 권한을 점점 주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대 축구와 같은 감독 권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4.4 위닝 멘탈리티

퍼거슨경이 은퇴하면서, 후임 감독을 모색하는 와중에 맨유의 상징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졌다. 맨유가 곧 퍼거슨경이었기 때문에, 후임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그 기준으로 퍼거슨경이 가진 장점들 1) 장기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는 검증된 감독 2) 감독전권위임의 클럽 3) 유스 정책 4) 리빌딩 5) 전술의 유연성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EPL 장기감독 3위였던 데이비드 모예스 [14], 아약스 유스로 유명했던 루이스 판 할 [15]. 두 명의 감독을 겪고 난 후, 지금 맨유에게 그 어떤 것 보다 필요한 전통은 퍼거슨경의 27년의 감독생활을 가능하게했던 그가 들어올린 수많은 우승 트로피들이라는 것이다. 뮌헨 비행기 참사, 누캄프의 기적, 수많은 우승들이 이어온 맨유의 전통, 바로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이다.

승리는 언제나 얻는 것이다. 때때로 승리해서도 안되고 때때로 제대로 해서도 안된다. 항상 제대로 해야한다. 승리는 습관이다. 안타깝게도 패배도 역시 습관이다. - NFL 전설적인 감독 빈스 롬바르디 -
2002년 1월 1일. 퍼거슨경은 드디어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에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퍼거슨경은 그의 인생을 축구에 바쳤고, 그는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느낌이었다. 바로 전 날이 그의 환갑잔치였다. 그리고 그 날, 그는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 캐시 여사가 그의 발을 걷어차며 그를 깨웠다. 퍼거슨이 눈을 뜨자, 캐시와 세 명의 아들들이 그의 앞에 서있었다. 캐시는 "당신이 은퇴하지 않는 걸로 우리가 결정했어요"라고 말했고, 그것이 논란의 끝이었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중대한 점을 시사한다. 첫째, 이 사건은 스포츠계의 어겨질 수 없다고 여겨졌던, 한 인물의 스포츠 인생에 2막이나 앙코르 공연은 없다는 규칙을 박살내버렸다.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언제 그만둬야할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은퇴하지 않기로 결심한지 후 2013년까지, 퍼거슨은 이미 높은 곳에 올라가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미지와 이윤을 오히려 더 향상시켰으며, 더 젊은 감독들에게도 절대 지지 않았다. 27년 동안 수많은 상대들과 싸우고 대부분 그 상대들을 꺾은 퍼거슨의 무기는 위닝 멘탈리티였다.
누캄프의 기적.챔스 결승에서 퍼거슨이 이끄는 맨유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1점차로 뒤지고 있었고, 경기는 거의 끝난 시점이었다. 퍼거슨은 마지막 승부수로 두 명의 교체선수를 투입했다. 정말 기적같은 1분이 지나자 두 교체선수는 각자 골 1개씩을 기록했다. 베컴이 찬 2번의 코너킥이 테디 셰링엄의 동점골과 솔샤르의 역전골로 이어지며 승부를 뒤집어 버렸다. 그 때까지 굳건했던 뮌헨은 무너졌으며 맨유는 챔스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급기야는 유러피언 트레블 [16]을 완성하는 사상 최대의 대업적을 이룩했다. 당시 UEFA 회장이었던 레나르트 요한손이 경기종료 2분 전에 VIP 박스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뮌헨에게 상을 수여하러 갈 준비를 했다. 이때 유나이티드의 대부인 보비 찰튼경 면전을 지나갔는데, 그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UEFA 스테프들은 이미 뮌헨의 색깔 리본을 단 'BIG EAR'우승컵을 들고 있었다. 레나르도 오한손 UEFA회장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엔 맨유가 역전승을 거둔 후였다고. 그가 기억하는 당시 첫 장면은 이랬다. "엘리베이터가 30초 만에 도착했는데, 몇 개의 방과 드레스룸 지역을 지나서 긴 홀로 지나가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것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래서 경기장 쪽에 와서 그 광경을 보자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승자는 울고 패배자는 춤을 추고 있었거든요." 퍼거슨 감독은 이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나서면서, 그를 따라다니던 카메라에 대고 그의 제일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축구? 말도 안 돼 (Football. Bloody hell)"

● (트레블을 달성했던) 99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 의심할 여지 없이 저에게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단순히 극장골을 넣어서 이겨서가 아니라, 팀 전체가 하고자 했던 의지가 대단했는데 그게 기억에 남네요. -퍼거슨경-
트레블은 누구에게나 대단한 업적이죠. 하지만 평생 같이 자라온 친구들과 같이 우승하면 더 좋죠. 우리 여섯명의 사진이 있어요. 챔스 컵과 함께 찍은 사진이요. 우리 중 일부는 12살 때부터 친구에요. -[니키버트(현 맨유 유스 코치)]-
● 모든 일이 한꺼번에 맞아 떨어지는 그런 각별한 순간이었죠. 평범한 배경의 그 젊은 선수들이 갑자기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게 되었고 위업을 달성할 능력을 갖고 있었죠. 이전엔 볼 수 없던 멋진 형태로요.
● 12살때부터 함께 자란 선수들이 트레블을 차지하는 일이 과연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전 확신 못하겠어요.다시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축구의 미래가 어떨지 모르겠어요. EPL에서 6~7인의 동료들이 이런 업적을 재현하긴 어려울거에요. - 게리 네빌-
맨유에서 뛰는 걸 꿈꾸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일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저흰 행운아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함께 뛰었고 함께 1진에 올랐죠. 이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에요. 다시 이런 일이 있을까요? 자신 없어요. -폴 스콜스-
● (캄프 누의 기적에 대해)[17]대단한 경기였어요. 우린 경기 마지막 몇 분 동안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습니다. 사실 전 전광판에 적힌 90분이라는 시간을 보고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팀에 투입된 두 명의 교체 선수가 정말로 기적을 만들었어요. 무승부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상황에서 테디 셰링엄이 동점골을 넣었을 때 이 세상 것이 아닌 해방감을 맛보았어요. 연장전을 대비해야 하는데 훙분이 가라앉질 않더군요. 그리고 그때 솔샤르가 결승골을 넣었죠.인저리 타임에 2골 -야프 스탐(현 레딩 FC 감독) -


(▲ 트레블 달성했던 맨유 결승전 하이라이트 )

퍼거슨이 끊임없이 갱신한 맨유의 신화는 맷 버스비의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1958년 당시 맷 버스비의 황금유스의 주축이던 보비 찰튼, [던컨 에드워즈], 토미 테일러, 로저 바인 등 선수들이 맨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물론이며, 잉글랜드 축구계를 최소 수년간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팬들은 기대감에 부풀었었다.

하이버리에는 팬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가고 있었어. 어라? 근데 요상하게도 1958년 리그 경기인 맨유와의 홈 경기에는 사라졌던 그들이 모두 경기장에 나타났더라고? 이유는 간단했어. 당시 하이버리의 아스날 팬들도 그 때 맷 버스비가 이끄는 맨유의 명성을 너무 많이 들었거든. 요즘처럼 언론에서 부풀어서 띄워주거나 그런 것들이 아니었어. 그건 정말 실화였거든. 그 시절엔 언론들이 요즘처럼 그런 부풀리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TV도 보급이 제대로 안되서, 플레이를 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점점 퍼져나게게 된 거였지. 그리고 플레이를 경기장에서 그것을 직접 확인했구 말이야. 당시 할러웨이에서 나는 학교를 다녔어. 근데 우리반 애들이, 이건 뭐 [던컨 에드워즈]에 대해 엄청 떠들어 대더라고. 못하는 게 없는 모든게 가능한, 말 그대로 슈퍼맨처럼 얘기하는 거야. 던컨 에드워즈에 대해 잉글랜드 전역으로 이야기가 퍼져나갔어. 당시 남부 사람들도 맨유를 응원했었거든. 맷 버스비의 아이들이 뿜어내는 포스나 간지, 말 그대로 아우라가 죽여줬어. 웃긴일지만 하이버리에 집결한 아스날팬들 조차도 그날 모두 맨유의 플레이를 보러간거였거든. 한 마디로 하이버리에 집결한 6만 3천명이 모두 상대팀인 맨유를 보러간 거였어. 그 당시에 굉장히 서프라이즈한 일이였지. - 당시 아스날 팬이던 데이빗 화이트, (아스날 히스토리 中) -
1958년 2월 1일 하이버리에서 열렸던 맨유 VS 아스날의 경기는 역사상 양팀의 역대 최고의 경기로 뽑는 경기이다. 두 팀간의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이 나왔던 경기이기도 하다. 이 경기의 의미는 양팀에게 매우 중요했다. 아스날에게 있어서는 1950년대 팬들에게 비판받았던 그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친 게 바로 이 경기 였고, 맨유맷 버스비의 아이들이 뮌헨 비행기 참사 직전, 잉글랜드에서 치룬 마지막 경기였다.
● 1945년부터 하이버리에 출근하다싶이했지. 근데 말이야. 바로 그 날 벌어진 맨유와의 경기를 확신하는데 내가 본 최고의 경기였다고 봐. 당시 두 팀간에 감정 따위는 전혀없었다고. 하이버리 관중들은 [던컨 에드워즈]의 파워와 보비 찰튼의 기술적 능력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었던게지. 그 당시 경기는 예측한 대로 였어. 맨유의 파워와 스피드의 융합을 필두로 내세운 미칠듯한 공격력은 인상적이었어. 던컨 에드워즈와 보비 찰튼은 외곽에서 칼날같은 슈팅을 때려 넣었고 맨유는 2-0으로 이겨 나가고 있었어. 30분 후엔, 맨유 간판 포워드 토미 테일러가 세번째 골을 박아 넣어버렸어. 허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버렸어. 아스날의 블룸필드가 두골, 데이빗 허드가 한골을 성공하며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던 게지. 관중석은 이런 재미있는 경기에 난리가 나버렸던거야. 우리 아스날 애들이 이 위대한 맷 버스비의 팀을 상대로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았으니까. 후반전? 데니스 바이올렛과 토미 테일러가 또 골을 넣었고 맨유는 다시 5-3으로 앞서 나가고 있었어. 어라? 아스날의 탯스콧이 또 한골 만회해서 다시 따라 붙으려고 했지. 5-4.. 팬들도 이런 미칠듯한 경기에 실신 직전까지 갔으니 말 다했던 게야. 더욱 재미있는 경기를 원하는 팬들은 양팀이 동점이 되길 바라더라고. 미친듯이 외치더라. '제발 동점 만들어봐. 좀 부탁이야. 시X' 팬들은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놨어. 결과는 맨유승리였지만. 나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곧바라 맨유의 간판 포워드 토미 테일러에게 다가가 악수를 먼저 청했어. 그러자 테일러는 나에게 윙크를 해주더라. 분명 우리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경기였어.
경기가 끝난 후, 우리 아스날 애들이랑 맨유애들이랑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맷 버스비가 이번에는 맨체스터로 빨리 가야될 것 같다고 해서 아쉽게도 이번에는 같이 뒷풀이를 못했어. 그 이유가 바로,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루어야했기 때문이지. 맨유애들이랑 노는 건 매번 즐거운 일이었어. 상상이가? 걔네들이랑 우리랑 같이 모여서 술먹고 담배도 같이 피고 놀고 그랬을 정도니깐... 그리고 모든 이들이 알듯이, 이 경기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경기가 되어버렸지. 또한 이날 일어났던, 아니 일어나지 못했던 일까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어...
● [던컨 에드워즈]가 살아있었다면 더 위대한 업적을 계속해서 쌓아나갈 친구였어. 던컨은 그날 경기에서 클랩튼에게 매우 터프하고 거칠게 대항했지. 던컨이 드리블할 때 클랩튼은 태클을 할수도 있었어. 클래튼이 그러더라 '내가 차라리 그때 던킨의 발을 걸었다면, 던컨은 부상으로 비행기에 타지도 않았을테고 아직 살아있지 않았을까? 허나 나는 그때 던컨에서 태클을 하지 않았어. 왜냐고? 그는 잉글랜드 축구계를 위해 매우 특별한 선수였거든. 감히 할 수가 없었던 거야. 던컨에게 태클 하는 것은 거의 죄를 짓는 기분이였다고. 그가 잉글랜드에서 어떤 존재인지, 또 나이가 얼마인지 생각해본다면 말이야. 그러나 던컨은 딱히 그런 보호도 필요없던 선수였어. 17살 나이에 떡갈나무 줄기같은 무대포 다리로 뛰는 남자였다고. 난 잘알아.' 우린 늘 그 경기를 추억하고 있다고. 우리에게 늘 웃어주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던 던킨 에드워즈를 위해 언제나 묵념해줄거야. 참 가슴이 찡한 이야기지. 솔까 이 경기는 우리가 졌는데도 말이야! - 브루스 스미더스 (아스날 히스토리 中) -
● (버스비 아이들이 영국에서 가진 마지막 경기를 추억하며) [내가 열살때, 나와 아버지와 매주 같은 곳에서 맨유와 아스날의 경기를 관람했다. 버스비의 아이들이 뛰었던 맨유는 완벽한 팀이었고, 그들은 멋진 게임을 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슬퍼했다. 그들 만큼 잘하는 팀이 없을 때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매일 비행기 참사와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영국 전체가 슬픔에 빠진 시기였다. 그때는 텔레비전이 보편적이지 않을 시기였기 때문에 모두 라디오를 들으며 슬퍼했다. 나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기다렸다.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였던 프랭크 스위프트도 그때 사망했다. 그 사건은 크나큰 비극이었다. 너무 많은 젊고 위대한 축구 선수들을 잃었다. 아주 슬픈 일이다.] - 해리 레드냅 감독-

1958년 2월 6일 세르비아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에서 맨유가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물리치고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영국으로 귀국하던 중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뮌헨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맨유의 주장이던 로저 바인을 비롯해 7명의 선수가 그 자리에서 숨졌고 당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던컨 에드워즈도 치료 도중 사망하면서 선수 8명과 코칭 스태프, 구단 직원, 경기를 취재하러 간 언론인 등을 포함해 총 23명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팀의 평균 연령은 23세에 불과했다. 게다가 목숨을 건진 선수들 역시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해 쓸쓸히 은퇴했다.
사고 당시 버스비는 비행기 밖으로 튕겨 나가 땅바닥으로 내동이쳐졌다. 처음 그의 상태를 진찰한 뮌헨 병원의 담당의사는 '소생 가능성 희박'판정을 내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버스비는 초인적인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실낱 같은 생명줄을 간신히 잡고 있던 중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미 머피 코치에게 '우리들의 깃발을 계속 휘날려주게'라고 당부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 충격적인 사고 이후 클럽이 해산될 것이라는 의견이 축구계에서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맨유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보비 찰튼]을 중심으로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해 재기를 노렸다.

● 우리는 앞으로 맷 버스비감독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가 돌아온 것은 클럽의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죠. 맷 버스비 감독이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 메시지는 버스비의 입원 중, 올드 트라포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알려졌다) 온 경기장이 정말 눈물바다가 됐어요. 대단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아팠죠. 알겠지만 정말 마음을 흔드는 일이잖아요. - 윌프 맥기네스(전 맨유감독)-

이 때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선수 두 명이 맨유에 합류하게 된다. 아직도 ['올드 트래포드의 왕'이라 불리는 데니스 로]와 ['유럽의 펠레'라는 극찬을 받은 조지 베스트]가 바로 그들이었다. 발롱도르 삼각편대 (찰튼, 베스트, 로) 1967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맨유는 이듬해인 1968년 4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뒤 결승에서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벤피카를 물리치고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뮌헨 참사, 그리고 10년 후에 기적적인 우승은 맨유 신화를 생산했고, 당시 국민들은 이 신화에 매료되어버렸다.
맷 버스비,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 정면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고. 경기장 앞 도로도 그의 이름을 땄을 정도로 그의 위닝 멘탈리티와 오뚜기 정신은 맨유의 상징이다.


5 엠블럼


(역대 엠블럼 변천사)

(위 이미지에 없는 60년대에서 73년까지 쓰인 맨유의 과거 엠블럼)

엠블럼 중앙의 방패는 맨체스터의 상징물이다. 방패 상단에 위치한 노란색 배는 과거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는 맨체스터의 운하를 상징하는 문양이고 이전에는 위의 과거 엠블럼에서 보듯이 현재의 맨시티 처럼 검은줄 3개는 맨체스터에 흐르는 3개의 강을 표현했다. 과거 붉은 장미를 상징으로 삼았던 맨체스터 지역의 랭커스터 가문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사용한다. 또한 현 엠블럼 좌우에 있는 옛날 축구공은 원래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이였던 장미였다. 중앙의 삼지창을 든 악마는 1981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엠블럼을 브랜드화 시키려는 의도와 상대에게 공포감도 주고자 저렇게 엠블럼의 한 가운데에 붉은 악마를 넣은 것이다. 그래서 애칭도 레드 데블스(RED DEVILS), 붉은 악마이다. 엠블럼에 쓰인 팀명은 원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풋볼클럽'이 풀네임이었으나 1998년에 간소화 하여 현재의 엠블럼이 되었다.

5.1 메인컬러 레드

맨체스터 유나이트 홈 유니폼, 엠블럼, 엠블럼 안에 들어간 레드 데블즈(RED DEVIES) 등 메인 컬러가 붉은 색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리즈 시절' [18] 단어로 친숙한 리즈 유나이티드와는 역사 깊은 장미전쟁 더비 관계이다.[19]

○ 이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기반인 리즈시는 [요크셔 지방]의 대표적 도시이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체스터시는 [랭커셔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 때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과거 엠블럼을 보면 현 엠블럼 좌우에 있는 옛날 축구공은 원래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이였던 [붉은 장미]인 것을 볼 수 있으며,리즈 유나이티드의 엠블럼에도 [요크 가문]을 상징하는 [하얀 장미]를 확인 할 수 있다.

○ 영국 축구사에선 맷 버스비 감독의 맨유과 돈 레비 감독의 리즈 유나이티드가 '장미전쟁'을 펼쳤으며, 1964/65 시즌 FA컵 준결승에서 '올드 트래포트의 킹'이었던 데니스 로와 잭 찰튼의 혈투가 유명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리즈 유나이티드 레전드인 잭 찰튼보비 찰튼경의 형이라는 것. [아직도 여전한 장미전쟁 더비.]


▲ 경기 후 데니스 로의 유니폼 상태가 그 당시 장미전쟁의 분위기를 설명해주고 있다.

○ 더비 이름의 유래인 장미전쟁은 중세시대 15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났던 내전에서 유래되었는데, 영국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의 전쟁을 일컫는다. 십자군전쟁백년전쟁의 패배로 영국 왕권이 약해졌고, 군사력이 막강했던 지방 영주와 귀족들이 왕위쟁탈전에 참여하면서 장미전쟁이 시작되었다. 왕가의 집안싸움을 벌였던 두 가문의 문장이 모두 장미 모양이었기에 이를 장미전쟁이라고 부른다.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은 붉은 장미이고, 요크 가문의 상징은 하얀 장미. 장미전쟁의 주인공이었던 랭커스터 가문, 요크 가문 - 두 왕가 모두 플랜태저넷 왕조의 분파이다. 왕가 집안 싸움 영국 플랜터저넷 왕조는 프랑스 지역에 영토(아키텐령 등)를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프랑스 국왕의 직할령과 맞먹었고, 이것이 백년전쟁을 일어났던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는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 영지의 일부였던 아키텐령의 가스코뉴지방은 프랑스 남서부의 노른자 같은 땅인데다가 [지금도 유명한 보르도산 와인이 재배된 아키텐의 포도주 무역 세금이 영국 전 지방의 세금과 맞먹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20]

○ 30년 간의 내전 끝에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튜더와 요크 가문의 리처드 3세가 결전을 벌인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가 전사하면서 장미전쟁은 막을 내렸고, 왕위는 헨리 튜더(헨리 7세)에 돌아갔다. 영국 역사가들은 리처드 3세의 죽음과 함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보고 있으며, 헨리튜더(헨리 7세)가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며 튜더 왕조가 새롭게 열렸다. 그리고 [장미전쟁의 상징이었던 요크가의 백장미와 랭커스터가의 붉은 장미가 하나로 조합되어] 양자 화합의 징표로써 [튜더 왕조의 문장이 되었다.] 오늘날 잉글랜드 왕실의 상징 문장이기도 한 [튜더 장미]가 탄생했다.
장미전쟁으로 수많은 귀족 가문이 얽히고 섥혀,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귀족가문은 전쟁 전의 3할에 불과해 튜더 왕조의 군주들은 절대 왕권의 파워를 휘두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전쟁으로 왕가의 손도 귀해져 엘리자베스 1세 이후로는 직계후손이 없어 튜더 왕조는 단절되고 만다. 이 전쟁은 랭커스터 가문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이후로 지금까지 랭커스터 공작이라는 칭호는 영국 국왕이 보유한 비공식 칭호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반면 랭커스터 가문의 맞수였던 요크 가문의 요크공작은 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에게 부여하는 칭호가 되었다. 이 관행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랭커스터 공작)의 둘째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요크 공작]의 칭호를 쓰고 있다.

○ [조지 R.R마틴의 작품으로 미드로도 만들어진 '얼음과 불의 노래(왕좌의 게임)는 장미전쟁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서프라이즈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던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왕의 축복 덕분이라는 스토리에 등장하는 왕이 바로 장미전쟁에 나오는 리처드 3세를 일컫는다.

5.2 축구클럽

맨체스터와 축구는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은데, 과거 엠블럼을 보면 FOOTBALL CLUB단어 들어가 있었고, 지금은 축구공을 엠블럼에 대신 넣을 정도로 맨체스터는 축구와 연관이 있다.

맨체스터시는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상징이 되면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장을 연 도시로 떠오르게 되었다. 랭커셔 지방의 산업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산업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도시가 되었으며 섬유공업을 시작으로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번성을 누렸다. 영국의 수상을 지냈던 소설가 벤저민 디즈레일러는 그의 소설 <코닝즈비>에서 맨체스터를 현대의 가장 경이적인 도시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소위 맨체스터식 모델은 전세계로 향해 나아갔고 후발 산업도시들마다 제 2의 맨체스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훗날 한 영국의 정치가 (맨체스터가 속한)랭커셔 지방이 번영시킨 부의 폭이 수백, 수천 퍼센트라고 술회했을 정도로, 맨체스터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이런 진취적인 맨체스터 도시 스타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클럽의 세계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 맨체스터시는 잉글랜드 북부지역의 예술,문화,미디어,상업의 중심지이며 북부 지역의 수도로서 자리잡았으며, 그레이터맨체스터 주는 런던, 버밍엄과 함께 영국의 3대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맨체스터는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드의 고향이기도 하다.] [참고]. 맨유 유니폼 스폰서도 미국 GM회사의 자동차 브랜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쉐보레.

세계 2차 대전 당시, 맨체스터시는 독일공군의 타겟이 되었으며 특히나 1941년 Christmas Blitz라 불리는 대폭격에서 도시의 2/3가 파괴되었다. 현재 맨체스터시는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전세계에서도 손꼽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 역시 세계 2차 대전의 독일 공군들의 폭격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 1941년 3월 메인 스탠드와 드레싱 룸, 사무실과 함께 유나이티드 로드의 테라스와 표면이 파괴되었다. 전쟁의 여파로 맨유는 그 후 8년간 올드 트래포드구장을 떠나있어야 했다. 1949년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 재건설에 들어갔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쟁 피해 위원회(War Damage Commission)에 진정하여 22,278파운드의 재건설 비용을 얻어내기도 했다. 올드 트래포드는 최초로 관중석과 그라운드에 경계망을 설치한 경기장이기도 한다.올드 트래포드 가는 길에 [랭커셔 카운티 크리켓 클럽(Lancashire Country Cricket club)]의 홈구장 'Old Trafford Cricket Ground' 이 있다. 엠블럼은 랭커스터가문의 붉은 장미이다.

○ 1886년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에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의 축협이 참여한 가운데 IFAB(국제축구평의회)가 탄생했다. 국제 축구 규칙을 만들었고 1888년 역시 잉글랜드에서 최초의 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가 탄생하였다. 이때 당시 축구에서 손을 사용하자는파와 사용하지 말자는 파로 나뉘었는데 이때야, 비로소 "손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는 규칙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반발한 집단이 떨어져 나가 럭비를 형성하게 된다. 영국인들이 즐겨 하던 축구는 마침 대영제국의 전성기와 맞물려 급속도로 전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영국의 상인, 군인, 선교사, 유학생들은 자신이 가는 나라마다 축구를 보급했고 20세기 초가 되면 전세계에서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힘들게 된다. [21]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특정 국가의 정치와는 무관한) 축구 클럽이다. 재미있는 것은 EPL에서 맨유는 (정치와 무관한) 구단주에게 인수되었지만, 그 뒤 맨유의 성공을 보고 잇달아 이피엘에 거부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태국과 이슬람계 거부들이 있다. 축구를 정치에 이용했던 가장 유명한 예는 이탈리아의 이 분.이쩌면 같은 정치가였던 이탈이아 그분에게 영향을 받아 투자하기 좋은 리그를 찾다보니 이피엘로 온 것인지. 본인 정치를 위해 스포츠를 악용했던 이 정책의 원조는 포르투갈의 총리이자 독재자였던 안토니우 살라자르.

○ [맨유로 인해 맨체스터시에는 '관광'이라는 산업이 더해졌다. 기본적으로 관광객은 맨유를 먼저 찾는다. 챔피언스리그, FA컵, 리그컵을 막론하고 맨유의 홈 경기가 많이 펼쳐질수록 맨체스터와 올드트라포드를 찾는 '세계인'들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단 하루 동안 맨체스터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2~3일을 지낸다고. 먹고, 자고, 마시고, 택시를 타고. 맨체스터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맨유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성적/챔스와 관련없이 수입이 늘어나는 맨유보다 생계가 연관된 맨체스터 주민들이 더 학수고대하는 맨유 활약


6 레드 데블스

맨유 엠블럼 한 가운데 붉은 악마가 있듯, 팬들의 애칭도 레드 데블스다.
▲ RED ARMY들: 맨유 팬이라면 맨유 응원가를 부를 수 있어야


7 맨유 7번

7번의 상징성은 잉글랜드, 그 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만들어졌다. 그동안 유나이티드의 7번으로 뛰었던 선수들은 팀의 핵심이자 현대 축구를 빛낸 주역들이기도 하다.

● 축구사, 세계 최초의 슈퍼스타 빌리 메레디스
● 최초로 7번의 상징성을 불어넣은 사나이, Mr.Soccer 조 스펜스 - 두 번의 세계대전,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군필자
●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 처음으로 월드컵을 안겨준 그라운드의 신사 보비 찰튼 - 발롱드르
● 아일랜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뽑히기도 하는 조니 자일스
● 북아일랜드에서 온 유나이티드의 구세주 조지 베스트 - 발롱드르
● 캡틴 마블 브라이언 롭슨 - 의리의 주장
● 올드 트래포드의 왕 에릭 칸토나 - 발롱드르 3위. 역대급 꿀영입. 그의 이적료는 100만 파운드
[잉글랜드 최고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데이비드 베컴 - 발롱드르 2위
CR7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발롱드르
윈더보이' 마이클 오웬 - 발롱드르

위 선수들로 유명한 맨유 7번 계보. 7번 선수들의 면면을 볼 때, 맨유의 상징적인 선수이거나 에이스가 많았다.

7번에 집착하고 있는 선수를 본다면 그 선수가 베컴 팬일 수도

맨유 7번 계보들의 맨유 시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다큐멘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7번 항목에 들어가 확인할 수 있다.

▲ 영상으로 간략히 보는 맨유의 7번 계보

8 [맨유와 음악]

(맨유 UK차트 TOP 10 히트 싱글 리스트)
● 1996년 맨유 'Move Move Move (The Red Tribe)' 6위
● 1995년 맨유 'We're Gonna Do it Again' 6위
● 1995년 맨유 'Come On You Reds' 1위
● 1985년 맨유 'We All Follow Man United' 10위
● 1983년 맨유 'Glory Glory Man United' 6위
[You know, football is rather like music.The feeling you get from playing a great gig or making a great album is the same you get from watching a great goal scored. When it all comes together, it’s beautiful.] - 밴드 스톤 로지즈의 개리 '매니' 마운필드-
○ 관록의 영국 록밴드 스테이터스 쿼오(Status Quo)는 1988년 ‘Burning Bridges’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맨유 구단은 이 곡을 토대로 1994년 구단 응원곡인 ‘Come On Your Reds’를 발표해 영국 차트 1위에까지 올랐다. 맨유 응원곡이 영국차트 1위ㄷㄷㄷ가사에는 당시 맨유 주축 선수들과 함께 감독 이름도 언급되는데, 그는 바로 알렉스 퍼거슨경. 로큰롤을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오래 맨유를 지휘했는지 느낄 수 있다.
○ 맨유를 대표하는 레전드이자 60년대 맨유 우승의 주역이었던 조지 베스트는 지금도 역사상 최정상급 축구선수로 기록되는데,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 덕분에 데이비드 베컴 이전에 특급 스타 대우를 받은 원조 연예인급 선수였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 중 하나인 더 킹크스(The Kinks)는 66년 ‘패션의 헌신적인 추종자(Dedicated Follower of Fashion)’라는 곡을 발표한다. 당시 ‘스윙잉 런던’의 활기찬 패션 분위기를 그린 곡인데, 전설은 이 곡에 영감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조지 베스트라고 전한다. 맨유 홈경기장인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 내에 있는 박물관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이 곡의 악보와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 [영국 팝 가수 돈 파든도 THE BELFAST BOY(George Best) 곡을 발표했다.]


게리 네빌의 은퇴식에는 맨유 팬인 스톤 로지스의 프론트 맨 '이안 브라운'이 직접 ['This is the one']를 불렀다. 위 영상에서 그라운드 입장하는 게리 네빌을 환영(03:45)한 후 직접 노래를 부르며 선수들과 함께 걷고 있는 이안 브라운(04:19)을 발견 할 수 있다.

○ 밴드 더 스미스 의 보컬 모리세이는 1997년 싱글 Roy’s Keen을 발표.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 것은 맨유의 로이 킨.
○ [You are my sunshine. 1939년 지미 데이비스(Jimmie Davis)와 찰스 미첼(Charles Mitchell)이 처음 부른 이 노래는 티나 터너와 아래사 프랭클린, 조니 캐시, 브라이언 윌슨 등이 리바이벌했다. 이 노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 의해 불린 축구 응원가, “You are my Solskjear”로 바뀌기도 했다.] 곡의 주인공 솔샤르는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 중 하나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냈다. 뛰어난 골 결정력과 나이에 비에 어려보이는 외모로 인해 '동안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가졌었다.


9 맨유 재정

○ 구단주 글레이저나 신임 단장 에드 우드워드가 다른 건 몰라도 사업 수완만큼은 기가 막히게 좋아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우드워드 단장은 재정에 있어서 전문가인데, 이 말은 맨유 팬들은 맨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적시장과 주급체계도 맨유 클럽은 그들이 번 수익 안에서 돈이 쓸 수 있는 총액을 바탕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번 만큼 투자하니, 모범적인 건전한 투자이다. 클럽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부채도 자산에 포함되어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 맨유는 클럽이 번 돈 안에서 투자를 하는 건정한 재정을 가지고 있는 모범적인 스포츠 구단이다. 오히려 맨유의 성공을 보고, 이피엘에 세계 거부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쇼미더머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막대한 맨유인기로 얻는 TV중계권 수입이 이피엘에서는 공동분배 되기 때문이다. 말라가의 사례를 볼때, 이피엘이 TV중계권 공동분배정책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들이 쇼미더머니를 그렇게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라리가 말라가의 셰이크 압둘라 알 타니는 하마드 알 타니(PSG 구단주)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구단주이다. 압둘라 알 타니는 선친의 뒤를 이어 카타르 왕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NAS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그가 관리하는 재산이 하마드 알 타니의 재산인 셈이다. [알 타니 구단주는 2010년 말라가를 인수하면서 야심 차게 스타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클럽을 약 520억 원에 인수했을 때만 해도 말라가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줄리우 밥티스타, 마르틴 데미첼리스, 요리스 마테이선, 제레미 툴라랑, 호아킨 산체스, 산티 카솔라같이 클래스 있는 선수들을 보유하게 됐고, 감독은 마뉴엘 페예그리니였다. 그러나 2012년 압둘라 알타니는 (중계권료 대부분이 레알과 바르샤에게 배분되는) 스페인의 중계권료 문제 때문에 큰 화를 냈다. 알 타니 구단주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측과 중계권 문제로 마찰이 생긴 뒤 팀 운영 의지를 잃었다. 선수 주급이 계속 밀리면서 팀을 떠나는 선수까지 나왔다. 단지 구단주의 지원이 끊긴 것뿐이었는데 말라가는 UEFA로부터 징계를 받게 됐고, 심각한 자금난으로 주축 선수들을 팔아야만 했다. 압둘라 알타니의 인수 전 상황이 더 나아 보일 정도로 클럽이 쑥대밭이 되었다.
○ 맨유와 이피엘의 인기를 보고 몰려든 세계거부들이 쇼미더머니 돈질로 우승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맨유 인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맨유를 보고 몰려든 거부들이 소유하게 된 클럽이 번 수익안에서 투자를 하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TV시청 인기의 절반을 차지하는 맨유을 인기를 바탕으로 버는 막대한 TV중계권료를 공동 분배하면서) 얻게되는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맨유 덕분에 1부에만 있으면 이피엘 타 클럽이 망할 일이 없으니 마음껏 돈질 해볼까 쇼미더머니를 일으키며 이적시장의 거품을 몰고 왔다. 이미 거품을 올릴 때로 올리고 있는 쇼미더머니 클럽들. 이를 보고 맨유는 도리어 클럽 인기를 바탕으로 얻게된 막대한 TV중계권료를 공동 분배하면서 이피엘 타 클럽의 재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마당에, 맨유가 돈을 번 만큼 쓰지 못하는 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시각이 대두되었기 때문.
○ 다른 클럽은 번 만큼 돈 안쓰고 재정에 오버하는 쇼미더머니했지만. 맨유는 수십년간 TV중계권료를 하위구단과 두루 나누어 배분한데다가 머니를 잠금했었다. 이제 잠금해제해서 클럽이 번 돈 안에서 쓰겠다는 데. 이것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에, 퍼거슨 감독의 은퇴 후 우드워드 단장이 취임하면서 클럽이 번 만큼 상식적으로 돈을 쓰기 시작했다.


걱정말아요. 우린 번만큼만 써주께

맨유의 건전한 재정을 설명하는 그림 세 장


2016, 포브스에서 발표한 클럽 가치 순위
최근 3년간 모예스와 반할 삽질에도 불구하고 Top 3. 갓거슨의 유산이다.


딜로이트 유럽 구단들 상위 20위 리스트


14/15 시즌 리그별 TV 중계권료. 막대한 TV중계권료의 원천은 맨유 인기가 한 몫했지만, 강등권 클럽까지 머니를 고루 공동분배하고 있다

○ 위 그림에 대한 자세한 맥락을 알고 싶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재정 항목에 들어가 내용을 확인해보자.

10 맨유에 대한 말말말

● 언젠가 조크 스타인 감독(세계 최초 트레블을 달성한 퍼거슨의 스승)이 내게 맨유 감독직을 거절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맨유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맷 버스비를 위해 맨유로 간다
● 선수들을 모아놓고, 뮌헨 참사 추모식이 열리는 2월 10일에 대해 설명하며 맨유 역사에 관련된 7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선수들은 맨유의 위대한 역사에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동영상을 보고는 모든 선수들이 진지하게 숙연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뮌헨 참사 전후로 다져진 맨유의 기초는 지금의 맨유를 있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이루어낸 클럽 말이다.
●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일개 클럽이 아니라 리그를 세계 정상에 다시 올려 놓겠다 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1999년 맨유의 트레블은 맨유 우승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리그를 침몰에서 다시 구해놓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22][23] 그리고 33년만에 잉글랜드 리그는 그가 말한대로 UEFA 리그 포인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 </ref>
● (1999년 챔스 우승 후) Football. Bloody Hell (축구.. 망할 자식) 퍼거슨 경의 이 짧은 말에 그의 축구 철학이 담겨져 있다. 스포츠의 위대함은 가능함이 아니라 불가능함에서 온다는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것을 상징하는 구단이다. -뉴욕 타이즈-
● 맨유의 축구 철학은, 어느 한 선수가 볼을 잡았을 때 (온 더 볼 일때) 팀으로 같이 움직이면서 나머지 선수들은 그 선수의 플레이를 지원해주는 것(All the others supported the play)이다. -퍼거슨경-
● Woodward's vision is to have an 'elite' player in every position.에드우드워드의 비전은 '엘리트'선수들을 모든 포지션에 갖는 것이다.
● Says MUFC different because players must 'immediately' be 'top clas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즉시 전력감의 탑클래스여야 한다.
● 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거절할 수 없는 오퍼(가격)를 제시할 것 이다
● 맨유는 세계 최고의 축구 팀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스포츠 팀이다.
● 역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올드 트래포드란 이름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상징하는 '경기장 이름'을 돈을 위해 스폰서에게 팔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돈보다 역사.)
● 수익의 확실한 성장으로 우리는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든지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투자할 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흔쾌히 투자할 용의가 있다. 고정 예산은 없다. 재정적으로 우리는 강력하고, 운영 가능한 자금이 있다.
● 우리는 감독을 지원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풋볼 디렉터가 없다.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다. 퍼거슨 감독은 재임 시절 직접 영입 명단을 낙점하면, 조엘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길 단장에게 통보, 협의하는 식이었다. 매번 이적 시장에서는 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이 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일찌감치 최고 이적료를 경신할 수도 있었다. 금액 한도는 절대 없었다.
● 유나이티드의 야망은 승리이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 - 에드 우드워드 단장-
● 아내도 정치도 종교도 바꿀수 있지만 절대로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맨유)은 바꿀 수 없다.
● When I think football, I think Manchester United. I still support United and always will. I will die with them in my heart. -칸토나-
:
● 우리는 또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팀의 셔츠를 입고 올드 트래포드에서 유나이티드를 상대하여 플레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단 한번도 맨유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맨유 아카데미로 들어온 이후로 단 한번도 맨유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 맨유에서 보낸 7년의 하루하루를 매일마다 그리워하고 있다. 맨유의 선수였던 시절과 팬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그립다. 맨유는 항상 내 가슴에 있다. -데이비드 베컴-
● 2위나 3위해도 기쁜 클럽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는 아닙니다. 우리 팬들은 승리외에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독과 클럽이 해야할 일입니다.
● 맨유를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축구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 -로이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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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언제나 이런 말을 한다. '만약 너희들이 입은 셔츠를 내려다 봤을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크를 볼 수 있다면,너희들이 지금 실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너희들은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내 가슴에 유나이티드 마크가 달려 있지 않은 것을 보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내겐 정말 슬픈 날이 될 것이다. -게리 네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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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에게 다시 경력이 시작되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전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선택할겁니다. 만약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것에 흥미를 잃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축구를 그만두는 날일 것이다. 왜 내가 다른 클럽으로 가기를 원하겠는가? 나는 이곳에서 많은 성공에 즐거웠고 앞으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날 바에야 축구를 그만두겠다. -라이언 긱스-
(맨유 같은 팀에 가려면 어떻게 해요? 질문에 대해) 일단 자기가 속한 팀에서 제일 잘하고, 그 다음 자기 나라에서 제일 잘해야 돼. -박지성-
맨유에서 뛴다는 것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거야. 맨유에서 보석같은 존재는 없어. 모두가 다 열심히 죽어라 뛰는거지. 그러면서 맨유 역사를 써내는거야. 너가 그걸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면, 그때 진정한 Red Devil이 되는거야. -파트리스 에브라-
올드 트래포드, 퍼거슨, 베컴, 세계 최고의 클럽, 레드 데블스. 이 모든 것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요. -모르간 슈네데를랭-
● (퍼거슨 경이 은퇴선언 이후)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겁니다. 그리고 제겐 올드 트래포드에 가는 게 힘든 일이 되겠죠. 특히 그런 인물 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처음 상대하러 가게 된다면요. (왜 퍼거슨경이 그렇게 그리울 것 같냐는 질문에) 독보적이고, 아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독보적인 클럽일 테니까요. 감독에게 퍼거슨이 가졌던 그런 조건을 부여하는 클럽입니다. 모두들 퍼거슨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겠죠. 첫 우승을 맛볼 때까지 3~4년이 걸렸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퍼거슨이 믿기지 않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줬어요. 그 이후론 독보적인, 유일무이한 인물이 됐죠.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쌓은 트로피 수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고 20년 이상 감독직을 유지한 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슈퍼 빅클럽이야. 2년 전에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어. 심지어 유로파 리그에도 진출하지 못했지. 아무 타이틀도 얻지 못했고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몬스터 클럽으로 남아있잖아. 그게 축구야 - 2015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는 것은 특별한 영광이다. 세계에서 가장 알려지고 존경받는 클럽 중 하나다. 다른 클럽이 갖고 있지 않는 신비로움로맨스를 가졌다.
●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와있다. 맨유 감독직은 모두가 원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의사람들만이 이자리에 오를 수 있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맨유는 내가 자이언트 클럽이라 부를 수 있는 클럽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맨유는 최고의 감독이 필요했고, 이를 맡기 위해선 준비가 돼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준비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맨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지난 3년간 그들의 모습이며, 또 다른 하나는 클럽의 역사다. 나는 지난 3년의 기억을 잊고, 오직! 역사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그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
● 전 팬들이 제게서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함께이지 않으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그들이 클럽에 품고 있는 열정이 어메이징하다고 생각합니다. 맨유 역사에 있어 새로운 챕터입니다. 감독이 바뀔 때, 전 그것이 슬픈 순간임을 항상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챕터입니다. 우린 새로운 인물들을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누군지 혹은 누가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리의 그 누구보다도 훨씬 중요합니다.
팬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은 맨유를 향한 것이고, 저를 향한 사랑도 클럽의 한 남자에게 향한 것임을 압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전 즉시 유나이티드의 셔츠를 입었으며 이러한 클럽과 셔츠를 대표할 수 있어서 전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전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무리뉴 -
● 무리뉴의 꿈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 [24]
● 무리뉴는 항상 퍼거슨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처럼 되는 것이 무리뉴의 꿈이기도 하지. - 칼데론 (레알 마드리드 전 회장)-[출처]

11 맨유팬들로 유명한 사람들

라디오헤드의 보컬이자 21세기 얼터너티브 음악의 상징인 톰 요크와 [에드 오브라이언][25],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 뮤즈(밴드) [26], 21세기 가장 성공한 남성 아티스트중의 한명인 저스틴 팀버레이크 [27], 한때 'MY LOVE' 팝송으로 인기있었던 보이그룹 웨스트라이프니키 번쉐인 필란 [28], 맨체스터 출신의 매드체스터 밴드 스톤 로지즈 [29], 듀란 듀란의 보컬 사이먼 르 봉 [30], 블루 아이드 소울 그룹 [심플리 레드]의 [믹 허크 널], 브릿팝 초장기 록밴드 더 버브의 보컬 리차드 애쉬크로프트 [31],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주류를 이끌었던 예스(밴드)존 앤더슨 [32], 역시 맨체스터 출신인 [80년대 영국의 인디씬을 강타한 전설적인 밴드] 더 스미스모리세이앤디 루크 [33], 웨스트 코스트 컨트리 록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앤 영 [* 밴드 The Courteeners의 보컬 Liam Fray가 [[[[3]]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트드 팬이라고 인증되어있었다고. He’s a Red, I read it in his biography last year. Great read. ], 얼터너티브 록 밴드 더 스크립트 [34], [얼터너티브 락밴드] 스노우 패트롤의 리드보컬 게리 라이트보디[35], 셰드 세븐릭 위터, 록큰롤밴드 스트라입스조쉬 맥클로리, 밴드 백신즈의 프론트맨 저스틴 영 [36], 영국 인기 그룹 원 디렉션의 해리 스타일스/루이 콤린슨/제인 말릭, [보이그룹 더 원티드의 네이선 사이크스] [37], 영국 유명오디션 X FACTOR 출신 가수 셰인 워드[38], [알렉산드라 버크], [미샤비][39], 올리 머스 [40], [헐리우드 섹시스타 제이미 도넌], 채닝 테이텀, 메간 폭스, 에바 롱고리아, [21세기 가장 많은 빌보드 1위곡을 올린 팝스타] 리한나 [41], 마일리 사이러스, 007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숀 코너리,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 올랜도 블룸 [42]과 도미닉 모나한[43], 영국배우 존심[44], 미드 [왕좌의 게임]의 [존 브래들리웨스트] [45], 영드 호텔 바빌론의 맥스 비슬리 [46], [영드 마이매드팻 다이어리 핀]의 [니코 미랄레그로] [47], 영국 국민 배우 스티브 쿠건 [48], [영드 로빈후드의 조나스 암스트롱] [49], 래퍼 드레이크, 퍼프 대디,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모델 아기네스 딘, 세계 3대 팝페라 테너러셀 왓슨, 전 아일랜드 총리 베르티 아헤른, 넬슨 만델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복서 마이크 타이슨, 영국 최초의 UFC 챔피언 마이클 비스핑,골프 유럽 최강자 로리 맥길로이 [50], 육상황제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 [51], 가장 유명한 아시아의 남자 스포츠선수 매니 파퀴아오, 복서 아미르 칸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타이슨 퓨리 [52], [앤서니 크롤라], [53], 영국 테니스 선수 제이미 머리 [54], [안젤라 베이비] , 박기웅, [가수 김진표]

[In an interview with the BBC in May, Prince William said he regretted not picking Manchester United as his club while as a kid. The second-in-line to the British Crown said he chose to support Aston Villa at school, as all his friends were supporting Manchester United or Chelsea and he wanted something less 'run of the mill'. "I wanted to have a team that was more middle of the table, that could give me the more emotional rollercoaster moments – to be honest, now looking back, that was a bad idea. I could have had an easier time!"] -윌리엄 영국왕자- (영국왕자 주변의 상류계층 또래에 맨유팬이 많다는 공식피셜. 영국 전 계층, 전국구 맨유인기를 느낄 수 있다.)

12 맨유의 위상과 인기

● (2011년경) 맨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식되는 브랜드에 Google, Apple, BBC, Dyson, Facebook에 이어 6위를 차지한 바 있다.
● 52 per cent of the Premier League’s entire global TV audiance (premier league averages 3.5 to 4 billion global views a season)
● 맨유는 전 세계 200개국 이상에서 시청되는 프리미어 리그 전체 TV 시청자의 약 51%를 차지할 정도로 수많은 팬을 보유했다. -에드 우드워드단장-

맨유는 전 세계 프리미어리그 시청자 반을 차지하는 자이언트 클럽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과거 [이안 아이어 리버풀 이사는 EPL TV중계권료를 20개 구단이 동등히 나누는 방식(TV중계권 공동분배)에 제동을 걸어, 클럽이 독자로 계약할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것이 성사되었다면, 지금 막대한 EPL TV중계권료의 거의 반을 맨유가 가져갔을것이다.

12.1 영국 내

○ 맨유는 한 때 유럽 최대 규모의 훌리건을 보유했었으며 어디서 싸움이 일어난다 싶으면 잉글랜드 전역의 맨유 훌리건들이 지원을 나올 정도였다. 리버풀 FC가 맨유보다 더 큰 훌리건을 보유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지만 헤이젤 참사나 힐스버러 참사로 리버풀 훌리건의 악명이 커져서 생긴 오해일 뿐 규모는 팬들이 전국구를 넘어서 바다 건너 북아일랜드 벨파스트까지 퍼져있던 맨유 훌리건보단 작았다.[55] 리버풀 훌리건은 숫자보다 장비로 더 유명했다 한다. 하지만 악명을 떨치던 두 클럽의 훌리건들도 런던의 밀월을 연고로 하는 구단인 밀월의 훌리건과는 도저히 붙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밀월 지역 자체가 이미 지옥 1번지라서...단, 천하의 밀월도 올드 트래포드에 원정대를 파견했을 때는 맨유 측 훌리건에게 철저하게 발렸다. 올드 트래포드는 영국 내 어떤 훌리건도 원정을 가지 않는 악명높은 곳이었는데 밀월이 용기내서 원정대를 파견했다가 박살난 것. 물론 밀월 본거지도 악명높긴 마찬가지여서 맨유측 훌리건도 밀월에다 원정대를 파견하진 않았다.서로 홈 깡패

○ 잉글랜드 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 클럽이자 전 세계에서도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클럽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구로 인기가 있으며, 윌리엄 영국왕자가 본인 또래 주변에 맨유팬이 많았다라고 말했을 만큼 전 계층에 두루 인기가 많다.


(▲ 스카이스포츠, "영국 내 최다 시청 구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위 지도는 2015년 스카이스포츠에서 118개 지역의 50만 스카이 시청 가구를 대상으로 지난시즌, 어떤 EPL팀의 라이브를 가장 많이 보았는지 분석한 결과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총 49개 지역으로 1위를 차지했다.

위 지도의 특징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범위가 전국구라는 것. 영국 중앙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 웨일즈, 영국 남부에도 맨유를 많이 시청하는 지역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맨유 인기가 특정 지역을 넘어 전국구 인기라는 의미이다.

[(맨유를 선호하는 49개 지역 리스트)]
Bath, Birmingham (버밍엄 시티 FC, 아스톤 빌라 FC), Blackburn(블랙번 로버스 FC), Blackpool(블랙풀 FC), Bolton, Bournemouth(AFC 본머스), Bradford(브래드포드 시티 AFC), Cambridge, Carlisle, Colchester, Crewe, Darlington, Doncaster, Dorchester, Dumfries, Galashiels, Glasgow, Halifax, Huddersfield(허더즈필드 타운 FC), Ilford, Kilmarnock, Kirkcaldy, Kirkwall, Leeds(리즈 유나이티드), Lincoln, Llandrindod Wells, Manchester 동네는 기본으로 먹고들어갑니다, Nottingham(노팅엄 포레스트 FC), Oldham(올덤 애슬레틱 AFC), Oxford(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 Peterborough, Portsmouth(포츠머스 FC), Reading(레딩 FC), Redhill, Sheffield(셰필드 웬즈데이 FC,셰필드 유나이티드 FC), Shrewsbury, Southampton(사우스햄튼 FC), Stockport, Stoke-on-Trent(스토크 시티 FC), Sunderland(선덜랜드 AFC), Swindon, Taunton, Teesside, Telford, Torquay, Walsall, Wolverhampton(울버햄튼 원더러스 FC), Worcester, York
어디 클럽팬이 맨유를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요크셔 지방(리즈)도 맨유가 인기있다.

맷 버스비시절의 맨유는 '버스비의 아이들'로 잉글랜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아, 대다수 영국 사람들의 세컨드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두루 받았다. 퍼거슨 감독 시절에는 [56] 맨유 인기가 유럽을 넘어 전세계 인기로 확장되었다.

○ [드록바는 첼시나 맨유팬이 아닌 제3자인 팬들이 맨유를 응원하고 있다고 걱정했을 정도로], 영국 내에서는 슈가 대디 구단에 대한 안티가 많아졌다.

우승을 차지한 지난 2년동안에도 팬들은 오히려 첼시가 기력이 빠지길 기다렸다 -드록바-
그러나, 그 뒤 또 다른 슈가대디 맨시티가 등장해, 그쪽으로 안티가 늘어나면서 첼시도 한숨 돌리게 되었다. 첼시 감독이었던 무리뉴가 16/17시즌에 맨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적어도 국내 이피엘 팬덤 내에서는 첼시와 맨유 관계가 더 우호적으로 된 분위기


(▲[미러에서 진행했던 각 클럽 팬들의 타 클럽에 대한 선호도 성향을 알 수 있는 투표])

잉글랜드 내의 스포츠 관련 신문은 맨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정도이며, '퍼거슨감독에게 취재 금지 소리를 들으면 해당 언론사가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잉글랜드 내에서 맨유의 인기가 많았다.

○ 일찍부터 영국 각지로 이주한 맨체스터 사람들의 자손들이 자라서 맨유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많은 수의 팬들이 맨체스터에 안 산다. 게다가 EPL이 전세계에 방송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의 팬들도 엄청나게 늘었다. 맨체스터 내에서는 북쪽이 대체로 맨유를 지지하는 편이다.

○ 영국내 전국구 인기: 1) 자기 지역 내에 EPL 소속 혹은 승격할 가능성이 있는 팀이 없는 지역과 2) 북아일랜드 쪽에도 맨유가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북아일랜드&아일랜드 출신의 맨유 레전드 조지 베스트, 로이 킨등의 활약이 큰 듯. 조니 에반스도 아일랜드 출신.

○ 잉글랜드 내부의 라이벌 팀으로 분류되는 첼시 FC, 리버풀 FC, 아스날 FC, 맨체스터 시티 FC를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모두 앞선다. [57] 그외에도 거의 모든 잉글랜드 클럽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앞서고 있다.

상대팀
리버풀 FC694857
아스날 FC814265
첼시 FC644549
맨체스터 시티 FC604643


12.2 대한민국 내

○ 원래도 해외 축구팀 중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 중 하나였다. 데이비드 베컴으로 대표되는 인기 선수들이 뛰고 있는 팀이기도 했고 당시 해외 축구에 접근성이 부족했던 때에 EPL의 최강자 이미지와 1999년 트레블의 맨유에 대한 신비감이 크기도 한 시기였기 때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화제를 모은 미남 베컴 효과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에 한국 선수인 [박지성]이 입단하면서 국내 해외 축구의 인기를 선도하며 팬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현재는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인기가 가장 많은 해외 축구팀이 되었으며 2007년 한국에도 방한해서 경기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QPR) 이적하며, 박지성과 함께했던 '맨유 공화국'도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 '한국국대 황금기'의 영향을 받은 맨유 클럽의 국내 인기는 여전히 많은 편. 맨유는 1999년도 트레블을 함께하거나 2002 한일 월드컵때 베컴의 영향으로 유입된 오래된 팬들도 많다. 그리고 박지성이 2005년 맨유에 입단해 2012년까지 활약했기 때문에 맨유는 상대적으로 최소 10년차 이상의 지식이 해박한 올드비도 많으면서 클럽 인기로 열정적인 뉴비 유입도 많은 다양한 연령대의 조화로운 팬 구성을 가지게 되었다. 맨유가 잘나가던 퍼거슨 황금기, 또는 반대로 막장이었던 모예스와 반할을 거쳐온 역전의 노장들, 즉 진정한 올드비의 숫자는 다른 클럽들보다 압도적이다.
국내 맨유 팬의 기상은 사상 최초로 아시아에서 개최된 '2002 한일월드컵'의 '한국 4강 진출' 에서 흘러왔다. 자국 축구 역사상 최강팀을 구축했던 '포르투갈'을 조별예선에서 탈락시키고, 불굴의 의지로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역전 승리를 이루며 '이탈리아'를 격파. 스페인을 8강에서 이겨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존심)을 보여주며 4강 진출 신화를 달성한 것을 몸으로 체감했던 올드비들.중국? 일본? 아시아 자존심은 한국이 다 했다 당시 그들에겐 클럽 축구계의 '본좌' 퍼거슨경도 친근한 할배로 보였으니. 맨유에 소속된 동료선수들도 (한국인에게는 최고의 맨유 선수였던) 박지성 시점으로 바라보는 '아시아 호랑이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큰 자산이 되어, 자연스럽게 '프리미어리그 장수감독 3위출신 중위권 모예스'와 '아약스와 오렌지 구단'의 반할감독의 막장 암흑기시절을 겪으며 진정한 올드비 [58] 이자 맨유클럽팬(영감피셜: 맨유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으로 재탄생했다. 박지성 이전에 맨유를 좋아했던 올드비들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는 박지성 선발 여부 스쿼드에 따른 여파, 한국 국대뽕의 최고치를 맛본 '보살' 해외 축구 클럽팬이 되었다. '아시아의 호랑이 기상'들을 견뎌낸 그 이전 올드비들은 '살아있는 보살' 등급으로 올라갔다. 박지성은 은퇴했는데, 이 당시 일부 (한국국대황금뽕 + 박지성뽕)까들이 그 습성을 못버리고 악질맨까 잔해로 남아있다. [59] 본인 응원팀보다 맨유를 더 속속히 잘 알고 있다면 정말 한심할뿐 [60]


▲ 모예스의 경기를 보고 성난 '살아있는 문화재' 급 맨유팬 (요약: 이건 아니야. 모예스가 하는건 프레스턴 노스 엔드,구석기 축구.) 진정한 올드비의 등급을 딴 팬들에게 남은 목표는 '살아있는 문화재' 등급. 최근 전세계 맨유팬은 무리뉴에게 클럽 축구 팬덤계의 '아인슈타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감독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맨유의 문제점이 무엇이 정확히 파악한 레드 데빌즈. 현지팬 투표에서 99%의 단결력을 보여주며, 핵심을 짚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 대상은 잉글 주장에 클럽 주장으로, 레드데블즈는 개인 선수 팬심을 넘어서는 클럽팬심 단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 팬투표에서 선수 DROP 선택률이 99%가 가능하다니ㄷㄷㄷ레드데빌즈는 바로 전세계 클럽 축구 팬덤계의 '퍼거슨의 아이들'로, [본좌 퍼거슨 영감에게 배운 헤어 드라이기를 전세계 레드 데빌즈가 소환.] [DROP HIM]. 그리고 전세계 아인슈타인 레드데빌즈에게 놀라움을 느낀 무리뉴는 이를 반영. [결과는 레스터 전의 전반전 경기 4-0. 아인슈타인 레드데빌즈가 맨유에 막혀있던 패스의 '혈'을 뚫었다!!]
무리뉴에게 이것이 본인의 감독경력상 '컬쳐 쇼크'인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본인이 그렇게 노력해도 힘들었는데. 맨유에서는 무리뉴는 입 한번 뻥긋 안하고, 1주일 만에 전세계 아인슈타인 레드데빌즈가 밥상 다 차려주고 숟가락만 얹히면 되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선수 스쿼드를 결정권을 지닌 감독) 무리뉴가 'DROP ROONEY'를 못하면 도리어 스스로가 위험해지는 상태로 등을 떠 밀어버린 것. 그게 뭐 어렵냐. 우리가 밥상차려줄께 루캡틴으로써는 맨유 메인맨의 위치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적으로 볼때, 이는 스포츠 선수라면 다 오는 과정일 뿐. 그 과정에서 팀 성적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려는 현지 맨유팬들의 3수 앞을 내다보는 결단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주장 루니보다 감독에게 힘의 추가 옮겨지도록 팬들이 도와준 것일 수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무리뉴 감독 본인에게 달렸다. [61]

● 아인슈타인들로 세상엔 가득하다. 이것이 새로운 축구다.
● 저는 괜찮습니다. 아인슈타인에 대해서도 괜찮아요. -무리뉴-

○ 한 때 국민클럽이었던 맨유와 함께한 긴 시간은 이제 그들을 해외축구문화의 '올드비'들의 중심으로 만들었다.이제는 맨유팬이 뉴비에게: 입문 몇 년차니? (2002년 한일 월드컵에 태어난 아이가 지금 15살 중학생이다.) 다음, 네이버 맨유 카페 회원 수를 합치면 무려 16만 6천여 명으로 리버풀의 5만3천여 명, 맨시티의 2만7천여 명, 아스날의 5만8천여 명, 첼시의 4만1천여 명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 맨유의 박지성 입단은 국내 TV 축구 중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해외축구를 생중계 시작한 것이 이영표랑 박지성이 PSV에 입단한 뒤이고, 박지성이 맨유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리그를 생중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의 등장으로 스포츠 중계방송은 질적 변화를 맞이했다. 신문선과 차범근으로 대표되던 국가대표팀 위주의 중계방송 편성이 유럽 프로축구 중계 중심으로 바뀌었고, 해설도 이에 맞춰 진화했다. 단순히 경기 상황을 전달하는 데 그쳤던 해설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 국내에서 맨유의 인기가 많다보니, 실제로 본인 팀에 있는 더비에 관심을 쏟기보다 맨유랑 같이 엮여볼려고 있지도 않은 더비를 창작하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현실. 인기인은 피곤해 심지어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것인지, 외국에서는 쓰지도 않는 '붉은 장미의 전쟁'이라는 듣도 보지도 못한 이름를 창작하는 기현상을 보여주었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에도 영국인들 있는데. 이러지 맙시다. 제발 하지만 더비는 영국 고유의 지역 역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영국 현지에서 맨유와 관련된 더비는 총 3개 밖에 없다. 1)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장미의 전쟁 더비' 2) 리버풀과의 '노스웨스트 더비' 3) 이웃사촌 맨체스터 시티와의 '맨체스터 더비'이다. 원래 맨체시터 시티와는 선수 교류가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데다가 1980년대 부터 20년간 맨체스터 시티가 1부와 3부를 왔다갔다 해서 더비가 더비 같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근에 관심도가 올라간 더비다.

12.3 그 외 국가

○ 맨유 관련 서적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가입된 서포터가 7500만명이라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클럽이다.

○ 원래도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었지만 2000년대 중후반에 박지성의 영입과 꾸준한 성적으로 아시아에서 팬층을 개척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양밀란을 포함해 인기팀 5위 안에 들며 조사에 따라 1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62]. [태국은 유럽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인데 리버풀, 아스날 등이 다양하게 인기를 얻고 있지만 맨유의 경우에는 아예 챔스 결승을 중계하는 캐스터들이 맨유 레플을 입고 방송할 정도.] 중동에서는 다른 유럽 유명 클럽들처럼 맨유도 인지도 있는 클럽이라고 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축구가 인기가 없어서 다른 지역 정도는 아니지만, 인지도에 있어서는 다른 유럽 유수클럽들처럼 아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맨유는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서 3년연속 1위 클럽(2010년, 2011년, 2012년)에 선정되는 등 클럽 가치 부분에서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레이커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등과 함께 언급되는 유럽 클럽이다. 미국에서 유럽 축구클럽 중에서는 거의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기가 있다.

○ 이런 덕인지 2014년 여름의 프리시즌에서 미국 투어를 했을 때 맨유vs레알 전에서 관중들의 대부분이 맨유의 붉은 유니폼을 입었던 덕에 당시 사진들을 보면 관중석이 온통 붉은 색이다. 이 때문에 스페인의 언론사에서는 포샵질을 해서 관중석을 하얗게 보이도록 해서 보도하는 왜곡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 축구 중계사상 최고 시청률 톱 10을 보면 한 두개 시합을 빼고는 모두 맨유의 시합이며 2014-15 시즌의 맨체스터 더비가 최고 시청률 1위를 달성하기도 하는 등, 점점 팬 층이 확대되는 추세.

○ 유럽의 경우는 연고지 팀을 응원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다른 대륙보다는 덜하지만 빅클럽인 만큼 그래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인기가 있다.


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유니폼


▲ 영상으로 한 눈에 보는 맨유 유니폼 변천사

역대 유니폼 사진들은 맨유 유니폼 항목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맨유 유니폼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며 셔츠 메인 스폰서는 쉐보레이다. AON은 2014/15 시즌부터 훈련장 이름 명명권을 취득했고, 트레이닝 키트 스폰서로 변경됐다.


14 응원가 - Glory Glory Man United!

○ 맨유 응원가는 여러개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아래 나오는 Glory glory Man United. 남북전쟁 당시 사용된 미국의 군가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을 가사를 바꾸어 사용하는데 들어보면 스포츠팀 응원가답게 힘있고 유쾌한 리듬의 노래인데...어찌 들으면 좀 뽕짝같기도 하다. 원곡은 장중한 느낌이 나는데, 스포츠 응원가 버전으로 유쾌하게 바꾼 것.[63]



(가사에서 나오는 (숫자)는 아래의 해석)
제목 : Glory glory Man United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영광의 맨 유나이티드.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영광의 맨유나이티드.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영광의 맨유나이티드.
And the reds go marching on! on! on!
붉은 악마들이 나가 싸운다! ! !
Just like the Busby Babes in Days gone by(1)
그 옛날의 버스비의 아이들 처럼
We'll keep the Red Flags flying high
우리의 붉은 깃발을 드높여라
You've got to see yourself from far and wide
멀고 넓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아라
You've got to hear the masses sing with pride
자랑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보아라

United! Man United!
유나이티드!맨 유나이티드!
We're the boys in Red and we're on our way to Wem-ber-ly
우리가 바로 붉은 악마들! 웸블리로 간다
Wem-ber-ly! Wem-ber-ly!
웸-블-리! 웸-블-리!
We're the famous Man United and we're going to Wem-ber-ly
우리가 바로 맨 유나이티드! 웸블리로 간다
Wem-ber-ly! Wem-ber-ly!
웸-블-리! 웸-블-리!
We're the famous Man United and we're going to Wem-ber-ly
우리가 바로 맨 유나이티드! 웸블리로 간다

In Seventy-Seven it was Docherty(2)
77년엔 도허티
Atkinson will make it Eighty-Three(3)
83년엔 앳킨슨
And everyone will know just who we are
이정도면 우리가 누군지 알겠지
They'll be singing 'Que Sera Sera'
그들은 '케세라세라'를 부르네(스페인어로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4)

United! Man United!
유나이티드! 맨 유나이티드!
We're the boys in Red and we're on our way to Wem-ber-ly
우리가 바로 붉은 악마들! 웸블리로 간다
Wem-ber-ly! Wem-ber-ly!
웸-블-리! 웸-블-리!
We're the famous Man United and we're going to Wem-ber-ly
우리가 바로 맨 유나이티드! 웸블리로 간다
Wem-ber-ly! Wem-ber-ly!
웸-블-리! 웸-블-리!
We're the famous Man United and we're going to Wem-ber-ly
우리가 바로 맨 유나이티드! 웸블리로 간다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영광의 맨 유나이티드.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영광의 맨 유나이티드.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영광의 맨 유나이티드.
As the Reds Go Marching On! On! On! (3x)
붉은 악마들이 나간다! ! ! (3x)

(1):'버스비의 아이들'이란 퍼거슨 감독다음으로 장기 재임한 매트 버스비 감독이 발굴해 키운 유스 출신의 선수들을 말한다. 폴 스콜스, 네빌 형제, 데이비드 베컴 등을 가리키는 '퍼거슨의 아이들'과 같은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퍼거슨의 아이들'처럼 이들도 당대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가졌으며 그 앞날이 기대되는 초특급 선수들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뮌헨 참사'라 불리는 비행기 사고로 대부분이 목숨을 잃거나 은퇴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 사망자 중에 던컨 에드워즈라는 선수는 살아있었다면 오늘날 축구황제라는 표현이 펠레가 아닌 그를 위해 쓰여졌을 것이라고 할 정도의 천재였다. 덧붙여 이 뮌헨 참사로 한때 맨유는 큰 위기를 맞았으나 버스비 감독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팀을 일으켜 세워 우승컵을 차지했다. 올드 트래포드 앞거리를 '매트 버스비 경 거리'라고 정식 명명될 정도로 맨유의 역사에 큰 역할을 한 감독이며 역대 명감독 순위에서 1, 2위를 다툰다.[64]

(2):'77년 도허티'에서 도허티는 제1의 전성기 였던 매튜 버스비 감독 이후 쓰러져가던 맨유를 구한 토미 도허티 감독을 말하는데 그는 1975년 디비전2에서 우승해 팀을 다시 디비전1으로 승격 시켰고 1976년과 1977년 FA컵 우승했다.

(3):'83년에는 앳킨슨'에서 앳킨슨은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까지 리버풀 FC등의 라이벌에게 밀리던 맨유를 구한 또 하나의 감독인 론 앳킨슨을 말한다. 그는 1983년 1985년 FA컵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4):'케세라세라'란 서반어로 '될 대로 되라,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뜻인데,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맨유가 아무리 부진하더라도 퍼거슨 감독시절 퍼거슨이 어떻게 해서든 우승시켜주겠지 라는 의미에서 특별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런 응원구호에서부터 보듯이 퍼거슨경이 맨유에서 얼마나 위대하고 신뢰받는 존재였는지 잘 알수 있다.


15 여담

15.1 거부들의 드림클럽

○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탄생으로 명문 클럽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세계 거부들이 영국리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FFP가 도입되기 이전 시절에) 스포츠 전문가들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우수한 선수를 비싼 값에 사와야 하는 프로구단의 속성 때문에 프로스포츠 팀이 맨유처럼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수익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곤 했었다. 때문에 맨유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맨유를 인수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거부들이 적지 않았다. FFP와 샐러리갭이 프리미어리그에 도입되면서, 지금 클럽들은 예전과 달리 흑자를 더 낼 수 있게되었다. 한 예로 첼시 구단주 로만은 2002/03시즌 베컴이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고, 퍼거슨 축구 스타일에 매료되어 잉글랜드 클럽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 맨유 인수에 관심있던 거부들 리스트)
● [루퍼드 머독] (전 LA다저스 구단주)
●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
●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맨시티 구단주)
●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국왕 (PSG 구단주)]
●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AS 모나코 구단주)
● [마윈 알리바바 회장]

○ 1990년대 후반, 유명한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맨유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루퍼트 머독맨유의 지분을 매입해 인수하려다 소액주주와 서포터 연합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2000년대 초 글레이저가 영국 축구의 자존심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영국축구팬들이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었다. 맨유 서포터들은 '맨유는 NFS'를 외치며 일부 팬들은 별도로 6부 리그 시민 구단인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65]를 만들었다. [66] 입장이 바뀌어 지금은 글레이저 구단주가 맨유 인수에 관심있는 세계 거부들에게 '맨유는 NFS'를 외치는 중이다. 돈이면 뭐든지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거부들에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축구 클럽이 되어버린 맨유. 축구 클럽계의 오펜하이머 블루. 그 마력에 빠진 것인가.

퍼거슨의 유산을 바탕으로 우드워드 단장이 신바람 나게 돈을 엄청 잘 벌어오는 데다가 맨유도 최근 월드 레코드를 찍으며 돈을 풀기 시작했다. 거부들은 더 맨유를 가지고 싶어서 애가 타겠군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 이젠 오랫동안 다른 구단주들 행보를 보며 간섭이 없는 투명인간 구단주도 괜찮은 점이 있다고 생각이 들게 되었다. 존재감은 퍼거슨 감독에게 모두 집중되고 구단주는 투명인간처럼 없는 듯한 느낌이 이미 오래였지만, 역으로 (맨유 구단주가 된 과정에서 볼 때 글레이저가문 태생상 현지팬들에게 떵떵거리고 살 수 없어서) 구단주가 현지 팬들을 신경쓰는 큰 장점이 생겼다.

○ 이는 글레이저 구단주가 루퍼트 머독의 맨유 인수에 '저항'해 무산시킨 레드 데블즈 열정을 보았고, 글레이저 구단주 스스로도 맨유 인수과정에서 이미 레드 데빌즈의 엄청난 '파워'를 맛보았기 때문. 게다가 레드데블즈는 가끔씩 경기장에 플랜카드를 걸어서 구단주가 안심하지 못하게 했다. 구단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레드 데블즈라 카더라. 좋은 자세다

○ 모든 조직에는 보스가 중요하다. 맨유는 퍼거슨이라는 말이 있었듯, 퍼거슨 감독은 재임시절 ‘실권을 쥐고 있는 책임자’(=보스)였다. 보스는 조직의 우두머리로 결정을 주도하고 역할인 반면 리더는 일을 직접 추진하고 행동하며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는 포지션. 그러나 퍼거슨 은퇴 이후 후임감독들, 즉 최종결정자가 1) 계속 잘못된 결정을 해 최종 결과가 좋지 않거나(예. 기록 브레이크 Record Break 모예스) 2) 팬심을 외면하고 고집을 부린다면(예.반할)?!!! 爲萬事休矣....... 그 때는 레드 데블즈가 나설 수 밖에!!!!

최근 3년간 퍼거슨 은퇴 후 2명의 후임 감독 행보를 볼 때, 맨유는 최대한 감독을 믿고 기다려주지만 감독이 팀을 말아먹고 현지 팬들의 여론이 지나치게 악화되면 결론은 대다수가 원한대로 감독 경질이었다. [모예스가 전격 경질(2014년 4월 22일 )되기 전 3월 26일현지 OT 직관팬이 모예스 거의 바로 뒷자리에서 고함치면서 X을 퍼부었다가 요원들한테 끌려나갔고, 관람석에 있던 퍼거슨 감독을 향해 현지팬이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반할도 경질 전 2016년 1월말경 자신이 화가난 팬들에게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해 주위에 경호원을 증원을 요청했고, 맨유은 혹시나 벌어질 팬 난동에 대비해 캐링턴 훈련장과 홈 구장인 올드 트래포드 내부, 원정 팀 운동장에 경호원을 더 증원한 바 있다.] 두 후임감독들이 경질되니 타팀이 더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며,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좋은 감독이면 타팀이 안타까워 할 리가 없지

●(반할에 대해) [가장 크게는 결국 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맨유의 팬들은 성공에 익숙한 팬들이다. 언제까지고 감독이 잘 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67] -팻 크레런드(전 맨유코치)-

15.2 이피엘 인재 산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인연이 있는 클럽들이 프리미어리그과 챔피언쉽(2부 리그)에 꽤 있다.

헐 시티 AFC: [맨유 역대 가장 뛰어났던 중앙 수비수들 중 한 명이었던 스티브 브루스]감독이 15/16시즌 헐 시티 AFC를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다. 스티브 브루스감독을 도우러 갔던 [마이크 펠란(전 맨유 선수이자 퍼거슨 감독 시절 코치)]이 16/17시즌 감독대행을 맡은 후 정식 감독으로 임명됐다. 마이크 펠란은 90년대 초반 맨유의 주전 미드필더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했으며, 퍼거슨 감독시절 수석코치를 맡았던 맨유산. 헐시티에는 맨유 유스 출신[윌 킨]과 [제임스 위어]가 소속되어 있다.
스토크 시티 FC: 퍼거슨감독에게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을 지어준 맨유의 핵심공격수였던 마크 휴즈가 13/14시즌부터 감독으로 있다. 맨유 유스 출신 라이언 쇼크로스 가 주장으로 있으며 필립 바슬리가 활약중.
선덜랜드 AFC: 맨유 주장 출신 로이 킨스티브 브루스가 감독으로 있었으며, 머니는 빅클럽 보다 적은 예산 규모 클럽에서 성적은 딱 중위권까지는 잘 운영하는 데이비드 모예스[68] (전 맨유 감독)가 16/17부터 감독을 맡았다. 웨스 브라운이 주장으로 있으며, 존 오셔, 아드낭 야누자이, 패디 맥네어, 도날드 러브 등 맨유산 선수들이 있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주장은 대런 플레처. 조니 에반스가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
레스터 시티 FC: [레스터 시티의 비차이 구단주]의 비서로 일했던 알렉스 힐튼에 따르면 “비차이 구단주는 진정한 축구 팬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가 열리면 일찍부터 TV를 지켜보며 모든 선수에 관한 정보를 꿰고 있었다. 그 뒤 레스터 경기를 관전하고 그 다음 경기까지 지켜본다. 정말 경기에 열광한다. 그는 축구 팬으로서 구단을 인수했다.”고 한다. 응? 맨유팬? 레스터 시티 FC에서 맨유 유스 출신 대니 드링크워터, 대니 심슨. 론로베르트 칠러가 좋은 활약들을 하고 있다.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은 맨유 레전드 피터 슈마이켈의 아들이기도 하다.
레딩 FC: [야프 스탐]이 감독으로 있으며, 맨유유스 [블랭킷]이 소속되어 있다.
아스톤 빌라 FC: 스티브 브루스가 16/17시즌 도중 감독으로 부임했다. 스티브 브루스는 맨유 선수 시절 중앙 수비수 파트너인 게리 팰리스터(Gary Pallister)와 함께 견고한 수비를 펼쳤으며, 사람들은 이 둘을 ‘Dolly and Daisy’란 애칭으로 불렀다.
더비 카운티 FC: 맨유 코치 출신 스티브 맥클라렌이 16/17시즌 도중 감독으로 부임했다.

15.3 가장 역사 깊은 유스 아카데미

○ 유소년 자원이 상당히 좋은 팀이다. 예전부터 퍼거슨의 아이들로 불린 네빌형제, 데이비드 베컴, 니키 버트,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등이 있었고, 이들로 트레블을 이뤘다. [[[현재 맨유 유스 아카데미 코치를 맡아서 일하고 있다.]

●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유스 규정에 대해) 프레이저 캠벨, 키에런 리차드슨, 필립 바슬리, 라이언 쇼크로스 등 EPL에서 활약하는 맨유 유스 출신은 상당수지만, 맨유 눈높이에 맞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역시 월클판독기 빛을 본 선수는 이들보다 훨씬 선배인 대런 플레쳐 이후 조니 에반스, 최근엔 대니 웰벡, 톰 클레버리 정도다. FA의 유스 규정은 최악이었다. '90분 룰(90-minute rule)'은 유스 시스템을 옭아맸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찾기란 어려웠다. -퍼거슨경-
:‘90분 룰’이란 각 클럽 유스 아카데미에서 1시간 30분 이내에 거주하고 있는 유스 선수들과만 계약할 수 있다는 조항. 이 룰로 인해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은 유망주 영입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게다가 이렇게 모은 10-18세의 유스들의 훈련시간은 8년동안 2천시간( 1년동안 250분 정도?! 응?)으로 한정 되었다. 이 규정은 많은 클럽들로부터 반발을 샀고, 결국 2011년경 폐지되면서 종전의 유스 계약 방식으로 회귀했다. [출처] 다른 클럽은 바다건너 남미에서 유스를 수입하는 마당에 90분내에 거주하는 동네 아이들 유스로 빅클럽을 운영하라니 FA 희대의 삽질이었다.
● (FA 유스 규정 삽질에도 불구하고 2014년 기준으로) 맨유의 아카데미는 영국에서 다른 어떤 클럽보다 현재 유럽 탑 5리그에 총 36명으로 가장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명확한 표시이다. -에드 우드워드 단장-
○ 스쿼드 내에서 3~4명 이상은 꾸준히 유스 출신의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대런 플레처, 존 오셔, 웨스 브라운, 키어런 리차드슨, 크리스 이글스 등이 나왔고, 각자 EPL내 각 팀에서 주전으로 맹활약 중이다. 현재 맨유 1군에는 유스출신 포그바, 래쉬포드, 제시 린가드, 티모시 포수멘사 등이 포함되어 주목받고 있다.

15.4 그 외

○ [오뚜기 3분요리]와 조아제약과 관련이 있다.

유니세프를 후원하는 4개 클럽 중 하나다.

○ [2016년 맨유 페이스북에 광복절을 기념하는 글이 올라왔다.]

○ 2006년경에 신한카드에서 제휴 신용/체크 카드가 나온 적이 있다. 혜택 중 하나가 매년 추첨을 해서 당첨되면 영국으로 직관을 보내주는 것. 오오...

○ 2015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르히오 라모스의 주급불만에서 이어진 이적설이 발생한 이후 지속적으로 맨유 이적이라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주급 상승을 노리는 선수가 나타났다는 설이 있었지만, 이는 이적시장을 처음 본 뉴비의 생각이다. 그런 말 하는 뉴비에게 '닥눈삼'이라고 말해주자 과거 호날두가 2007년 당시 맨유에서 주급 12만 파운드(약 2억 2000만원)를 받았고, 2008년에는 15만 파운드(약 3억 1500만원)로 EPL 최고대우를 받았다. 그런 호날두에게 레알이 제안했던 주급은 24만 파운드(약 4억 5000만원). [69]

● [With the exception of Cristiano (Ronaldo), Di Maria would have been the highest paid at Real Madrid. Had we accepted his financial demands it would have created an unbalanced treatment that would have put the club's stability in danger. 디 마리아에게 가능한 최고의 제안을 했다. 호날두에 이어 레알 마드리드에서 가장 비싼 연봉이었다. 하지만 디 마리아는 그걸 받지 않고 나갔다. ~~맨유 이적~~ 만약 디 마리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우리 클럽 재정이 위태롭게 될 뻔했다.] -페레즈 (레알마드리드 회장)-

북한 김정은네? 맨유의 열성팬이라고 한다.특히 웨인 루니의 광팬이라고 한다.

○ 2015년 7월 5일 레몽 도메네크 前 프랑스출신의 점성술사 대표팀 감독이 맨유는 더 이상 빅클럽이 아니라고 디스했다. [ 도메네크 유, 이상 클럽 니야."] 그러나 도메네크는 하루 뒤에 [[[[[4]]|"모르간 슈네데를랭이 맨유로의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면 좋은 선택이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 현지시각 2016년 6월 9일, 오버워치 프로팀 인수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Fnatic과 경합을 하는 중이라고. 프로 축구팀이 e스포츠에 진출한 사례는 이미 EPL 내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피파 프로게이머를 정식으로 영입하고, 타 리그에서도 볼프스부르크가 세계 최초로 e스포츠 선수를 정식으로 영입하고, 베식타스 JK샬케 04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을 창단하고 발렌시아 CF하스스톤 프로팀을 [창단한 사례가 있다]. 이후 2016년 8월 16일 국내의 K리그팀인 성남 FC가 피파 프로게이머이자 전설이라 할수 있는 김정민을 영임했다.

○ [게임보이 한정판으로도 나온 적이 있다.]


16 참고 문서

맷 버스비 - 맨유의 토대를 구축한 명장.
알렉스 퍼거슨 - 맨유의 전설적인 명장, 27년의 역사. 올드 트래포드 북쪽 스탠드의 이름 .
퍼거슨 제자들 - 퍼거슨의 제자들 중 클럽 퍼스트 감독이 된 맨유 출신 선수가 31명.
뮌헨 비행기 참사 - 맷 버스비 시절, 축구종주국 잉글협회 FA는 자국 리그 우승팀의 유러피언컵의 출전을 막아왔다. 그런 FA의 방해를 뚫고 최초로 유럽대회에 진출하려고 했던 개척자 맷 버스비 였지만, 이를 탐탁지 않아했던 잉글협회 FA의 '고집'에 의해 뮌헨 비행기 참사가 일어났다. 맨유 클럽 뿐만 아니라 영국으로서도 월드컵에서 활약할 미래가 기대됐던 맷 버스비아이들을 잃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에는 이를 기념하는 추모 시계가 있으며, 당시 사고 시각인 3시 30여분경에서 멈춰 있다.
보비 찰튼 - 맷 버스비 아이들 중 한명. 뮌헨 비행기 참사를 딛고 '오뚜기'처럼 일어난 맨유의 상징이다. 발롱드르 삼각편대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보비찰튼으로 유명했으며, 맨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레전드. 올드 트래포드 남쪽 스탠드의 이름 .
캄프 누의 기적 - 다른 클럽이 일으킨 헤이젤 참사로 축구종주국에서 변방리그로 추락한 잉글랜드 리그. 리그가 힘들었던 순간 퍼거슨이 맨유를 이끌고 트레블을 일으키며 잉글랜드 리그를 정상에 복귀시킨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던 사건.
올드 트래포드 - 세계 2차 대전의 아픔을 간직 한 곳이자 맨유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홈 구장이다. 보비 찰튼경이 '꿈의 구장'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맨유 7번 - 맨유는 7번의 상징성을 태동시킨 클럽이다. 맨유 7번 계보를 보면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맨유 재정 - [맨유는 한 클럽에서 더 나아가 EPL 리그 전체의 성장과 재정에 큰 기여를 하고, 기틀을 잡는 데 영향을 끼쳤다.]

17 맨유 공식 사이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국어 홈페이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트워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인스타그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카카오 스토리]
○ [유니폼 스폰서 쉐보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관련 행사]

18 스쿼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로마자 성명생년 월일신체 조건계약 연도계약 만료비고
1 GK다비드 데헤아David de Gea1990.11.07193cm, 82kg20112019
3 DF에리크 바이Eric Bailly1994.04.12187cm, 78kg20162020
4 DF필 존스Phil Jones1992.02.21185cm, 71kg20112019
5 DF마르코스 로호Marcos Rojo1990.03.20187cm, 80kg20142019
6 MF폴 포그바Paul Pogba1993.03.15191cm, 84kg20162021
8 MF후안 마타Juan Mata1988.04.28170cm, 63kg20142018
9 FW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ć1981.10.03195cm, 95kg20162017
10 FW웨인 루니Wayne Rooney1985.10.24176cm, 83kg20042019주장
11 FW앙토니 마르시알Anthony Martial1995.12.05181cm, 76kg20152019
12 DF크리스 스몰링Chris Smalling1989.11.22192cm, 81kg201020193주장
14 MF제시 린가드Jesse Lingard1992.12.15175cm, 58kg20112018
16 MF마이클 캐릭Michael Carrick1981.07.28190cm, 74kg20062017부주장
17 DF데일리 블린트Daley Blind1990.03.09180cm, 72kg20142018
18 MF애슐리 영Ashley Young1985.07.09175cm, 65kg20112018
19 FW마커스 래시포드Marcus Rashford1997.10.31187cm, 70kg2016
20 GK세르히오 로메로Sergio Romero1987.02.22192cm, 87kg20152018
21 MF안데르 에레라Ander Herrera1989.08.14182cm, 73kg20142018
22 MF헨리크 미키타리안Henrikh Mkhitaryan1989.01.12177cm, 75kg20162020
23 DF루크 쇼Luke Shaw1995.07.12185cm, 75kg20142018
24 DF티모시 포수멘사Timothy Fosu-Mensah1998.01.02190cm, 78kg2014
25 DF안토니오 발렌시아Antonio Valencia1985.08.04181cm, 78kg20092018
27 MF마루앙 펠라이니Marouane Fellaini1987.11.22194cm, 85kg20132018
36 DF마테오 다르미안Matteo Darmian1989.12.02182cm, 70kg20152019
38 DF악셀 튀앙제브Axel Tuanzebe1997.11.14185cm, 75kg2014
40 DF조엘 카스트루 페레이라Joel Pereira1996.06.28190cm, 82kg2015
- FW제임스 윌슨James Wilson1995.12.01184cm, 78kg2014
출처: 영어 위키백과, 마지막 수정 일자: 2017년 3월 22일


19 같이 보기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레스터리버풀맨시티맨유
미들즈브러번리본머스사우스햄튼
선덜랜드스완지스토크아스날
에버튼왓포드웨스트 브롬웨스트 햄
첼시크리스탈 팰리스토트넘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1956년11회
2 벤피카
(Benfica)
1961년2회
3 밀란
(Milan)
1963년7회
4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1964년3회
5 셀틱
(Celtic)
1967년1회
6 맨유
(Manchester Utd.)
1968년3회
7 페예노르트
(Feyernoord)
1970년1회
8 아약스
(Ajax)
1971년4회
9 바이에른 뮌헨
(Bayern)
1974년5회
10 리버풀
(Liverpool)
1977년5회
11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1979년2회
12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1982년1회
13 함부르크
(Hamburg)
1983년1회
14 유벤투스
(Juventus)
1985년2회
15 스테아우아
(Steaua)
1986년1회
16 포르투
(Porto)
1987년2회
17 PSV
(Eindhoven)
1988년1회
18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1991년1회
19 바르셀로나
(Barcelona)
1992년5회
20 마르세유
(Marseille)
1993년1회
21 도르트문트
(Dortmund)
1997년1회
22 첼시
(Chelsea)
2012년1회
  1. 장미전쟁에 비유해 맨유의 연고지인 맨체스터시가 랭커셔주에 위치해 있고 또한 리즈의 연고지인 리즈시가 요크셔주에 위치해 있다. 거기다 맨유의 홈 유니폼은 랭커스터 가문의 붉은 장미를 상징하는 붉은색, 리즈의 홈 유니폼은 요크가문의 하얀 장미를 상징하는 흰색이기 때문에 '로즈 더비'라고 칭한다. 지역감정에서 시작된 더비 매치인지라 과격하기로 유명하며, 툭하면 훌리건이 출동해 난동부리고 경찰을 부른다.
  2. 미국 NFL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3. 2005년부터 공동 회장을 역임 중이다.
  4. 2016년 기준
  5. 아스날과 동률
  6. 맨체스터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약 4~5km 가량 떨어져 있다.
  7. 그러나 산업혁명의 그림자로 맨체스터 도시는 발전하고 안정된 중산층도 생겨났지만 고질적인 사회문제인 빈민들이 생겨났다. 이들을 구제하는 일은 유럽에서는 보편적으로 교회가 담당한다. 맨체스터의 세인트 마크스 교회는 빈민구제 뿐 아니라 여러 사회사업도 병행했는데, 이 중 하나가 술에 쩌들어 있던 빈민들과 조직폭력배를 구제하는 하기 위한 일환으로 축구팀(맨체스터 시티)을 만드는 것이었다. 두 축구 그룹이 빛(중산층 노동자 계급 탄생: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그림자(빈민, 조직폭력배 구제:맨시티)를 모두 포함하는 셈이다. Members of St. Mark's Church of England, West Gorton, Manchester, founded the football club that would become known as Manchester City, for largely humanitarian purposes. Two church wardens sought to 'curb local gang violence and alcoholism' by instituting new activities for local men, whilst high unemployment plagued East Manchester, specifically Gorton. All men were welcome to join, regardless of religion.
  8. 비슷한 예로 이탈리아에서도 자국 리그인 세리에 A에서 30회가 넘게 우승한 유벤투스를 대표 명문으로 꼽는다. 창설된 연도가 오래되었다고 명문이라고 한다면, 리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잉글랜드 리그의 '2부 3부 리그의 클럽들도 거의 다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리그 우승 누적 횟수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9. 자급자족으로 팀의 첫 전성기를 만든 클럽은 전 유럽으로 봐도 흔하지 않다. 황금 유스의 시초였던 맷 버스비의 맨유가 대표적이며, 1970년대 이후로는 아약스가 있다. 두 팀의 공통점은 바로 유스 시스템이다.
  10. 0.1m은 지금과 같은 돈으로 비교하면 안된다
  11. 맷 버스비는 망날 시대 이후 무너진 맨유를 일으켜 세웠고, 유스를 육성하여 맨유의 미래를 만들었다. 그는 영국에서 클럽 감독 사상 최초로 기사작위(CBE)를 받은것 이외에도, 이탈리아 교황에게 작위를 받은 세계 유일의 축구 감독이기도 하다. (Knight Commander of St Gregory : KCSG).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리버풀의 명장 밥 페이즐리는 선수로 뛰던 어린 시절부터 버스비경을 아버지처럼 따랐으며, 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었다.
  12. 180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잉글랜드 리그는 축구 종가로써 위엄이 있었고,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 축구판으로 따지면 고대 시절에 해당하는 시절이었고, 잉글랜드인들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독일, 스페인, 이태리 등을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축구를 본격적으로 전파시키고 영향력을 끼쳤던 시절이다. 당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명(異名)을 갖고 있던 영국의 강대한 국력을 자양분 삼아 축구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유럽과 남미 전역에 원시적 형태로 자리하던 클럽들은 '축구 종가(宗家)'에서 풋볼리그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자극받아 친선전 혹은 소규모 토너먼트 식으로 치르던 수준에서 벗어나 속한 국가를 기준으로 리그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현재 100년을 훌쩍 넘은 유럽과 남미 프로축구 리그가 뿌리내리게 된 배경이다. 1930년대 이후 월드컵이 생기면서 클럽은 세계적으로 발전해갔고, 그 중에서도 특히 개방적이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큰 자금력을 바탕으로 더 성장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당시 전혀 개방적이지 못했고 FIFA월드컵의 참여를 거부했었다. 즉,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남미 스타들을 대거 유입하면서 잉글랜드보다 축구 기간이 짧았지만 그것을 커버했고 빠르게 발전해 나간 형태라면, 잉글랜드 클럽은 초창기에는 축구종가로써의 위치를 확고히했지만, 3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FA는 (유럽무대)보다 자국 리그에 더 집중할 것을 클럽들에게 원했다.
  13. 맨유 선수 몇몇은 퍼거슨은 매니저(Manager)가 아니라 보스(Boss)같았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현대축구는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1년도 참아주지 않는 요즘 다른 빅클럽 상황을 감안해보면, 그의 장기집권 체제는 탑클래스 감독들도 힘들어 하는 점이기도 하다.
  14. 퍼거슨이 은퇴했던 2013년 당시 기준으로, EPL 장기집권 감독은 1위 맨유퍼거슨감독(27년), 2위 아스날의 벵거감독(17년), 3위 에버튼의 모예스감독(11년) 순이었다.
  15. 루이스 판 할은 아약스 유스 출신 선수들로 1994-95 시즌 리그와 챔스에서 '더블'을 했던 명장이다. 맨유 골키퍼였던 반데사르도 그 당시 아약스 멤버였다.
  16. 자국 프리미어 리그, 자국 FA컵, UEFA 챔피언스 리그를 한시즌 내로 전부 우승해야 하며 이걸 이룬 팀은 역사를 쓴다고 봐야 한다.
  17. 캄프 누의 기적 당시 팀의 주축이던 로이 킨폴 스콜스가 결장해서 베컴이 중미로 뛰었다. 전력 누출이 있었지만 트레블 달성
  18. 리즈시절의 단어의 정의는 '인생에 있어서 한 번 쯤은 자신에게도 미칠 듯한 전성기는 온다'는 것. 스포츠 팀이나 개인 스포츠에서 그 선수가 날아다니던 시절, 즉 전성기를 뜻한다. 박지성의 맨유 동료였던 '앨런 스미스의 리즈유나이티드 시절'이 어원이다.
  19. 한국에서는 명색히 스포츠 기자가 쓴 기사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리즈 유나이티드간의 장미전쟁더비를 엉뚱한 곳으로 착각해 쓴 것들이 꽤 발견된다. 심지어 공중파에서도 리즈 유나이티드가 아닌 다른 팀과 경기에서 "박지성이 장미전쟁에서 골을 넣었다"라고 해맑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이러지 맙시다. 축알못들

    ▲ 방송사고와 언론 오보 현장을 목격한 증인들
  20. 백년전쟁이 끝난 이후 영국인들은 다시 보르도 와인을 찾았고, 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던 길(대영제국)에는 어김없이 보르도 와인이 뒤따랐으며 이를 통해 보르도 와인은 전 세계 와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다.
  21. 영국은 축구가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끔 축구의 규칙을 제정하고, 체계적으로 행정 체제를 발전시켰으며, 세계 각국에 축구를 현대적인 스포츠로 널리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세계에 축구를 퍼트린 것은 잉글랜드인이었으며, 유럽 유명 클럽에도 그 시초에 잉글랜드인이 끼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1895년 영국 유학생들이 일요일마다 활동한 풋볼스카이 라는 축구모임에서 출발되었다. 아틀레틱 발바오도 영국인들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클럽인데, 이는 바르셀로나가 무역항이었고 빌바오가 영국인들이 대거 참여한 탄광지대라는 점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도 창설 당시 John and William Parsons 등 영국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AC밀란은 영국인 허버트 킬핀과 알프레드 에드워즈에 의해 1899년에 창설됐고, 밀란 자체가 밀라노의 영국식 이름이다. 유벤투스의 저지 색깔인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은 영국 팀인 노츠 카운티 FC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
  22. 그로 인해 프리어미리그는 그 해 다시 UEFA 리그 랭킹 3위에 올라섰다.
  23. 영연방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퍼거슨이 들어올린 것은 트로피가 아니라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말했으며,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24. ● [스페인 저널리스트 디에고 토레스의 책에 의하면 "무리뉴는 퍼거슨을 그의 동료이자 좋은 친구 그리고 대부로 여겼다. 그는 그와 퍼거슨이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가 모아온 트로피들이 어느 누구도 그를 맨유 감독을 위한 경쟁에서 범접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예스가 맨유 감독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아주 실망했다고 한다. ‘모예스는 아무 대회도 우승하지 못했잖아!' 무리뉴는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크게 우는 것을 여러 사람이 들었고, 그 소식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식에 아주 충격받았다고 한다. 무리뉴는 계속 잠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했으며 모예스 선임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5월 7일 밤부터 5월 8일 아침까지 호텔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이곳저곳 전화를 해댔다. 그리고 모예스의 선임은 5월 9일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 재미있는 사실은 펩도 책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2011년 7월 바르샤는 아우디 컵에 참가하기 위해 뮌헨으로 갔었다. 펩은 뮌헨 훈련장(Säbener Strasse)에서 준비하는 것을 좋아했어. 바르샤의 훈련장보다 작았고 기술적인 시설들도 더 적었는데도. 펩은 감명받았고 비서에게 말했어.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이 곳에서 감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겠지' 펩은 이와 유사한 말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했지. 2011년 5월 그는 그의 상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분석하기위해 OT로 갔어. 퍼거슨의 팀은 4-1로 샬케를 이겼어.펩은 그 때 그의 친구에게 돌아보며 말했어. '난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언젠가 이곳(OT)에서 감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겠지.' 펩은 언제나 유럽의 전설적인 팀들과 선수들을 존경해왔어 숭배에 가까울정도로.' [출처] [(퍼거슨경이 감독직을 제의했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라는 질문에) 펩 왈 "그랬다면 아마 난 맨유 감독직 제의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영어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퍼거슨경이 빠르게 말할 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감독들의 꿈의 구단, 맨유[그리고 결국 이웃사촌이 되어버린 둘... 과연?!]
  25. 라디오헤드 에드 오브라이언는 맨유팬이고 맨유 홈페이지를 체크한다고. ["I’m also a big soccer fan — Manchester United — so I check out the MU sites, and there are a lot"] ['Ed O'Brien is a happy man this Thursday lunchtime. Not only did Radiohead play two fairly flawless shows for the BBC yesterday but his beloved Manchester United beat Roma 2-0 in the Champions League at the Stadio Olimpico. "The football was better than the gig," he beams.' His team are Manchester United]
  26. 뮤즈(밴드)는 유나이티드 응원가를 잼형식으로 연주했고, 이를 내한공연때도 선보였다고
  27.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앨런 스미스. "Yes, I became a Manchester United fan. I know that seems stereotypical — as an American, as soon as you get into football, you start liking Manchester United. But it wasn't David Beckham. I met Alan Smith and he invited me to a match and I fell in love with the whole experience. I can't think of a faithful as strong as the Manchester United fans."
  28. 보이그룹 웨스트라이프니키 번은 1997년도 FA유스컵을 뛰었던 리즈 유나이티드의 유스출신. 그 당시 룸메이트가 앨런 스미스. 쉐인 필란 인터뷰에서 만약 웨스트 라이프와 맨유에서의 선수생활을 바꿀 수 있으면 바꿀래?라고 질문했는데 쉐인은 그래도 웨스트 라이프라고 답하면서 만약 니키 번이었다면 맨유를 선택했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Nicky Byrne said, "I've always been a huge United fan, but I’ve only been to Old Trafford a handful of times in my life so to have the chance to play on the hallowed turf is going to be amazing."]
  29. 90년대 맨체스터 사운드의 중심이 된 스톤 로지즈의 프론트 맨이자, 카리스마 작렬 보컬인 이안 브라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광 팬으로 유명하다. 이안 브라운은 5살 때 부터 맨유 팬이었으며 맨유에 헌정하는 음반에도 참여를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게리 네빌 은퇴 경기 때는 OT에서 'This is the One'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라이언 긱스. [Ian Brown told The Guardian that he began supporting the club when he was five years old. It was "when we won the European Cup on May 29, 1968," he said. "My sister was born the day before and when I went into the hospital the day after, United were on the telly. I was born in 63 so I was only five but I can still remember it." Brown says his favourite player of all time is current assistant manager Ryan Giggs.] 스톤 로지즈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와 베이시스트 개리 매니 마운필드도 역시 맨유의 팬으로 유명하다. 셋다 시즌 티켓 홀더. 매니는 4살 때 처음 OT에서 아버지랑 맨유 첫 경기를 봤고, 8살 때부터 맨유에 빠져서 동생을 데리고 OT를 갔다고. 매니의 가족은 모두 맨유팬.
  30. 듀란 듀란의 보컬 사이먼 르봉은 아빠와 함께 보았던 맷 버스비의 맨유와 에우제비오의 벤피카 전이 소중한 추억이라고 ["I was at home with my dad. He shouted me into the back room and said 'come and watch this.' It was the European Cup final between United and Benfica. I just remember seeing Georgie Best go round the goalkeeper (for United's second goal) and from then on United were my team for life,"he told the official Man Utd website.]
  31. 브릿팝 초장기 록밴드 더 버브의 보컬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는 [어렸을 때 축구를 잘했고 맨유 포워드가 꿈이었다고. 중간에 밴드 멤버들을 만나서 가수가 되었다.]
  32.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주류를 이끌었던 예스(밴드)의 [존 앤더슨]은 어렸을 적 꿈이 축구 선수였고 9살때 부터 맨유팬이었다고. ["Early on in life, you wanted to be a soccer player. How different would your life had been if you had been successful in that sport? Oh my God, I was just talking soccer with a friend of mine. I am a huge Manchester United fan. When I was 9 years old, I was the mascot for my hometown team. But now, I am a big fan of American football. I am a 49ers fan. I know that won't go down too well in Dallas."]
  33.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는 1997년 로이 킨를 주제로 한 싱글 Roy's Keen을 발표할 정도로 열성 맨유팬. [The title is a pun of the name of former Manchester United footballer Roy Keane—a fact Morrissey acknowledged during live performances of the song by changing the lyrics to "never seen a keener midfielder". The song was played over the closing credits of Keane's 2002 documentary As I See It.]
  34. 더 스크립트 리더 대니 오도노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로이 킨폴 스콜스다. ["I’ve been a United fan all my life. I grew up in a United household and my brothers loved the Devils. Most of my most-valuable jerseys would be the ones with Paul Scholes or Keane on the back. There’s obviously the Irish connection with Keane but Scholesy comes from the same school of hard knocks."]
  35. 얼터너티브 락밴드 스노우 패트롤의 리드보컬 게리 라이트보디는 맨유의 노먼 화이트 사이드를 가장 좋아한다. ["I'm a Manchester United fan. I follow them because they play in the area I live in England. Being from Ireland, I really liked the Northern Ireland National Football Team. Favorite player, definitely Norman Whiteside. He holds records as the youngest player to take part in a World Cup, the youngest player to score in a League Cup and FA Cup final, and the youngest player to score a senior goal for Manchester United."]
  36. [밴드 백신즈에 관한 소개 글 중 음악과 축구를 사랑하는 한 지인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백신스는 분명 축구를 좋아할 것이다'라는 평을 남겼다는 문구가 있다. 음악이 어딘가 축구 응원가의 분위기와 닮았다는 것. 그만큼 단순하지만 흡인력 있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답~ [프론트 맨 저스틴 영] 저스틴 영이 맨유 팬이다.
  37. [보이그룹 더 원티드의 네이선 사이크스]는 20살 생일 전 날에 빅 파티 대신 호텔에서 맨유 경기를 보았다고. 파티보다 맨유경기를 보는게 훨씬 더 좋다는 열성팬이다. [His United hero is David Beckham]
  38. 영국 가수인 셰인 워드가 한국에 방문한 적 있었는데, 당시 엄청 기대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기는 맨유팬이라서. [쉐인은 맨유팬들의 유튜브 채널에서 모에스에게 빡친상태로 인터뷰 한적이 있다.]fucking shite
  39. [맨유 팬 미샤비]는 어렸을 적 웰백이랑 같은 반 친구 사이.
  40. [오디션 X FACTOR 출신 싱어송라이터 올리머스는 맨유 시즌 티켓 보유자다. 꼬마일 때부터 팬질을 시작했다고. 그의 아이돌은 데이비드 베컴] ["I'm a massive Manchester United fan, been supporting them for a long time now. I've got a box there and a season ticket, and I've supported them ever since I was a little kid"]
  41. 리한나도 맨유 팬. Rihanna describes United as 'my team' and is 'into football in a good way,' referring to their players as 'so talented and crazy', though has been pictured in many other top teams' colours.
  42. 올랜도 블룸의 베프였던 이웃친구와 아빠도 맨유팬이어서 같이 셋이서 맨유 경기를 즐겨 보았다고. ["Well, when I was young, my best mate lived next door to me and his dad was a big Man United fan. There were three boys (in that family) so I’d go round and watch the footie, and since they were all huge fans I became one by default."]
  43. 영화 반지의 제왕과 호빗으로 알려진 배우 도미닉 모나한도 맨유팬이다. 11살 때 맨유팬인 삼촌이 OT에 데려갔는데 그 기억이 바로 어제일 처럼 생생하다고. 항상 레플을 입으면서 자기는 맨유랑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형도 맨유팬. 촬영할 때는 트레일러에 칸토나 DVD와 시즌 리뷰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We used to have kick around in-between filming and I always had a Cantona DVD and a season review in my trailer."]
  44. [한국에서는 영드 '닥터후'로 꽤 알려진 배우 존심][은 12살 때 처음으로 OT에 갔고, 닥터후 촬영 대기실에도 맨유 머플러를 걸어둘 정도로 열성팬이다. 첫 직관은 1983년 FA컵 3라운드 맨유와 웨스트햄 전. 라이언 긱스를 좋아해서 아들 이름도 라이언. 라온마 시나리오에서 맡은 역할이 원래는 맨시티팬이었는데 친히 맨유팬으로 시나리오를 바꾼 적도 있다. 맨유 레플을 입고 드라마 인터뷰를 할 정도로 열정적인 레드 데블이다.] ["From as far back as I can remember - I can’t put a date on it. My dad, who was born in Crumpsall, used to regale me with tales of George Best and when I was kid I went to school in Nelson, where Mike Phelan was born. I watched Burnley a little bit because I couldn’t afford to go to Manchester, but when I got really interested in football during my early teens, I went to Old Trafford. My first game was in 1983 against West Ham in the FA Cup and Steve Coppell scored. He was my hero growing up, as well as Bryan Robson."][(First United hero) "Steve Coppell would be up there. I loved Gary Bailey as well. I got to meet him when I did a documentary on football called Football Magic in South Africa. Gary’s like the Lineker of South Africa. I was really excited about meeting him and I asked him what went wrong in that Cup final against Brighton – he was great." (All-time legend) "For me it has to be Cantona. I loved him. He’s the obvious choice but you can’t escape the fact that he shaped that team. It was a travesty he wasn’t in the team that won the Treble – I know he was in the dressing room – but that would have been great. I’d love him to come back as manager one day, with Roy Keane as his assistant. When he kicked that Crystal Palace fan, I know it’s not very PC to say this, but I thought it was one of the greatest moments I’ve ever seen in sport. Finally, finally someone with a brain cell thought: 'you know what, I’m not going to take this anymore. Some brain-dead moron shouting at me – why should I take it?' It was amazing." (How often do you get to see United play) "I'm up there most of the time this season as I've got access to season ticket. I go up as much as I can – obviously filming dictates to when I can and can't go – it's more difficult now I’m in London. It's a long trek but I'm used to it, I've done it a lot."]
  45.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샘웰 탈리역을 맡은 [존 브래들리웨스트도 맨유팬으로 요즘 래쉬포드를 눈여겨 보는 중.]
  46. 배우 존심과 친한 [영드 호텔 바빌론의 맥스 비슬리]도 맨유팬이다. 어렸을 때 맨유 광팬인 할아버지를 따라서 OT에서 경기를 많이 봤다고.
  47. [영드 마이매드팻 다이어리 핀]의 [니코 미랄레그로는 그의 인스타에 래쉬포드와 린가드 사진을 올려 맨유팬임을 인증했다. 영드 MMFD는 96년도가 배경인데 인터뷰에서 니코는 자긴 그때 집에서 맨유 우승하는 것을 봤을 것이라고 코멘트했다.]그 땐 니코가 5살
  48. [영국 국민배우 스티브 쿠건]도 맨유팬. ["I admit I'm a weekend Manchester United fan."]
  49. 영드 로빈후드의 조나스 암스트롱은 7살쯤 삼촌따라 맨유경기를 보려고 아일랜드에서 OT로 간 적있다고. 그 때부터 레드 데블이 되었다. [( What’s your favorite sports team?) Manchester United. It was the first game of football that I was taken to as a boy. I was around 7. My uncle from Ireland took me to watch Manchester United. So that is where my loyalty began. ]
  50. [골프 유럽 최강자 로리 맥길로이]는 어머니와 함께 맨유팬. "All my mum's side of the family are Manchester United supporters! My first memory is the FA Cup final in 1996. I remember the green and white that Liverpool wore and, of course, Cantona's late winner."
  51. 육상황제 우사인 볼트왈 '퍼거슨 감독은 천재.' "Over the years of watching Manchester United, Sir Alex Ferguson is a genius, sometimes he does things that don't make any sense but it works."
  52. [복서 타이슨 퓨리]가 가장 좋아하는 맨유 선수는 칸토나. 칸토나와 그가 조금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고. [I became a United fan at a very young age. (Who was your first United hero?) It would have to be Eric Cantona. I would say he’s a bit like me - controversial, outspoken and basically doesn’t care what people think of him! He was never afraid to try different things on the pitch. He had a lot of passion for the game and he loved to get stuck in. He was a great player for us.]
  53.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이웃집 주민을 구했던 복서 앤서니 크롤라]도 [맨유팬]. 당시 병원에 있던 크롤라에게 퍼거슨경이 안부전화를 했는데, 영감님이 '이거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지?'라고 묻자 크롤라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짜릿했다!"
  54. 영국 테니스 선수 제이미 머리는 7살 때부터 맨유 팬이었으며 퍼거슨 감독과 대런 플레처를 때문에 더 맨유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그의 영웅은 퍼거슨감독. ["I got into United when I was about seven or eight years old, probably because they were the best team at the time! As I got older, I became a much bigger fan because of them having a Scottish manager and the Scottish captain Darren Fletcher. (Who is your United hero and why?) Sir Alex Ferguson. Every United fan has to love Sir Alex. To be able to manage a club for nearly 27 years and have the level of success he had will never be replicated again. I loved the way he set up his teams to play football and he always gave the younger players a chance to prove themselves which is rarely seen these days. His desire to win season after season impacted his players because their performances rarely dropped despite all the successes they’d previously had. Darren Fletcher is also a hero for me. In my lifetime, Scotland have never had a great national team so I can't imagine the young Scottish kids who aspire to be footballers having many Scottish heroes to look up to, but Darren has been Scotland's captain and played for the biggest club in the world and has proved to these kids that it’s possible for a Scottish kid to live their dream."] 윔블던에서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는 퍼거슨 감독을 종종 볼 수 있다.
  55. 심지어는 유럽 본토에도 팬들이 많이 있었다. 유럽은 연고지 축구단을 응원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기에 옛날에는 타국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적었으나 맨유의 경우는 유럽 본토에서도 팬들이 제법 있었다.
  56. 리그의 독주체제는 분데스리가, 세리에 A, 리그앙 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프리메라 리가도 결과론적으로는 최근 10년간을 보면 리그 우승은 FC 바르셀로나가 독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EPL은 현재 가장 평준화 되어있는 리그다. 라리가도 레알 바르샤 AT 3강 체제지만 맨유가 일명 독주를 할땐 경쟁자로 아스날, 첼시, 리버풀이 있었고, 그들은 맨유가 독주 분위기에 놓여있을때도 리그우승을 했다. 2010년대엔 맨시티가 이에 합류하면서 일명 맨맨첼아룰 완성시켰고, 최근에는 오히려 강팀들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정도로 평준화가 잘 되어있는 리그다. 이말은 상대적인 약팀들도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노팅엄 포레스트가 그러하였고, 블랙번 로버스가 그러했다. 또한 2년 전에 사우스햄튼이, 1년전엔 웨스트 햄이 그러했다. 물론 역사적으로 화제가 되는 레스터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57. 2016년 4월 19일 기준. 전적이 추가될때마다 수정 바람
  58. 단순히 활동을 오래했거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올드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보통 진정한 올드비란 가장 잘나가던 황금기, 또는 반대로 막장이었던 암흑기를 거쳐온 역전의 노장(?)들이어야 한다는 것.
  59. 박지성 현역일 때는 맨유 클럽보다는 같은 한국인 선수가 이피엘에서 활약하는 것을 응원하는 성향이 더 강했다. 2002년 한국 국대 황금기를 경험하고, 포루투칼 이탈리아 스페인 국대를 이겼던 기세로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 당시 그들을 깠던 사람들을 (한국국대황금뽕 + 박지성뽕)까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 또한, 박지성이 맨유에 있는 기간동안에는 올드 맨유팬들은 '아시아의 호랑이 기상'들을 거의 내버려 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마침내 박지성 선수와 퍼거슨 감독의 은퇴가 둘다 이뤄지 면서, 그 둘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최근 유입되고 있는 뉴비들을 위해 맨유 역사 '팩트'가 나열된 것. 도리어 무개념 까들맨유에 대해 너무 팩트를 몰랐던 것은 아닌지?!
  60. '팬'이란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본인이 팬이라고 말하는 클럽보다 다른 팀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모순'적인 행동의 좋은 예이다. 팬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 대다수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자세히 안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하다. 보통은 관심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61. 예전이었으면 팬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퍼거슨 영감이 리빌딩했겠지만, 영감이 없으니 레드 데빌즈가 대신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칸토나처럼 31살에 스스로 은퇴한 경우 영감과 팬 둘다 절실히 그리워했지만, 맨유에서 대다수 경우는 선수들보다 퍼거슨 감독이 3수 앞을 내다보고 리빌딩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 일이 생길 일이 없었다.
  62. 2013년 12월 조사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맨유는 아스날 등 유럽 일부클럽들에게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가 밀렸다고 한다.
  63. 맨체스터 응원가 버전이 가장 유명하지만 토트넘 핫스퍼와, 리즈 유나이티드도 이 곡을 응원가로 사용하기도 한다. Glory! glory, Man United 를 제외한 응원가도 많다. 다만 잘사용되지않는거같다.
  64. 재미있는 것은 매트 버스비는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에서 뛰었던 선수이며 은퇴도 리버풀에서 했다.
  65. 14-15시즌 7부리그인 노던프리미어 리그 프리미어 디비전 소속이였으나 우승하면서 15-16시즌 6부리그인 내셔널리그 노스로 승격했다. (약칭 유맨) 2009년 7월 18일 한국으로 와서 부천 FC 1995와 친선 경기를 벌인 바 있다.
  66. 그러나 글레이저 가문은 퍼거슨경의 집권 당시 그의 구단 운영에 일절간섭하지않았고 이적자금지원도 괜찮은 편이었다.
  67. [영국 축구팬들은 다른 어느 나라의 서포터들보다 팬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직 규모나 인지도,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개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영국 축구팬들은 응원팀의 클럽 역사에도 정통하다. 어느 두 구단이 맞붙을라치면, 두 구단의 역사도 함께 맞붙게 되는 것이다. 셀틱(Celtic) 응원가 가사에는 이러한 전통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싸울 가치가 있는 위대한 전통의 팀, 바라볼 가치가 있는 위대한 전통의 팀, 너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너의 심장을 뛰게 하리라. 뛰어. 뛰어. 뛰어."]
  68. 11점차 우승 1등팀의 성적을 중위권으로 만들어버리는 역대급 망장 모예스는 중위권이 딱이야 중위권까지 한계가 명확한 감독 모예스지만, 역으로, 뭐든지 중위권으로 맞추는 모예스가 지난 15/16시즌 17위였던 선덜랜드를 중위권으로 도약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69. 당시 맨유는 챔스 우승에 연속 결승 진출했고, 레알은 몇년간 챔스에서 16강 연속 탈락했던 상황이었다. 그 당시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칼데론은 호날두를 영입하기 위해 2년간 공을 들였다. 칼데론은 호날두를 2008/2009시즌부터 데려오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2009년 페레즈가 회장이 됐을 때, 그는 (호날두와의) 계약을 깨고 싶어했다. 그는 호날두가 좋은 선수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돈의 가치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때문에 호날두와 이적 초반에 문제가 있었다."]